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종
胡綜
(185년 ~ 243년)
1. 개요
후한 말, 삼국시대 오나라의 문관으로 자는 위칙(偉則). 여남군 고시현 사람.
2. 생애
아버지가 없는 결손가정 출신으로 손책이 회계태수로 있던 198년에 14살의 나이로 문하수생이 되어 손권과 독서를 하며 놀았다고 한다. 200년 손책이 죽고 난 후에는 금조종사가 되어 황조를 토벌하는데도 참가해 익현의 장이 되었다가 209년 손권이 거기장군을 받을 때 서부가 된다.
221년 이릉대전 때는 손권의 주위에 병사가 없었기에 지방에 내려가 징병을 하고 두 개의 해번병 중 우부독이 된다. 후에 진종이 위나라로 배반하여 약탈을 행하자 하제와 함께 토벌했다. 221년 위나라에서 손권을 오왕으로 봉했을 때 정후가 되었다. 225년 파양사람 팽기가 반란을 일으키자 주방을 도와 반란을 제압했으며, 227년에 팽기를 사로잡아 무창에 보내 반란이 끝나게 되었다.
229년에 손권이 황제를 칭하자 부를 지으며 이 때 촉과의 맹약하는 글을 지은 것이 호종. 손권이 건업에 수도를 정한 다음에 호종은 시중, 향후, 좌우령군이 되었다. 이 때 위나라의 오질이 배반하려고 한다는 풍문이 도니 호종은 오질이 오나라에 항복하겠다는 글을 세편이나 만들어 배포하여 항복을 기정사실화 하려고 했으나 이미 오질은 본진으로 돌아가 시중이 된 후였다.
230년 은번이라는 청주사람이 오나라에 귀순을 해서 손권이 여러가지 질문을 해 썩 마음에 들어했지만 호종은 그를 믿지 못한다며 수도의 작은 직책을 맡게 한다.
비록 주거와 학보는 그를 매일 칭찬하며 학보의 경우는 그에게 작은 직위를 주는 호종을 원망까지 했지만 결국 호종의 말대로 은번은 모반을 꾀하다가 주살당하니 그 일로 학보는 자살, 주거는 연금되었다. 장소와 손권이 공손연 사건으로 인해 싸우자 그 둘을 화해시킨 일로 편장군, 좌집법이 되었다.
237년에는 국가의 의무를 버리고 모친상을 치르러 간 사람을 죽이는 법령을 만드는 것에 찬성하고 전종, 주환을 거느리고 여강을 공격하려다 작전이 실패하자 남의 명령을 듣는 다는 것에 화가 난 주환에게 죽을 뻔 하지만 겨우 살아남는데 성공한다.
243년에 세상을 떠나 아들 호충이 작위를 잇는다.
3. 평가
육개의 상소문에서 손권이 내부의 일을 처리할 때 신임했던 인물이라는 평을 한다.[1]
진수가 평하기를 문채가 있고 재능이 있었기에 서상, 시의와 함께 각기 다른 신임을 받아 큰 건물에 비유한다면 서까래를 잇는 것처럼 군주를 도왔다고 기록하였다.
4. 기타
한 번 손등의 명으로 빈우목을 만들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술버릇이 좋지 않아 술을 마신 후에는 하고 싶은 말을 멋대로 하고 옆에 있는 사람을 때렸다고 한다. 이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이 꽤 있으나 나라를 세운 뒤에 모든 일에 기초를 세운 자가 호종이기에 죄를 묻지는 못했다고 한다.
5. 미디어 믹스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14부터 등장하고 능력치는 통솔 69, 무력 53, 지력 77, 정치 69, 매력 64이며 일러스트는 오른손에는 붓을, 왼손으로는 죽간을 들고 있다. 개성은 능리, 모집, 주란, 주의는 예교, 정책은 병기강화 Lv 3, 진형은 학익, 정란, 전법은 업화, 도발, 구축, 친애무장은 서상,[2] 손권, 시의, 혐오무장은 주환이다. 생년은 171년, 몰년은 220년까지 되어있다. 여담으로 호준과 같은 성을 가진 무장 중에서 지력이 제일 높다.
네이버 웹툰인 삼국전투기에는 전투 외편에서 여강 공격을 위해 주환과 합류하고 손권의 뜻이라면서 기습을 주장하며, 주환이 반발하고 전종도 이에 호종에게 설득되어 주환과 대립한다. 주환이 화나서 부하들을 시켜 호종을 죽이려 하지만, 주환의 측근이 주환을 지키기 위해 주환과 상의없이 호종은 돌려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