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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吳質
(? ~ 230년)
1. 개요
삼국시대 위의 관료. 자는 계중(季重). 제음군 사람.
2. 정사
가난하고 문벌이 없는 집안에서 자란 오질은 어려서부터 높은 신분에 속한 사람들과만 어울렸고 향리와는 교제하지 않았는데, 관직에 나아갔지만 그 지역에서는 선비의 이름을 부여하지 않았다.
그는 재주와 학문이 넓고 신묘한데가 있어 조비와 여러 제후들에게 경애받았으며, 형제간에 잘 처신해 마치 전세의 누군경(樓君卿)[1] 이 5후[2] 사이를 노닐었던 것과 같았다고 했다.[3] 아래쪽의 막장 행각과 비교해보면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
하북이 평정되자 조비가 세자가 되어 유정 등과 함께 좌석에 있었다. 유정이 조비의 처 문소황후를 똑바로 쳐다봤다가 불경죄에 걸렸을 때 오질은 조가장으로 나가있다가 원성령으로 옮겼다. 조조가 서량을 정벌하고자 떠났을 때 조비는 맹진의 소성에 있었는데, 조비가 소성에서 지내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받았으며 이 때 조비는 오질에게 자중하고 있기를 당부한다. 218년에는 조비로부터 건안칠자를 평가하는 내용이 적힌 편지를 받았다.
이렇듯 그는 조비의 측근으로서 활동하였다. 세어에 따르면 조비는 조가장으로 나가있던 오질을 버리는 대나무 상자 속에 넣고 그것을 수레에 넣어 조조 몰래 불러들이려 했는데 조식의 심복 양수가 이를 알고 조조에게 고했고 조조는 수레를 조사하게 했다. 조비가 이를 걱정하자 오질은 그 대나무 상자에 비단을 넣어 다시 수레에 넣고 수레를 나가게 하도록 조언했다. 양수가 이를 다시 일러바치자 그 말을 들은 조조가 수레를 조사하도록 했지만 수레에 아무도 없자 조비는 위기를 넘기고 오히려 양수가 조조에게 의심을 받게 되었다.
또 조비가 조식과 후계자를 다툴 때 그는 자주 조비에게 조언했는데, 조조가 출정할 때 조식은 특유의 미려한 문장으로 아버지를 전송하는 글을 올렸다. 조식의 문장에 법도가 있어 좌우의 사람들이 눈을 모으고 조조 역시 기뻐하였다. 이에 조비가 실망하자 오질은 조비에게 조조가 지나갈때 별다른 말 없이 눈물만 흘리도록 조언했다. 그러자 모두들 조식은 문장은 뛰어나나 진심이 부족하고 조비가 더 진심으로 조조를 위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오질은 진군, 사마의, 주삭과 더불어 일명 4우(友)로 불리는 최측근이 되었다.
조비가 선양을 받아 제위에 오르니 특히 총애를 받으면서 북중랑장에 임명되고 열후에 봉해지면서 사지절독유병제군사가 되어 신도를 다스리게 되는 등 점점 지위와 벼슬이 올라갔다. 하지만 오질은 이런 파격적인 대우를 등에 업고는 나중에는 오만해져 다른 이들을 종종 함부로 대했다고 한다. <왕찬전>에 주로 인용된 《위략》의 '오질별전'에 따르면, 같은 사우였던 주삭과 황실 일족인 조진을 연회장에서 공공연하게 모욕한 적이 있다. 조진은 체구가 비대했고 주삭은 반대로 바싹 말랐는데, 연회에서 흥이 오르자 오질이 광대를 불러내 뚱뚱하고 마른 것끼리 견주어 이야기를 풀어놓도록 시켰다. 조진은 모욕을 당하자 화가 나서 오질을 꾸짖었으나 왕충과 조홍이 오질의 편을 들어 조진더러 살을 빼는 게 좋겠다고 말했으며,[4] 그 말에 더 노발대발한 조진이 칼을 빼들고 광대를 죽이겠다고 을러대니 오질도 자신의 칼을 만지작거리면서 조진을 푸줏간에 매달린 돼지고기 혹은 지금 뽑은 칼로 상 위에 있는 고기도 썰지 못할 겁쟁이라고 모욕했다.[5] 주삭이 험악해진 분위기를 말려보려 했으나 오질이 이번에는 주삭을 모욕하자, 이에 주삭도 화를 내며 칼을 뽑아 땅을 찍으니 곧 연회가 파했다.
북중랑장으로 있을 때 당시 유주자사였던 최림이 머리를 숙이지 않자 오질은 이에 앙심을 품고 최림이 공적이 있는데도 하간태수로 좌천시키는 등 방자한 태도를 일삼았다고 전한다.
226년에 조비가 사망하자 오질은 조비를 사모하는 시를 지었다. 조예의 대가 되어서도 그 방자한 성질머리는 변하지 않아서 고향에 갔다가 사람들이 자기를 꺼리고 냉대하자 원망하는 말을 하다가 동향 사람인 동소에게 꾸지람을 들었다. 이후 230년 시중이 되어 조정으로 복귀한다. 동오의 호종이 거짓 문서를 꾸며 오질이 동오에 투항하려 한다는 내용을 퍼뜨리려 했으나 한발 늦은 뒤였다.
조예에게 나라를 보필할 만한 대신에 대해 이야기하며 사마의를 칭찬했는데 반대로 진군은 헐뜯으며[6] 조예에게 문책하도록 했다. 하지만 천하의 사람들은 모두 진군의 편을 들어 오질이 잘못되었다고 여겼으며 오질은 동년 여름에 병사했다. 오질이 자신의 위세만 믿고 제멋대로 굴었기 때문에 시호를 '''추후(醜候)'''[7] 라 하였다. 당대에 오질이라는 인물의 평판이 얼마나 나빴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 아들 오응이 후에 이의를 제기해 정원 연간에 위후(威候)로 바뀌었다.
같은 4우 중에서도 주삭과 진군을 깐 것과는 달리 그래도 사마의와는 친했는지 딸이 사마사의 두 번째 부인이 되었지만, 얼마 가지 못해서 파혼당했다.
3. 평가
단연 조비의 측근 가운데서도 '''가장 막장스러웠던 인간'''으로 글재주는 있었다지만 조비의 총애만 믿고 신분 고하를 가리지 않고 함부로 행동했던 데다가 주삭이나 진군 등 조비를 함께 모셨던 동료들에게도 못되게 굴었으며, 처음에 내려진 시호만 봐도[8] 당대에 그의 평판이 얼마나 나빴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오죽하면 고위직을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삼국지에 열전조차 없으며 그나마 별전 등으로 전해지는 기사는 하나같이 좋은 내용이 없을 정도면 그야말로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수준이다.
4.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조가의 장을 지내는 인물로 비단 옷궤짝에 숨어들어 조비와 접촉한다. 양수가 이를 알아채고 조조에게 고해 조비가 걱정하자, 조사받게 되면 먼저 비단만 넣은 궤짝을 들여보내고 나중에 자신이 숨어 들어오면 된다고 계책을 이르고 실행하는 단역이다. 그 외에는 출연이 없고 인간 쓰레기 행각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5. 미디어 믹스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매력 바닥권에 다른 능력치도 별 거 없는 문관형 인물. 특히 조비의 꾀주머니인데다 양수의 계책을 간파해낸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치 지력이 낮다. 기본적으로 연의 바탕에 정사 기록을 양념치는 삼국지 시리즈이고, 정사에서는 뭔가 유능한 모습도 없으니 지력이 낮아도 이상하지는 않다. 매력이 있는 시리즈에서는 매력이 낮게 나오는데, 조비의 총애를 믿고 건방지게 굴었던 걸 반영한 모양이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17/무력 27/지력 57/정치력 56. 혼란과 덫을 가지고 있어 가끔 부장으로 쓰기도 하지만 그게 끝.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17/무력 34/지력 64/정치력 56/매력 9에 특기는 상업, 혼란 2개 뿐.
삼국지 11에선 매력이 대폭 상승 했지만 그래봤자 37이다. 일러스트는 외모 언급 일화를 반영해 전체적으로 말라보이며, 턱수염만 기르고 있다.
삼국지12 PK에서 추가된 그의 일러스트는 스토리텔링을 일러스트에 반영한 점으로 인해 술을 마시며 조진과 주삭을 모욕하는 모습을 묘사했는데, 인게임에서도 조진과 주삭의 혐오무장으로 설정되어 있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16/무력 29/지력 68/정치력 57. 특기는 교섭 1 단 하나. 전수특기도 당연히 교섭이며 전법은 기병도발. 병과는 모두 C다. 써먹기 힘든 잡문관이지만 주삭보다는 지력이 높다. 물론 특기는 주삭이 우월하다. 이번 작은 혐오무장 시스템이 없어서 조진, 주삭과 친해지는 대체역사가 가능해진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16, 무력 29, 지력 64, 정치 57, 매력 17로 전작에 비해 지력이 4 하락했다. 개성은 문화, 소심, 오만, 주의는 명리, 정책은 시설개발 Lv 2, 진형은 충차, 전법은 없고 친애무장은 사마의, 조비, 주삭, 진군, 혐오무장은 양수, 조식, 최림이다.
5.1. 삼국
의외로 나올것 같지 않은 신삼국에서도 이름이 나오긴 하는데, 조비가 같이 귀뚜라미를 가지고 놀며 친하게 지내는 하인을 오질이라고 부르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조비가 흑화한 뒤에도 눈치없게 그의 앞에서 귀뚜라미 얘기만 하다가 조비가 냉정하게 귀뚜라미를 내동댕이 치자 크게 놀라고, 곧 조비에게 훈계를 듣는다. 배우는 대군사 사마의에서 헌제를 연기한 왕무뢰.
[1] 이름은 누호(樓護), 군경은 자에 해당한다.[2] 전한 말기의 권세가였던 평아후 왕담, 성도후 왕상, 홍양후 왕입, 곡양후 왕근, 고평후 왕봉 등 5명을 말한다.[3] 누군경은 5후의 상객이 되었다.[4] 조홍과 왕충은 결코 낮은 입지가 아니나(특히 조홍은 개국공신이자 조비와 조예 시대에 남은 유일한 집안 어르신이다.) 조비가 대놓고 오질을 총애하면서 조홍과 왕충을 못 잡아먹어 안달일 정도로 싫어했기에 좋던 싫던 오질을 편들 수밖에 없었다. [5] 번역본마다 약간 다르다.[6] 즉 같은 조위사우인 주삭을 모욕했을 뿐만 아니라 진군까지 헐뜯은 것이다.[7] 그렇다. "추하다" 할때 바로 그 추 자다.[8] 시법에 따르면, '''품행이 방탕한 자에게 내리는 시호가 '추'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