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M-45 슈라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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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에서 운용한 최초의 공대지 대레이더 미사일. 이후 AGM-88 HARM에 의해 대체되기 전까지 미 공군과 해군 항공대에서 널리 쓰였다.
베트남 전쟁 당시 소련제 S-75 지대공 미사일(바로 SA-2 Guideline)에 고전을 면치 못했던 것 덕분에 개발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최초 개발연도는 1958년으로 미국이 공식적으로 베트남에 발을 들이밀기 전이었다. 사실 이 당시에도 SA-2의 위협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며 이에 대비하기 위해 개발이 시작된 것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공대공 미사일인 AIM-7을 기반으로 제작되었으나 지상에 설치된 레이더 구조물을 격파하는 게 목적이므로 탄두가 더 컸으며, 기동성이 덜 필요하므로 로켓 엔진와 꼬리 날개가 조금 더 작았다. 개발사는 공학 계산기로 유명한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exas Instruments). 개발 당시 코드명은 ASM-N-10이었으나 이후 미군에 채택되면서 AGM-45A라는 분류명이 붙었다. 별명은 Shrike으로 때까치의 영문명이다. 대량 생산이 시작된 시점은 1963년이고 최초 채용은 1965년에 미 해군에 의해서이다.
역시나 베트남 전쟁에서 많이 사용되었으며, 주로 와일드 위즐 역할을 담당하는 F-4나 F-105에서 운용되었고[1] , 해군에서는 공격기들인 A-4[2] , A-6, A-7에서 주로 운용했다. 운용 방식은 주로 '''투척'''하듯이 발사하는 게 보통이었는데, 일단 RWR의 신호를 잘 가늠해보고 있다가, Fang Song 레이더[3] 의 위치를 대략 파악한 후 최대 사거리에서 위로 던지듯이 발사하는 것이었다. 일단 최고점에 도달하게 되면 하강하면서 본격적인 추적이 시작되어 레이더 장비를 향해 날아가게 된다.
반면 문제점도 있었는데, 시커가 보통 한 주파수로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SA-2 운용자(주로 북베트남군이었으나 소련에서 교관이 파견되어 운용되기도 했다.)들이 주파수를 바꿔버리면 시커를 다시 프로그램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미사일이 발사된 상황에서 바꾼다는 것은 아니다. 일단 이러한 미사일이 발사되었다는 것 자체를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물론 갖은 수단을 써서 알아낸뒤 바꿔버리면 AGM-45는 망했어요.
심지어 주파수 대역이 크게 바뀔 경우 모듈 자체를 다시 제작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요즘에야 플래시 메모리 원리를 이용한 FPGA를 어디서든 구할 수 있지만 이 당시에는 진공관으로 회로를 구성해야 했다. 주파수 대역이 크게 바뀌면 아예 회로 구성을 바꿔야 하는 경우가 나왔던 게 이 때문이다. 때문에 북베트남군의 방공망 레이더 주파수에 관한 정확한 정보가 필요했다. 베트남 전에서 NSA가 요원을 파견한 이유가 방공망 신호를 포함한 북베트남 신호체계와 암호체계 수집이 목적이였다. 두 번째 문제는 시커가 고정되어 시야각이 매우 좁았기에 발사시 레이더를 정확히 전방에 두고 발사해야 명중을 기대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만일 레이더 기지에서 발사 사실을 알고 레이더 전원을 끄면 그대로 미아가 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물론 이 경우에도 날아가던 관성이 있으므로 명중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후 개량되어 넓은 주파수 대역을 추적할 수 있게 되었으며, 파편 탄두와 발광 플레어 소자를 같이 삽입하여 명중한 위치 근처를 밝힘으로써 'z킬러' 역할을 맡은 항공기들[4] 이 더 확실하게 SAM 시스템을 무력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쉽게 말해서 적 레이더 위치를 표시하는 역할까지 겸한 것. 야전에서 마개조되어 여러 목표물이 있을 경우 우선 순위를 정해 추적할 수 있는 기능도 들어갔으며, 이 기능 덕분에 미사일을 가동시킨 후 SAM이 밀집된 지역으로 강하하면 신호를 잡자마자 자동 발사되도록 개조되어 사용되기도 했다. 1970년도에 B형이 출고되었는데, 로켓 엔진을 바꾸어 고체 연료를 사용하게 됨으로써 사정거리가 16km 정도였던 A형에 비해 40km로 늘어났고[5] , 탄두의 폭발력도 강해졌기에 더 확실하게 적군의 레이더 시설을 파괴할 수 있게 되었다.
역시나 이스라엘에서 운용되기도 했으며, 중동 연합의 SA-2와 SA-3를 터는데 사용되었다. 1982년까지 총 18,500기가 생산되었기에 본격적인 퇴역은 그 10년 후인 1992년에야 이루어졌다. 이스라엘군에서는 그 이후에도 사용되기도 했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역시나 마개조의 달인들답게 M4 셔먼 차체[6] 에 얹어서 쓰기도 했다 한다.
의외로 미국과 가장 친한 국가인 영국 공군에서는 채택되지 않았으나 포클랜드 전쟁 당시 지원돼서 아브로 벌칸 폭격기에 장착해 아르헨티나군의 AN/TPS-43 레이더를 공격하는데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레이더 조작수들은 AGM-45의 존재를 알아채고 벌칸 폭격기가 접근하자 레이더를 꺼버렸기에[7] 중요도가 높지 않은 목표물들만 공격하는 선에 그쳤다. 일단 적 레이더망의 제압에 성공했기 때문에 SEAD 임무는 달성했으나, 이를 교훈삼아 후속작인 AGM-88 HARM은 레이더의 마지막 위치를 기억하고 신호가 사라지더라도 그 위치를 기반으로 날아가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
1991년 걸프 전쟁 당시에도 F-4G에 장착되어 이라크군 방공 기지들을 두들겼다.
미군에서 운용한 최초의 공대지 대레이더 미사일. 이후 AGM-88 HARM에 의해 대체되기 전까지 미 공군과 해군 항공대에서 널리 쓰였다.
1. 사양
- 길이: 3.05 m
- 전체 폭: 91.4 cm
- 날개 크기: 45.7 cm
- 굵기: 20.4 cm
- 무게: 177 kg
- 속도: 마하 2
- 사정거리: 40 km (A형은 16 km)
2. 개발
베트남 전쟁 당시 소련제 S-75 지대공 미사일(바로 SA-2 Guideline)에 고전을 면치 못했던 것 덕분에 개발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최초 개발연도는 1958년으로 미국이 공식적으로 베트남에 발을 들이밀기 전이었다. 사실 이 당시에도 SA-2의 위협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며 이에 대비하기 위해 개발이 시작된 것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공대공 미사일인 AIM-7을 기반으로 제작되었으나 지상에 설치된 레이더 구조물을 격파하는 게 목적이므로 탄두가 더 컸으며, 기동성이 덜 필요하므로 로켓 엔진와 꼬리 날개가 조금 더 작았다. 개발사는 공학 계산기로 유명한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exas Instruments). 개발 당시 코드명은 ASM-N-10이었으나 이후 미군에 채택되면서 AGM-45A라는 분류명이 붙었다. 별명은 Shrike으로 때까치의 영문명이다. 대량 생산이 시작된 시점은 1963년이고 최초 채용은 1965년에 미 해군에 의해서이다.
3. 베트남전에서
역시나 베트남 전쟁에서 많이 사용되었으며, 주로 와일드 위즐 역할을 담당하는 F-4나 F-105에서 운용되었고[1] , 해군에서는 공격기들인 A-4[2] , A-6, A-7에서 주로 운용했다. 운용 방식은 주로 '''투척'''하듯이 발사하는 게 보통이었는데, 일단 RWR의 신호를 잘 가늠해보고 있다가, Fang Song 레이더[3] 의 위치를 대략 파악한 후 최대 사거리에서 위로 던지듯이 발사하는 것이었다. 일단 최고점에 도달하게 되면 하강하면서 본격적인 추적이 시작되어 레이더 장비를 향해 날아가게 된다.
반면 문제점도 있었는데, 시커가 보통 한 주파수로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SA-2 운용자(주로 북베트남군이었으나 소련에서 교관이 파견되어 운용되기도 했다.)들이 주파수를 바꿔버리면 시커를 다시 프로그램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미사일이 발사된 상황에서 바꾼다는 것은 아니다. 일단 이러한 미사일이 발사되었다는 것 자체를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물론 갖은 수단을 써서 알아낸뒤 바꿔버리면 AGM-45는 망했어요.
심지어 주파수 대역이 크게 바뀔 경우 모듈 자체를 다시 제작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요즘에야 플래시 메모리 원리를 이용한 FPGA를 어디서든 구할 수 있지만 이 당시에는 진공관으로 회로를 구성해야 했다. 주파수 대역이 크게 바뀌면 아예 회로 구성을 바꿔야 하는 경우가 나왔던 게 이 때문이다. 때문에 북베트남군의 방공망 레이더 주파수에 관한 정확한 정보가 필요했다. 베트남 전에서 NSA가 요원을 파견한 이유가 방공망 신호를 포함한 북베트남 신호체계와 암호체계 수집이 목적이였다. 두 번째 문제는 시커가 고정되어 시야각이 매우 좁았기에 발사시 레이더를 정확히 전방에 두고 발사해야 명중을 기대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만일 레이더 기지에서 발사 사실을 알고 레이더 전원을 끄면 그대로 미아가 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물론 이 경우에도 날아가던 관성이 있으므로 명중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후 개량되어 넓은 주파수 대역을 추적할 수 있게 되었으며, 파편 탄두와 발광 플레어 소자를 같이 삽입하여 명중한 위치 근처를 밝힘으로써 'z킬러' 역할을 맡은 항공기들[4] 이 더 확실하게 SAM 시스템을 무력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쉽게 말해서 적 레이더 위치를 표시하는 역할까지 겸한 것. 야전에서 마개조되어 여러 목표물이 있을 경우 우선 순위를 정해 추적할 수 있는 기능도 들어갔으며, 이 기능 덕분에 미사일을 가동시킨 후 SAM이 밀집된 지역으로 강하하면 신호를 잡자마자 자동 발사되도록 개조되어 사용되기도 했다. 1970년도에 B형이 출고되었는데, 로켓 엔진을 바꾸어 고체 연료를 사용하게 됨으로써 사정거리가 16km 정도였던 A형에 비해 40km로 늘어났고[5] , 탄두의 폭발력도 강해졌기에 더 확실하게 적군의 레이더 시설을 파괴할 수 있게 되었다.
4. 중동전쟁 및 그 이후
역시나 이스라엘에서 운용되기도 했으며, 중동 연합의 SA-2와 SA-3를 터는데 사용되었다. 1982년까지 총 18,500기가 생산되었기에 본격적인 퇴역은 그 10년 후인 1992년에야 이루어졌다. 이스라엘군에서는 그 이후에도 사용되기도 했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역시나 마개조의 달인들답게 M4 셔먼 차체[6] 에 얹어서 쓰기도 했다 한다.
의외로 미국과 가장 친한 국가인 영국 공군에서는 채택되지 않았으나 포클랜드 전쟁 당시 지원돼서 아브로 벌칸 폭격기에 장착해 아르헨티나군의 AN/TPS-43 레이더를 공격하는데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레이더 조작수들은 AGM-45의 존재를 알아채고 벌칸 폭격기가 접근하자 레이더를 꺼버렸기에[7] 중요도가 높지 않은 목표물들만 공격하는 선에 그쳤다. 일단 적 레이더망의 제압에 성공했기 때문에 SEAD 임무는 달성했으나, 이를 교훈삼아 후속작인 AGM-88 HARM은 레이더의 마지막 위치를 기억하고 신호가 사라지더라도 그 위치를 기반으로 날아가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
1991년 걸프 전쟁 당시에도 F-4G에 장착되어 이라크군 방공 기지들을 두들겼다.
[1] F-105의 경우 와일드 위즐형인 EF-105F 형과 F-105G 형에서 운용했다.[2] 최초 운용 기종이다.[3] SA-2 유도 레이더.[4] 와일드 위즐 문서의 헌터-킬러 내용 참조.[5] 사실 앞에서 제기된 문제점보다 더 큰 문제가 바로 이 사정거리 문제였다. 처음 개발되었을 당시에는 SA-2 미사일의 사정거리 내에서 발사해야 했기 때문에 정말로 위험천만이었다.[6]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은 셔먼을 매우 잘 굴려먹었다. 이 기괴한 전차(심지어 M4A1 기반)가 개발된 연도가 73~74년이었으니….[7] 이쪽은 또 전쟁이 끝날 때까지 다시 켜지지 않았다는 게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