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l & Oates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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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펜실베니아 주 필라델피아 출신의 블루 아이드 소울 듀오. 1970년대 초반 데뷔하여 1980년대 초중반에 업계의 정상에 머물러 있었으며 현재까지도 현역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성공한 남성 듀오라고 기록되며, 2014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블루 아이드 소울의 대표 뮤지션이며 필라델피아 소울(Philly soul)을 기반으로 다양한 음악 장르를 혼합하는, 그루브 있는 음악으로 흑인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서양권에서 이들은 그야말로 전설 그 자체이자 비 지스의 이후 시대 차트를 점령한 그룹, 80년대의 상징들 중 하나로 언급된다. 다만 동양권에서 인지도가 상당히 낮은데, AC/DC, 롤링 스톤즈와 함께 이러한 부류의 가수들의 예시로 항상 언급된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남성 듀오 '''
여섯 개의 빌보드 싱글차트 1위 곡을 갖고 있는 상업적 명성에 비해[1] 한국에서는 인지도와 인기가 낮다. 그러나 소수의 골수 팬들을 유지하고 있고[2] , 광고음악, 영화음악 등에 이들의 음악이 많이 쓰여서 사람들에게 알려진 곡이 몇 개 있다. 주로 Hall & Oates로 알려져 있으나, 이들의 공식명은 사실 Daryl Hall and John Oates이다. 본인들은 듀오라고 불리는 것보다 독립적인 두 아티스트의 협업으로 인식되기를 원한다고 한다.
2. 역사
2.1. 이들의 만남
1946년 필라델피아 근교 포츠타운에서 태어난 Daryl Hall(대릴 홀)은 타고난 음감과 음악적 재능이 특출난 아이였다. 성가대 활동과 어머니로부터의 보컬 트레이닝을 통해 어린 나이부터 조기교육을 받았다. 역시 다양한 음악적 환경에서 자라났던 John Oates(존 오츠)는 1948년 뉴욕에서 태어나 가족과 함께 필라델피아로 이주하였다. 이들은 1967년 필라델피아의 아델피 볼룸에 있었던 한 쇼에 참가하던 중 발생한 총격전으로 인해 대피하다가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조우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당시 이들은 둘 다 템플 대학교에 재학하고 있었으며 각기 다른 밴드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들은 곧 룸메이트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1970년에 정식으로 듀오를 결성하게 된다.
2.2. 성공의 시작
이들은 서로 간의 음악적인 공통점을 발견하고 같이 작업을 시작한 이후 뉴욕으로 거주를 옮겨 새로운 음악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이들은 이후 Tommy Mattola[3] 를 매니저로 영입하게 되고 1972년 Whole Oats[4] 라는 타이틀로 Atlantic Record와 계약을 맺어 같은 해 첫 앨범 [Whole Oats]를 발표하게 된다. 유명 프로듀서인 Arif Mardin이 제작하였으나 히트곡을 내진 못하였다.
1973년 두번째 앨범 《Abandoned Luncheonette》를 발표한다. 이 앨범은 역시 Arif Mardin의 제작으로 좀 더 독자적이고 세련된 사운드를 생산해냈는데 평론가의 높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발매 당시는 상업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후 수록곡인 She's Gone은 1976년에 역주행에 성공한다. 1974년 싱글 발매 당시에는 홀 앤 오츠가 미국 전국에서 인기를 얻기 전이라 자신의 도시인 필라델피아 차트에서는 4위까지 올랐었으나 전국 차트, 즉 빌보드 핫 100에서는 60위가 최고 기록이었다. 즉 지역 히트였다
1974년 Todd Rundgren를 프로듀서로 맞이하여 세번째 앨범 [War Babies][5] 를 제작하나 크게 실패하자 Atlantic Record는 이들과의 재계약을 포기하게 된다. RCA로 옮겨 네번째 동명 타이틀의 앨범 [Daryl Hall and John Oates]를 1975년에 발표한다. 이 앨범에서 Daryl Hall의 당시 여자 친구였던 Sara Allen에 대한 헌정곡, "Sara Smile"이 빌보드 핫 100 4위, 1976년 빌보드 연말차트 12위까지 올라 이들의 잠재력을 보여주게 된다. Atlantic Record 시절의 She's Gone이 뒤늦게 차트에 등장하여 1976년 차트 6위를 기록하였다.
1976년 발표된 [Bigger Than Both of Us] 앨범의 두번째 싱글인 Rich Girl로 이들은 드디어 1977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1위 곡을 얻게 된다. 이들은 또한 공연실황이 담긴 라이브 앨범 [Live Time] 등 앨범을 연속적으로 발표하며 끊임없는 창작력을 과시하였다.
2.3. 최전성기, 미국 음악계를 지배하다
1978년의 [Along the Red Ledge]와 1979년 발표된 [X-Static]은 David Foster의 제작으로 좀 더 완벽하고 다양한 음악성을 향한 발돋움이었으나 1980년 발매된 발표된 앨범 [Voices]를 위한 전주곡에 불과했다. 이들의 최전성기는 1981년에서 1985년까지라고 볼 수 있는데, 자신들이 제작한 [Voices]는 이 전성기를 연 기념비적인 앨범이다. 네 곡의 Top 40 싱글을 생산하였으며 그 중 Kiss on My List가 이들의 두번째 빌보드 핫 100 1위곡이 되었다. 또 하나의 싱글 [You Make My Dreams]도 차트 5위까지 올라 100만장 이상이 팔리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그들은 여기에 만족치 않고 곧 1981년 걸작 [Private Eyes]를 발표하며 Private Eyes와 I Can't Go for That (No Can Do)을 차례로 빌보드 핫 100 1위에 올려 이들이 황금기에 들어섰음을 선언한다.
이어서 1982년작 [H2O]에서는 Maneater가 마이클 잭슨과 폴 매카트니의 The Girl Is Mine을 밀어내고 빌보드 핫 100 1위에 4주간 머물게 된다. 1983년 컴필레이션 앨범 [Rock'n Soul Part1]에 포함된 신곡 Say It Isn't So는 마이클 잭슨과 폴 매카트니의 Say Say Say에 밀려 2위에 머문다. 홀 앤 오츠는 1984년작 [Big Bam Boom]의 싱글 Out of Touch[6] 를 통해 빌보드 핫 100 1위에 오르며[7] 다시 정상에 오른 후 다음 해 1985년 기념비적인 Apollo Theater 공연과 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끝으로 휴식기에 들어간다.
2.4. 쇠퇴기
이들은 1988년 Arista사를 통해 [Ooh Yeah!]] 앨범으로 컴백하나 정상의 인기를 회복하지는 못했지만 이 앨범의 리드 싱글 "Everything Your Heart Desires"는 빌보드 핫 100 4위, 1988년 빌보드 연말 차트 80위 권 안에 든 히트곡이었다. 1990년대에는 [Change of Season] 앨범 이후 긴 동면기를 갖게 된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서 계속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감으로써 20세기에는 누리지 못했던 예술과 상업 양 차원의 동시적인 성공을 60세를 넘긴 시기에 얻게 된다.
3. 디스코그래피
3.1. 스튜디오 앨범
4. 여담
솔로 앨범을 포함한 각자의 활동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대릴 홀은 2007년부터 Live from Daryl's House라는 인터넷 방송으로 크게 인기를 얻게 되어 차후 정식 프로그램으로 제작하여 2017년까지 방영된 바 있다. 유명한 뮤지션을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고 각자의 히트곡 등을 같이 연주하는 내용이다.
1980년작 Voices 앨범의 네번째 싱글이었던 You Make My Dreams는 발매 당시보다 시간이 지난 2000년대에 재평가되는 곡이다. 영화 [웨딩싱어]를 시작으로 500일의 썸머, 레디 플레이어 원등의 영화에 OST로 쓰이고 코카콜라 광고에도 쓰였다. 아카펠라 그룹 Pentatonix가 커버하여 UglyDolls의 사운드 트렉으로 발매하였다. 대릴 홀이 노래했지만 듀오의 공동작업물이며 기본적으로 존 오츠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곡이다. 존 오츠도 자신의 2011년 솔로 앨범에서 블루그래스 스타일로 커버한 바 있다.
2000년대에 이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게 된 것은 위 두 가지 사항의 공이 크다.[8]
남성 듀오로는 10년 정도 일찍 활동한 사이먼 앤 가펑클과 비견되는 측면이 있다. 둘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남성 듀오에, 키다리 보컬리스트+땅딸막한 기타치는 작곡가 컨셉이 아주 유사하다. 다만 음악적으로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파급력이 더 크다 평가받으며 대중적으로는 홀 앤 오츠가 더 성공했다. 그리고 사이먼 앤 가펑클은 중간에 해체한 적이 있지만 홀 앤 오츠는 해체한 적은 없다.
GTA 4의 80년대 라디오 채널인 Vice City FM에 그들의 히트곡 중 하나인 Maneater가 나온다. 그리고 GTA 4의 확장팩인 TBoGT에서 등장인물인 에반 모스가 LP를 틀어놓고 이 노래를 따라부르며 춤을 추는 장면도 있다.#
[1] 스티비 원더가 10곡, 마돈나가 12곡, 엘튼 존이 9곡의 싱글 1위곡을 갖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대단한 기록 임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앞에 언급된 가수들은 이러한 1위곡을 10년이 넘는 긴 기간동안에 기록한 반면 홀 앤 오츠는 1개 빼고 이걸 전부 1980~1985년에 기록했다! 그리고 이 기간동안 탑텐곡까지 전부 더하면 '''13개'''를 올렸는데, 이때는 싱글 발매된 노래들만 차트에 진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욱 보기 희귀한 기록이다. 보통 1년에 싱글을 4~5개 정도 발매하는 것을 감안하면 이들은 이 기간동안에 낸 거의 대부분의 싱글을 탑텐에 집어넣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대단한 것은 데뷔한지 10년이 다되가는 중견가수가 서서히 인지도를 높이다가 데뷔 10년차에 포텐을 터뜨렸다는 것인데, 요즘의 비슷한 예시로는 드레이크나 더 위켄드 등이 가장 대표적인 예시라고 볼 수 있겠다.[2] 윤종신, 김구라 등이 알려져 있다.[3] 공격적인 프로모션으로 유명하였다. 머라이어 캐리의 첫 남편으로 그녀의 발견을 통해 업계 정상의 성공을 쟁취하게 된다. 1990년대는 타미에게 전성기였다.[4] 언어유희다. Whole이 Hall처럼, Oats가 Oates처럼 발음나기 때문이다.[5] 이 앨범 중 Much Too Soon의 기타 리프를 다이내믹듀오가 자신들의 노래에서 샘플링한 바 있다.[6] 지오디 1집에 커버 송이 실려 있다. [7] 이들의 6번째 빌보드 핫 100 1위곡이었다.[8] 이들에 대한 재평가의 과정과 뒷 얘기는 다음의 브런치북을 참고하길 바란다: https://brunch.co.kr/brunchbook/hall-oa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