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코리안시리즈

 

'''역대 한국실업야구 코리안시리즈'''
1979 코리안시리즈
롯데 자이언트

'''1980 코리안 시리즈'''
'''육군 경리단'''

1981 코리안시리즈
롯데 자이언트
1. 개요
2. 1차전: 권영호의 호투, 장효조의 발이 만든 승리
3. 2차전: 경리단의 불꽃타선이 폭발하다.
4. 3차전: 벼랑끝 성무, 물러설 곳이 없다.
5. 4차전: 9회말 극적인 역전승부


1. 개요


전기리그 우승팀인 성무 야구단과 후기리그 우승팀인 육군 경리단과의 맞대결. 현재는 통합되었지만 당시로써는 군(軍)라이벌 끼리의 자존심 대결이었다.[1]
경리단은 권영호, 심재원 배터리와 홈런타자 김용철, 장효조[2]가 든든하게 배치되어 있었고, 성무는 김유동, 김인식, 천보성, 김성관, 김정수등 주축 선수들이 대거 전역하면서 전력 약화가 우려되었으나 김재박, 김진우(1958), 김한근이 버티고 있어서 경기전에는 박빙의 승부를 예상하는 이들이 많았다.
전년도 코리안시리즈와 방식이 많이 바뀌었는데 전년도 코리안시리즈는 1차리그~4차리그까지 각 리그 우승, 준우승팀이 토너먼트를 진행해 코리안시리즈 진출팀을 가리는 방식이었는데 단 한번도 우승하지 못한 롯데 자이언트포항제철 야구단이 코리언 시리즈 패권다툼을 벌여 이에 대한 다른 팀들의 반발이 일어났다. 그래서 이번 대회부터는 전기,후기리그로 통합해서 진행하고 전후기 우승팀이 맞붙는 방식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이러한 방식은 후에 한국시리즈 초창기 방식으로도 진행되며 1985년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는 불상사(...)가 벌어질때 까지 유지가 되었다.

2. 1차전: 권영호의 호투, 장효조의 발이 만든 승리


1981년 10월 17일 서울 운동장

1회
2회
3회
4회
5회
6회
7회
8회
9회
R
H
E
'''육군 경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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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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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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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무 야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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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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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리투수: 권영호(경리단, 9이닝 무실점)
▲ 패전투수:
▲ 홈런: 신언호 1호(경리단, 4회 1점)
  • 육군 경리단: 1승
  • 성무 야구단: 1패
5,000명의 관중이 운집한 시리즈 첫경기. 초반 승부는 팽팽했다. 3회 말까지 양팀 타선은 투수들을 공략하지 못하고 쩔쩔 매고 있었다. 그러나 4회초 입대 한달밖에 안된 신병이었던 3번타자 장효조가 선두타자 출루로 1루로 진출한후 이어 2루로 도루에 성공, 뒤이어 5번타자 김일환이 중전 적시타를 때리며 홈으로 들어와 경리단이 1:0으로 앞서나가고 있었다. 이어 김일환은 2루 도루하다 아웃되며 2사에 주자가 없던 상황에서 다음 타자인 신언호가 좌측담장을 넘기는 솔로홈런을 때려내며 2:0으로 앞서 나갔다.
거기다 경리단의 선발투수 권영호는 8이닝동안 단 5개의 안타만을 맞으며 무실점을 기록했고 9회말 볼넷 2개를 내주며 1사 1,2루의 위기를 맞이했으나 후속 타자들을 범타처리하며 깔끔하게 막아냈다.

3. 2차전: 경리단의 불꽃타선이 폭발하다.


1981년 10월 17일 서울 운동장

1회
2회
3회
4회
5회
6회
7회
8회
9회
R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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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무 야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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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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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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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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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경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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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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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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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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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리투수:
▲ 패전투수:
▲ 홈런: 서정환(경리단, 1회 1점), 김용철(경리단, 7회 2점), 이광은(성무, 9회 2점)
  • 육군 경리단: 2승
  • 성무 야구단: 2패

4. 3차전: 벼랑끝 성무, 물러설 곳이 없다.


1981년 10월 19일 서울 운동장

1회
2회
3회
4회
5회
6회
7회
8회
9회
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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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경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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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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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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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무 야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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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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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리투수:
▲ 패전투수:
▲ 홈런:
2연패를 당한 성무야구단은 이번 경기를 놓치게 되면 힘들어 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5,000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무 야구단은 경리단의 선발투수 신태중에게 7회까지 단 3안타에 그치며 4:1로 뒤쳐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8회말, 기회가 찾아왔다. 8번타자 송종창이 2루타를 치고 나간후 수대성, 김재박이 연이어 볼넷을 얻어내며 무사 만루 찬스를 만들어 냈고 조용선이 무사 만루 찬스를 놓치지 않고 중전 적시타를 때려내 4:3으로 따라 붙었다. 그리고 9회말 2사 1,2루의 상황에서 김재박이 3루수를 스쳐 지나가는 2루타를 때려내며 4:4 동점으로 이끌어 냈다.[3]
1승만 더 챙겼으면 실업야구 정상을 차지할수 있었지만 이날 경기 무승부로 우승기회는 다음 경기로 미뤄야만 했다.

5. 4차전: 9회말 극적인 역전승부


1981년 10월 19일 서울 운동장

1회
2회
3회
4회
5회
6회
7회
8회
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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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무 야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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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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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경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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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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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X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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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리투수:
▲ 패전투수:
▲ 홈런: 이광은(성무, 3회초 1점), 김성호(경리단, 5회말 1점)
4천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육군 경리단은 9회초까지 성무 야구단에게 6:1로 끌려가며 5차전으로 이어 지리라 생각되었다. 그러나 9회말 선두타자 김일환이 좌전안타로 출루햇고[4] 다음 타자인 김성호가 안타로 무사 1,2루를 만든 상황에서 심재원김재박의 실책으로 출루 무사 만루의 찬스를 맞이했다. 이때 대타로 투입된 김호인이 우중간 2루타를 때려내며 주자 모두를 불러들이며 6:4로 따라붙었다.
뒤이어 김우근이 몸에 맞는 볼로 무사 1,2루가 되었고 서정환이 내야안타를 치며 또다시 무사 만루가 되었다. 그리고 차영화가 좌전 적시타를 때려내며 6:6 동점을 만들었고 이에 1점만 내줘도 끝내기 점수가 되며 준우승이 확정되는 상황이 된 성무 야구단은 2번타자 장효조를 걸러내고 무사 만루에서 병살을 이용한 작전을 구상했지만 김일환이 친 1루 강습타구를 성무의 1루수 조용선이 놓치며 결국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성무의 김재박은 4타수 4안타 3득점을 기록했지만 결정적인 찬스에서 실책을 범하며 패배의 주역이 되었다.

[1] 성무는 공군에서 운영하던 야구팀이었고 경리단은 육군에서 관리하던 야구팀이었다.[2] 포항제철 야구단에서 활약하다 입대한지 1달밖에 안되는 신병이었다(...)[3] 실업야구에는 일몰콜드게임이 존재했기 때문에 해가지면 경기를 이어나가지 못했다.[4] 이날 안타로 24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