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냥년
1. 의미
바람기가 있거나 몸을 함부로 굴리는 여성을 비하하는 단어.
2. 어원
2.1. 민간어원
아래는 흔히 화냥년의 어원이라고 알려진 '''잘못된''' 이야기다.
위와 같은 이야기가 돌아다녀서 많은 사람이 화냥년이 환향녀(還鄕女)에서 변화하였다고 알고 있으나,[2] 이건 어디까지나 '''민간 어원설'''일 뿐이다. '환향녀'란 표현은 '''당대(17~18세기) 문헌에는 나오지도 않는다'''. 당대의 전체 기록을 대변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조선왕조실록에는 '환향녀'라는 표현 대신에 '속환인(贖還人)'으로 무미건조하게 기록하고 있다. 또한 위에서 양반집 남편들이 국왕에게 속환 여성들과의 이혼을 청원한 것 역시 후대에 덧붙여진 말로 보인다. 당시 민간에서는 이혼이 허가를 얻어야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으며, 이혼이 드물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인조는 지천 최명길의 주장에 동감하며, 몸값을 내어 끌려간 여성들을 데려오는데 힘썼다. 이미 왕실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뒤라 지켜지지가 않아서 문제였으나, 남편들이 아내를 내치는 것을 막기 위해 명을 내리기까지 했을 정도였다.조선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비롯한 사건이 있었을 때, 많은 여인들이 청나라를 비롯한 타국으로 끌려갔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는 주로 북쪽에 살던 여인들이 많이 끌려갔다고 한다. 이런 여인들은 대부분 돌아올 수 없었다. 하지만 친정에서 많은 돈을 주고 겨우 돌아온 여인들이 있었다.
문제는, 겨우 돌아온 여인들을 본 남편들이 '''절개를 잃었다'''고 그녀들을 내친 것. 그래서 이 여인들의 남편들이 단체로 왕에게 몰려가 이혼을 청구했다고 한다.[1]
결국 이렇게 돌아온 여인들은 고국으로 돌아온 여자, 즉 '''환향녀(還鄕女)'''라고 불리며 멸시받았고, 남성 중심의 권위적인 조선 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이후 환향녀라는 말의 뜻은 '''정숙하지 못한 여인'''을 싸잡아 부르는 멸칭으로 바뀌었고, 발음도 화냥년으로 변했다.
2.2. 정설 및 기타 가설
참고문헌: 한자음의 변화와 '화냥'의 어원
학계에서의 정설은 '''창녀를 뜻하는 중국 외래어 花娘의 중세 국어 발음 '화냥'에 여자를 낮잡아 이르는 '년'이 결합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으로 본다.
중국에서 화낭(花娘)은 이미 당, 송대부터 '''기녀''', '''창기'''라는 말로 쓰였다. 가령 당대 시인인 이하(李賀)가 지은 〈신호자필률가(申胡子觱篥歌)〉에는 "삭객은 크게 기뻐하며 잔을 들어 일어서고 화낭에게 막에서 나와 배회하며 배알하도록 명한다(朔客大喜‧擎觴起立, 命花娘出幙, 徘徊拜客.)"[3] 라는 구절이 있고, 송나라 때 매요신(梅堯臣)이 지은 〈화낭가(花娘歌)〉에는 "화낭은 12세에 가무를 할 수 있고 대단한 명성은 악부에 머무른다(花娘十二能歌舞,籍甚聲名居樂府.).[4] "라고 되어 있다. 원말명초에 쓰인 《남촌철경록(南村輟耕錄)》에도 창부를 화낭(花娘)이라고 부른다는 구절[5] 이 있는 것을 보면, 당, 송 이후 명나라까지도 널리 쓰였다. 오히려 만주어에서는 이런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다.
이 말이 우리나라로 건너온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최소 조선 초기 이전에는 들어와 민간에서 널리 쓰인 것으로 보인다. 15세기 조선왕조실록에서도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1527년에 역관 최세진이 쓴 한자 학습서 《훈몽자회》를 보면, 중세 국어에서는 娘을 원래 중국 발음(niáng)에 가깝게 '냥'으로 읽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쓸 때는 花娘으로 쓰고, 읽을 때는 '화냥'으로 읽었다. 현대 국어에서는 독음이 변해 娘을 '낭' 또는 '랑'으로 읽지만, '화냥년'이라는 욕에는 중세 국어의 발음이 그대로 남아 전해진 것이다. 다시 말해 병자호란 한참 전부터 '화냥'이란 말은 조선에서 널리 쓰이던 말이었으니, 송환된 여성 포로를 환향녀로 부르던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민간 어원설은 더욱 근거가 없다.[6]이제 전교를 받으니, 진언하는 사람의 말 가운데 ‘… 요즈음 들으니 음란한 여자가 … 음란한 짓을 마음대로 행하여 교화를 오염시킨다고 하니,… 엄중하게 논죄하도록 하는 것이 편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 이제 遊女(유녀)라 칭하고 혹은 '''花娘'''이라 칭하며 음란한 짓을 제멋대로 하니, 이를 금제하는 조목을 뒤에 자세히 기록합니다.
《성종실록》 20권, 성종 3년(1472년) 7월 10일 을사 4번째 기사
이외에 양주동 선생은 성적 행위를 했던 고대의 무당을 뜻하는 '''화랑'''[7] 이 붙은 '화랑질하는 년'이 간략화되어 화냥년이 되었다는 설을 주장했지만, 이는 이미 죽은 학설이다. 이때의 화랑은 花'''郞'''(남자)이고, 화냥은 花'''娘'''(여자)이다.
그 외에도 '화냥질'이란 평안북도 부근의 사투리에서 일반명사화했다는 설이 있었고, 심지어 만주어 'hayan'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었다.
3. 문학 작품에서의 화냥년
화냥년이라는 말이 나온 작품으로는 주요섭의 〈사랑 손님과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가 옥희와 대화할 때 등장한다.
그리고 권정생의 몽실 언니에도 여러 상황에서 이 단어의 사용이 보인다.옥희가 이제 아버지를 새로 또 가지면 세상이 욕을 한단다. 옥희는 아직 철이 없어서 모르지만 세상이 욕을 한단다. 사람들이 욕을 해. '''옥희 어머니는 화냥년이다''', 이러구 세상이 욕을 해. …… 옥희가 공부를 해서 훌륭하게 돼두, 에 그까짓 '''화냥년의 딸''', 이러구 남들이 욕을 한단다.
좀비콤비에서 영화 제목 화양연화를 크게 외친 사람에게 어느 할머니가 놀라 쓰러지는데....화냥년아라고 욕한 것으로 잘못 듣었기 때문....
DVD판에 실렸던 사우스파크 극장판 비공식 번역을 '''"카일 엄마는 화냥년"'''으로 번역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