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학살/유엔군, 국군, 미군, 우익
1. 개요
이 문서는 6.25 전쟁 시기 유엔군, 미군, 국군, 우익이 저지른 학살 사건을 모아 놓은 문서이다. 유엔군으로 싸잡아서 분류하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학살을 자행한 것은 국군, 경찰 그리고 우익이었고 다른 유엔군이 이를 제지하여 목숨을 건진 운 좋은 사례도 드물게나마 있다. 물론 다른 유엔군도 완전히 무고한 것은 아니나 같은 미국이나 영국이 보기에도 국군 등에 의한 학살은 정도가 심했던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학살을 저지하는 영국군 장교를 한국군이 총으로 위협한 일화도 있을 정도.
2. 전쟁 범죄
- 보도연맹 학살사건
- 거창 양민 학살사건
-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
- 경산 코발트탄광 학살사건
- 국민방위군 사건
- 고양 금정굴 학살사건
- 신천·재령군 봉기[1]
- 강화 양민 학살사건
- 산청·함양 양민 학살사건
- 남양주 민간인 학살사건
- 함평 민간인 학살사건
- 문경 양민 학살사건
- 죽산 덜밑 집단총살사건[2]
- 국군의 형무소 재소자 학살
- 나주부대 민간인 학살사건
- 서울 홍제리 집단총살 사건
- 인민군 부역혐의자 학살
- 즉결처분
- 예비검속[3]
- 양민학살
- 서북청년단의 학살사건
- 우익 치안대의 학살사건
3. 관련 문서
[1] 좌우익의 대립으로 인한 상호학살.[2] 1950년 7월 전남 벌교서 소속 경찰관들은 6. 25. 전쟁 발발 직후 순천, 별양, 고흥, 보성 거주 민간인들 남녀 수십 명을 예비검속 명목으로 체포, 그곳 유치장에 유치하였다. 경찰관들은 1950년 7월 20일 상부의 불법적 명령에 따라 적법한 재판 절차를 거치지 않고 위 민간인들을 총살하기로 계획하고 차량을 이용하여 그곳에서 수십 km 떨어진 순천 송광면 죽산 마을 인근의 외진 곳인 덜밑으로 위 민간인들을 강제로 데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모두 총살한 후 현장에 시체를 그대로 방치하였다. 위 사건의 명칭은 이를 발굴, 처음 온라인으로 펴낸 기자가 정한 것을 따랐다. http://www.netong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6659 총살 현장에서 죽은 것처럼 가장하다가 경찰관들이 돌아간 후 몰래 그곳을 벗어난 생존자들이 있다고 한다.[3]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법으로 미군정 시기에 폐지되었으나, 6.25 전쟁이 일어남으로써 이승만 정권이 부활, 이로인해 수많은 제주시민과 기타 사람들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