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신사들
[image]
'''Die Grauen Herren'''
1. 개요
모모의 악당 집단. 어느새부터인가 대도시 구획 구석구석에서 무리지어 출몰하고 있으며, 각자 수상한 행동을 벌이고 있는 정체 불명의 집단이다. 이른바 '''시간 도둑'''으로 지칭되는 이들이다. 차경아 번역본에서는 회색 도당(徒黨).[1]
2. 특징
전부 중년 남성으로 마치 흑백 사진으로 보는 듯한 잿빛 얼굴, 밋밋한 중절모와 정장, 고급 회색 승용차, 대머리, 억양이 없는 회색 목소리(실제로 이렇게 묘사된다), 그리고 항상 피우고 있는 한 개비 잿빛 시가가 이들의 특징이며, 이 사항은 모든 회색 신사들이 똑같아서 지극히 획일적인 느낌을 준다. 구성원 간의 차이점이 없으며, 이름 대신 영업사원이라는 일반 명사로 불리며 오로지 알파벳, 숫자로만 구성된 일련번호로만 지칭된다.[2] 그들은 자신이 '''시간 저축 은행'''이라는 기관에서 나왔다고 하며, 도시 사람들에게 시간을 절약하고 저축하는 생활을 권장한다. 그들 가까이 있으면 정체 불명의 한기가 엄습해와 자신도 모르게 옷깃을 죄게 된다.
이들은 날이 갈수록 수효가 불어나고 있는데도 '''아무도 이 집단을 알아차리는 사람이 없다'''. 그렇다고 투명한 존재들은 아닌데, 설사 그들을 보았다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스쳐 지나간 행인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되며[3] , 시간 저축 은행의 계좌를 개설하게 하려는 대상들에게는 자신들에 관한 기억을 말끔히 소거시킬 수 있다. 다른 이들보다 보는 것이 많은 관광 안내원 기기나 도로 청소부 베포의 눈조차도 피해갈 정도. 엄격한 규율을 가져서 실수를 한 조직원에게서 시간을 공급하는 시가를 뺏어서 처형하는 모습도 보인다.
아무튼 이들의 존재가 불어나면 불어날수록 시간 저축 은행의 고객(?)들은 많아지며, 그에 따라 대도시에서는 웬일인지 무표정하고 신경질적이며 오로지 알뜰한 것의 가치만을 따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다. 그들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축제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꿈을 죄악시하며 정적을 혐오하여 항상 소란을 떨며 미쳐 날뛰게 된다. 주인공 모모와 그 친구들도 이 세태에서 벗어나지 못해 점점 시간이 부족해 모모를 찾아올 만큼의 여유를 부리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진다.
3. 정체와 능력
이 허깨비 같은 집단의 정체는 '''시간이 오염되면서 만들어지는 존재'''로 실제로는 무(無), 즉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이다. 시간 도둑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이들이 훔친 시간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시간 저축 은행에서 관리하는 사람의 시간은 그저 허무하게 회색 신사들에게 소화되어 사라져 버린다. 회색 신사들은 사람의 마음 속에 한 시간마다 피어나는 '시간의 꽃'을 뜯어가서 얼려서[4] 저장하거나, 바싹 말려 시가로 피워 시간을 죽게 만든다. 시간의 꽃은 생명력이 매우 질긴 것으로 묘사되고, 그래서 시간을 죽이는 작업도 복잡하다. 이런 '죽은 시간'이 회색 신사들이 살아가는 원천. 그리고 죽은 시간의 매연은 사람들의 정신을 회색 신사들처럼 피폐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훔친 시간으로 움직이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시가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이들이다.
시가를 얻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시간이 필요한데, 사람들의 시간을 유출시키기 위해 그들은 사람들에게 온갖 방법으로 시간 절약을 하게 만들며, 활발한 활동을 통해 사람들에게 속도와 시간 절약, 효율을 강조한다. 문제는 그렇게 절약된 시간은 '''회색 신사 일당의 것이 된다'''는 것. 따라서 사람들은 시간이 절약되었다는 사실을 체감하지 못하고 계속 시간 절약만을 외치게 만든다. 시간 절약을 굳이 권유하는 걸 보면, 다짜고짜 시간을 훔치기만 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본 작품의 주제인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가슴속에 깃들어 있는 것이다'''라는 대목에서 말해주듯이, 그들에게 시간 절도를 허용하게 되면은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마음까지 사로잡혀 거의 꼭두각시가 된다. 실제로 이들이 공작을 벌인 후 '''극중 시점에서 도시는 거의 회색 일당의 시간 공급원이 되며, 회색 신사의 손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사회로 변모하게 되어 모모가 사라진 동안 모모가 살던 마을도 그들의 손에 떨어진다.'''
약점은 어린아이. 시간을 아낀다는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고, 오히려 순수한 말에 역공당하기 쉽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들은 흉악스러우리만치 지능적이기 때문에 그들이 쓰는 계략도 가지각색이다. 작중에서 회색 신사들이 사용했던 수법은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계산 : 이발사 푸지 씨에게 접근했던 방법. 회색 신사의 수금법 중 가장 처음 나온 수법이다. 이른바 똑 떨어지는 거짓말로 불리는 수법. 한 마디로 그 동안 내가 얼마나 시간을 낭비하며 살아왔는지 수치 계산으로 보여준다. 작중에서 XYQ 384 b호는 푸지 씨의 하루 일과, 즉 잠자는 시간, 일하는 시간, 식사 시간, 그 외의 잡다하게 장을 보거나 여가를 즐기는 시간마저 모조리 계산한 다음 푸지 씨의 나이에서 차감한 결산을 보여주며, 그 계산 결과 0,000,000,000초가 나온다.[5] 즉 인생 전체를 쓸데없는 짓[6] 을 하는 데 낭비하면서 보냈다는 것을 강조하며, 곧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 필요한 시간 저축의 중요성을 설파하며 그가 앞으로 20년간 2시간씩 저축만 해도 이자까지 합쳐 269억 1072만 초의 시간[7] 을 마음껏 쓸 수 있게 해준다고 꾄다. 물론 그 뒤 시간을 다시 가져올 수 있다는 기억은 소거된다.
- 곁눈가리기 : 어린아이들의 시위가 어른들의 눈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던 방법. 어린아이들의 진솔한 말에 귀 기울이지 않도록 하여 자신의 존재가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을 막는다.
- 장난감 : 어린아이들에게 쓰는 방법. 하지만 회색 신사들은 어린아이의 존재를 천적처럼 꺼리므로 거의 사용하지 않는 것 같다. 세세한 부분까지 완벽하게 만들어진 기성품 장난감을 던져주며 그 장난감에 싫증이 나도록 만들고, 그런 다음 지루함을 느끼고 있는 아이에게 접근해 그 장난감에 어울리는 무궁무진한 장식품과 연관이 있는 또다른 장난감들을 차차 하나씩 선물하면서 친구들에게서 멀어지게 한다.[8] 작중에서는 영업사원 BLW 553 c호가 모모에게 시도하지만, 오히려 모모의 경청 능력[9] 으로 인해 자신들의 속셈을 털어놓아 버리고 결국 얼마 후 그 죄목으로 동료들에게 제거된다.
- 협박 : 기기와 베포에게 썼던 방법. 도시에서 유명 작가, 이야기꾼으로 유명세를 타지만 옛 모습을 상실한 것에 환멸을 느끼고 모모에 관한 것을 대중에게 폭로하기로 결심한 기기에게 느닷없이 전화로 '우리가 네 유명세를 만들어줬다. 그러니까 우리 일에 간섭하지 말라'라고 협박하며, 이 이후 기기는 자신과 자신의 직업에 대한 긍지를 모조리 잃고 대중의 꼭두각시가 된다. 대책 없이 모모를 찾으러 나선 베포에게는 '모모는 우리 수중에 있으니 몸값으로 10만 시간을 저축해라'라고 조건을 내걸며, 베포 역시 기기처럼 직업 정신을 상실하고 미친 듯이 비질을 계속하게 된다. 이 둘은 회색 신사의 존재를 눈치챘으므로 잘 쓰지는 않는 방법이지만.
- 주입식 교육 : 어린아이들이 계속 모모를 그리워하자 그 부모들을 이용한 방법. 정확히는 2번째 수법에서 언급된 어린아이들의 시위를 이용한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언뜻 그 시위를 기억나게 만들어, 어린아이들을 통제할 필요성을 느끼도록 주입시킨다. 그 결과 도시 곳곳에 어린이들을 관리하는 '탁아소'가 세워지며, 이전까지 그저 즐거움만을 위해 놀던 아이들은 그곳에서 이른바 '유용한 것'을 배울 수 있는 놀이, 상상력을 도무지 발휘하지 못할 놀이를 배우면서 점차 어른들과 똑같이 행동하게 된다.
4. 최후
모모와 호라 박사가 결국 이들을 막기 위해 대동 단결하여 잠가라 밸브급의 작전을 시행시키게 된다. 그 방법은 바로 시간 동결.
시간 저축 은행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호라 박사가 잠에 들어 세상의 시간을 멈추게 한다. 이로 인해 회색 신사들이 시간은행으로 급히 돌아가려 들며, 호라박사에게 시간의 꽃 한 송이를 받은(=1시간동안 움직일 수 있는) 모모가 그들의 뒤를 쫓는다. 시간 저축 은행의 금고를 개방해 빼앗긴 시간을 되돌려주면 끝. 단 이 방법은 실패하면 그대로 세상이 영원히 멈추는 위험성을 갖고 있다. 한 번 잠든 호라 박사는 그 정도의 시간이 아니면 깨어날 수 없기 때문.
이 작전으로 아무 데도 없는 집 밖에서 진을 치고 시간을 오염시키려고 연기만 피워대던 회색 신사들은 처음에는 시간의 소용돌이가 멈춘 것을 보고 호라가 항복한거 아니냐 따위의 소리를 떠들면서 좋아하다가 호라가 그냥 시간을 멈추게 했다는 것을 알자 기겁하면서 본부로 도주하며, 멈춰버린 사람들에게서 손톱만큼의 시간도 빼앗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결국, 수천명에 달하던 자신들을 제비 뽑기로 여섯명으로 줄인 다음에[10] 자신들의 은행에 저축한 수십년치 시간을 가지고 농성하지만 모모가 시간 금고를 닫아버리자 패닉에 빠져 모모가 가진 시간의 꽃을 빼앗기 위해 발악하다가 자중지란을 일으키면서 모두 전멸한다.
'''그래... 그래... 이걸로... 다... 끝난거야...'''
-'''최후의 회색 신사, 소멸하며 모모에게'''
5. 그 외
미하엘 엔데의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캐릭터들이다. 현대인들의 각박한 삶뿐만 아니라 국가 정부의 강제적인 연금 제도에 관한 비판이 들어가 있다. 미하엘 엔데의 획일적인 회색세상에 대한 비판적 사고는 그의 유작인 <망각의 정원>에서도 드러난다.
[1] 무리 도(徒)에 무리 당(黨). 회색의 무리라는 뜻이다.[2] 예를 들어, 이발사 푸지 씨에게 접근한 신사는 XYQ 384 b호, 모모에게 접근한 신사는 BLW 553 c호라는 번호를 갖고 있었다.[3] 타인에 무관심한 현대인들을 비판하는 대목이다.[4] 회색 신사들은 자체적으로 냉기를 뿜어내므로 얼려서 저장하기 좋다. 이후 회색 신사의 수를 줄일 때도 시간의 꽃을 저장하기 위한 냉기가 적당한지가 지적되었다.[5] 근데 이건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아주 당연한 사실이다. 뭘 하면서 보내든 시간은 흐르게 되어 있으니까.[6] 물론 쓸데없는 짓이 아닌 것도 쓸데없는 짓으로 치부한다.[7] 인간 평균 수명의 열 배에 가까운 800년을 의미한다. 문자 그대로 아득한 시간 그 자체.[8] 여기서 바비 인형을 패러디한 것으로 추정되는 '비비 걸'이 나온다. 또한 이는 기성품 장난감들이 오히려 아이들의 창의력을 저해한다는 작가의 메시지기도 하다.[9] 작중에서 모모는 남의 말을 듣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져, 모모에게 말을 하는 사람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속마음까지 털어놓는다.(이것은 현실의 상담에서도 중요하게 여겨지는 요소이다.) 모모의 이 경청 능력은 친구들의 말을 들어줄 때는 그의 마음 속 고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회색 신사의 말을 들을 때는 모모의 가장 강력한 방패이자 무기가 된다.[10] 호라 박사의 집에서 달아나던 와중에도 엄청난 수의 신사들이 서로의 시가를 뺏으려거나 혹은 시간이 다 떨어져서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