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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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淳寧
1887년 9월 5일[1] ~ 1949년 12월 1일
대한민국의 전 교육자 출신 정치인이다. 본관은 남양(南陽)[2], 호는 남농(南農)이다.
1867년 전라도 제주목 중면 이도리(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동)#에서 초대 제주읍장을 지낸 홍종시(洪鍾時)의 아들로 태어났다. 1905년부터 1906년까지 한문을 수학하였으며, 이후 수원고등농림학교 본과에 입학하여 1909년 3월 졸업하였다.
같은 해 5월 귀향하여 제주농림학교 부교수에 임명되었으며, 1911년 제주농림학교가 제주공립농업학교로 개편되자 교유에 임명되었고, 1912년 다시 제주공립간이농업학교로 개편되자 훈도에 임명되어 1916년 5월 사직할 때까지 교원으로 근무했다. 1917년부터 1918년까지는 조선총독부 농상공부 농무과 기수(技手)로 근무하였다.#
1921년 4월 17일 해인사 주지 이회광(李晦光)이 고원훈 등의 후원을 받아 조선불교의 개혁을 목적으로 조선불교협회를 설립하자 발기인으로서 이사에 선임되었으며#, 조선노동공제회 이사로서 근무하던 중 일본 도쿄로부터 공산주의 서적을 구독하고 1921년 9월 현직으로 옮겼다. 이후 협동조합 운동에 다년간 종사하였다.#
8.15 광복 직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제주도지부 부지부장에 취임하였으며, 제주중학원(현 제주중학교)를 서립하여 원장에 취임하였다. 또한 제주여자초급중학교(현 제주여자중학교) 설립 계획에 가담하였고 이 학교에서도 교장을 지냈다.
한편 우익으로 전향하여 대한독립촉성국민회에 입당, 간부가 되었으며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후보로 제주도 북제주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국민당으로 당적을 옮겨 징계자격위원을 지냈다.
그러다가 국회의원 재임 중이던 1949년 12월 1일 심장마비로 별세하였다.

[1] 왜정시대인물사료. 의원총람에는 1867년생으로 기재되어 있다.[2] 당홍계 33세손 순(淳)◯ 항렬. 아버지 홍종시는 32세손 종(鍾)◯ 항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