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비 원더

 


''' 스티비 원더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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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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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스티비 원더
STEVIE WONDER
'''
'''멤버'''
(개인자격)
'''입성 연도'''
'''1989년'''
'''후보자격 연도'''
'''1988년'''
<bgcolor=#0c0000> '''후보선정 연도''' ||<bgcolor=#0c0000> '''{{{#ffd700 1989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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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image]
'''이름'''
'''스티비 원더
STEVIE WONDER
'''
'''분야'''
'''음악'''
'''입성날짜'''
'''1994년 2월 1일'''
'''위치'''
'''7050 Hollywood Blvd.'''
}}} ||
'''Stevie Wonder'''
'''스티비 원더'''
'''본명'''
스티블랜드 하더웨이 모리스
Stevland Hardaway Morris
'''국적'''
[image] 미국
'''출생'''
1950년 5월 13일 (73세)
미국 미시건 주 새기노
'''직업'''
가수, 싱어송라이터, 프로듀서
'''장르'''
R&B, 소울, 펑크, 가스펠, , 재즈
'''활동'''
1961년 ~ 현재
'''데뷔'''
1962년 1집 앨범 ‘The Jazz Soul of Little Stevie’
'''신체'''
184cm, 80kg
'''자녀'''
딸 아이샤 모리스
'''종교'''
개신교 (침례회)
'''레이블'''
타말라, 모타운
'''서명'''
[image]
'''링크'''

1. 개요
2. 상세
3. 근황
4. 디스코그래피
4.1. 앨범
4.2. 싱글
4.2.2. 빌보드 핫 100 2위
4.2.3. 빌보드 핫 100 3위 ~ 10위
4.2.4. 빌보드 핫 100 11위 ~ 20위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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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음악가이자 프로듀서이며 20세기 대중음악계의 산 증인, 살아있는 전설이자 거목이다.

2. 상세


'''그는 비틀즈 4명이 행한 모든 업적을 혼자서 해냈다.'''

베이비페이스

'''스티비에게 감사합니다. 올해 앨범을 안 내줘서.'''

'''I'd like to thank Stevie Wonder, who didn't release an album this year.'''

폴 사이먼, 1975년 그래미 수상 소감[1]

1963년 'Little Stevie Wonder'로 데뷔, 이후 동년도에 나온 라이브 앨범 'Recorded Live: The 12 Year Old Genius'와 라이브 싱글 'Fingertips - Pt. 2'로 각각 빌보드 앨범 차트와 싱글 차트 1위를 하는 기염을 토한다. 모타운 레코드 출신으로 슈프림즈가 스티비 원더의 백 보컬을 해준 적도 있다. 현재도 모타운 소속이다. 그리고 이사회에 참석 권한도 있다.
참조로 이 시기에 나온 곡들을 들어보면 '''지금과 목소리에 큰 차이가 없다'''. 그가 목 관리를 어떻게 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
이후 지속적인 음악 활동을 통해 'Isn't She Lovely', 'For Once in My Life', 'Superstition', 'Ribbon in the Sky', 'Sir Duke', 'Lately',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 'Part Time Lover', 'Overjoyed' 등등... 정말 셀 수도 없을 정도의 수많은 명곡들을 남겼다. 그야말로 흑인음악계의 살아있는 전설.
미시간주 새기노에서 미숙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 생활을 하다 산소 과다 공급으로 인한 미숙아 망막증으로 시력을 잃었다. 그러나 시력이 없기에 더더욱 발달된 청각을 토대로 음악을 만드는 일이 가능했다고 한다. 실제로 음감이 장난이 아니라서, 그의 앨범에 있는 곡은 대부분 그가 작사, 작곡한 곡들이다. 물론 반드시 앨범 전곡을 자신이 작곡한 곡만 수록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1992년에 발매한 'My Cherie Amour'.
미성 보컬의 대표격이기도 하다. 스티비 원더 때문에 이후의 미성 보컬은 원래의 목소리를 살리지 않고 여러 가지 창법을 시도해야만 했다고 할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보컬. 보컬로서 대표적인 장점은 특유의 목소리를 들 수 있으나, 음역대도 기교도 표현력도 모두 필설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스티비 원더 이후의 알앤비 가수는 모두 그의 팬이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흑인 보컬에 있어서 정점과도 같은 인물.
악기에도 정통해 피아노, 하모니카, 드럼, 기타, 베이스 기타등을 모두 다룰 줄 안다. 한마디로 편곡까지 전부 다 가능하다는 이야기. 게다가 그냥 다룰 줄 아는 정도가 아니라 드럼[참고], 피아노, 하모니카의 경우에는 흑인 음악 연주 역사에 남을 수준으로 뛰어나다.[2]
특히 하모니카는 독보적인 수준으로, 5세부터 연주를 시작했고 12세에 이미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천재 하모니카 연주자다.[3] 모든 음을 낼 수 있지만 다루기 까다로운 크로마틱 하모니카를 애용하는데, 연주 기술은 당연히 완벽하지만 그보다도 악기를 통한 감정 표현이라는 면에서는 따라올 사람이 없다. 한 번이라도 스티비 원더의 기쁨이 가득한 하모니카 연주를 들어본 사람은 공감할 것이다. 문제라면 노래를 부르며 하모니카를 연주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4] 스티비 원더의 하모니카 연주는 들을 기회가 적다는 것.[5]
새로운 것에도 관심이 많아 신시사이저 일렉트릭 베이스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선구자이기도 하고, 여러모로 연주자로서도 위대하다. 2012년에는 harpejji라는 새로운 악기를 접하고 콘서트에서 이를 직접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6] 하지만 외국에서도 이견 없이 '그의 가장 위대한 연주 파트는 보컬이다' 라는게 공통된 의견이다. 흑인 음악 보컬의 완성형이라고 보면 되겠다.
국내에서는 그 업적과 실력, 노래의 인지도와는 달리 스티비 원더 개인에 대한 탐구의 움직임이 매우 적은 편이다. 시각장애 뮤지션으로서의 인지도 외의 음악사에서의 대단한 업적에 대한 평가는 거의 없는 수준이다.[7] 당장 이 문서만 보더라도 마이클 잭슨, 엘튼 존, 폴 매카트니 등의 아티스트들의 음반은 대부분이 문서화되어 있는 것과 비교하면 그의 음반은 만 독립 문서화 되어 있다.

3. 근황


2005년의 'A Time To Love' 앨범 이후 신곡 발표가 뜸한 편이다. 하지만 이미 수많은 명곡, 명반을 내놓았으니 먹고 사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는 듯하다.[8] 신곡 발표가 뜸하던 중 2009년 싱글 'All About the Love Again' 을 발표했고, 오바마를 응원하는 데에 쓰였다.
2010년 현대카드에서 주최하는 '슈퍼콘서트'로 내한공연을 한 바 있는데, 티켓이 '''10분 만에 매진되었다'''. 티켓을 산 팬들의 반응 대부분은 '이번 기회가 아니면 원더옹을 두 번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 사실 한국에 잘 안 오는 편인데다가 나이가 나이니만큼 다음 내한은 힘들지 않겠느냐는 이야기. 2013년 11월 22일에 방송된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에 출연했다. 곽부성, 효린과 합동 무대를 가지기도 했다.
2014년 1월 27일. 56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다프트 펑크퍼렐 윌리엄스나일 로저스와 Get lucky의 콜라보 무대를 선보였다.
2015년 마크 론슨의 "업타운 스페셜" 앨범에 삽입된 곡 중 첫 번째와 마지막 곡에 스티비 원더의 하모니카가 등장하였다! 마크 론슨이 머릿속에 떠오른 멜로디를 곡으로 옮기려다가 이 멜로디는 스티비 원더의 하모니카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해 100% 거절당할 줄 알면서도 편지를 보내 애걸했다고 하는데, 론슨의 예상을 뒤엎고 실제로 스티비 원더가 연주를 녹음해 보내오는 바람에 론슨이 기절초풍했다고. 연주 분량은 그리 길지 않지만... 1번과 11번 곡, 즉 "업타운스 퍼스트 피날레"와 "크랙 인 더 펄 파트 II"이다.
2015년 2월, 'Through the Eyes of Wonder' 라는 정규앨범을 발매 준비 중이다. (확정된건 아니다) 또한 그의 어머니의 죽음 이전에 하였던 가스펠 음악 녹음을 완성하고 싶어 하며, 2014년 11월 7일 뉴스 기사에서는 'Through the Eyes of Wonder' 앨범이 75% 정도 완성되었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매우 잘 알려진 곡인 "Isn't She Lovely" 를 "A Whole Other Place" 로 재편곡하며, 안드레아 보첼리의 목소리가 추가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또다시 앨범 발매를 늦추어서, 연기가 되었다고 한다.
2015년 5월 Snoop Dogg의 정규 13집 Bush의 첫 곡 California Roll에 보컬, 키보드, 하모니카 피처링을 한다.
2016년 11월 4일 발매되는 Common의 Black America Again의 수록곡에 보컬 피처링을 한다.
2016년 11월 4일 뮤지컬 애니메이션 영화 Sing ost 중, 직접 작사, 작곡한 메인 싱글 수록곡인 "Faith"가 발매되었고, 아리아나 그란데가 피처링하였다.

'''Stevie Wonder - Faith ft. Ariana Grande'''
2018년 8월 3일 랩퍼 트래비스 스캇새 앨범의 하모니카 연주로 참여하였다.
2021년 2월 오프라 윈프리와의 인터뷰에서 가나로 영구 이주할 계획임을 밝혔다. 이미 1990년대부터 자신의 뿌리인 아프리카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는 해왔으나, 미국에서 점점 불거지고 있는 인종차별과 Black Lives Matter 운동 등이 이러한 생각을 굳히는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4. 디스코그래피



4.1. 앨범


  • The Jazz Soul of Little Stevie (1962)
  • Tribute to Uncle Ray (1962)
  • With a Song in My Heart (1963)
  • Stevie at the Beach (1964)
  • Up-Tight (1966)
  • Down to Earth (1966)
  • I Was Made to Love Her (1967)
  • Someday at Christmas (1967)
  • Eivets Rednow (1968)
  • For Once in My Life (1968)
  • My Cherie Amour (1969)
  • Signed, Sealed & Delivered (1970)
  • Where I'm Coming From (1971)
  • Music of My Mind (1972)
  • Talking Book (1972)
  • Innervisions (1973)
  • Fulfillingness' First Finale (1974)
  • Songs in the Key of Life (1976)
  • The Secret Life of Plants (1979)
  • Hotter than July (1980)
  • The Woman in Red (1984)
  • In Square Circle (1985)
  • Characters (1987)
  • Jungle Fever (1991)
  • Conversation Peace (1995)
  • A Time to Love (2005)

4.2. 싱글



4.2.1. 빌보드 핫 100 1위


  • Fingertips (1963)[9]
  • Superstition (1972)[10]
  • You Are the Sunshine of My Life (1973)[11]
  • You Haven't Done Nothin' (1974)[12]
  • I Wish (1976)[13]
  • Sir Duke (1977)[14]
  • Ebony and Ivory (Duet with Paul McCartney) (1982)[15]
  •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 (1984)[16]
  • Part Time Lover (1985)[17]
  • That's What Friends Are For (With Dionne Warwick, Gladys Knight & Elton John) (1986)[18]

4.2.2. 빌보드 핫 100 2위


  • I Was Made to Love Her (1967)
  • For Once in My Life (1968)

4.2.3. 빌보드 핫 100 3위 ~ 10위


  • Uptight (Everything's Alright) (1965)
  • Blowin' in the Wind (1966)
  • A Place in the Sun (1966)
  • Shoo-Be-Doo-Be-Doo-Da-Day (1968)
  • My Cherie Amour (1969) [19]
  • Yester-Me, Yester-You, Yesterday (1969)
  • Signed, Sealed, Delivered (I'm Yours) (1970)
  • Heaven Help Us All (1970)
  • If You Really Love Me (1971)
  • Higher Ground (1973) [20]
  • Living for the City (1973)
  • Boogie On Reggae Woman (1974)[21]
  • Send One Your Love (1979)
  • Master Blaster (Jammin') (1980)[22]
  • That Girl (1981)
  • Go Home (1985)

4.2.4. 빌보드 핫 100 11위 ~ 20위


  • Nothing's Too Good for My Baby (1966)
  • I'm Wondering (1967)
  • We Can Work It Out (1971)
  • Don't You Worry 'bout a Thing (1973)
  • I Ain't Gonna Stand for It (1980)
  • Do I Do (1982)
  • Love Light in Flight (1984)
  • Skeletons (1987)
  • Stop Trying To Be God (2018)[23]

5. 기타


  • 1973년에 앨범 Innervisions을 발표한 직후 일어난 교통사고로 후각마저 잃어버리는 수난을 겪은 바 있다.
  • 1970년에 시리타 라이트와 결혼했지만 2년 만에 이혼하고 2001년 9월패션 디자이너 카이 밀라드 모리스와 재혼했으나 2009년에 별거 상태에 들어가 스티비 원더가 2012년 이혼청구 소송을 냈다. 가족 사항으론 아들, 딸 모두 7명을 두고 있다.
  • 한국에서는 딸의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기에 했다는 눈 수술 이야기가 유명하지만, 사실 이건 헛소문이다. 정확히는 1999년 존스홉킨스 대학 의료연구진이 시세포가 살아있는 사람의 각막에 마이크로칩을 이식하여 빛의 변화를 감지하고, 이를 뇌로 전달하는 기술을 개발했는데 실제로 시력을 회복시키는 것이 아니고 빛의 감지를 통해 사물의 형상을 대강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스티비 원더가 연구진들에게 연락하여 테스트를 받아 보기로 하였다. 하지만 테스트 결과 스티비 원더의 시세포는 완전히 파괴되어 이 시술에 적합하지 않다고 결론이 났기에 그냥 돌아왔다.[24]
  • 만약 시력을 되찾는다면 가장 먼저 보고 싶은 게 딸의 모습, 두 번째로 보고 싶은 게 마이클 잭슨문워크라고 한다. 같은 모타운 출신인 마이클 잭슨을 자신의 아들처럼 아꼈다고 하며 마이클 잭슨의 영결식에서 추모곡을 불렀을 때 스티비 원더의 음정이 흔들렸다. 마이클 잭슨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보여주는 부분. 마이클 잭슨 역시도 스티비 원더를 굉장히 존경했는데 그의 음악은 자신보다 훨씬 앞서 있으며 베토벤과 동급으로 두고 싶을 정도이고 그의 보컬은 완벽에 가깝다고 칭찬하였다.
  • 본인의 음악성과 시각을 상실한 것을 연관 짓지 않길 바랐던 것 같다. "시력을 상실했기에 귀가 예민해졌다."라는 말을 그다지 안 좋아했다고. 실제로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그것이 음악성에 영향을 미치는 건 절대 아니다. 오로지 자신의 노력으로 빚은 실력으로 인정해 주길 바라는 듯.
  • 사실은 볼 수 있다 카더라. 종종 같이 활동한 라이오넬 리치엘튼 존 등 뮤지션들이 스티비 원더가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을 봤다고 증언했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샤킬 오닐은 엘리베이터에서 만났을 때 자기에게 이름을 부르며 인사하더라는 썰을 풀었다. 스티비 원더 자신도 비행기를 몇번 착륙시켜 봤다고 말한 적이 있고, 넘어지는 마이크를 잡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 적도 있다. 물론 우스갯소리 이상으로 들으면 곤란하다. 운전하는 것은 스티비 원더가 친한 친구들에게 자주 하는 장난일 뿐이고, 시력을 잃은 사람들도 다른 감각을 이용해서 충분히 주위의 상황을 인지할 수 있다.

  • 현대카드 정태영 대표가 2021년 2월 클럽하우스 방송에서 스티비 원더의 2010년 슈퍼콘서트 11 내한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혔다. 앞서 어셔가 내한했던 슈퍼콘서트 10 당시 정태영 대표가 어셔에게 '스티비 원더 섭외가 어렵다'고 푸념하자 어셔가 직접 스티비 원더에게 연락하여 연결을 놔준 덕분에 스티비 원더의 내한 공연이 성사되었다고 한다.

[1] 대중음악 사상 최고의 포크 듀오 사이먼 앤 가펑클의 작곡가 겸 보컬.[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iBA4vWQRBA0[2] 참고로 어린 시절 교회에서 열었던 자선 바자회 뽑기에 참여했는데 교회에서 소유하던 드럼 세트가 당첨되어 받았다고 한다. 물론 스티비 본인이 악기 연주를 좋아해서 정말 기뻐했다고.[3] 12세에 아폴로 극장에서 "Fingertips" 를 공연하는 모습: http://youtu.be/2cSjOxqldFs [4] 간혹 노래와 하모니카 연주를 동시에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 듯한데, 한 곡 안에서 하모니카도 불고 노래도 하는 것은 당연히 가능하지만 인간이 입이 하나인 이상 둘을 '''동시에'''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음반 취입 시에는 두 번에 나눠서 녹음하면 되겠지만 라이브에서는 불가능하므로, 한 사람의 보컬과 하모니카 파트가 겹치는 곡은 만들지 않는다.[5] 그러나 DrakeTake Care이나 Travis ScottAstro World에 하모니카 연주로 참여하는등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긴 하다.[6] 많은 현으로 구성되어 기타와 비슷한 소리를 내는 악기이다. 스티비 원더의 harpejji 연주 : https://youtu.be/LQtEElCV2lY [7] 대중음악 역사, 특히 흑인 음악 사회에서의 스티비 원더의 위상은 우리나라로 치면 조용필, 나훈아에 필적할 수준이다.[8] 해외 여러 웹사이트에서 스티브 원더의 재산은 '''1억 1천만 달러(약 1306억 원)'''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설령 저 막대한 재산이 어찌해서 전부 날아간다고 해도, 그는 현재도 사랑받는 자신의 명곡들 대부분을 스스로 작곡했기 때문에 저작권 수익만 해도 상당할 것이다. https://www.celebritynetworth.com/richest-celebrities/singers/stevie-wonder-net-worth/. 애초에 세계시장에서 이 정도로 성공한 아티스트를 두고 "먹고 사는 것"을 논하는 건 의미가 전혀 없다. 원더가 엄청난 낭비벽이 있는 것도 아니고...[9] '''1963년 당시 이 곡의 1위로 빌보드 핫 100 1위를 달성한 최연소 가수가 되었다. 13세의 나이였다. 이 곡 역시 스티비의 다른 곡들처럼 모타운에서 낸 싱글이다. 마빈 게이가 드러머로 참여했다.[10] 스티비 원더식 Funk 음악의 시작.[11] Funk 곡인 Superstition과는 다른, 사랑 노래. 소울 음악과 팝 장르의 곡이다.[12] Funk 장르의 곡으로, 리처드 닉슨을 까는 노래.[13] 스티비 원더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노래. 장르는 Soul, Funk, Pop. 1999년 윌 스미스의 빌보드 핫 100 1위곡 "Wild Wild West"에 샘플링되기도 했다.[14] 1974년 사망한 전설적인 재즈 뮤지션 듀크 엘링턴에게 바치는 곡. 장르는 Funk, R&B, Pop.[15] 1982년 빌보드 핫 100 7주 연속 1위, 1982년 빌보드 연말 차트 4위. 이 곡의 대성공 이후 폴 매카트니는 듀엣곡에 중독되어(...) 마이클 잭슨과 두 개의 듀엣곡을 내놓게 되고 둘 다 빌보드 핫 100 1위에 오른다. 그 두 곡이 바로 "The Girl is Mine"과 Say Say Say.[16] 빌보드 핫 100 3주 연속 1위, 1984년 빌보드 연말 차트 25위[17] 1985년 11월 첫째 주 빌보드 핫 100 1주 1위, 1985년 빌보드 연말 차트 22위.[18] 1986년 빌보드 연말 차트 1위. 이 곡으로 스티비는 빌보드 핫 100 1위곡 10개 이상을 보유한 세 번째 아티스트가 되었다. 첫 번째는 비틀즈, 두 번째는 슈프림즈.[19] dj nagureo여성 보컬을 붙여서 리믹스한 적이 있다.[20] Funk 장르의 곡으로, 나중에 레드 핫 칠리 페퍼스가 커버하기도 했다.[21] 노래 제목에 "부기"나 "레게"가 들어갔지만 이 두 장르와는 관계가 없는 노래이다. 이 노래의 장르는 Funk이다.[22] 스티비 원더가 레게의 레전드 밥 말리에게 바치는 곡. 이 곡을 발매할 때만 해고 밥 말리가 살아있었지만 히트 후 밥 말리가 사망했다.[23] 트래비스 스캇의 곡에 하모니카 연주로 피처링[24] 실제로 '미숙아 망막증'은 지금도 출산 직후에 조기 발견하고 치료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