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쿠토 아키라
1. 프로필
2. 소개
일본의 탤런트이자 前 프로레슬러. 일본 여자 프로레슬링계에선 불 나카노, 토요타 마나미, 아쟈 콩 등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인물이다.
3. 프로레슬링 커리어
1985년 6월 12일, 삿포로의 나카지마 체육센터에서 그리즐리 이와모토와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에서 데뷔전을 치러 승리한다. 당시엔 본명인 우노 히사코를 링네임으로 사용했는데, 약 2년간 연전연승 기록을 만들었다. 하지만 1987년에는 경기 중에 생긴 목부상으로[5] 장기결장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하필 경추 주위 부분의 부상이라 몇달간 침대에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고, 의사로부터 링에 복귀하게 되면 30세 이후에 후유증이 발생해서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들었지만 1년만에 복귀한다. 이때부터 링네임을 호쿠토 아키라로 한다.
1990년대에 들어서며 1991년에 불 나카노와 대립을 한다.[6] 2년 후배인 토요타 마나미로부터 "호쿠토 너는 한 번도 날 이긴 적이 없구나"라는 도발을 듣고 분노하여 항쟁을 벌였다. 이 시기에 벌인 항쟁은 일본 여자 프로레슬링의 질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켰는데, 1995년 9월 2일에 도쿄돔에서 펼친 경기는 데이브 멜처에게서 5성 만점을 받은 한편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1995년 올해의 경기 10위에 랭크한다. 또 둘의 항쟁 이전까지만 해도 일본 여자 프로레슬링은 여성팬의 비율이 많았지만 이후 남성팬들을 경기장에 모여들게 만들었다.
멕시코를 오가며 활동하던 1992년엔 턴힐한 후 2년 후배인 미타 에츠코, 시모다 미마와 라스 카쵸라스 오리엔탈레스[7] 라는 팀을 결성하여 리더로 활동했다. 이 시절 호쿠토 아키라와 시모다 미마는 원피스가 주류였던 전녀에서 이례적으로 투피스 형식의 경기복을 착용하기 시작했는데, 곧 팀의 상징이 되었다. 투피스 형식의 의상을 입게 된 이유는 "화장실 가기 편해서"다.
1993년부터 1997년까지의 단체 대항전[8] 시대에는 칸도리 시노부와 치열하게 대립했다. 1993년 4월 2일엔 칸도리 시노부와의 경기에서 서로 출혈을 일으키는 한편 칸도리의 서브미션 기술에 탈골된 팔을 그 자리에서 끼워맞추고선 경기에 임했고, 살벌한 주먹 타격까지 선보인 끝에 승리한 후 독한 마이크워크를 하며 '''데인져러스 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경기는 데이브 멜처에게서 5성 만점을 받았으며,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1993년 올해의 경기 3위에 랭크한다.
당시 일본에서 활동하는 동시에 멕시코 등지에서의 활동도 병행했는데, 멕시코에선 레이나 후부키라는 링네임을 사용했다. 이 링네임으로 WCW에도 진출했지만 단 한 번의 경기 이후론 다시 호쿠토 아키라라는 링네임으로 활동한다.[9] WWF에서 건너온 메두사와 대립을 가졌는데, 초대 WCW 위민스 챔피언에도 오르며 누구에게도 타이틀을 빼앗기지 않고, 심지어 은퇴조항이 걸린 경기에서 승리해 메두사를 은퇴시킨다. WCW에서 차원이 다른 막강함을 선보였지만 1997년에 고국으로 돌아가며 더이상 WCW에서 활동하지 않았고, WCW 위민스 타이틀도 일시 폐지된다.[10] 이후 나가요 치구사가 설립한 여자 프로레슬링 단체인 GAEA Japan에서 활동한다. 2002년엔 비슷한 나이대의 아들을 둔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서 2002년 4월 7일에 은퇴시합을 치른다.
4. 프로레슬링 은퇴 이후
은퇴 직후엔 주부로서의 역할만 수행했다. 그러다 WJ 프로레슬링에서 탈퇴한 후 힘들어하는 남편 사사키 켄스케[11] 를 지원하기 위해 그의 매니저로서 링에 복귀하고, 남편의 프로레슬링 단체 사무실인 켄스케 오피스의 공동 회장도 역임한다. 한편 일본 방송계에도 진출해 중견 연예인으로서 활발히 활약한다.
탤런트로서의 캐릭터는 무서운 주부, 요리고수, 살림고수의 이미지가 있다. 세븐일레븐에 도시락을 런칭하거나, 요리책 출간, 요리 프로그램 우승, 주방세제 CF 모델활동 등을 보면 실제로도 요리실력이 상당한 듯하다.
남편인 사사키 켄스케와는 잉꼬부부로 유명하다. 호쿠토 아키라가 일반인을 폭행했다는 혐의로 사사키 켄스케의 눈앞에서 경찰에게 체포되는 설정의 몰래카메라를 실시한 적이 있는데, 경찰이 호쿠토에게 강압적으로 대한다는 이유로 사사키 켄스케가 경찰(역할의 배우)을 패대기칠 뻔해서 몰래카메라가 긴급중단된 적이 있을 정도다.
2015년 9월 23일에 유방암 때문에 입원해서, 24일 오전에 오른쪽 유방 전적출수술을 받았다.
5. 여담
- 피니시 무브인 노던 라이츠 밤은 호쿠토 아키라가 의도치 않게 개발해낸 기술이다. 원래 바디슬램을 하려다가 손이 미끄러지는 실수로 이 기술을 쓰게 되었는데, 당시 상대선수가 실신했다. 여자 프로레슬러의 기술 중 가장 위험하고 강력한 기술이다. 이후 남편인 사사키 켄스케에게 전수해주었으며, 남편으로부터는 스트랭글 홀드 감마를 전수받았다.
- 호쿠토 아키라의 남편인 사사키 켄스케가 원래 좋아했던 사람은 토요타 마나미였다고 한다.
- 남편인 사사키 켄스케와 처음 만난 곳은 WCW와 신일본 프로레슬링이 합동으로 개최한 북한 흥행에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낯가림이 심한 성격의 사사키 켄스케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고민하다가 겨우 "저기... 호쿠토가 진짜 성씨세요?"라는 질문으로 말문을 텄다. 그 당시 호쿠토 아키라는 속으로 '저 자식 지금 진지하게 하는 소리인가'하고 황당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호쿠토를 한국어로 직역하면 '북두'가 되는데, 이런 성씨나 이름은 없다.
- 연습삼아 사사키 켄스케와 양자 나카지마 카츠히코의 태그팀 기술을 맞고 " 날 죽일 셈이냐!"라고 소리쳤는데 그 이후 기술 이름이 귀신마누라鬼嫁 죽이기가 되었다고 한다.
- 우리나라의 개그우먼 조혜련이 일본방송에서 기미가요에 박수를 친 것이 논란이 되었는데, 당시 조혜련의 왼편에서 같이 박수를 치던 사람이 바로 호쿠토 아키라이다. 당시 기미가요를 불렀던 가수는 미녀 엔카 가수로 유명했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야시로 아키였는데, 야시로 아키는 한국의 트로트를 많이 번안해서 부르기도 했었다.
- 타이틀 경기와 같은 중요한 경기를 치를 때는 대부분 100% 온전한 컨디션으로 경기를 치른 적이 없는데, 늘 부상이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전녀의 상징인 붉은 벨트는 손에 넣은 적이 없다.
- 연습생 시절 콘도르 사이토, 바이슨 키무라와 함께 선배들의 괴롭힘과 고된 훈련을 견디지 못하고 합숙소를 무단이탈한 적이 있다. 이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 선배인 덤프 마츠모토가 다른 선배들 몰래 따뜻하게 받아주어 다시 연습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호쿠토 아키라의 남편인 사사키 겐스케는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똥군기의 제왕이자 상습적인 후배구타 & 학대 & 악질적인 장난질로[12] 악명이 높았다.
- 여자 프로레슬러로서 그레이트 무타와 경기를 가진 유일한 선수이다. 일대일 싱글매치는 아니고 혼성 태그매치였는데, 노던 라이츠 밤을 시전했으나, 그린 미스트에 반격당했다.
- 방송에서 활동할 때는 보통 현역시절의 데인저러스 퀸의 이미지대로 강한 아내의 모습을 보이지만, 반대로 귀여운 언동으로 갭모에를 일으키기도 한다. 모 요리방송에선 생선을 손질해야 했는데 무서워서 눈물을 글썽이며 질색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13] , 다른 방송에선 히나단 멤버로 분위기에 맞춰 여성스럽 답변으로 장내를 초토화 시키기도 한다.
- 개그콤비 '크림시츄'가 진행하던 '시루시루 미시루'라는 방송에선 가족 단위로 대활약을 했는데, '무한리필 뷔페에서 밥값 뽑아내기'에 도전한다거나 남편과 함께 각종 재연장면에 투입되기도 했다. 특히 북두의 권 패러디 장면에선 켄스케가 켄시로, 호쿠토는 모히칸 헤어의 악당역을 연기했는데 "북두의 권 패러디라고 해서 유리아인 줄 알고 왔는데 이거냐?"라는 발언으로 역시 패널들을 배꼽잡게 하기도 했다.
6. 둘러보기
[1] 남편인 사사키 켄스케에게 전수받았다.[2] 팔과 다리를 모두 잡은 채 백 드롭을 시전하는 기술인데, 이 기술로 인해 상대선수가 척추에 부상을 입는 등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로 일찌감치 봉인되었다.[3] 캐틀 뮤틸레이션과 거의 동형의 기술인데, 호쿠토는 주로 앉아있는 상대에게 사용했다.[4] 초대 챔피언[5] 태그팀 3판 2선승제 경기였다. 첫번째 경기에서 2단 로프에서 툼스톰 파일드라이버를 맞고 목 부상을 당했는데 그 상태에서 간간히 손으로 머리를 제 자리에 고정시켜 놓으면서 두번째와 세번째 경기까지 다 소화해냈다[6] 호쿠토 아키라는 학교에서 불 나카노의 팬클럽을 만들었을 정도로, 학생 시절에 불 나카노의 팬이었다.[7] Las Cachorras Orientales. 영어로 풀이하면 The Oriental Bitches(...)가 된다.[8] 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단체들의 대표 선수들이 모여 경기를 치렀던 황금기.[9] WCW에서 레이나 후부키라는 링네임으로 데뷔했을 때는 마스크를 착용했었다. 하지만 호쿠토 아키라로 링네임을 바꾼 뒤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10] 1997년에 메두사를 은퇴시킨 시합 이전에 호쿠토 아키라는 WCW를 탈단했지만, 다른 단체에서 연합전으로 가진 경기였다. 호쿠토 아키라와의 경기에서 패해 은퇴한 메두사는 1999년도에 팀 매드니스 멤버로 다시 복귀했다.[11] 사사키 켄스케는 전일본 5강이나 투혼삼총사급 슈퍼스타는 아니었다. 하지만 싱글레슬러로서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삼관 헤비급 챔피언십, 프로레슬링 NOAH의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을 모두 지낸, 일본에 단 두 명뿐인 그랜드슬램 프로레슬러다(다른 1명은 타카야마 요시히로). 사사키 켄스케는 자신의 단체였던 DIAMOND RING을 운영하다가 2014년 2월에 선수 은퇴를 선언했다.[12] 숙소 규칙에도 없는 신입부터 3년차까지는 자위 금지라고 장난을 치질 않나. 단체로 식사중에 후배들에게 주목하라고 하고는 내가 이 흰색컵을 들고 있지만 내가 이걸 검은색컵이라고 하면 너희들도 당연히 검은색이라고 대답해야 하며 반론을 제기하고나 토를 달 경우 그자리에서 면상을 갈기겠다고 하질 않나. 후배 레슬러가 팬들에게 받은 선물을 차들이 씽씽 달리는 8차선 도로에 집어던지고는 그 후배에게 주서와보라며 킬킬대는등 그야말로 악질 중의 악질. 마카베 토우기도 신인시절 이 인간때문에 말도 못하게 고생했고 고통을 참으며 꿈인 프로레슬러를 해야 하나 이렇게 당하느니 저 인간을 칼로 담가버리고 레슬링 판을 떠야하나 하고 심각하게 고민했을정도(...)[13] 이 모습을 본 남편 사사키 켄스케는 "챠코(호쿠토의 애칭)의 귀여움을 다시 느꼈다"라며 좋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