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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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오호십육국시대 서량(西凉)의 초대 황제이다.
2. 생애
아명은 장생(長生), 묘호는 태조(太祖), 시호는 무소왕(武昭王) → '''흥성황제(興聖皇帝)'''[1] 이다. 진나라의 명장 이신, 전한의 명장 이광의 후손을 자칭했다. 농서 이씨(隴西李氏)의 중시조이기도 하다. 이고는 이엄(李弇)[2] 의 손자이며 이창(李昶)[3] 의 아들이다.
397년 후량의 건강 태수 단업(段業)이 북량(北凉)의 황제가 되자 하서(河西) 지역의 호족이었던 이고를 효곡현령(效穀縣令)으로 임명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곽겸(郭謙)과 색선(索仙) 등의 추대로 돈황태수가 되었다. 이고는 이 사실을 황제(단업)에게 알렸고, 황제는 그에게 안서장군(安西將軍), 영호서호교위(領護西胡校尉)를 수여했다.
단업이 돈황군(敦煌郡)을 나누어 양흥군(凉興郡)을 설치하자, 400년 당요(唐瑤)는 이고를 황제로 추대했다. 이고는 국명을 '''양'''이라 하고, 수도는 돈황(敦煌)으로 정했으며, 연호를 개원하였다. 이고는 북량의 양흥군과 옥문관을 공격하여 영토를 넓혔다.
417년 67세로 사망하였다. 제위는 차남 이흠(李歆)이 물려받았다.
3. 황제 추존
구당서에는 이고의 손자가 헌조[4] 라 전해지고 당나라를 세운 당고조 이연은 이고의 7대손을 자처했으며 당현종때 이고는 흥성황제(興聖皇帝)로 추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