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조

 




1. 일반적인 의미


  • 黃鳥 : 꾀꼬리를 뜻하는 한자어로 황조가라는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했다.

2. 왕건의 별호


성명
별호
시호
재위기간
비고
왕건(王建)
고려황조(高麗皇祖)[1]
응운원명광렬대정예덕장효위목신성대왕
(應運元明光烈大定睿德章孝威穆神聖大王)
918 ~ 943
1대 왕
본칭 태조(太祖)

3. 후한 말의 인물


黃祖
(? ~ 208)

3.1. 개요


후한 말의 강하태수. 유표 휘하의 장수.
다만 유표의 직속 부하나 부장으로 보기엔 영향력과 세력이 매우 막강하였고 독립 군벌로 보는 시각도 있다.

3.2. 정사


유표#s-1의 밑에서 강하태수를 지냈다. 원술의 명령으로 유표를 치러 온 손견과의 전투에서 손견이 전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손씨 일가와 대대로 대립하였다. 정사에는 손견이 황조군의 군사에게 활을 맞아 죽은 것으로 되어 있으며, 전략에 따르면 이때 손견은 황조의 복병에 의해 죽은 것으로 되어있다. 다만 영웅기에는 손견을 죽인 것이 여공으로 되어 있다.
손책의 대에는 유훈을 돕기 위해 아들 황역을 보내 싸우게 하지만 황역은 참패했다. 오나라쪽 기록에 있는 손책의 표에는 황조와 싸워 이기고 수천, 수만 명을 죽이거나 혹은 포로로 잡아갔다고 하는데, 애초에 표라는 것 자체가 뻥이 심한 거라 수치 그대로 믿기는 좀 그렇다.
황조는 자신에게 신세를 지고 있던 예형의 문재를 아껴서 우대하였다. 어느 날 연회를 열었는데 예형의 말이 불손하였다. 이에 지적을 하자 아예 쌍욕을 날리므로 편형을 부과했다. 예형은 그칠 줄 모르고 되레 더 패악질을 부려댔다. 결국 홧김에 사형에 처했는데 평소 예형을 싫어했던 관리가 즉시 형을 집행하였다. 예형과 친했던 황역이 부랴부랴 달려왔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 황조도 이내 후회하여 후하게 장사지냈다.
그리고 손권의 대에는 203년에는 손권군에 의해 수군은 격파당했지만 손권 측 장수 능조[2], 서곤[3]이 전사하고 농성하는 동안에 후방에서 산월과 여타 지역의 반란으로 손권군은 후퇴한다. 207년 손권의 재침공으로 관리와 백성들을 끌려갔다.
208년, 손권은 또 다시 강하를 침공한다. 황조는 강을 막기 위해 몽충 두 대를 엮어 가로로 놓고 돌에 새끼줄을 달아 닻으로 삼아 고정시킨 뒤에 몽충의 위에는 천여 명의 궁수를 둬서 쇠뇌와 화살을 퍼붓는다.
이에 진격하지 못하고 있던 손권군이었지만 선봉 여몽이 황조군의 진취를 직접 베고 오강 방면으로 진격한 능통장석을 죽인 것에 이어 동습이 백여 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몽충 안으로 돌입해서 닻줄로 쓰고 있던 새끼줄을 끊어 몽충을 표류시키는 전공을 세운다.
이후 황조는 성이 함락되어 도륙된 이런 상황을 보고 홀로 달아나려 하였으나, 손권 휘하의 기사(騎士) 풍칙(馮則)이 쫓아가 그를 죽이고 효수하였다. 건강실록에는 생포해서 성문에 효수했다고 되어 있다.

3.3. 연의


이후 감녕을 수적 출신이라며 괄시하거나 예형의 악담을 듣고 살해하는 등 그저 장군 자리나 차지하고 있는 무능한 장군으로 묘사되다가 후에 손권이 보낸 감녕에게 살해당하는 것으로 그려졌다.
연의에서는 손견의 죽음과 상관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손씨 일족과의 원수 관계는 여전히 유지된다.

3.4. 평가



3.4.1. 긍정적 평가


손견, 손책, 손권에 이르는 오랜 기간 동안 동오 세력과 싸워 오면서도 야전에서는 패해도 결과적으로는 강하를 점령하는 것을 저지하는데 성공했으며, 특히 손씨 일가 측에서도 대장인 손견, 능조, 서곤이 황조 정벌 중 전사한 것을 보면 그와의 싸움이 꽤나 격렬하고 험난했음을 알 수 있다.[4]
여기에 손책, 손유, 주유, 정보, 황개, 한당, 여몽, 동습, 주태, 장흠, 서곤, 능조, 능통 등 쟁쟁한 장수와도 전투에서 살아남는다.
황조와 손씨와의 대결은 '~가 -와 싸웠다' 식의 일방적인 기록만 있을 뿐, 전황이나 전투의 전개를 추측할 수 있는 기록이 전무하여 교차검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기록의 신뢰성을 증명하기 어렵다. 다만 황조가 손견손책, 손권에 이른 손씨 일가 3대의 공격을 연이어 상대하면서 적어도 16년 이상 살아남았다는 건 교차검증 없이도 증명가능한 부분이다.
승자 측 기록인 오서에 기록된 사건은 승전 혹은 국지전만을 기록한 것일 수도 있고 정사 오범전을 보면 '이길수 없었다' 라는 말을 써서 우회적으로 황조에게 패배하였다고도 해석될 수 있는 방향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그가 전사한 후에도 유표의 아들 유기가 채씨 호족을 피해 강하의 서쪽 끝인 하구긴 해도 강하태수로 부임하는 것을 보면 오나라는 황조 전사 후에도 강하 전지역을 장악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다소 재고할만한 게 반대로 말하자면, 어쨌든 강하군 일부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후에 익양대치에서 (위군 영토가 아닌 나머지) 강하군을 오나라에 귀속하기로 했는데, 촉이 오에 강하를 반환하였다는 기사가 없는 것으로 보아선, 이미 강하군 대부분은 오나라 관할이었던 상태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디시인사이드 삼국지 갤러리 등에서는 고순처럼 숨은 명장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가끔 나온다. 권력만 막강했던 채모와는 달리 이쪽은 아예 무수히 전투를 치른 무장인데 창작물에서의 대우는 영 좋은 편은 못 된다.

3.4.2. 부정적 평가


그렇다고 이것만으로는 결론을 내기는 어려운 게 황조는 잦은 전투에 패하면서, 숱한 장수들을 잃는다. 유표의 조카 유호부터, 한희, 진취, 등룡 등이 손씨 일가 군대와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오서에 손권이 203년 황조의 성을 점령하는데 실패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이는 황조의 능력 덕분이 아니라 산월의 반란 때문에 실패했다고 기록되어 있기에 저걸로 황조의 능력으로 보기엔 미지수다. 거기에 이 때 능조가 전사한 것은 황조의 용병술 덕이 아니고, 패하여 추격을 당하는 와중에 감녕에게 사살당한 것이니 이걸로 황조를 칭찬하면 오히려 일종의 굴욕인 셈이다.
기록상에서 아무리 편파적이라고는 해도 뭇 오군 장수들에게 전투력 측정기 취급의 뉘앙스가 강하다. 이것은 아들 황역도 마찬가지이다.[5] 존재감이 은근 없어서인지 이 인물에 대한 평가도 거의 없는데, 그나마 있는 것도 오나라로 귀순한 감녕의 '황조 걔 늙어서 판단력도 흐려짐'이라는 디스[6] 뿐이다. 실제로 능력이 있었다면 주석으로라도 어떤 평가가 달리기 마련인데, 영웅기를 통해 어떤 인물상인지 비교적 상세한 기록이 전해지는 고순과는 달리, 황조의 경우 진짜로 아무것도 없다.[7]
인품을 볼 수 있는 사례에서는 예형을 죽인 것이 있는데, 예형의 조롱을 더이상 참지 못해 홧김에 저지른 것이었다. 같은 상황을 겪은 조조랑 유표와는 도량 차이가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죽이고 나서 바로 후회하며 예형을 후하게 장사지내 주었다고 한다. 또 예형의 죽음은 어느 정도 본인이 자처한 면이 있으며 그런 걸로 따지자면 학자 고대가 자기를 깔보는 것 같다며 트집잡아 죽인 손책의 죄는 더 크다.

3.5. 미디어 믹스



3.5.1.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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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만하게 형주로 쳐들어 온 손견군을 상대하지만 대패한다.

3.5.2. 삼국지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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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표의 명으로 영토에 침범한 손견군을 유표 옷을 입고 유인하여 손견을 제거하는데 성공한다. 여담으로 프사에서 등산한 산은 손견이 죽은 현산이다.

3.5.3. 삼국지 시리즈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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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인의 삼국지
삼국지 9,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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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2,13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통솔력이 70대로 범장의 능력치를 가지고 나온다. 그나마 5, 9, 12을 제외한 시리즈는 다 잉여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워낙 무장이 부족해 문빙을 제외한 모든 무장이 능력치가 좋지 않은 유표군에선 채모나 황조를 전투에서 써야만 한다.[8] 물론 넘사벽 감녕이 휘하로 있는 시리즈도 있긴 한데 문제는 감녕은 상성으로 따졌을 때 황조와 너무 안맞아서 금방 하야하거나 오나라로 돌아서버린다.
삼국지 3에서는 강하에 주둔하고 있긴 하지만 원래의 설정대로 강하태수가 되어있는 게 아니라 그냥 잡장 쩌리 취급이다. 무력이 66밖에 안되니 이걸로 이미 장군되기는 글렀고 그렇다고 군사가 될 만큼의 지력이나 정치력도 없다. 따라서 강하는 한숭이 태수를 하고 있으며 황조는 그저 한숭의 휘하 잡장으로 나온다. 실제와는 정반대의 설정이다.
삼국지 5에서는 무력이 70 빼고 쩌리이지만, '''방원진'''과 안행진을 가지고 있고, 특수능력으로 화시, 낙석, 난사, 복병을 가지고 있다! 흠좀무. 189년 동탁의 난 상급 시나리오에서 유표로 플레이 할 때 방비를 안해두면 손견이 시작하자마자 강하로 밀고 들어오는데 황조가 방원진으로 손견군의 공세를 견뎌낼 수 있다! 여기에 원군이 도착하면 역으로 손견을 끝장내버릴 수도 있다.
삼국지 9에서는 통솔, 무력(무력은 60대 후반)을 제외하면 쩌리이지만, 노병 병법인 연사를 가지고 있어서 공성전에서 쓸만하다. 그 이외에 병법으로는 누선, 정란을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74/65/57/44/30로 역시 조금 부족한 능력치에 특기는 5개라고 준게 기술, 보수, 화시, 유인, 제독으로 뭔가 어정쩡하다. 가장 높은 통솔도 70을 간신히 넘기는데 통솔 의존 특기는 화시 하나 뿐이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74/66/53/38/32로, 그나마 낮던 지력과 정치, 매력이 모두 하락했다. 게다가 수군 적성이 채모장윤에 밀리는 A로 나오는 굴욕을 겪는다.
가끔 황조 독립 같은 마조히즘적인 시나리오가 나오는데 그땐 부하가 소비밖에 없거나 혼자 있고 인접도시엔 복수에 이를 가는 손책군이나 영웅집결 한정으로 최강의 전력을 가진 유비군과 마주한다. 게다가 강하는 방어하기 매우 나쁜[9] 도시이기 때문에 아주 어렵다.
삼국지 12에서도 능력치 자체는 한심하나 전법이 '''복병'''이다. 병종이 궁병, 원사 특기가 있어서 아예 스나이퍼가 되었다. 본인의 지력은 조루포스가 있지만 복병의 코스트가 적고 적을 슬로우시켜서 끔살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황조는 드디어 우금처럼 재평가를 받았다. 문빙, 채모와 함께 유표군의 주력 무장으로 대우가 상승할 정도다. 일러스트는 턱수염을 손에 갖다 대면서 고심하고 있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무지정 순으로 74/66/55/38로 지력이 전작에 비해 2 올랐다. 특기는 훈련 3, 수영 4. 전수특기는 수영이며 전법은 소침공작.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76, 무력 67, 지력 55, 정치 45, 매력 35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이 2, 무력이 1, 정치력이 7 상승했다. 개성은 견뢰, 공명, 탐욕, 주의는 아도, 정책은 묵수연구 Lv 3, 진형은 안행, 방원, 투석, 전법은 연노, 견제, 구축, 강습, 친애무장은 유표, 혐오무장은 감녕이다. 이번 작부터 자신의 아들 황역#s-1이 추가되었다.
제갈공명 와룡전에서도 나오는데 대머리 장수이다.

3.5.4. 진삼국무쌍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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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삼국무쌍 시리즈에서는 오나라 스토리에서 자주 털리는 역할밖에 없는 클론 무장이었는데... 진삼국무쌍 블라스트에서 첫 참전!! 근데 갑옷 착용한 문관 일러스트같다는 평이 많다.

3.5.5. 삼국전투기




3.5.6. 화봉요원


면구에서 오나라와 싸우다가 오군이 진채로 진입하자 부하들에게 하구와 유기를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싸우러 나갔다가 능통에게 죽는다.
병력이 오군보다 우세였는데도 강동을 공격하자는 감녕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몇 년간 수비만 했는데, 유기 파벌과 유종 파벌을 갈라져서 싸우는 형주의 암투로 인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한 것으로 황조는 친 유기 파벌이었다.
황조 사후에는 유기가 하구를 지키게 되었고 황조의 수하였던 하복(何福), 고방(高放), 진영(陳嬰) 등은 유기를 따라갔다.

3.5.7. 연희 시리즈




3.5.8. 토탈 워: 삼국


클론 무장이며, 타입은 용장. 군웅할거 캠페인, 배신당한 천하 캠페인에서 유표 세력의 속국인 황조 세력의 지도자로 등장한다.
천명 캠페인에서는 이벤트를 통해 유표 세력의 무장으로 기용된다.
직위가 오르면 수나라로 세력명이 변경된다.
Make Them Unique 모드에서는 전설 장수로 변경되며, 호칭도 장거리 기습자[10]에서 범을 쓰러뜨린 자[11]로 변경된다. 결의와 책략도 증가하고, 권위 대신 용장에게 필요한 본능 증가로 바뀌어 사실상 상향이 되었다.
[1] 본칭 태조. 황조는 별호임.[2] 황조가 손권군에게 패하여 추격받는 위급한 상황에서 감녕이 능조를 사살했다.[3] 서곤은 이때 인지 207년인지 확실하지 않다.[4] 손책전 주석 오력[5] 서성군 200명에게 패한다.[6] 참고로 예형도 황조에게 "다 죽어가는 늙은이"라고 깐다.[7] 삼국지 위서 유표전에는 황조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으며''', 후한서 유표전에서도 손견이 죽는 부분과 황조가 죽는 부분에서만 언급된다.[8] 황충도 있긴 하지만 유표의 무장으로 설정되지 않은 시리즈도 허다하다.[9] 투석함이 없어도 강에서 성을 공격 가능한 유일한 도시이기 때문이다.[10] 결의+10, 책략+15, 권위+5, 회복력+1, 매복 성공 확률 +30%(세력전체)(상국, 세력지도자, 후계자일 때)[11] 결의 +20, 책략 +20, 본능 +20, 회복력 +1, 방어하는 적의 사기 +5(세력 전체 / 상국, 지도자, 후계자일 때), 이 군대가 공격하는 적군의 매복 확률(세력 전체 / 상국, 지도자, 후계자일 때) (+신중, +인내, -위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