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 앤 가펑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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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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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 앤 가펑클은 '''20세기 최고의 포크 듀오'''라고 평가받는 전설적인 그룹이다.
폴 사이먼과 아트 가펑클로 구성된 1960년대 미국의 남성 듀오. '''당대 최고의 듀오''', '''황금의 듀오'''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자랑했다. 또한 폴 사이먼은 뛰어난 작곡 실력과 시적인 가사가 일품인 작사 실력으로 유명했고 아트 가펑클은 천사같은 목소리와 잘생긴 외모로 유명했다.
2. 상세
고교 동창인 폴 사이먼과 아트 가펑클은 1957년부터 톰과 제리[3] 라는 듀오로 활동했으나, 'Hey, Schoolgirl'이 히트한 이후로 실적이 저조해 잠시 팀을 해체했다 . 1964년 사이먼 앤 가펑클이란 이름으로 다시 뭉쳐 데뷔앨범 "Wednesday Morning, 3 A.M."을 발매했으나, 성적은 여전히 시원찮았고 결국 팀은 다시 해체되었다.
그러던 중 위의 1집에 수록된 "The Sound Of Silence"가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입소문이 퍼져 슬금슬금 역주행 파워를 보이기 시작하자, 음반사에서는 프로듀서 톰 윌슨을 다시 불러 전기 기타와 드럼을 입힌 리믹스 버전을 만들었다.[4] 이 버전은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5] 영국에 있던 폴 사이먼은 다시 미국으로 건너와 아트 가펑클과 재결합, 아예 "The Sound Of Silence"라는 이름으로 2집을 발표한다. 이 음반은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었으며 3집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을 통해 이들을 큰 인기를 거두었다. 이즈음 이들은 영화 졸업의 사운드트랙을 담당했는데 이 중 Mrs. Robinson은 빌보드 1위는 물론 엄청난 대박을 친다.[6]
그러나 폴 사이먼과 아트 가펑클은 가고자 하는 음악적 방향이 달랐으며 서로의 성격 차이 때문에 불화도 심해졌다. 워커홀릭인 폴 사이먼 덕에 가펑클은 항상 쉴틈이 없다고 불평했고, 결정적으로 폴 사이먼 본인이 혼자서 노래 쓰고 불러도 참 잘했다. 아트가 영화배우 일때문에 가수업에 등한시한 이유도 있다.[7] 둘 사이가 한창 좋지 않았을 땐 듀오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녹음실에서 녹음을 하거나, 파트를 나눠 녹음한 뒤에도 폴 사이먼이 아트의 파트를 없애버리고 자신이 다시 부를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결국 1970년 5집 "Bridge Over Troubled Water"를 발매한 후 팀은 해체하게 된다. 수록곡 So Long, Frank Lloyd Wright는 여러모로 사이먼과 가펑클이 서로 헤어질거라는 암시와 작별 인사를 담고 있는 곡이다.
해체 이후에도 자선 사업 등을 위해서 마음을 맞추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중에서도 뉴욕 센트럴 파크 공연은 아예 이날의 공연이 녹음되어 음반으로 발매될 정도로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요즘도 가끔씩 공연을 한다. 환갑, 칠순을 지나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아직 팔팔하시다. 다만 2010년 이후로는 공연이 없는 상태.
해체에 이유에 여러가지 말이 나오는 건 당연하지만, 결국 서로 간의 반목이다. 둘다 능력이 뛰어나고, 아웅다웅하다보니 그럴 수 밖에. 더구나 듀엣이고. 당시가 아니라 현대라면 둘다 성공했겠지만, 당시 상황에선 어림 없었기에 끝까지 싸우다 끝난 것으로 보인다.
둘은 해체 후에도 각자 솔로 커리어를 이어 나갔는데, 대체로 폴 사이먼의 솔로 커리어가 더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다. 사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아름다운 멜로디를 대부분 폴 사이먼이 작곡했으니 이는 당연하겠지만. 폴 사이먼의 셀프 타이틀 앨범 <Paul Simon>과 <Graceland>는 거의 대부분의 명반 리스트에 포함되곤 하는 뛰어난 명반이다. 그의 작곡 능력은 솔로 아티스트 자격으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재입성한 것으로 설명이 끝난다.[8]
2016년 인터뷰에서도 재결합 공연에 대해서 부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정확히는 아트 가펑클은 하고 싶어하는 눈치지만, 폴 사이먼은 서로 그렇게까지 잘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였다.
폴 사이먼은 특별히 사생활에 있어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으며,[9] 최근 들어서는 의료보험 개선 캠페인 참여와 반전운동 참여 등 각종 사회운동으로 인기가 높다. 2009년 말에는 버클리 음대 이사가 되었다. 다만 아트 가펑클의 경우 몇년 전 마약복용 문제로 구설수에 오르는 등 주위를 안타깝게 한적이 있다.
2000년 10월 5일 asem 기념 평화 음악회에 아트가펑클이 게스트 참여를 위해 내한한적이 있다.
2015년 2월 14일에 아트 가펑클의 내한 공연이 있었다. 아트 가펑클은 오는 2월 ‘롯데카드 무브(MOOV) : 아트 가펑클 인 서울’을 통해 처음으로 한국을 찾는다.
2018년 폴 사이먼은 콘서트에서 은퇴를 한다고 공식 입장을 밝히게 되면서 그의 노래 중 'Homeward Bound'라는 곡을 타이틀로 한 Farewell 투어를 진행했다. 본 공연의 마지막 무대는 그의 고향 뉴욕에서 열렸다. 다만 2019년 다시 무대 복귀를 선언한 상태다. 좀 더 정확하게는 자선 공연같은 경우에만 오른다. 투어를 그만둔 것은 아직까지 확실한 듯 하다.
3. 음악적 특징 및 여담
- 서정적인 가사, 감미로운 보컬 덕에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큰 인기를 끌었으며, 때문에 일부 곡은 번역된 이름이 더 유명할 정도. "Bridge Over Troubled Water"같은 경우에는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라는 이름으로 유명하다. 한국 음악계에도 큰 영향을 미쳐서 1970년대 초반엔 남성 2인조 붐이 불기도 했다. 정작 현지에서는 사이먼 앤 가펑클 이후로는 이런 스타일의 듀오가 스틸리 댄을 제외하고는 잘 안 나왔던걸 생각해보면 흥미로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장르 범위를 넓히자면 아웃캐스트도 저 축에 들 수 있을 것이다. 가수 소향이 불후의 명곡 2에서 커버 무대를 선보여 해당 회차의 우승을 차지하는 한편, 무대 영상은 해외 SNS 등지에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 "April Come She Will 같은 경우에는 운율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쓴 것으로, 본래 각운을 잘 맞춘 민요에서 모티브를 따와 내용을 덧붙인 것이라고 한다. April come she Will, when streams are ripe and swelled with Rain, May she will Stay, resting in my arms Again...등의 내용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그 외 "El Condor Pasa"도 "철새는 날아가고"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인기를 끌었다. 위에 적은 곡 이외에도 "The Boxer"는 1978년 '제 1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권투선수"라는 번안된 노래가 나오기도 했다.
- SG워너비의 SG가 바로 이 그룹의 약자이다.[12] 이것을 도전 골든벨에서 문제로 냈었다가 1명 남고 다 쓸려내려간 적도 있었다고 한다.
- 둘다 유태계 혈통이다. 다만 혈통만 그쪽이지 성향이나 종교적인 면은 전혀 연관이 없다. 오히려 폴 사이먼의 경우 시오니즘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
- 위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폴 사이먼은 단신으로 유명하다. 구글 검색 기준으로 폴 사이먼의 키는 160cm도 안된다. 반면에 키다리로 보이는 아트 가펑클은 의외로 평균적인 키인 175cm다.[13]
- 폴 사이먼은 필립 글래스의 흐느적거리는 나날들의 노래 앨범 가운데 Changing Opinion 곡의 가사를 썼다.
- 아트 가펑클에 대한 지문이 천재교육 중등 3학년 영어 교과서에 실렸다. 샌디라는 친구와의 우정을 다룬 내용이다.
- 폴 사이먼의 솔로 곡 중 하나인 You Can Call Me Al의 뮤직비디오가 참으로 재미있다.[14] 뮤직비디오 안의 가수들이 영상 안에서는 립싱크를 해도 상관없다는 점을 역이용하여 폴 사이먼 대신 그 옆에 있는 사람[15] 이 자기가 노래부르는 양 립싱크를 하지를 않나, 엄청난 키 차이[16] 로 폴에게 굴욕을 주는 안습 상황이 펼쳐진다.
- 이들의 노래는 여러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 되었는데 특히 엘비스 프레슬리는 자신의 실력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실력을 보여주고자 공연때마다 이들의 Bridge over Troubled Water 를 부른 것으로 유명하다.[17] 폴 사이먼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 버전은 아레사 프랭클린의 버전이라고 한다.
- 한국의 708090 포크 그룹이자 형제 가수인 수와진이 이들과 행보가 비슷해서 한국의 사이먼 앤 가펑클이란 말이 소수지만 있다.
- 이들의 데뷔 앨범에 실려있는 'Kathy's Song'에 나오는 Kathy[18] 는 폴 사이먼이 Sound Of Silence 발매 후 런던에 체류하며 푼돈을 벌기위해 불러주는 곳마다 찾아 노래하던 당시 폴 사이먼의 여자 친구였다. 거리에서 폴과 아티가 버스킹을 하면 모자를 들고 수금도 하며 용기를 많이 북돋았다고...묘하게도 Sound of Silence가 미국에서 대박나고 다시 폴 사이먼이 미국으로 건너갈 즈음 헤어졌다. 이 당시 둘의 모습을 표지에 담은 앨범이 The Paul Simon Songbook ([image]) 이후 Kathy는 폴 사이먼의 팬이었던 남자와 결혼한 뒤 웨일즈어를 사용하는 깡촌으로 이주하여 조용히 산다. 소문 들은 기자나 파파라치들이 몰려들었지만 그때마다 돌아온 건 Sound of Silence. 남편을 통해 전해진 이별의 이유는 갑자기 치솟은 사람들의 관심을 견딜 수 없었다는 것도 있지만 폴이 유명해지며 자신과 있을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듯 하다. 원래 성격이 친절하지만 몹시 내성적이라고... 구글에 잘 검색해보면 백팩을 메고 인근 대학에 파트타이머로 출퇴근하는 그녀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 폴 사이먼은 소식적 여자에게 인기가 좋았던지라, 캐시 이외에도 페기 하퍼와 결혼해 첫 아이인 뮤지션 하퍼 사이몬을 얻었으며[19] 셜리 듀발과 잠깐 사귀고 1982년 스타워즈의 레아 오가나 역의 배우 캐리 피셔랑 두번째 결혼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캐리하고도 캐리의 마약문제로 1년만에 이혼.[20] 이후 10여 년간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의 사이로 지내오다 1992년, 자신에게 대쉬해온 에디 브리켈이라는 가수와 결혼해 슬하에 자녀 셋을 두고 30년째 해로하고 있다.[21]
- 10년 정도 이후 시대의 남성 듀오인 홀 앤 오츠와 비견되는 측면이 있다. 둘다 키다리 보컬리스트+땅딸막한 기타치는 작곡가 컨셉으로 유명하며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가로 반드시 꼽힌다는 점에서 굉장히 유사하다. 다만 음악적으로는 사이먼 앤 가펑클이 더 높게 인정받고 대중적으로는 홀 앤 오츠가 더 크게 성공했으며, 사이먼 앤 가펑클은 해체한 적이 있지만 홀 앤 오츠는 결성된 지 50년이 다되도록 해체한 적이 없다. 사실 사이먼 앤 가펑클도 해체하기는 했지만 워낙 둘이 오래된 절친이기 때문에 솔로활동을 하면서도 계속 함께 공연을 뛰는 등 함께 활동하기는 한다.[22]
4. 디스코그래피
4.1. 앨범
4.2. 싱글
4.2.1. 빌보드 1위
4.2.2. 빌보드 3위~10위
4.2.3. 빌보드 11위~20위
[1] 그래미 시상식의 가장 중요한 상들로 여겨지는 올해의 레코드상, 올해의 앨범상, 올해의 노래상, 최고의 신인상만이 기록되어 있다. 나머지 부문의 상들은 따로 문서 내 수상 목록에 수록해주길 바랍니다.[2] 컬럼비아 레코드[3] 잘 알려진 애니메이션 톰과 제리에서 따온 거 맞다.[4] 참고로 이 버전에 동원된 세션들은 모두 밥 딜런의 Like a Rolling Stone에 참여했던 사람들이다. 아닌게 아니라 Like a Rolling Stone 녹음이 끝난 뒤에 바로 연주했다고(...)[5] 다만 폴 사이먼과 아트 가펑클 두 사람 모두 리믹스 버전이 발표된 이후에야 자신의 노래가 리믹스 된 것을 알게 되었다고.[6] 영화 속 최고의 명곡을 뽑을때 항상 거론된다. AFI 선정 역사상 최고의 영화 노래 100곡 중 #6위로 뽑혔기도 하다. 가사 중 Where have you gone, Joe DiMaggio? 행으로도 유명한데, 사실 조 디마지오는 자신이 비록 은퇴는 했어도 아직 살아있다며 언짢은 반응이였지만 이 곡 때문에 당시 젊은층이던 베이비 붐 세대에게 다시한번 아이콘으로 부상한다.[7] 폴 사이먼은 이에 대해 불만이 엄청 많았다고 한다. 폴 사이먼은 아트 가펑클이 보컬로서의 재능은 자신을 아득히 능가한다고 인정했기에 폴 사이먼 입장에서 아트 가펑클의 영화배우 활동은 재능낭비였던 셈.[8] 즉 듀오 시절을 포함해서 2번 입성한 것.[9] 이혼 등의 개인사의 굴곡이 있었긴 했지만 뭐 이 정도야...미국에선 이 정도 개인 문제는 우리나라와 달리 큰 가십거리에 들지도 않는다. 워낙 개인주의, 자유주의가 팽배한 나라고, 결혼과 이혼에 대해 크게 문제를 삼지 않는 문화다보니 이혼 정도는 커리어에 별 타격이 없을 정도.[10] 애초에 사이먼 앤 가펑클의 El Condor Pasa가 남미 민요(페루)이며(폴 사이먼이 개사함),폴 사이먼이 1986년 발표한 "Graceland"라는 앨범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직접 가서 그곳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한 곡의 비중이 높은 앨범으로, 아프리카 토속음악과 팝의 결합을 성공적으로 이뤄낸 월드뮤직이라는 평을 받으며, 그래미상으로 "Album Of The Year(1987년), "Record Of The Year(1988년)에 선정되었다. 다만 당시까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펼치던 남아공에서 작업한 것 때문에 반(反) 아파르트헤이트 진영에게 많은 비난을 받았다. 본 앨범의 성공에 힘입어 1990년에는 "Graceland"와는 반대로 서부 아프리카의 리듬과 남아메리카 아마존 유역의 토속음악을 도입한 "Rhythm Of The Saint"를 발표해 빌보드 차트 앨범부문 4위에 올랐다.[11] 조지가 인도음악에 관심이 많았다면 폴은 아프리카와 남미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10][12] 소몰이 창법 양산과 함께 SG워너비가 까이는 이유 중 하나다. 소속사가 지어준 이름이지만 음악적 방향이 아예 다르다. [13] 폴은 157에서 160 사이였고 아트는 180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젠 둘 다 나이가 있다보니 더 줄었을수도.[14] 인터뷰에 따르면 노래 내용은 자신에 대한 것이라고 한다.[15] 코미디언 체비 체이스.[16] 체비 체이스의 키는 192cm로, 무려 32cm 차이가 난다.[17] 실제로 노래의 음도 높고 생각보다 어려운 노래이긴 하다.[18] 그녀는 'Kathy's Song'뿐만 아니라 이후 4번째 정규앨범 Bookends에 수록된 'America'에서도 언급된다.[19] 하퍼 사이먼이 바로 그의 유명한 명반 타이틀인 'Graceland'에서 나오는 첫번째 부인의 아이이다.[20] 하지만 캐리와 나눈 기억들이 강렬했는지 그녀에 대한 이야기들이 앨범 'Hearts and Bones'나 노래 'Graceland'에 담겨있다.[21] 딸인 룰루 사이먼 또한 뮤지션이다.[22] 다만 재결합 공연을 할 때마다 서로를 너무 잘 아니 많이 다퉜다고 한다.[23] 이 노래는 주로 슬픈 상황에서 틀어지는 노래로 유명하다. 특히, "Hello darkness, my old friend"라는 구절은 그야말로 눈물의 절정을 느끼게 해준다. 더스틴 호프먼 주연의 영화 졸업의 엔딩곡으로 쓰였으며 1998년경 매주 토요일 7시에 SBS에서 방영된 《서세원의 좋은세상 만들기》라는 프로그램의 엔딩곡으로 쓰였다. 한국 애니메이션 검정 고무신 3기에서도 예고편 음악으로 등장한 바 있다. 그리고 2015년, 미국의 메탈 록 밴드 디스터브드가 커버한 버전이 그들의 앨범 <Immortalized>에 수록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24] 2002년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캐치프레이즈의 현대카드 광고 수록곡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