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8년
1. 개요
2. 사건
2.1. 실제
- 1월 7일 - 콘스탄티노폴리스 시민들이 봉기하여 니키포리치스를 살해하고 니키포로스 보타니타스에 지지 표명. 한편 수도의 항복을 얻지 못한 니키포로스 브리엔니오스는 아드리아노폴리스로 철수하여 상황 지켜봄
- 3월 : 절망한 미카일 7세, 숙부 요안니스 두카스의 조언에 따라 퇴위 결정. 동생 콘스탄티노스에게 제위를 제안하나 거부, 니키포로스 보타니타스 수용 제안
- 3월 31일 : 미카일 7세 퇴위. 스투디오스 수도원으로 은퇴. 요안니스 두카스와 알렉시오스 콤니노스가 집권
- 4월 2일 : 니키포로스 보타니타스 제위 수용(니키포로스 3세)
- 4월 3일 : 니키포로스 3세 콘스탄티노폴리스 입성. 알렉시오스 콤니노스를 도메스티코스 스콜라이 (사령관)으로 임명하여 니키포로스 브리엔니오스 토벌을 맡김
- 8월 7일 - 멜리히슈타트 전투에서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가 대립왕 루돌프를 패배시켰다.
- 일자불명 - 키에티가 노르만족에게 점령당하였다.
- 칼라브레 (할롱구스) 전투에서 알렉시오스 1세의 동로마 군대가 반란을 일으킨 디라키움의 총독 대 니케포로스 브리엔니오스를 패배시켰다. 사로잡힌 니키포로스는 실명됨
- 동로마 제국의 아르메니아계 장군인 필라레토스 브라카미오스가 안티오크의 공작이 된 후 자치권을 행사, 후대에 건립되는 킬리키아의 아르메니아 왕국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 무라비트 왕조가 세우타를 포위하였다. 도시는 해상 지원을 받으며 1083년까지 저항하게 된다.
- 송나라의 철강산업이 연간 12만 5천 톤을 생산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영국은 19세기에 달성)
- 런던탑 건설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