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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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두산 베어스의 초청으로 시구자로 나온 김유동.
1. 소개
전 프로야구 선수이자 정치인. OB 베어스의 원년 멤버로 포지션은 외야수였다. 등번호는 8번을 달았다.
2. 선수 시절
동대문상고와 한양대를 졸업하고 실업야구 한국화장품에서 뛰다가 1980년 현역 은퇴. 이후 가업인 건축회사에서 일하던 중 프로야구가 출범한다는 소식을 듣고 1년 6개월만에 OB 유니폼을 입었다. 그러나 원년 성적은 타율 0.245, 6홈런, 23타점으로 평범하였다.
정작 그의 이름이 유명하게 된 계기는 1982년 한국시리즈.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주로 5번 타자로 나온 김유동은 시리즈 6차전까지 줄곧 맹타를 퍼부으며 25타수 10안타, 3홈런, 12타점으로 OB 타선을 이끌었고, 6차전에선 4-3으로 박빙의 리드를 잡은 9회초 2사 만루 상황에 타석에 등장, 이선희의 초구를 잡아당겨 좌월 만루포를 날리며 그 경기에서만 혼자 6타점을 쓸어담았다. OB의 원년 우승 최대의 공로자인 그는 당연히 초대 한국시리즈 MVP를 거머쥐었다.[1][2]
6차전 만루홈런 영상.
하지만 이듬해 허리 부상과 구단과의 마찰[3] 로 인하여 불편한 관계가 되면서 삼미 슈퍼스타즈로 이적했다. 그러나 허리부상이 악화되면서 1985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야구선수를 은퇴했다.
3. 연도별 주요 성적
4. 은퇴 후
가락시장에서 채소 도매상을 한다는 것이 세간에 알려지며 다시 한 번 화제의 주인공이 되었고, 이후 인천에 고기집을 차려 쏠쏠하게 돈을 벌었는데...
1996년 정치판에 뛰어들어 15대 국회의원 선거에 자민련 후보로 출마한 것을 시작으로 몇 차례 나섰으나 낙선크리를 먹었다(...). 특히 2000년 16대 총선 때에는 자유민주연합을 탈당해 한나라당으로 갔으나 공천에서 탈락하자 자민련으로 되돌아가기 까지 했다. 이 과정에서 식당 운영으로 번 돈을 대부분 날렸다 카더라. 18대에는 자유선진당 소속으로 출마했으며, 19대에는 새누리당 소속으로 출마하려 했으나 공천에서 탈락했다.
2015년 11월, 두산 베어스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자 축하 메세지를 남겼다. 축하 메세지
이후에도 정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는지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우리공화당 후보들에 대한 지원 유세에 나서기도 했다.
5.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득표율이 참으로 안습하다.(...) 심지어 선거비를 반액이라도 보전받는 10% 득표라도 한 적이 없다.(...) 정치적 호오를 떠나, 한국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양당이 아닌 충청기반의 지역정당에서 활동하면서 수도권 출마를 강행하다보니[4] 성적이 좋을 래야 좋을 수가 없다.
[1] 그는 그날 경기 후 인터뷰에서 "경기 전 낮잠을 자다 꿈을 꿨는데 '''친구 4명과 함께 상가집에서 절을 하고 있었다.''' 오늘 만루홈런의 예지몽이었는듯?" 하고 소감을 밝혔다 한다. [2] KBS예능프로그램 슈퍼 TV 일요일은 즐거워 공포의 쿵쿵따 프로그램에서 주영훈과 강병규가 김유동이 원년 한국시리즈에서 친 홈런이 만루홈런인지 3점홈런인지 내기를 한적이 있었고 틀린 사람이 김유동 선수에게 꿀밤을 맞는 내기였다. 스태프가 조사한 결과 만루홈런으로 밝혀졌고 촬영장에 방문한 김유동이 3점홈런이라고 주장한 강병규한테 꿀밤을 살짝 때렸다. 여담으로 김유동이 홈런 쳤을 때 공이 떨어진 자리에 주영훈이 있었다고 한다.[3] 외상 술값이 지나치게 깔린게 화근이었다고 한다(...).[4] 그래도 인천에 충청도 출신이 많은 편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