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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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에 전시되어 있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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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기동 가능한 하고.[1]
1. 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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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량 - 7.4톤
- 길이 - 4.38m
- 너비 - 2.06m
- 높이 - 2.18m
- 승무원 - 3명 (전차장, 조종수, 차체기관총수)
- 주무장 - 98식 37mm 전차포 1문
- 부무장 - 91식 6.5mm 기관총 2정 혹은 97식 7.7mm 기관총 2정
- 엔진출력 - 120마력
- 행동반경 - 250Km
- 최고속력 - 45Km/h
2. 개요
태국군에 넘어간 하고[2] 하고 외내부 소개 영상
일본군의 경전차. 장갑과 무장이 크게 불충분했지만 속도와 신뢰성이 높아 일본군이 중국 전선 전역에서는 그럭저럭 쓸만했다고 한다. 총 2천대 이상이 생산되었다.
센티넬 전차, A38 발리언트와 함께 월드 오브 탱크의 자문인 니콜라스 모런이 뽑은 바보같은 전차 TOP3에 들었다. 가장 큰 이유는 포탑이 회전함에도 불구하고 고정되지 않고 따로 움직일 수 있는 주포때문
3.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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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에 나온 프로토타입. 아직 무장은 안달았다.
1930년대 초기, 일본군은 그 전에 쓰던 89식 중전차는 최고속도가 26Km/h에 불과하고 비포장도로만 만나도 속도가 뚝 떨어지므로 도저히 트럭을 타고 시속 40Km/h로 이동하는 보병을 따라다닐 수 없었으므로[3] , 보다 빠른 경전차를 개발하게 되었다. 설계사상은 영국의 순항전차나 소련의 BT 전차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7.4톤의 무게에 3명의 승무원이 탑승한다. 주무장은 초기형의 경우 97식 경장갑차 테케와 같은 94식 37mm 포를 장착했다가 후기형에서 성능을 개선한 98식 37mm 포를 달았는데, 이 포는 카탈로그상에서는 300미터에서 45mm 장갑을 관통하는 성능을 낸다. 그러나 전차장이 장전, 조준, 사격을 다 부담해야 하는지라 전투효율이 떨어진다. 다만 포 자체는 독일 라인메탈사의 PaK 36에 근간을 두었기 때문에 열화판 카피였지만, 당시 일본군의 기준으로 나쁜 편은 아니었고, 주력전차인 97식 전차의 57mm 포보다 관통력은 더 나았다. 초기형은 6.5mm 기관총 두정을 하나는 차체 전면, 하나는 89식 중전차처럼 포탑 뒤에 탑재했지만 후기형에선 7.7mm 기관총으로 교체된다.
4. 실전
일본군이 이 전차를 운용하는 목적중 하나가 유사시 전차간의 전투가 벌어질 경우, 적의 전차를 잡는 역할이었기 때문에 관통력이 떨어지고 고폭탄 위력이 높은 57mm 단포신포를 무장한 97식 전차보다 관통력이 높아 대전차 능력이 높은 37mm 포를 장착해 할힌골 전투 때도 소련의 T-26이나 BT 전차와 대결하여 짧은 유효사정거리를 고속으로 근접해서 사격하는 방식으로 메꾸는 방식으로 싸움으로서 적어도 89식과 치하보다는 유용함을 보여주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때에도 보병지원이나 수색용으로도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남방작전 당시 연합군이 생각도 못했던 곳에서도 기어나오는 활약을 펼쳤고, 이는 초창기 일본군 승리의 요인 중 하나로도 평가된다.
필리핀에서 미군의 M3 스튜어트 경전차와 접전을 벌였는데, 스튜어트는 장갑과 화력이 하고보다 더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수적으로 열세인데다가 기습당한 상황, 미군 전차병들의 경험이 부족해서 그다지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래도 M3이 쏜 포탄이 하고에 명중하면 전면장갑을 뚫고 차체를 지나 후부장갑까지 뚫고 나가는 완전관통이 발생하는 데 반해, 하고가 M3을 명중시키면 철갑탄이 튕겨나가는 엽기적인 상황이 연출됐다.
그런데, 양 전차의 포는 다 앞서 언급한 독일의 라인메탈사의 Pak 36을 기반으로 한 포이며, 구경도 37mm로 동등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따라서 이 때부터 하고의 대전차 능력이 37mm 대전차포를 주포로 장비한 전차들 중에서 가장 뒤떨어지는 능력을 보유한다는 사실을 일본군이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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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탕에 빠진 인증샷(?) 연합군이 매우 흥미롭게 살펴보고 있다.
두 대가 뉴기니 섬에 있는 밀른 만 상륙에 투입되어 호주군을 상대로 선전했지만, 상륙한지 며칠 뒤 거의 매일 퍼붓는 폭우 때문에 진흙탕에 빠져 유실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해당 지역이 늪과 밀림과 강이 얽힌 지역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일본군의 전차치고는 험지돌파능력이 높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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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복하러 가는 길. 사람과 비교할 때 귀여워보일 만큼 작은 전차다.
이렇듯 초반에는 나름대로 활약했지만 제정신차린 연합군이 마틸다 등 보다 좋은 전차를 투입하게 되면서 빠른 속도로 전술적 가치가 하락했다. 그런데 이게 연합군이 제정신을 차려서라기 보다는... 아프리카나 유럽 전선에서 도태되는 장비가 넘겨지는 경우에 가까웠다. 즉, 영미군의 도태장비보다 못한 일본군의 주력전차라는 의미.
5. 성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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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군의 2파운더 대전차포를 맞고 파괴된 하고.
나올 당시엔 시대에 그렇게 뒤떨어진 않았지만, 일본의 열악한 공업력으로 인해 주변 국가들의 비슷한 전차들과 비교하여 떨어지는 성능을 보였다.
애초에 경쟁상대라고 볼 수 있는 BT 전차는 1931년의 BT-2도 포탑에 독일의 PaK 36을 직접 수입해서 장착했기 때문에 화력에서 우세할 뿐 아니라, 1932년에는 이미 2인용 포탑과 45mm 전차포를 장착한 BT-5로 업그레이드된 상태였다. 당연히 하고와 비교하면 공격, 방어, 주행 등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
아래 자세히 서술되겠지만 미군의 당시 교육영상을 보면 꽤 괜찮은 지형돌파능력에 반해 수통 하나로 간단히 회전을 멈출 수 있는 수동식 포탑 및 소총 사격으로도 피해를 입을 수 있는 보기륜과 엔진블록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또한 일본군 전차의 공통된 특징인 '''포탑 전면 동축기관총 부재'''로 포수가 기관총으로 전면의 보병을 잡거나 거리 측정용으로 예광탄을 발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5.1. 화력
일단 주무장인 98식 37mm 포는 카탈로그상에서는 300미터에서 45mm 장갑을 관통하는 성능을 낸다고 적혀있는데, 실제로 이 성능을 냈으면 할힌골 전투에서 일본군이 하고를 적 전차 코앞까지 위험하게 돌격시켜서 근접전투를 할 이유가 없다. 당시의 소련군 전차의 장갑은 가장 두꺼운 BT-7M도 고작 22mm이며, 재질도 나빠서 실제 방어력은 절반으로 쳐주어야 할 지경이었으므로, 하고의 전차포가 카탈로그대로의 능력을 냈으면 500m는 기본이고, 1000m에서도 여유롭게 BT와 T-26을 잡고 다녔을 것이다.
이렇게 된 원인은 98식 37mm 전차포의 원형인 94식 37mm 속사포의 허접함에 있다. 독일의 PaK 36을 카피한 주제에 열화정도가 너무 심해서 카탈로그상에 나온 위력보다 엄청나게 뒤떨어지는 능력을 발휘해서 37mm 계열의 대전차포중 최악의 능력을 자랑했기 때문이다. 당장 97식 전차의 경쟁상대였으며, 더 열악한 치니가 20mm 표면경화장갑을 가지고 있는데, 일본군의 시험결과 94식 37mm 속사포를 중거리에서 전면장갑으로 방어해냈다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만일 카탈로그대로라면 바로 관통된다. 일본군도 이 문제를 할힌골 전투에서 절감한 다음, 카탈로그상으로는 '''고작 5mm의 관통력 증대'''만 가져온 물건인 1식 37mm 속사포를 개발하고 채용했다. 애초에 아무리 일본군이라도 고작 5mm의 관통력 증대를 가져온 물건을 제식채용하지는 않기 때문에 이 사실은 94식 37mm 속사포의 실제 성능이 카탈로그보다 엄청나게 뒤떨어졌다는 것을 잘 알려준다.
기본적인 화력이 이렇게 바닥을 달리는데다가, '''1인용 소형포탑'''을 채용해서 전투효율을 극악으로 떨어뜨렸다. 일단 1인용 포탑의 경우 잘 해봐야 기관총을 운용할 때나 무리가 없지, 기관포 수준으로 무장이 강화되더라도 불편하기 짝이 없다. 이는 전차장이 포수와 탄약수를 겸임해서 1인 3역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고의 포탑은 매우 작기 때문에 일반적인 전차처럼 주포 옆에 '''동축기관총을 설치할 수 없다.''' 따라서 포탑에 달린 기관총은 엉뚱하게도 포탑 후부에 있기 때문에 전차장이 기관총을 사용하려면 주포 조작을 포기하고 몸을 100도 가량 반대로 돌려서 기관총을 붙잡아야 하며, 제대로 사용하려면 안그래도 얇은 장갑을 자랑하는 지점 중 하나인 포탑 후부를 전면으로 돌려야 한다. 이런 이유로 인해 실제 전장에서는 포탑 후부에 있는 기관총은 매우 여유가 있을 때나 사용하는 무기로 전락하고, 사실상 포탑에서 기관총을 발사하기 힘들기 때문에 차체기관총을 담당하는 기관총수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진다.
설상가상으로 포탑이 너무 좁으므로 평소의 전투행위를 하더라도 공간이 부족한 상황이라서 더 이상의 무장강화를 할 수 없다. 당장 앞서 설명한 1식 37mm 속사포도 하고에는 장착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보병공격용으로 치하의 57mm 곡사포를 하고의 포탑에 장착하려고 하니 장전도 힘들 지경이라서 하고의 포탑을 제거하고 치하의 구형포탑을 통째로 이식한 개량형이 존재할 지경이었다.
마지막으로 포탑이 수동선회방식이다. 그래서 식칼같은 것을 포탑 회전부에 박으면 수동식으로 움직이는 포탑이 안돌아가기도 한다. 실제 전장에서 이렇게 이물질이 포탑 구동부에 들어가서 패배한 사례가 존재한다.
5.2. 방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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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호주군의 2파운더에 당했다고 한다.[4]
30년대 초중반 경전차답게(?) 하고는 종이장갑을 두르고 있었다. 가장 장갑이 얇은 엔진블록의 경우 표준 보병 화기인 소총에도 관통되는 추태를 보였고, 가장 두꺼운 부분조차 중거리에서 소총탄을 겨우 막는 수준이었다. 다시 말해, 제식 소총의 철갑탄에게도 근거리에서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으며, 근거리에선 12.7mm M2 브라우닝 중기관총 같은 걸로 쏘면 전면장갑이 뚫린다! 당연하게도 바주카같은 제대로 된 대전차병기를 맞으면 산산조각난다.
내구성도 엄청나게 떨어졌다. 모처럼 하고가 선제사격에 성공해서 M4 셔먼을 명중, 포탑 선회 및 포신 각도조절이 불가능하게 만들어놓으니까 셔먼이 그대로 몸통박치기를 하는 바람에 '''전차가 전차에게 깔아뭉개지고 짓밟혀서 고철조각이 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치하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일본의 기술 부족과 양산력 부족으로 인해 전황이 악화되는 시기에 나온 물건은 기존 물건보다 성능이 더 떨어지며, 똑같은 차량간의 방어력 격차도 상당했다.
5.3. 주행력
그나마 하고의 장점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 주행력이다. 7.7톤이라는 가벼운 중량 덕분에 일본의 기술력으로 만든 현가장치가 충분히 감당할 수준의 중량을 자랑하므로 연약지반에서도 주행이 가능하며, 전차가 나올 것 같지 않은 곳에서 갑툭튀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일본군 기준으로는 충분히 만족스러웠으므로 주행력에 대한 칭찬은 많다.
하지만, 이것이 국제적인 기준에서도 하고의 주행력이 천하제일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당장 BT 전차는 하고 이상의 기동력을 자랑했다. 오히려 하고의 경우에는 특별하게 관동군용으로 개량된 물건이 존재하는데, 이는 하고의 보기륜 사이의 간격이 만주에 있는 밭의 고랑간 간격과 동일해서 일단 밭에 들어가면 고랑 사이에 보기륜이 박히면서 행동불능이 되므로 , 보기륜 사이에 조그만 롤러를 추가로 넣어서 이를 방지한 물건이다. 물론 이렇게 개량된 물건도 어지간하면 밭에는 들어가지 말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개량점이 미미했다.
6. 후계자
물론 일본군도 후속 경전차에 대한 개발을 진행하고는 있었다. 바로 98식 경전차 케니같은 물건이 후속 경전차다. 물론 후속 경전차답게 여러가지 측면에서 개량점이 있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약한 공격력과 빈약한 장갑은 크게 개선된 부분이 없다. 그러다보니 이미 양산체계를 갖추고 예비부품도 확보한 95식 경전차 하고를 일부러 대체할 필요가 없었다. 당장 전쟁에서 밀리는 상황에서 한동안 전차생산체계에 혼란을 가져오면서 비슷한 물건을 생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고의 후속작들은 잘해야 100 ~ 200대 수준의 소량만 생산되고 종료되었으며, 하고의 생산은 패전시까지 지속되었다.
치헤의 포탑을 치하에 올리면서 쓸모없어진 기존의 치하 포탑을 하고에 올린 케누라는 것이 있다. 항목참조.
7. 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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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렐리우 전투에서 파괴된 채 방치된 상태.
결국 전황이 불리해지자 하고는 반자이 어택에 소모되거나, 차체를 땅에 파묻고 고정식 토치카로 운용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도 100여대의 하고가 중국에 남아서 국공내전에 투입되었고, 심지어 인민해방군에 의해 6.25 전쟁에도 투입되었으나 셔먼에게 털렸다.
1946년 인도차이나에서 프랑스군이 물자부족으로 몇대의 하고를 노획하여 사용했다.
8. 매체에서의 등장
퍼시픽, 윈드토커등 태평양 전쟁을 배경으로 한 실물 영화나 드라마에서 정말 비중 자체가 매우 낮은 일본군 기갑 장비가 출연할 때 가장 유명세가 높은 치하가 아닌 대부분 이 하고가 출연한다. 촬영에 필요한 레플리카를 제작할 때 가장 싸게 먹혀서 그런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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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레리우 전투에서 등장해서 미해병들에게 흡사 사신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나타났으나 곧 등장한 M4 셔먼에게 산산조각난다. 참고로 저 레플리카 차량은 촬영 후 일본에 기증했다고 한다.
펠레리우 전투에서 등장해서 미해병들에게 흡사 사신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나타났으나 곧 등장한 M4 셔먼에게 산산조각난다. 참고로 저 레플리카 차량은 촬영 후 일본에 기증했다고 한다.
캐터필러도 없이 아예 일본군 둘이서 몸체를 지고 포수가 탑승한 채로 나오는 탱크로 묘사되고 있다. 그런데 보스를 제외하고 등장하는 탱크 종류 중에서는 맷집이 가장 좋다! 다른 탱크가 폭탄 몇 방에 터지는 것에 비해 꽤 잘 버티는 편. 설정상 기름이 없어서 인력전차로 개조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연료 유폭이 안 일어나나 보다(...).
일본군 탱크의 스킨이다.
- 워 썬더
- 65 패치로 일본 경전차트리에 추가되었다. 하지만 성능이 낮아서인가 얼마 안가서 히든 장비 행(...)
- 모바일 전투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인 Gunship Sequel WW2에 일본군 1티어 무료 전차로 등장한다.
9. 둘러보기
[1] 당연하지만 장식용이지 실전에서 굴리는게 아니다.[2] 참고로 이 하고는 행사용이긴 해도 '''현역'''이다. 엔진은 도요타 자동차 엔진을 달아서 사용중이라고.[3] 그렇다고 일본군 보병이 3보이상 승차를 했다는 말은 아니다. 일본군은 트럭이 부족해 견인문제로 포병용 견인 야포 구경을 줄였을 정도로 기계화되지 못했다. 그리고 일본군이 유난히 떨어졌을 뿐이지, 2차대전기동안 트럭을 보병의 발로 사용한 나라는 미국뿐이었다.[4] 2파운더는 구경이 40mm로 37mm 대전차포보다 관통력이 높았다. '''문제는 고폭탄 탄환이 없어서 아프리카 전선에서부터 미국한테 75mm를 빌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