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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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С-75 «Десна»'''
1. 제원
2. 개요
S-75 Desna(나토 코드명 SA-2 Guideline)는 소련의 첫 장거리 지대공 유도탄이다. 설계 개념과[1] 운용 시기를 따져 봤을 때 미국의 나이키 미사일이랑 유사하며, 베트남 전쟁때 수 많은 미군기를 격추시키면서 그 명성을 떨쳤다.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도 운용하는 중이나, 현재는 방공 성능이 떨어지는 관계로 2선급 장비로 배치되어있다.
3. 역사
3.1. 개발과 배치
미 공군은 B-47 스트라토젯과 그를 능가하는 항속거리와 폭장량을 지닌 B-52 스트라토포트리스의 개발을 빠르게 개시했다. 이러한 미국 폭격기 세력의 항속거리와 속도 그리고 폭장량은 유사시 소련에 심각한 위협이 되었다. 이에 맞서 소련 파켈 기계설계국이 1953년 개발을 시작하고 1955년 첫 테스트를 거치고 1957년 처음 배치되었다. 초기 실전 배치 당시만해도 세계적으로도 우수한 성능에 최신의 유도 장비를 갖추고 있었기에 서방 세계에 대한 위협이 되기에 충분했다. 수년간 많은 개량이 이루어 졌다. S-75는 모스크바 근교에 배치된 S-25 베르쿠트 지대공 미사일 포대의 뒤를 이어, 제2차 세계 대전의 유산인 130mm KS-30과 100mm KS-19와 같은 고고도 대공포들을 대체했다. 1958년 중반에서 1964년 사이 미국의 정보당국은 소련영내에서 600개 이상의 S-75포대를 파악했다. 이 포대들은 대도시, 산업단지와 행정시설에 밀집배치되었다. 또한 동심원상으로 배치된 포대들이 소련 심장부인 모스크바로 향하는 적국의 폭격기의 경로를 따라 배치되었다. 1960년대 중반까지 1,000개 이상의 작전포대를 배치하는 것으로 배치를 끝마쳤다. 또한 소련 이외에, 몇몇 S-75 포대들이 1960년대 동독 주둔 소련군의 보호를 위해 동독에 전개 되었다. 차후 S-75는 대부분의 바르샤바 조약 국가들에 팔렸고 이후 중국 인민해방군[2] , 조선인민군, 북베트남군 등에 공급되었다.
3.2. 실전
S-75에 의해 처음으로 격추된 항공기는 대만의 RB-57 고고도 정찰기이다. 이 항공기는 베이징근처에 배치된 중국의 S-75포대에 의해 1959년 10월 7일에 격추되었다. 몇 년간 중화민국 공군은 RB-57 2대와 무인기 여러대 등, 몇대의 기체를 S-75에 의해 잃은 것으로 보여진다. 1960년 5월 1일, 개리 파워스의 U-2기가 예카테린부르크근처의 시험 포대 상공을 비행하던 중 격추당했다. 또한 중국의 S-75가 몇대의 대만공군이 조종하는 U-2기를 격추했다고 여겨진다. 1960년 게리 파워즈의 U-2를 격추한 미사일 시스템도 바로 S-75이다. 원래 미사일의 도달고도로는 격추가 힘들었으나, 높은 산에 설치하고 8발을 동시에 발사해 격추하였다. 이후,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미국 공군의 루돌프 앤더슨 소령의 U-2기가 쿠바 영공에서 격추되었다.
그리고 베트남 전쟁, 1965년 당시의 북베트남은 미국의 항공세력에 완전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어 소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미국의 손에 들어가 분석 당할 위험이 컸기에 결정은 쉽지 않았지만, 몇차례의 토론 끝에 베트남인민군에 S-75 체계를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포대의 준비는 그해 초에 시작되었고 미국의 정보망은 1965년 4월 5일, 그 계획을 즉시 알아챘다. 군사전략가들은 미사일 포대가 작전가능해지기 전에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소련 기술진의 죽음이 불러올 파급을 두려워한 정치가들에 의해 거부되었다. 이후 베트남 전쟁에서 하노이-하이퐁 라인, 그리고 기타 중요한 거점들을 미군기로부터 방어하는데 쓰여지는데, 1965년 7월 23일, 미 해군 F-4 팬텀 전투기가 격추되었다. 또한 롤링썬더 작전때 B-52를 포함한 많은 미군기들이 격추당했다. 그래서 미군은 아이언 핸드 작전으로[3] 와일드 위즐 기체가 강력한 ECM 재밍으로 포대를 마비시키고, 다른 S-75 포대가 방열을 개시하기 전에 레이더를 AGM-45 슈라이크 대레이더 미사일로 공격하고, 발사대는 폭탄이나 기총등으로 파괴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북베트남군은 미사일 포대를 이동하고 더미로 대체하는 동시에, 가용한 모든 ZU-23 등의 대공포, MANPADS를 접근로에 배치했다. 이 전술은 성공하여 미국의 희생을 강요했다. 최종적으로 종전까지 수백기의 미군기를 격추하였다.
중동전쟁에서도 많이 애용되었는데, 이집트와 시리아는 이스라엘군을 방어하기 위한 방공망의 일부로 사용하여[4] 많은 이스라엘의 항공기를 격추했다. 이후, S-75는 더욱 더 발전된 S-200과 부크 미사일 시스템, 더 나아가 S-300의 개발로 소련군에서 도태되었고, 이후 중국, 북한 등에서도 신형 지대공미사일의 배치로 인해 빠르게 도태되어가기 시작한다. 이 대공미사일의 마지막 실전기록은 1993년 3월 19일 그루지야의 S-75가 러시아의 Su-27 전투기를 격추한 것이다.
4. 기타
한가지 특이한 점은 S-75가 나이키 미사일처럼 지상 목표물에 대해서도 사용할 수 있었고, 운용자에게 어떻게 미사일을 조준하는지 교육하였다. 최근 이란군의 S-75들이 지대지 사격을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Cat Shit One에 이 미사일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레츠와 퍼키가 월맹군의 S-75의 정보를 얻기 위해 침투하여 사진을 찍은 후, 아예 미사일 기지를 파괴하려고 시도하다가 기지에 있던 소련군 군사고문에게 총격을 한 후, 국제문제가 될 것을 우려하면서 곧바로 탈출한다. 부상당한 소련군 군사고문은 미군들이 탈출했다는 보고를 받고 아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