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 언니
1. 개요
권정생 작가의 아동소설.
1981년에 경남 울진군의 어느 시골 교회 청년회지에 3회 정도 연재되다 이후 기독교 계열 잡지 <새가정>에 연재되었다가 1984년 창작과비평사에서 단행본으로 발간되었다. 2000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일제 해방 직후부터 현대까지의 대한민국이 배경이며 주인공은 몽실이라는 이름의 절름발이 소녀다. 발간 이래로 쭉 초등학생 필독 도서로 선정되어온 작품이다.
90년 9월~12월까지 MBC 주말 드라마[1] 로도 방영되었으며 임충[2] 이 각본을 맡으면서 상당수가 각색되었다.[3] 원작 팬들의 비난은 좀 있었으며 2009년에 영화화되었다.
2. 등장인물
- 몽실(임은지[4] ): 이야기의 주인공. 떠돌이 막일꾼인 부친 정씨와 어머니 밀양댁 슬하의 장녀로 태어났다. 남동생 종호도 있었지만 이름 모를 병에 걸려 앓다가 일찍 죽었다고 나온다. 그런데 정씨가 멀리 일하러 간 사이에 어머니의 급작스러운 재혼으로 댓골 김 주사의 양녀가 된다. 그 후 이부동생 영득이가 태어나면서 식모 취급을 받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아내와 딸을 찾아 김 주사 집까지 찾아온 정씨와 김 주사와 한바탕 하는 일이 생겼다. 잔뜩 흥분한 상태였던 김 주사가 밀양댁과 부부싸움을 하다 밀양댁을 폭행하자 몽실이 울며 "아빠에게 가자"는 말을 하자[5] 김 주사가 이성을 놓고 밀양댁과 몽실을 한꺼번에 마루에서 밀쳤고, 떨어지는 과정에서 몽실의 몸 위로 밀양댁의 몸이 떨어지며 몽실은 다리를 크게 다친다.[6] 이후 밀양댁이 헌신적으로 간호해서 다시 걸을 수 있게 되긴 했지만 다친 다리가 멀쩡한 다리보다 반 뼘 가량 짧아지며 절름발이가 되어 버린다.
절름발이가 된 후에도 김 주사의 집에서 식모 노릇을 해야 했고, 동네 아이들에게 절름발이라고 멸시당하며 고단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다 결국 고모를 따라 아버지에게 돌아가지만 이후에도 질곡 많은 근현대사를 따라 고난의 연속인 삶을 살아간다. 아버지에게 돌아와서도 당연히 어머니를 잊지 못해 종종 울었는데 몇 번은 달래주던 아버지도 참지 못해 화를 내기 일쑤였다. 그러다 아버지가 고모의 주선으로 재혼하여 새어머니 북촌댁[7] 을 맞이하게 된다. 몽실과 북촌댁은 처음에는 서먹서먹한 사이였으나 외모처럼 마음씨도 고운 북촌댁에게 몽실은 결국 마음을 열고 친모녀처럼 다정하게 지낸다. 그러나 북촌댁이 임신 중 6.25 전쟁이 발발하고 정씨가 징집되어 전장에 나가게 된다. 새어머니 북촌댁은 전쟁통에 남편이 바라던 아들 대신 딸 난남을 낳는다. 그러나 산후 후유증과 지병인 결핵 때문에 난남에게 젖 한 모금 제대로 못 물리고 몽실에게 '동생과 함께 고모를 찾아가라'는 유언만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아버지는 전장에 나가고 새어머니마저 잃은 채 갓난 이복동생을 떠안게 된 몽실은 고모를 찾아가나 고모 역시 전쟁통에 숨진 상태였다. 결국 댓골의 밀양댁을 찾아가 한동안 있었으나 김 주사가 돌아오자 떠나야 했고, 이후 난남을 부양하기 위해 한동안 식모 노릇을 한다. 후에 전쟁 포로로 잡혀있던 아버지 정씨가 되돌아오게 되면서 집으로 돌아오나 고문 후유증으로 경제생활을 못하는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 결국 구걸을 하게 된다. 이에 정씨는 '네 어머니를 닮았다!'며 호되게 맞고 쫓겨나나 결국 몽실은 생계를 위해 구걸을 해서 아버지와 난남을 먹여 살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얼마 뒤 어머니 밀양댁이 김 주사와 가진 셋째 아이를 사산하고 심장병을 앓게 된다. 위독하다는 전보가 왔으나 정씨가 몽실이 댓골에 가는 걸 막는 바람에 몽실은 밀양댁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한다. 이후에도 몽실은 밀양댁이 김 주사와 낳은 이부동생들인 영득, 영순을 돌보기 위해 댓골에 들렀으나 김 주사의 후처한테 모욕만 당하고 내쫓긴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정씨의 고문 후유증이 심각해져 병원에 가기 위해 상경하나 대기하는 인원이 너무 많아 치료도 받지 못하고 길바닥에서 숨지게 된다. 홀로 남겨진 몽실은 양공주 금년이의 도움을 받고 이복동생인 난남이를 부잣집 양녀로 보낸 뒤 금년이와 같이 지냈으나 금년이의 자살로 또다시 홀로 남겨진 듯하다. 30년 뒤를 다룬 후일담에서는 늦은 나이에 구둣방 일을 하는 꼽추와 결혼하여[8] 1녀 1남을 둔 엄마가 되었으며 살림에 보태기 위해 시장에서 나물을 파는 일을 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 한다. 가끔씩 난남이가 있는 요양병원에 들르고 있다.
드라마에서는 자살 시도하는 어머니를 말리는 과정에서 다리를 다쳐 절름발이가 되었고 아버지에게 돌아가겠다고 스스로 자처했다.
드라마에서는 자살 시도하는 어머니를 말리는 과정에서 다리를 다쳐 절름발이가 되었고 아버지에게 돌아가겠다고 스스로 자처했다.
- 난남: 또 다른 주인공. 정씨와 북촌댁 사이에 난 몽실의 이복동생. 몽실이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은 난남을 살리기 위해 마을 아낙들에게 젖동냥을 했으나 여의치 않자 암죽을 끓여 난남이에게 먹였다. 전쟁통에도 이복동생을 살리기 위해 헌신했던 이복언니 덕분에 살아남은 것이다. 참고로 이름이 없었기 때문에 산파 노릇을 했던 옆집 할머니가 난리통에 태어났으니 난남이라 짓고, 후에 아버지보고 제대로 된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하면 된다고 했는데 정씨가 따로 이름을 지어주지 않아 이름이 그대로 난남으로 굳어 버렸다. 생모인 북촌댁을 닮아 상당히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으나 지병이던 폐결핵까지 이어받아[9] 후일담에서는 본인도 폐결핵으로 요양원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후반부 양공주의 집에 얹혀산다고 아이들에게 놀림당했지만 금년의 집에 드나드는 미군들이 주는 사탕과 초콜릿으로 아이들에게 과시해 부러움을 샀지만 몽실이는 이런 난남의 면모 때문에 걱정을 하다가 양공주 금년의 설득으로 마음씨 너그럽고 부유한 부인의 양녀로 들어가고 금지옥엽으로 자라며 공부도 많이 했으며 마음씨 좋은 남자와 결혼하지만 발병하고 남편이 떠난 뒤[10] 결국 요양원에서 지내고 있으며 가끔 오는 이복언니 몽실이 오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 영득, 영순: 김 주사와 밀양댁의 자녀들로 몽실의 이부동생들. 어머니 밀양댁이 사산 이후 심장병으로 죽은 뒤 아버지의 표독한 후처로 인해 엄청나게 시달리다 이후에는 간신히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 언급된다. 영득은 계모 때문에 엇나간 적도 있다고. 몽실은 난남이와 영득, 영순이를 모두 소중한 동생들로 여기고 있지만, 난남이는 어릴 때 몽실이 영득과 영순을 보러 가는 것을 눈치채고 아버지에게 이르겠다며 질투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는 영순이가 병약한 난남이를 걱정하고 난남이는 영순이 썼다는 편지를 읽고 싶어하는 등, 피는 섞이지 않았어도 사이가 상당히 좋은 것으로 보인다.
- 김 주사(박인환): 몽실의 어머니 밀양댁이 재혼한 새 남편으로 몽실의 의붓아버지. 처음에는 몽실을 아꼈지만 장손 영득이 태어나면서 몽실을 푸대접하고 학대한다. 난남이의 출생 이후 갈 곳이 없던 몽실이 밀양댁에게 잠시 의지하러 왔을 때는 갓난아이인 난남을 걷어차는 등 학대를 가하여 몽실이 도로 떠나게 했다. 그러나 밀양댁이 죽고 나서는 태도가 누그러져 몽실에게 '자주 와서 네 동생들(영득과 영순)을 돌봐 주라'고 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밀양댁 사후 재혼한 후처가 아이들을 미워하고 표독스러운 인물이라 마음 고생을 하다가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주사'라는 표현으로 보아 아마 공무원인 듯.
- 정씨(한진희): 몽실과 난남의 아버지. 막일꾼이라 경제력은 별로 없는 듯하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밀양댁이 자신을 버리고 개가하자 분노[11] 하여 김 주사네 집까지 찾아온 적도 있었고, 그 뒤로도 밀양댁 얘기만 나왔다 하면 화냥년이라고 욕을 하고 몽실에게도 그를 어머니로 여기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고 몽실이 어머니를 보고 싶다고 울자 폭행하기도 한다. 이후 북촌댁을 후처로 들였으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징집되어 다시 떠난다. 이후 다시 돌아왔을 때는 한 다리를 못 쓰는 장애인이 되어 있었는데, 전쟁 포로로 잡혀 고문을 당하다가 탈출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노동 능력을 상실했고, 몽실이 구걸을 해서라도 먹을 것을 마련해 오겠다고 하자 또 '화냥년 어미를 닮았다'고 화를 내며 딸을 구타한다.[12] 밀양댁을 내내 증오하고 원망했으나, 그가 사산 후 심장병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자신 때문에 고생했다고 자책하며 슬퍼한다. 이후 부상이 악화되어 자선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갔지만, 몇 날 며칠을 길거리에서 줄을 서서 대기하기만 하다 결국 죽고 만다. 드라마에서의 이름은 만석. 전쟁터에서 돌아온 이후 자신의 몸 상태가 나쁜 걸 알고 아기 난남이를 입양보내기로 결심하고 이후 사망한다.
- 북촌댁(이혜숙): 몽실의 새어머니이자 난남의 어머니로 아름다운 외모를 갖고 있으며 성격도 온화한 편이라 몽실과도 잘 지냈다. 지병인 폐결핵 때문에 전 남편과 이혼하고 정씨와 결혼해 난남을 낳지만 산후 후유증과 함께 영양실조와 지병인 폐결핵으로 인해 숨진다.[13] 드라마에서는 정씨가 일거리를 찾아 떠돌 때에 인연을 맺은 사이로 마을 사람의 소개로 정씨와 재혼했다.
- 밀양댁(이경진): 몽실, 종호(몽실의 죽은 친동생), 영득, 영순의 어머니. 정씨의 전처. 가난한 막일꾼 남편과 함께 살며 생활고에 시달리다가[14] , 딸 몽실을 데리고 도망쳐서 김 주사와 재혼한다. 김 주사와 그의 노모에게 몽실을 친딸처럼 챙겨준다는 약속을 받았었지만, 김 주사의 아들 영득이 태어난 이후 몽실이 박대를 받게 되자 약속을 지키라며 김 주사와 자주 다투게 된다. 결국 정씨가 다녀간 이후 정씨의 동생(몽실의 고모)까지 찾아와 몽실을 데려가겠다고 하자 조용히 보내준다. 난남이 태어나고 북촌댁이 죽은 뒤 의지할 곳이 없어진 몽실이 다시 찾아오자 받아 주지만, 피가 안 섞인 난남을 무심하게 대하여 몽실이 내심 서운해한다.[15] 김 주사가 돌아와서 난남을 구타하는 바람에 몽실이 도로 떠나기로 하자 몰래 쌀을 팔아 마련한 돈을 챙겨 주어 보낸다. 이후에도 김 주사 모친이 노환으로 쓰러지자 병수발을 들고, 자식들 걱정으로 마음 고생을 많이 한 것으로 보인다. 얼마 뒤 김 주사의 셋째 아이를 사산하고 건강이 악화되어 심장병으로 죽는데, 죽기 전에 몽실을 몹시 애타게 찾았다고 하나 몽실은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도 아버지의 반대로 제때 찾아가지 못해 임종을 지키지 못하였다. 정씨는 밀양댁이 자신을 버리고 재혼한 것을 매우 원망했으나, 그의 부고를 듣고는 자신 때문에 고생했다며 자책한다.
어찌 보면 만악의 근원으로, 밀양댁이 정씨를 떠나지 않았으면 작중의 많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저 고통스러운 빈곤을 벗어나고 싶었을 뿐인 현실적인 인물상이기도 해서 안타까움과 동정심을 자아내는 면모도 있다. 드라마에서는 쇠약해진 몸으로 마지막으로 정씨에게 사과하러 온 다음날 세상을 떠난다.
- 고모: 정씨의 동생. 정씨가 김주사의 집을 다녀간 이후 밀양댁을 찾아와 몽실을 데려온다. 이후 정씨와 북촌댁의 재혼을 주선하는 등 몽실네 가족에 적잖은 도움을 준 착하고 마음 좋은 인물. 안타깝게도 전쟁통에 폭격으로 인해 집에서 불타 죽었다고 한다.
- 근수: 부산에서 몽실과 정씨가 병원 문 앞에서 줄 서서 기다릴 때 같이 그 줄에 같이 끼어있던 청년. 20살인데 얼굴은 40도 넘어보일 정도로 노안이라고 한다. 줄 서서 기다린 끝에 진료를 받게 되어 몸이 다 낫게 되었다. 그 뒤 아버지를 잃은 몽실이 자매, 금년과 함께 살게 된다. 성실하고 부지런한 성격으로 열심히 일을 하며, 어린 몽실과 난남을 돌봐주고 난남을 좋은 가정에 입양보내준다. 그 뒤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 금년: 양공주. 근수가 병원 앞에서 줄 서서 기다릴 때 그에게 날마다 도시락을 가져다 주던 마음씨 착한 아가씨이며 부모를 잃은 몽실과 난남을 안타깝게 여겨 자신의 집에서 지내게 해 주고, 근수와 함께 난남이의 입양을 도와준다. 후일담에서 몽실이 언급하기를, 여러 번 자살 시도를 했으며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고 한다.
- 종국, 종식: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드라마 오리지널 캐릭터. 몽실의 또다른 두 남동생들로 나이는 종호보다 위이다. 죽은 종호를 찾기도 하는 등 아직 어린 애들이다. 밀양댁이 재가할 때 몽실과 같이 따라갔다가 영득이가 태어난 후 같이 홀대받으며 고생한다. 이후 둘은 아버지가 찾으러 오기 전에 어머니에 의해 다른 집에 입양간다. 아버지는 둘을 찾아가지만 둘이 잘 지내는 걸로 보여 등을 돌린다. 하지만 전쟁통에 살던 집이 폭격당해 양부모도 잃고 고향과 가족을 찾아 떠돌아다니게 된다.
- 김 주사의 후처: 밀양댁이 죽은 뒤 김 주사가 어머니를 잃은 남매를 위해 재혼한 후처. 하지만 성격은 매우 악랄하고 표독스러워 전처 밀양댁의 아이들을 마구 박대한다. 소식을 듣고 오게 된 몽실에게도 패드립을 일삼다 듣다듣다 머리 끝까지 화가 난 몽실의 분노어린 일갈에 할 말을 잃는다. 다만 이때 뿐이고 그 이후에도 아이들을 박대하다가 화가 난 김 주사에게 내쫓긴 듯 보인다.
3. 줄거리
주인공인 소녀 몽실이는 남동생 종호를 잃고 가난한 떠돌이 막일꾼인 아버지 정씨, 어머니 밀양댁과 가난하게 살아갔다. 어느 날 몽실이의 아버지 정씨가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떠난 사이, 밀양댁은 몽실이를 데리고 마을에서 몰래 도망쳤다. 영문도 모른 채 밀양댁을 따라나선 몽실이가 엄마를 따라 한참동안 기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댓골이라는 낯선 마을이다. 밀양댁은 댓골의 부유한 지주인 김 주사라는 남성에게 개가를 함으로서 정씨를 버린 것이다. 처음엔 새아버지 김 주사와 그의 모친인 새할머니도 몽실이에게 잘 해주지만 밀양댁이 1년 뒤 김 주사의 피가 섞인 장남 영득이를 낳으면서 몽실이는 온 집안의 식모 취급을 받았고[16] 밀양댁은 이런 몽실이의 모습이 가슴이 아파 김 주사와 크게 싸운 적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밀양댁과 몽실이를 찾으러 댓골까지 왔다가 돌아간 친아버지 정씨 때문에 김 주사와 밀양댁이 크게 말다툼을 하던 중 화가 난 김 주사가 몽실이와 밀양댁을 방 밖으로 밀어버리는 바람에[17] 옆에 있던 몽실이가 한쪽 다리가 부러져서 절름발이가 된다. 몽실이가 먼저 넘어졌는데 그 '''바로 위로 밀양댁이 넘어져서''' 다리가 꺾였다. 병원만 데리고 갔더라도 장애인이 되진 않았을 것 같지만 당시의 촌락 특성상 제대로 된 병원이 있을 리가 없겠고, 김 주사와 그 가족들은 친딸도 아닌 몽실에게 비싼 치료비를 대줄 성품도 못 되었을 것이다. 결국 밀양댁은 이웃에게 들은 민간요법대로 치자를 다리에 붙여주는 것으로 끝낸다. 그리고 얼마 후 찾아온 몽실이의 고모는, 몽실이만 정씨에게 데려가기로 해서 몽실이와 밀양댁은 눈물의 이별을 하게 된다.
몽실이와 정씨는 노루실이라는 마을에 정착해서 살아갔다. 정씨가 몽실이의 고모의 소개로 새로 얻은 아내이자 몽실이의 새어머니인 북촌댁은 마음씨 착한 미인으로 몽실이에게 친어머니처럼 잘 대해준다. 초기에는 어색해하던 몽실이는 그녀의 진심을 느끼고 결핵으로 인해 전 남편에게 버림받은 슬픈 과거를 들으면서 점점 마음을 열고 그녀를 또다른 어머니로 인정한다. 이 모녀가 친해질 때 즈음 북촌댁이 임신을 하고, 산달이 가까울 무렵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정씨는 전쟁터로 끌려가게 된다.
남편도 없이 북촌댁은 힘들게 몽실이의 여동생을 낳는데, 몸이 원래 약했던 데다 제대로 먹지도 못했던 그녀는 몽실이에게 아기를 부탁한 뒤 세상을 떠난다. 몽실이 가족을 돌봐주던 이웃집 장골 할머니가 '난리통에 태어난 아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난남이라고 지어주었고, 쌀을 씹어 가루를 만든 뒤 암죽을 끓여 먹이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몽실이는 부모도 없이 옆집 할머니의 도움으로 암죽을 먹여가며 난남이를 보살폈다.
부모님도 먹을 것도 없는 몽실이는 살 길이 막막해지자 난남이를 업고 고모를 찾아갔지만 고모댁 마을이 전쟁통에 폭격을 당해 고모도 불에 타 죽은 후였다. 몽실은 결국 다시 댓골의 밀양댁을 찾아간다. 때마침 새아버지였던 김 주사도 참전 중이었고 새할머니도 돌아가신 뒤여서[18] 몽실은 한동안은 영득이 이후 새로 영순이를 낳은 밀양댁과 마음 편하게 산다.[19] 하지만 1년 뒤 김 주사가 귀향하면서 불안한 동거가 시작되었고, 난남이가 김 주사의 밥상다리를 넘어뜨리자 김 주사가 난남이를 걷어찬 사건을 계기로 밀양댁이 몰래 쌀 한 말을 판 돈을 받아 다시 노루실로 돌아왔다.
노루실의 이웃 할머니의 소개로 몽실이는 구둣방을 운영하는 마음씨 착한 가정의 식모로 일하며 난남이와 그 집에서 안정된 생활을 한다. 하지만 얼마 후 전쟁포로로 붙잡혔다가 탈출한 친아버지 정씨의 귀향으로 몽실이는 다시 난남이와 노루실로 돌아가게 된다.
아버지 정씨는 전쟁 중 입은 부상으로 한쪽 다리를 못 쓰게 되어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상황.[20] 이에 몽실이는 마음을 굳게 먹고 소녀가장이 되어 깡통을 들고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구걸한 밥으로 아버지와 난남이를 먹여 살린다. 가족을 위해 창피함도 무릅쓰고 거지가 된 것이다. 정씨는 몽실이가 구걸을 하겠다고 깡통 손잡이를 만들어달라고 하자 화냥년의 딸은 어쩔 수 없다고 폭행까지 했다.[21]
힘겹게 가족이 연명하던 중, 댓골에서 밀양댁이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은 몽실이는 밀양댁을 증오하고 있던 정씨의 허락을 받아내느라 시간을 지체한 끝에 댓골로 급하게 달려가지만 이미 밀양댁은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였다.[22] 김 주사와의 사이에서 얻은 몽실이의 이부 동생들인 영득이, 영순이만 놔두고. 장례가 끝난 뒤 김 주사는 몽실이에게 '자주 와서 네 동생들을 돌봐달라' 며 누그러진 모습을 보였다.
밀양댁의 장례를 치르고 온 몽실에게서 소식을 들은 정씨는 밀양댁에 대한 앙금이 풀렸는지 자신이 밀양댁을 고생만 시켰다고 후회하며 몽실이를 껴안고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 후로도 몽실은 이따금 댓골로 찾아가 김 주사와 동생들을 보살펴주지만, 얼마 안 가 김 주사가 다시 얻은 새 아내가 표독스러운 성격을 지닌 탓에 더 이상 가지 못하게 된다.[23]
얼마 후 정씨가 고문을 당해 입은 상처가 덧나서 위독해지자 부산에 진료비를 안 받고 치료해주는 자선 병원[24] 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몽실이는 난남이를 이웃에 맡긴 뒤 아버지와 함께 부산으로 향했다. 힘들게 도착한 병원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고 정씨 역시 몽실이와 함께 그 줄에 서서 며칠이고 차례를 기다리다가[25] 결국 세상을 떠났다.[26] 공공기관에서 화장해준 정씨의 골분을 받은 몽실이는 자선 병원 앞에서 줄서있을 때 알게 된 마음씨 좋은 청년 근수의 소개로 근수에게 매일 찾아와 도시락을 챙겨주던 아가씨인 '서금년' 의 집에서 잔심부름을 해주며 같이 살기로 약속하고 노루실로 돌아갔다.
노루실로 돌아와 정씨의 장례를 치른 몽실이는 난남이를 데리고 부산으로 돌아가 금년이 언니, 근수 오빠와 함께 살게 된다.[27] 양공주인 금년이 언니는 몽실과 난남이에게 따뜻하게 대해주는 마음씨 착한 아가씨다.[28] 처음에 몽실과 난남이는 미군들을 무서워하지만 곧 미군들과 다른 양공주 언니들의 귀여움을 받으며 조금씩 익숙해져갔다.
얼마 후 금년과 근수의 배려로 몽실은 혼자서 노루실을 잠시 찾아가 그리운 이웃들을 만난다. 하지만 영득이와 영순이를 만나러 댓골로 가니 이미 김 주사네 가족들은 서울로 이사를 가버린 뒤였다. 몽실은 댓골의 옛 친구에게서 이를 듣고 실망한 채 부산으로 돌아왔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난남이와 몽실이를 걱정한 주위 사람들의 소개로 난남이는 가까운 곳의 부잣집 양녀로 입양가게 되고, 혼자가 된 몽실은 두 명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언젠가 헤어진 동생들을 찾기로 결심하고 금년이 언니와 함께 살게 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나고, 나머지 부분은 에필로그격 후일담.
30년 뒤, 몽실은 구둣방에서 일하는 꼽추 남편과 결혼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시장에서 나물 장사를 하며 살고 있다. 영득과 영순은 표독한 계모 때문에 힘겨운 청소년기를 보냈지만 다행히 현재는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으며, 몽실과 편지 왕래를 하며 지낸다.[29] 난남은 부잣집에 입양되어 공부도 잘해 대학을 졸업하고 어머니를 닮아 용모도 아름다워서 좋은 남자와 결혼했지만, 어머니의 허약한 체질도 물려받아서 본인 또한 결핵에 걸려 10년째 요양원 생활을 하고 있으며 남편도 떠났다고 한다.[30][31] 지금은 이따금 면회를 오는 몽실을 만나는 것이 난남의 유일한 낙이라고. 한때 몽실과 난남을 보살펴 주었던 고마운 금년 언니는 몇 차례의 시도 끝에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32]
몽실은 난남이 좋아하는 음식을 하고 책도 몇 권 챙겨서 오랜만에 요양원을 찾아간다. 난남은 몽실을 크게 반기고 지인들의 소식을 전해듣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어느덧 떠날 시간이 된 몽실은 작별 인사를 하고 다시 다리를 절며 요양원을 나서고, 난남은 몽실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난남이는 눈물을 흘리며 조용히 되뇌인다. '언니... 몽실 언니...!'[33]
4. 여담
작가의 어린 시절을 토대로 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권정생 작가의 생애 항목 참고.
절름발이 고아 소녀인 몽실이는 사회적 약자[34] 를 상징하고 있으며 요즘의 어린이들이 상상할 수 없는 전쟁과 가난의 역사를 동심의 눈을 통해 이해하기 쉽도록 잘 설명해주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지금도 초등학생 독후감 숙제 주제 중 하나로 꼽힐 정도.
인민군에 대한 인간적이고도 슬픈 묘사[35] 가 있었지만 인민군에 대한 인간적인 묘사 자체가 금기시 되던 시절에 출간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내용이 검열삭제되었다. 개정판 서문에서 작가가 밝히기를, 개정판을 낼 때 인민군에 대한 인간적인 묘사를 복원하려고 고려했지만 곧 생각을 접었다고 한다. 서문에서 무슨 내용이었는지 간략히 소개만 하는 정도. 그래도 여전히 인민군을 인간적으로 그리는 묘사는 작중에 남아있는데, 몽실이네 마을에 주둔해있던 여자 인민군이 몽실이와 난남이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며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면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 는 말을 하거나 처음에는 악독해 보이던 의용군 소년병이 몽실이와의 언쟁 끝에 그녀를 죽이려다가(!)[36] 어머니를 떠올리고 눈물을 흘리는 부분이 나온다.
소설 속 묘사를 보면 해방 직후의 6.25 전쟁, 그리고 그 이후의 사회의 모습이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성인이 되었을 때 읽어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다 큰 뒤에 읽어보면 이것이 정녕 초등학생 나이의 어린 여자아이가 겪는 삶인가 싶을 정도로 비참하고 애통하다.
그 외에도 본래 권정생 선생은 난남이를 떠나보낸 후의 몽실이의 삶에 대해 더 길게 쓰려고 준비하고 있었지만 새가정 측과 타협이 되지 않아 부랴부랴 갑자기 엔딩에 43세의 몽실이를 내보내며 이야기의 끝을 맺어야 했던 것이 너무나 가슴 아팠다고 밝혔다. 개정판 출판시 결말을 수정하려고 생각했지만 이미 잘려나간 원래의 '몽실 언니' 를 기억하는 성인이 된 독자들의 추억을 생각해 이것도 수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여주인공이 온갖 개고생과 희생을 반복한다는 내용이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류의 작품과 비슷해서 그런지, 이런 쪽에 약한 사람들은 불쾌감을 느꼈다는 평도 있었다. 물론 두 소설의 배경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몽실이 받는 고통과 마츠코가 받는 고통은 그 성격이 크게 다르다. 몽실의 고통이 외부로부터의 비극에 대항하는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면, 마츠코의 고통은 트라우마로 인한 자기파괴에 가깝다.
[1] 한진희, 이경진, 이혜숙, 박인환 등이 출연했다. 몽실이를 연기한 아역 배우는 지금은 활동하지 않는 임은지가 연기했다.[2] 배우 임호의 아버지기도 하다.[3] 원작과 달리 밀양댁이 재가하기 전 몽실네 가족이 사는 내용이 초반에 나왔으며 원작에 없는 몽실의 남동생이 둘이나 있다. 이 둘이 장난질하는 장면이 초반에 비중이 컸는데, 아무래도 시청자를 의식하여 원작의 어두운 분위기를 다소 희석하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4] 본명은 임동진인데 하필 원로 배우와 이름이 같아서 임은지라는 예명을 사용했다. 다른 출연작품은 없는 것으로 보이며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5] 몽실이 눈치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이때 몽실은 당시 8살밖에 안 된 어린 아이였으며, 어머니의 재혼 이후 1년만에 이부동생 영득이 태어나자 새아버지와 새할머니에게 혹독하게 시달린 상태였다. 영득의 탄생으로 요절한 종호와 잊고 있던 친아버지까지 떠올리고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6] 무릎이 뒤로 꺾여지며 골절되는 바람에 비명을 지르며 실신했다고 묘사된다.[7] 북촌댁에게도 재혼이었다. 우체부와 초혼을 해서 잘 살았으나 결핵이 발병해 요양을 가야 해서 별거에 들어갔고, 별거 기간이 길어지자 결국 전남편이 새로운 여자와 결혼하면서 사실상 버림받았다고 한다. 몽실과 어느 정도 가까운 사이가 됐을 무렵에 몽실이 왜 가난한 우리 아버지한테 시집을 왔냐고 조심스레 묻자 북촌댁이 도리어 '나는 네 아버지랑 결혼해선 안됐다'고 죄스러워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시로선 걸리면 그대로 죽는 병을 계속 앓는 상태로 재혼했기 때문.[8] 금년이와 살던 시절에 자신은 결혼 안하고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으나 결국 늦은 나이에 역시 장애를 가진 남자와 결혼했다.[9] 이전문서에서는 유전되었다고 했는데, 결핵은 유전병이 아니다. 한센병도 유전병이 아니듯. 아마 권정생 자신이 결핵 때문에 결혼하지 못한 것을 갖고 유전되었다고 한 것 같은데, 잘못된 것이다.[10] 남편마저 멀리 멀리 떠났다는 묘사로 봐서 남편과 이혼했다. 생모인 북촌댁의 기구한 운명까지 닮은 셈이다. 북촌댁 역시 첫 남편에게 병을 이유로 버림받았기 때문. 남편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 건 매사를 아무리 힘들어도 긍정적으로 보려고 하는 권정생 특유의 표현일 뿐이고 남편은 난남을 버린 것이 맞다.[11] 해방 전에 일본에서 살았던 모양인데 묘사하는 것을 보면 무려 도쿄 대공습(!)에서 살아남은 것 같다. 여기서 밀양댁을 목숨걸고 구해줬는데 자기를 배신하고 떠났으니 그 감정이야...[12] 스스로 노동을 하지 못해 어린 딸을 구걸시켜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자격지심에 엉뚱한 데 화풀이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몽실에게 미안해한다.[13] 이때 정씨는 전쟁 포로로 끌려간 뒤라 몽실 혼자 북촌댁의 임종을 맞았으며, 난남과 단 둘이서 전쟁통을 헤매며 고생한다.[14] 생활이 몹시 어렵고 빈곤했던 것은 사실이었던 듯하다. 몽실조차도 아버지 정씨가 밀양댁을 비난할 때 내심 '엄마는 가난한 게 너무 지긋지긋해서 재혼한 거다, 아버지가 무능했던 탓이다'라고 생각하는 장면이 있다.[15] 학대하진 않았지만 필요할 때가 아니면 본 체 만 체하는 정도였다고. 이 때는 영순도 태어난 뒤였는데, 몽실은 나이가 비슷한 영순과 난남이 한 쪽은 생모의 보살핌을 받고 다른 쪽은 보살핌을 못 받는 것을 비교해 보며 마음 아파한다.[16] 처음에는 지금까지 이 집에 없었던 어린아이라는 존재가 귀여웠지만, 진짜 자기 자식이 생기니 '남의 자식'은 점차 귀찮고 거슬리기만 한 짐짝이 되어갔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실에서도 의붓자식들이 계부모에게 많이 당하는 일들. 심지어 친자식이라도 부모가 재혼 상대와의 사이에서 새 아이를 낳았을 경우 찬밥 신세가 되는 일도 있다.[17] 정씨가 다녀간 것을 안 김 주사가 밀양댁을 추궁하며 싸우던중 몽실이가 밀양댁에게 정씨에게 돌아가자고 하는 바람에 부아가 치밀어 홧 김에 그들을 밀어버린 것[18] 병으로 쓰러져서 거동도 못 하게 되어, 병 수발 드는 밀양댁에게 고생만 잔뜩 시킨 채 죽었다고 한다. 댓골에 있던 몽실의 지인이 소식을 전해 주면서 천벌 받은 거라고 뒷담을 깠다. 마음씨 나쁜 노인이라 평판이 나빴던 듯.[19] 하지만 그런 한편으로 전 남편이 재혼하여 낳은 딸 난남이에 대해 복잡한 심정과 태도를 드러내는 어머니 때문에 눈치를 봤다.[20] 송환된 것이 아니라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한 것이기 때문에 나라에서 보상을 받을 길이 없었다. 다만 전쟁에 대한 참전군인들에 대한 지원이 제도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1961년 국가보훈처의 전신인 군사원호청 시절이었다는 점은 알아두자.[21] 물론 아무 일도 못하는 나머지 딸을 거지로 만들고 만 자신에 대한 자괴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의 자괴감을 딸에게 폭력으로 푼 것은 엄연한 아동학대.[22] 이 때 몽실은 밀양댁이 사산한 이후로 시름시름 앓았다는 것을 알았다.[23] 이 악독한 계모는 영득이, 영순이를 찾아오자 '내가 바로 영득이, 영순이 엄마다. 네가 바로 죽은 년의 자식이냐?' 라고 싸가지 없는 고인드립에 패드립을 시전하며 문전박대한다. 그리고 영득이, 영순이가 몽실이를 보고 반가워 달려들자 소리 지르며 둘을 만나지도 못하게 하려다가 빡쳐버린 몽실이에게 '너도 사람이냐?' 라고 한 마디 듣고 데꿀멍. 하지만 몽실이는 곧 새 가정을 망가뜨릴 수 없다고 판단하고 도리어 자신이 사과한 뒤 쓸쓸히 돌아서고 만다.[24] 실제 역사에서도 장기려 선생이 부산에서 무료 병원을 세워 봉사하고 있었다. 여기서는 독일 천주교인들이 세웠다는 언급이 있다.[25] 사실 그 병원에는 문이 하나 더 있었고 돈 많은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릴 필요 없이 그 문으로 병원을 드나들며 진료를 받아서, 줄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던 사람들만 뒤로 밀리곤 했다고 한다.[26] 실제로 이 작품의 작가인 권정생 씨도 젊은 시절 중병에 걸려 약을 타기 위해 기다렸으나 결국 받지 못해 고생한 경험이 있었다.[27] 다만 근수와 금년은 정확히 무슨 관계인지 불분명하다. 근수도 놀고 먹는 걸 싫어해서, 어직 다 낫지도 않은 몸을 이끌고 일을 다니는 성실한 성격이라 기둥서방과는 거리가 멀고...[28] 처음에는 서금년이 뭘 해서 먹고 사는지 몰랐지만 그녀와 함께 살게 되면서 집에 주한미군들이 드나드는 것을 보고 알게 된다.[29] 영순은 몽실의 아이들에게 '강원도 이모'로 불리는 걸 봐서 강원도에 거주 중인 듯하고, 영득은 한때 엇나갔지만 지금은 우체부로 일하며 성실히 살고 있다고 한다. 영순이 편지에서 '아버지가 새어머니를 잘못 얻으셔서 우리끼리 많이 울었다, 언니 아니었으면 오빠가 정말 크게 잘못됐을 것'이라고 언급했으니 아마 영득이 엇나갔던 것도 계모와의 갈등 때문이었던 듯.[30] 남편이 난남의 병을 이유로 그를 버렸다는 뜻인지, 사별했다는 뜻인지는 불분명하다는 건 희망고문이고 병 때문에 버린 것이 맞다. 난남은 병으로 남편에게 버림받은 북촌댁의 슬픈 운명마저 물려받은 것이라 매우 비극적이다.[31] 영순도 몽실에게 보낸 편지에서 난남의 처지를 연민하면서 안부를 궁금해한다. 한때는 난남이 영순을 질투하여 '언니가 댓골에 가는 것을 아버지에게 이르겠다'고 하는 등 좀 서먹한 사이였지만 지금은 사이가 좋은 듯. 원래 영득영순 남매와 난남은 피가 섞이지 않은 남남이지만 몽실을 매개체로 하여 가족애를 느끼는 관계가 된 듯하다.[32] 그녀에게 성매매를 했던 미군들이 그녀를 많이 괴롭히곤 했다고 한다.[33] 많은 독자들이 꼽은 가장 슬픈 장면. 지금도 이 장면만 생각나면 눈물이 난다는 사람들이 많다.[34] 장애인+고아+여성+어린이.[35] 몽실의 집에 머물다 간 인민군이 한 민족이 남과 북으로 갈라져 서로 죽이고 싸우는 것이 너무 슬프고 어리석다고 한탄한 것. 몽실이와도 친해져서 계속 편지를 주고 받자며 주소지를 교환하기도 한다. [36] 몽실이네 집에 우연히 들른 소년병이 '인민을 괴롭히는 반동분자는 다 죽여야 한다' 고 주장하자 몽실이가 '너 같이 어린 애도 정말 사람을 죽일 줄 아니? 사람을 죽이는 건 인민을 위한 게 아니야. '''사람을 죽이는 인민군도 결국 똑같은 반동이야!''' '라고 만류한다. 이에 소년병은 몽실이에게 총을 겨눈다. '너는 나같은 어린 애도 죽일 줄 아냐' 는 몽실이의 질문에 그가 그렇다고 하자 몽실이도 급분노해서 '죽여봐! 어서 죽여봐!' 라며 두 눈을 부릅뜨고 그를 똑바로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