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나카노
1. 프로필
2. 개요
일본의 前 여성 프로레슬러. 전녀시대를 대표하는 악역이자 아쟈 콩, 호쿠토 아키라, 토요타 마나미와 더불어 한 시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여성 프로레슬러.
3. 데뷔 전
가와구치 시립중학교 출신. 학창 시절 왕따를 당해 아버지가 강한 아이가되도록 무리하게 프로레슬링에 입문시켰는데, 불량학생이었다는 설도있어 확실하지 않다.[5] 본인은 어머니의 영향으로 프로레슬링을 보는 것은 좋아했지만, 직접 하는건 내키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어머니가 좋아했던 레슬러는 안토니오 이노키. 당시 대부분의 프로레슬러 동기들은 여자 프로레슬러를 동경하여 입문했지만, 나카노는 이노키를 동경하여 입문했다.
4. 신인 시절
1983년에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에 입문, 본명인 나카노 케이코로서 프로레슬링계에 데뷔한다. 당시 여자 프로레슬러로서는 흔치 않은 170cm의 비교적 큰 키를 가지고 있었으며, 운동 신경은 처음에는 둔했지만, 남다른 노력과 연습으로 향상되었다. 본명으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나가요 치구사의 심부름꾼 역할을 맡았고, 전일본 주니어 챔피언쉽을 거머쥐기도 했다. 신인 시절에는 선배 레슬러들로부터 무시당하거나 따돌림을 당하는 등 누구도 상대하지 않았었는데, 예전부터 나카노를 주목해왔던 선배 프로레슬러 덤프 마츠모토가 "극악동맹[6] 에 합류해서 나와 함께하지 않을래?"라며 데려갔다.
5. 극악동맹 시절
공식적으로 극악동맹(極悪同盟) 가입 후 링네임을 불 나카노로 바꾼다. 나카노가 레슬러로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펑크를 모티브로 한 눈에 띄는 악역 스타일링에 쌍절곤[7] 을 무기로 사용했던 극악동맹 시절부터였다. 특히 극악동맹의 기존 멤버였던 크레인 유우의 은퇴 후 덤프 마츠모토와의 태그 팀[8] 은 선역이던 크러쉬 갈즈[9] 와 대립하며 전국적으로 인지도를 올리고 큰 인기를 얻으며 최고의 악역으로서 빠르게 자리잡을 수 있었다. 당시 크러쉬 갈즈(걸즈)는 일본사회에 엄청난 사회 현상, 센세이션으로 기억될 만큼 여자 프로레슬링의 폭발적 붐을 만들어 낸 존재였으며, 10대~20대 여성들에게는 톱 아이돌을 능가하는 엄청난 인기를 끌던, 말 그대로 전설의 여자 태그팀이었다. 크러쉬 갈즈의 경기 때마다 여성들의 울부짖는 함성과 비명소리로 가득 메워지고, 꽃다발 세례와 링주변으로 달려드는 여성 팬들 때문에 입장로로 걸음을 옮기기도 어려웠을 정도였으니...시합장에서의 경기는 물론이고, 수만명 규모의 팬 감사제 입장권이 발매 개시하자마자 매진사태, 암표가격이 몇배로 치솟는 등, 크러쉬 갈즈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만큼, 상대역으로 그들의 앞을 막고 엄청난 시련을 주던 강력한 악역인, 덤프 마츠모토 & 불 나카노 콤비의 위상도 엄청나게 올라가게 되었다. 덕분에 빠른 시간 내 탑 힐의 위치로 올라갈 수 있었고, 여자 프로레슬링계에서 나카노의 위치는 확고한 자리를 잡게 된다.
그러나 원래 악역은 나카노 본인이 지망한 것이 아니라 선배들의 지시에 따른 것이어서에 나카노는 극악 동맹 입문 초기에는 악역을 잘 소화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런 나카노의 고민을 꿰뚫어본 덤프 마츠모토는 향후 악역 레슬러로 임할 각오를 다져주기기 위해 경기장 대기실에서 "오늘부터 헤어스타일을 모히칸으로 바꾸고 내 파트너가 되어라!"라고 말했지만, 나카노는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에 마츠모토는 즉시 그 자리에서 나카노의 왼쪽 머리 절반을 밀어버렸다. 이 헤어스타일은 후술할 '옥문당'초기까지 유지되는데, 훗날 나카노는 당시 머리를 밀리고나서 호텔에 들어가 통곡했다고 고백했다.
6. 옥문당의 리더
1988년에 덤프 마츠모토가 잠시 프로레슬링을 그만두게 되자, 본인이 리더인 옥문당(獄門党)을 결성. 그리즐리 이와모토, 아쟈 콩, 바이슨 키무라 등 실력파 레슬러를 거느리고 계속해서 악역의 최고봉으로서 군림했다. 라이벌이던 크러쉬 갤즈의 은퇴 후인 1990년 1월 4일엔 고라쿠엔 홀에서 열린 WWWA 세계 싱글 챔피언 결정 토너먼트에서 니시와키 미츠코를 꺾고 우승하며, 제37대 챔피언에 등극. 이후 약 3년간 챔피언 자리를 지키며,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의 기둥으로서 '''" 여제 女帝 "''' 칭호를 얻는다.
옥문당의 결성과 동시에 불 나카노 특유의 하늘로 솟은 헤어스타일도 정착되었다.[10]
7. 여제(女帝)의 시대
악역이면서도 레슬링 실력만큼은 여자 프로레슬링 계의 최상위를 차지했다. 이전까지 전녀에서 악역 선수들은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주는 대신 무기를 사용하는 등 각종 반칙플레이를 선보여왔는데, 나카노는 이런 전형적인 악역 플레이를 버리고 진정한 '''실력파 악역'''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선역 대 악역'의 대립이라는 기존의 대립 구조를 무너뜨리고, 정글 잭[11] 과의 '악역 대 악역' 대립구조를 선보인다. 또한 여자 프로레슬링에서는 볼 수 없었던 스틸케이지 데스매치와 체인 데스매치 등의 거칠고 위험천만한 경기를 감행했으며, 육중한 체격의 거구 레슬러로서는 시도하기도 벅찬 문설트나 다이빙 써머쏠트 레그드롭, 수이사이드 다이브 같은 공중기등 모든 면에서 여자 프로레슬링의 역사를 바꿀만한 걸출한 기술들을 선보였다. 특히 이때부터 시작된 단체 대항전(타단체 선수들간의 경기)에서 단체의 간판 스타로 활약한다.
1992년 11월 26일, 아쟈 콩에 패해 WWWA 세계 싱글 챔피언 타이틀을 잃은 후, 1993년부터 미국의 WWF(현 WWE)에서 활동한다. 루나 버숀을 매니저로 두고 당시 WWF의 여자 스타였던 얼룬드라 블레이즈와 대립했는데, 결국 블레이즈를 누르고 챔피언자리에 오르는데 성공. WWE 위민스 챔피언십을 획득한 첫 일본인 레슬러이기도 하다.[12] 이때 보여준 기괴하고 강렬한 포스 덕분에 오늘날까지도 WWE에서 가장 사악한 디바나 위대한 디바를 뽑을 때마다 나카노를 거론하고 있다.
1996년에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WCW에서 메두사(Madusa)[13] 와 대립을 벌였다. 이 무렵 관중들에게 "너희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가져도 불 나카노의 프로레슬링은 계속 된다"라며 프로레슬링에 계속 전념할 것을 시사했다.
8. 은퇴 후
1997년에 왼쪽 인대 2개가 끊기며 프로레슬러로서의 인생을 마감했다.
2000년부터는 골프에 전념했으나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관광 비자로 입국하여 골프 연습을 시작했으나 미국 동시 다발 테러사건 이후 미국과의 왕래가 어려워진 것. 급히 영어스쿨의 학생비자를 취득하여 머무는 지경이 되지만, '해외 원정 경기에서 WWE 위민스 챔피언십 타이틀을 획득한 유일한 일본인 여자 레슬러'라는 실적 덕분에 이례적으로 영주권 취득에 성공한다. 그런데 정작 2004년 플로리다에서 열린 골프 대회에선 251명중 250위, 2005년 대회에선 271명중 261위를 기록하며 LPGA 가입에 실패하고 2008년 일본으로 복귀했다.
골프선수 준비중 다이어트를 실시하고 50kg 감량에 성공했다. 이 다이어트의 체험을 바탕으로 나중에 다이어트 서적도 집필했다. 일본 TV 프로그램들에도 다이어트와 관련된 주제도 여러번 특별출연 했다.[14]
[image]
왼쪽은 전성기 시절, 오른쪽은 2013년 다이어트에 성공한 모습. 믿기 어렵겠지만 동일인물 맞다. 사실 메이크업을 지우면 꽤 귀여운 얼굴이다. 심지어 통통했던 신인 시절 별명은 팬더였다고...
2010년 4월 20일. 일본방송 '마녀들의 22시'를 통해 10년 만에 텔레비전에 출연했다. 여기에서 소개한 다이어트 비법은 블루 다이어트. 파란색을 방안에 두르고 심리적 효과로 식욕을 감퇴시키는 것이었다. 또한 귀국 후에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다니기 시작한 무에타이 도장에서 15살 연하의 킥복서 겸 무에타이 선수인 아오키 다이스케와 만나 2010년 2월 14일에 동거를 시작했다.
2010년 7월 23일엔 식당 '나카노 블루 짱(中野のぶるちゃん)'을 개점했으나 곧 폐점하고, 2011년 2월 25일에 동명의 바(bar)를 차렸다. 이 가게에는 후배 프로레슬러들인 야마다 토시요, 미타 에츠코, KAORU, 히로타 사쿠라가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1997년 프로레슬링을 그만두긴 했지만 부상에 의한 갑작스런 은퇴이기에 은퇴식을 치른 적이 없었는데, 2012년에 은퇴식을 계획한다. 체중을 다시 현역 당시 100kg대까지 찌우고[15] 본인의 생일이기도 한 2012년 1월 8일에 도쿄 돔 시티 홀에서 은퇴식을 가졌다[16] . 그러나 부상 때문에 직접 경기를 하지는 않았고, 커리어의 명장면을 재현하는 퍼포먼스와 칸도리 시노부, 아쟈 콩 등의 동료 및 선후배들의 경기로 은퇴식을 진행했다.
2014년 현재는 바를 경영[17] 하는 한편, 2012년 말부터 연예기획사 킬에 소속되어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다. 프로레슬링 업계와의 관계도 계속되고 FIGHTING TV 사무라이의 여자 프로레슬링 중계 해설자를 맡고있다.
9. 기타
- 다이빙 길로틴 레그드롭은 나카노의 대표적인 기술이며, 높이 4미터의 스틸케이지 정상에서 날린 다이빙 길로틴 레그드롭은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이때 부상이 생길 것을 예감하여 기도하는 자세를 취했는데, 역시나 착지할때의 충격 때문에 골반이 뒤틀리는 부상을 입었다.
- 참고로, 원래 다이빙 길로틴 레그드롭은 쓸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회사 측에서 "그거 한번 뛰면 20만엔 줄게"라고 꼬셨다고(...).
당시 전일본 여자프로레슬링은 시합당 파이트 머니를 받는 방식이었는데, 불 나카노는 평균 4만 5천엔을 받았다고 하니 기술 한방에 20만엔이라면 상당한 거금이었고, 결국 눈 딱 감고 뛰어내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 기술의 반응이 워낙 좋아서, 결국 이후로도 같은 기술을 4번 정도 더 썼다고 한다.
그런데 이 기술의 반응이 워낙 좋아서, 결국 이후로도 같은 기술을 4번 정도 더 썼다고 한다.
- 크래쉬 걸즈에 맞설수 있는 탑클래스 악역이었기 때문에 거의 일년 중 쉬는날을 세는게 빠를 정도로[18] 경기를 뛰어야 했고, 그러다 지친 덤프 마츠모토가 경기 직전 도망가는 사태가 벌어지는데, 누가 팀원 아니랄까봐 덤프 마츠모토가 도망 건으로 벌금 50만엔을 내는 걸 보고도 결국 불 나카노도 한번 경기전에 도망을 쳤던 적이 있다고 한다.
- 위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원래는 악역으로 전환할 때 머리를 모히칸 헤어로 밀어버리려고 했다. 그런데 머리를 깎는 도중 덤프 마츠모토가 반만 깍고 나선 "넌 아직 한사람 몫을 못하는 반쪽짜리 레슬러이니 반만 깍아도 충분해"라며 나가버렸다고 한다. 본인은 "아, 저 선배가 머리 깎다 질려서 그냥 포기했나 보다"라고 생각했다는데, 이후 '미니나루 도서관'[19] 이란 방송에서 덤프 마츠모토 본인이 밝히길 "머리 반쯤 깎았을 때 갑자기 화장실을 가고 싶어져서 그냥 내팽개친 것"이라고(...)
- WWE의 RAW 10주년 시상식 이벤트에서 Diva of the Decade 부문 시상자로 나온 숀 마이클스가 그녀에 대해 조금 언급하고 넘어갔다. "WWE 디바들은 멀고 먼 길을 지나왔어요. 버사 페이[20] 와 불 나카노로부터 말이죠." 이 말은 WWE 디바들이 미모와 경기력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버사 페이와 불 나카노는 경기력은 뛰어나지만 외모가 아름다운 축에 속하지는 않는 대표적인 예. 하지만 불 나카노는 보다시피 상당한 미모의 소유자이므로... 숀 마이클스가 불 나카노의 진짜 외모에 대해 잘 모르거나, 아니면 미모 대신 임팩트를 택해야 했던 당시 상황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또 동시에 이 발언은 디바의 중요한 인기요인인 여성의 미모와 프로레슬러로서의 경기력은 양립하지 않는다는 아이러니 또한 내포하고 있다.
- WWE 디바 페이지(프로레슬러)가 존경하는 레슬러로 유명하다. 페이지의 피니셔 중 하나인 PTO(Paige Tap Out)은 불 나카노의 불즈 앙헬리토를 그대로 차용한 것. 이외에도 리타역시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서 그녀의 이름을 언급했었다.
- 전설급 여자 프로레슬러 호쿠토 아키라는 프로레슬러가 되기 전에 불 나카노의 팬클럽을 만든 적이 있다. 링 위에서는 선후배이자 나중엔 라이벌 관계가 된 두 사람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친한 친구 관계에 있었다고 한다.
- 링에서 보여지는 독한 모습과는 달리 실제로는 온화하고 대범하며 의젓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한다. 덤프 마츠모토와 크레인 유우, 콘도르 사이토 등의 극악동맹 선배들뿐만 아니라 후배들도 잘 보살폈는지, 지금도 아쟈 콩, KAORU, 미타 에츠코, 야마다 토시요, 이노우에 교코, 이노우에 타카코 등 많은 후배들이 존경하며 따르고 있다.
- 트레이드 마크인 하늘로 솟은 역방향 헤어는 록 밴드 BUCK-TICK에서 영감을 받았다.
10. 둘러보기
[1] 결혼 전까지는 나카노 케이코였다. [2] 전성기에는 115kg까지도 나갔었다. [3] 극악동맹 시절에 사용한 극악동맹 전용 테마 [4] 전녀 선수들의 테마곡을 모은 앨범인 BEAUTIFUL FIGHTERS에 수록되어 있다. [5] 나카노 본인의 인터뷰와 블로그에 따르면, 중학교 시절 불량학생임과 동시에 골목대장이기도 했고 학교를 누비고 다녔다고 종종 이야기해왔다.[6] 極悪同盟. 프로레슬러 덤프 마츠모토가 리더로 있는 전일본 여자프로레슬링의 대표적인 악역 스테이블[7] 경기중의 쌍절곤 공격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인데, 체인 매치에서는 체인으로도 쌍절곤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8] 크레인 유우의 은퇴 후 극악동맹은 덤프 마츠모토와 불 나카노의 2인 체제로 유지되었다. [9] 라이오네스 아스카와 치구사 나가요가 이룬 태그 팀[10] 핏줄을 연상시키는 메이크업은 극악동맹 시절부터 정착.[11] 옥문당에서 나카노의 부하였던 아쟈 콩과 바이슨 키무라가 나카노를 배신하고 만든 태그 팀. [12] 1968년에 유키코 토모에라는 여성이 챔피언 자리에 오른적이 있긴 하지만 비공식 기록으로 취급. 나카노를 제외한 아시안계 여성 챔피언은 게일 킴이 유일하다. 그로부터 25년 뒤인 2018년, 두번째 일본 출신 챔피언이 탄생했다.[13] WWF의 얼룬드라 블레이즈. 블레이즈는 WWF에서 활동할 때 외에는 계속 메두사라는 링네임을 사용했다. [14] 다이어트 비법을 소개하거나, 선배인 덤프 마츠모토의 다이어트 멘토가 되어주거나, 본인이 일부러 찌운 살을 다시 뺀다던가 하는 식으로 출연.[15] 은퇴식을 마치고선 60kg 가량 감량할 것을 선언했다.[16] 은퇴식을 치르게 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15년간 몸담아온 프로레슬링에서 원치않게 은퇴한 뒤 골프에서도 좌절해버리고서는 불 나카노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도, 남들 앞에 나오는 것도 싫었다. 결혼을 계기로 이제는 적극적으로 살아가고 싶다. 지금까지 은퇴 경기를 하지 않은 것이 항상 아쉬움이었다."[17] 나카노가 경영하는 바의 이름은 나카노 블루짱이며, 후배 레슬러인 야마다 토시요가 서빙을 돕고 있다.[18] 크래쉬 걸즈의 경우 최대 1년에 310경기를 뛴 적도 있다고 하며, 당연히 상대역인 극악동맹도 거의 비슷한 수의 경기를 뛰었다고[19] SMAP의 나카이 마사히로가 진행하는 정보 버라이어티 방송. 제목의 미니나루는 "살이 되는" "도움이 되는"이라는 뜻[20] 90년대 초반에 WWE에서 활동한 여자 프로레슬러. 120kg에 달하는 거구이다. 역대 WWE 여자 프로레슬러들 중 최중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