카나자와 타케시

 

치바 롯데 마린즈 No.73
카나자와 타케시 (金澤岳/Takeshi Kanazawa)
'''생년월일'''
1984년 5월 5일
'''출신지'''
토치기 현 오타와라 시
'''포지션'''
포수, 1루수[1]
'''투타'''
우투좌타
'''학력'''
야이타중앙고교
'''프로입단'''
2002년 NPB 드래프트 6라운드 지명
'''소속팀'''
치바 롯데 마린즈 (2003~2018)
'''지도자'''
치바 롯데 마린즈 2군 배터리코치 (2019~)
'''등장곡'''
Jumpin 'Up (Jump) - Sushy[2]
'''응원가'''
ゴダイゴ - 君は恋のチェリー[3]
1. 소개
2. 프로 시절
2.1. 2003~2012년
2.2. 2013~2014년
2.3. 2015~2017년
2.4. 2018년
3. 연도별 성적
4. 여담


1. 소개


치바 롯데 마린즈포수. 2002년 치바 롯데에 드래프트된 선수 중 마지막까지 롯데에서 뛰었던 선수.

2. 프로 시절



2.1. 2003~2012년


고교야구 시절에는 현 대회 4강이 최고로 고시엔 출전은 없었다. 2002년에 드래프트 6위로 치바 롯데 마린즈에 입단했다.
5년 동안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 2007년부터 2군 주전포수를 먹고 2008년부터 드문드문 1군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5년 동안 1년에 10~20경기 정도 드문드문 나오며 백업포수 자리조차 얻지 못했다.

2.2. 2013~2014년


2013년에 주전포수 사토자키 토모야가 노쇠화가 오면서 개막전부터 1군 라인업에 포함되었다. 이 해에 백업포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56경기에 출발하였다. 2013년 시즌에 한 시즌 100타수를 넘기는 데 성공했고, 데뷔 첫 도루에 성공했다. 하지만 타율 .198로 부진했다.
2014년에도 딱히 주전포수가 없는 팀 상황 덕분에 꽤 자주 나왔다. 등번호를 62에서 25로 변경하였고, 시즌 초반부터 타격 호조로 포수뿐만 아니라 1루수를 종종 맡기도 했다. 7월 27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전에서 프로 데뷔 첫 홈런을 쳤다. 만 30살 2개월 3주만에 친 늦깍이 데뷔홈런. 이 해에는 42경기에서 타율 .299를 기록했다.

2.3. 2015~2017년


지난 두 시즌의 활약 덕분에 나름 기대를 받았으나 2015년에는 '''2군에서 1할''' 타율을 보이면서 폭망하는 바람에 1군에 하루도 올라가지 못했다.
2016년에는 시즌 중반에 1군에 올라와서 타무라 타츠히로 대신 몇 번 선발 포수로도 나갔고, 요시다 유타에무라 나오야 등 백업포수 경쟁자들을 제치고 클라이맥스 시리즈 엔트리에도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2017년에는 그러나 요시다 유타가 백업포수 자리를 먹으면서 1군에 거의 못 올라왔다. 4경기 7타수 무안타. 참고로 연봉이 한국 돈으로 1억 3천만원이다(...) 억대연봉의 2군포수가 된 셈.[4]

2.4. 2018년


시범경기에서 후쿠우라 카즈야의 대주자로 나갔다가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2군에 박혀있다. 최근 몇 년 간 롯데가 타자 노망주들을 대거 정리하고 있기 때문에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다. 요시다 유타가 개막 엔트리에 들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상 때문에 에무라 나오야가 대신 개막 엔트리에 들었으니..
현재 2군에서도 주전 자리를 요시다 유타에게 빼았겼다. 4월 17일 기준 2군 성적은 1경기 3타수 무안타 1타점.
요시다 유타가 2군에서 타격 난조를 보이자 최근에는 자주 나오고 있다. 6월 11일 기준 2군 성적은 18경기에서 타율 .375. OPS는 무려 .948이다.
하지만 무네츠구 유이토가 대신 1군에 올라가는 바람에 1군 콜업은 실패.
지금 팀 포수 중 서열이 최하위다. 카나자와를 제외하면 모두 1군을 밟아봤다. 물론 나머지 다섯 명 중 무네츠구 유이토, 요시다 유타 는 1경기 출장에 그쳤고 카키누마 토모야는 1군은 밟았어도 한 경기도 못나왔지만...
9월 15일 카키누마 토모야가 1군에 올라가면서 거의 마지막 기회를 놓쳐버렸다. 아마 올 시즌이 선수생활 마지막 해가 될 듯.
결국 예상대로 은퇴를 선언하였다. 10월 4일 세이부 전에 은퇴식을 하게 된다. 이 날 은퇴경기 겸해서 시즌 처음이자 마지막, 그리고 평생의 마지막 1군 경기를 치를 예정이라고 한다. 이날 오토나리 켄지[5] 대신 1군에 콜업되었다.
이날 경기에서 카나자와의 딸이 시구를 했으며, 카나자와 본인은 아쉽게도 선발 라인업에는 들지 못했다. 대타나 대수비로 나와서 잠깐 뛰고 들어갈 듯. 참고로 이날 상대팀이 공교롭게도 카나자와가 유일하게 홈런을 기록한 적 있는 세이부다. 6회 말에 타무라 타츠히로의 대타로 나왔다. 아쉽게도 2구만에 좌익수 플라이 아웃. 이후 포수로 들어갔다.
포수로 2이닝 수비한 후 두번째 타석에 섰으나 아쉽게도 헛스윙 삼진. 이후 감독으로부터 꽃다발을 수여받고 에무라 나오야와 교체되어 내려가며 가늘고 긴 선수생활을 마쳤다. 근데 이날 경기도 1회 초부터 선발 아리요시 유키가 두들겨맞으면서 패배(...)
경기 후 은퇴식을 치루었으며[6] 홈 플레이트 위에서 동료들이 모여 헹가래를 해 주었다. 2002년 드래프트 동기들 중에 유일하게 은퇴식을 치른 타자였다.[7]
2019년부터 2군 배터리코치를 맡는다고 한다.

3.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도루
볼넷
삼진
출루율
장타율
2003
치바 롯데 마린즈
1군 기록 없음
2004
2005
2006
2007
2008
15
44
.273
12
2
1
0
10
0
2
11
.319
.364
2009
2
1
1.000
1
0
0
0
0
0
0
0
1.000
1.000
2010
6
7
.571
4
0
0
0
1
0
0
3
.571
.571
2011
21
28
.071
2
0
0
0
2
0
0
11
.069[8]
.071
2012
13
16
.250
4
1
0
0
0
0
1
6
.294
.375
2013
56
106
.198
21
4
0
0
7
1
10
26
.277
.236
2014
42
87
.299
26
5
0
1
5
0
7
21
.351
.391
2015
1군 기록 없음
2016
17
32
.188
6
1
0
0
2
0
4
13
.308
.219
2017
4
7
.000
0
0
0
0
0
0
0
1
.000
.000
2018
1
2
.000
0
0
0
0
0
0
0
1
.000
.000
<color=#373a3c> '''NPB 통산(10시즌)'''
<color=#373a3c> 177
<color=#373a3c> 330
<color=#373a3c> .230
<color=#373a3c> 76
<color=#373a3c> 13
<color=#373a3c> 1
<color=#373a3c> 1
<color=#373a3c> 27
<color=#373a3c> 1
<color=#373a3c> 24
<color=#373a3c> 93
<color=#373a3c> .290
<color=#373a3c> .285

4. 여담


  • 공격형 포수의 수비력과 수비형 포수의 공격력을 갖춘 선수지만 2군 주전과 1군 백업을 오가면서 가늘고 길게 선수생활을 하고 있다. 2군에서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보면 10홈런 정도는 쳐낼 수 있는 나름의 펀치력은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2군에서도 컨택이 안 먹히는 수준이라 암담하다.
  • 이름인 金澤岳은 金 澤岳이 아니고 金澤 岳이다. 이 선수가 金씨인줄 알고 재일교포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한국과는 전혀 상관없다.[9]
  • 포수인데도 특이하게 좌타이다.[10]
  • 2002년 드래프트 동기생 중 가장 마지마까지 치바롯데에 남았었다. 동기생 중 제일 잘나갔던 니시오카 츠요시는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다가 한신으로 이적했고, 나머지 5명의 동기는 모두 방출당해서 은퇴했다.[11] 그리고 카나자와는 2018년 시즌 이후 은퇴하게 되고 니시오카 츠요시도 방출당하게 되면서 2002년에 롯데에 뽑힌 선수 중 프로에서 뛰는 선수는 이제 없다.[12]
  • 2009년 시즌에 10할 타자였다(...)
  • 성적을 보면 알겠지만 생존왕 기질이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일본 야구팬들이 방출자 명단을 예상할 때 거의 개근하다시피 했었는데[13] 그때마다 살아남았고, 결국 방출이 아닌 본인이 스스로 은퇴선언을 하면서 선수생활을 마쳤다.


[1] 2014년에 1루수 겸임을 시작하였다. 15년 이후로는 1군에서 1루수로 나오진 않았다.[2] 2014년 때 하시모토 메이의 Let it go(겨울왕국 Let it go의 일본어 더빙버전)를 등장곡으로 썼다.[3] '''君は頼れる左バッター 金澤岳 その名をとどろかせろ さあ振りぬけ強(너는 믿을 수 있는 좌타자 카나자와 타케시 그 이름을 널리 알려라 힘껏 베트를 뻗어내라)'''[4] 사실 NPB 최저연봉은 2400만원으로 한국보다 낮지만(한국은 2700만원) 1군 최저 연봉은 1억 5천만원이다. KBO의 1군 최저 연봉은 5천만원.[5] 그 전날에 은퇴경기를 했다.[6] 여담으로 이 날 경기 전에는 마츠이 카즈오의 마지막 ZOZO 마린 스타디움 경기를 기념한 조그마한 행사가 있었다. 사실상 은퇴 행사가 1경기에 2명이나 치뤄진 것.(어차피 마츠이는 홈에서 더 성대하게 은퇴식을 하겠지만 말이다.)[7] 동기 중 제일 잘나가서 메이저리그까지 갔던 니시오카 츠요시는 한신에서 방출당하는 바람에 은퇴식이고 뭐고... 만약 새 팀을 구한다면 그 팀에서 니시오카도 은퇴식을 치를 가능성이 높다. 전성기가 빨리 끝나기는 했으나 한때는 일본 최고의 테이블 세터였으니.[8] 볼넷이 없고 희생플라이가 1개라 타율이 출루율보다 높다(...)[9] 한국식으로 金澤岳을 읽으면 김택악. 전혀 한국인의 이름이 아니다.[10] 우투좌타 포수로 레전드 포수이자 명감독인 모리 마사아키가 있다.[11] 카나자와를 제외하고 마지막까지 치바롯데에 남았던 동기는 8라운드 지명자 하야사카 케이스케. 2015년에 롯데에서 방출당한 후 은퇴했다. 그 외의 나머지 동기들은 제대로 1군을 밟아보지도 못했다.[12] 단 니시오카는 독립 리그에 진출하여 현역 생활을 2019년에도 계속한다.[13] 연관 검색어에 카나자와 타케시 전력외가 있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