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남대총 남분 금동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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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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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본 사진 출처
1973년부터 1975년까지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한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금동신발.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길이 310㎜.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의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된 금동제 신발로, 제작 연대는 대략 4세기 후반~5세기 초반(서기 300~400년대 사이)로 추정되고 있다. 같은 시기에 제작되어 황남대총에 함께 묻힌 황남대총 북분 금관,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 황남대총 북분 금팔찌 및 금반지, 황남대총 북분 유리잔,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 황남대총 북분 은제 관식, 황남대총 북분 금제 고배, 황남대총 북분 은잔, 황남대총 북분 금은제 그릇 일괄, 황남대총 남분 금제 허리띠, 황남대총 남분 금제 관식, 황남대총 남분 은관, 황남대총 남분 은제 팔뚝가리개 등 7만여점에 이르는 유물들과 함께 발견되었다.
이 신발은 금으로 도금된 동판(銅板) 3장을 도안에 맞추어 오려낸 후 凸 모양의 무늬를 뚫어 장식하고 금못을 박아 제작한 것으로, 신발 앞코는 요즘의 신사화처럼 생겼는데 끝이 위로 조금 들려 있다. 이러한 모양의 금동신발은 황남대총 남쪽무덤 이외에도 금관총이나 천마총 등에서도 출토되었는데, 이 세 고분은 모두 신라의 왕이 묻힌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으므로 이러한 양식의 신발은 신라왕의 전유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신라인들은 평소에는 가죽신발을 신었으나 무덤 속에서는 금동판으로 만든 신발을 두었다. 이 황남대총 남분의 금동신발은 길이가 310㎜, 금관총 출토 금동신발의 길이는 342㎜로 매우 크며, 또한 바닥에 둥근 달개나 연꽃모양을 장식하고 있어 평상시 신고 다니기엔 다소 거추장스럽게 만들어져 있다. 따라서 이 황금 신발들이 실제 활동복이라기보다는 의례용으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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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4세기~5세기 경 신라의 정교한 황금 세공 기술을 보여주는 유물로, 신라시대 금세공기술 및 금속공예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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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본 사진 출처
1. 개요
1973년부터 1975년까지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한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금동신발.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 내용
길이 310㎜.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의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된 금동제 신발로, 제작 연대는 대략 4세기 후반~5세기 초반(서기 300~400년대 사이)로 추정되고 있다. 같은 시기에 제작되어 황남대총에 함께 묻힌 황남대총 북분 금관,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 황남대총 북분 금팔찌 및 금반지, 황남대총 북분 유리잔,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 황남대총 북분 은제 관식, 황남대총 북분 금제 고배, 황남대총 북분 은잔, 황남대총 북분 금은제 그릇 일괄, 황남대총 남분 금제 허리띠, 황남대총 남분 금제 관식, 황남대총 남분 은관, 황남대총 남분 은제 팔뚝가리개 등 7만여점에 이르는 유물들과 함께 발견되었다.
이 신발은 금으로 도금된 동판(銅板) 3장을 도안에 맞추어 오려낸 후 凸 모양의 무늬를 뚫어 장식하고 금못을 박아 제작한 것으로, 신발 앞코는 요즘의 신사화처럼 생겼는데 끝이 위로 조금 들려 있다. 이러한 모양의 금동신발은 황남대총 남쪽무덤 이외에도 금관총이나 천마총 등에서도 출토되었는데, 이 세 고분은 모두 신라의 왕이 묻힌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으므로 이러한 양식의 신발은 신라왕의 전유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신라인들은 평소에는 가죽신발을 신었으나 무덤 속에서는 금동판으로 만든 신발을 두었다. 이 황남대총 남분의 금동신발은 길이가 310㎜, 금관총 출토 금동신발의 길이는 342㎜로 매우 크며, 또한 바닥에 둥근 달개나 연꽃모양을 장식하고 있어 평상시 신고 다니기엔 다소 거추장스럽게 만들어져 있다. 따라서 이 황금 신발들이 실제 활동복이라기보다는 의례용으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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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4세기~5세기 경 신라의 정교한 황금 세공 기술을 보여주는 유물로, 신라시대 금세공기술 및 금속공예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