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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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오호십육국시대에 간쑤성일대에서 한족인 단업이 건국한 나라이다.
실질적인 창건자는 그를 추대했다가 사후 계승한 왕이자 흉노에 예속되어 있었던 노수호족 저거몽손이다. 따라서 단량(段凉), 호량(胡凉), 저거량(沮渠凉)이라고도 불린다.
2. 역사
저거몽손은 후량(後凉)의 무장으로 397년 후량으로부터 독립하였다.
곧 사촌 형제인 저거남성과 힘을 합쳐 건강태수인 단업을 건강공으로 추대하였으며, 저거몽손은 장액태수, 저거남성은 보국장군으로 임명되었다.
단업은 북량의 명목상의 군주였으며 실질적인 권력은 저거남성·저거몽손이 쥐고 있었다. 결국 401년 단업이 저거남성을 죽이자 저거몽손은 반란을 일으켜 단업을 살해하고 장액태수에서 장액공을 자칭하였다.
저거몽손은 남량(南凉)과 손을 잡고 후량을 압박하여 멸망에 이르게 하였고 곧 남량과 대립하였다.
411년 저거몽손은 남량의 주요 거점인 고장을 점령, 412년에는 고장으로 천도하여 하서왕을 자칭하였다. 남량은 곧 서진에 멸망당한다.
414년 서진, 서량과 대립하여 421년에 서량을 멸망시키고 돈황 일대를 장악하였다.
마지막 라이벌 서진과 맞서기 위해 북하, 북위와 연합하는 한편 동진, 유송에도 외교를 하였다.
431년 북위가 서진과 북하를 멸망시키고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북위에 인질을 보내고 양왕으로 임명되었다.
433년 저거몽손이 병사하고 아들 저거목건이 뒤를 이어 하서왕을 자칭하였으나 결국 439년에 북위의 침공을 받아 멸망하였다. 멸망한 북량의 저거씨는 고창[3] 으로 도망쳐 차사국을 멸하고 442년~460년 유연에게 멸망될 때까지 서역에서 여명을 이어간다. 후(後)북량 또는 고창(高昌)북량이라 불린다.
북량의 멸망으로 오호십육국시대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남북조시대가 시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