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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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사양
3. 설명
4. 매체에서의 K111
5. 파생형


1. 개요


한국군에서 1978년 도입이후로 지휘, 관용, 전투용으로 사용한 군용차. 1990년대 후반에 K-131이 도입되면서 무반동총 거치 등의 특수한 목적으로 생존한 차량을 제외하면 부대에서 볼 수 없는 퇴역차량이다.

2. 사양


제조사
아시아자동차
엔진
1,985cc 가솔린 4기통 수냉식 (마쓰다-기아 VA형)[1]
변속기
4단 수동변속기
전원
24V
최고속도
100km/h[2]
항속거리
340km
등판력
60°
길이
3,350mm

1,475mm
전고
1,705mm
무게
1,180kg
적재량
540kg
정원
4명

3. 설명


6.25 전쟁 이후 주한미군에 들여온 M151A1을 기반으로 아시아자동차가 생산한 4륜 구동 차량이다. 전체적인 외부 형태는 차고가 높고 후드가 동그란 M38A1의 사륜구동 모델과 비슷하다. 차량의 모티브가 모티브라 '지프차'로 불린다. 엔진 자체는 평범한 직렬 4기통 OHV 엔진으로 K-131에 비해 출력이나 연비는 낮지만, 토크를 중시하는 화물차나 버스 용도로 설계된 엔진이고 OHC 엔진에 비해 저회전 토크가 좋은 OHV 엔진의 특성과 가벼운 중량이 맞물려 험지 돌파력은 K-131보다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동에 키가 필요한 K-131과는 달리 K-111은 시동 손잡이를 돌려서 거는 방식이므로 키가 따로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차량이 운행을 나가야 할 때 급작스러운 방전이 우려되어 키를 사용하도록 시동 장치를 개조한 부대도 있다. 연식이 너무 오래된 차량이라 고장이 너무 잦아서 운전병들의 기피대상 1호. 오래된 차량이라 현재 운전병의 체격에 잘 맞지 않아 주로 키가 작거나 마른 운전병이 담당한다. 운행 중 문을 제거하기 때문에 코너길에서 잘못하면 차에서 떨어질 수 있다.[3] 비닐을 덮은 차라도 국도로 들어가서 70~80km/h로 주행하면 차량이 심하게 떨리고 바람이 들어온다.

ECU 같은 전자 부품이 전무하여 잔고장은 적지만 오래된 연식이 문제를 일으킨다. 모 부대는 잦은 고장을 호소하며 정비대를 졸라 정비창에서 폐차에 달린 엔진을 종합정비창에 보내 소모품을 교환하고 엔진블럭과 헤드를 새로 도색한 후 박스에 포장하여 보급된 엔진을 받았다.[4] 하지만 엔진을 교체한 K-111은 2주가 지나자 다시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화가 난 수송관이 차량을 완전히 분해하는 식으로 조사한 후 내린 결론은 연료탱크 내부에 녹이 슬어 연료필터와 연료라인을 막아서 발생한 시동 불량이다. 1개월을 기다려 신품 연료탱크와 연료라인을 새로 보급받아 교체하자 다음에는 디퍼런셜 기어가 문제를 일으키고 라디에이터가 터지는 문제가 일어났다고 한다.
이렇게라도 고칠 수 있는 것은 매우 드문 사례이고 장비도 못 구해서 방치되는 차량들이 더 많기 때문에 군수사 내 폐차장에 가서 동류전환을 할 수 있는 부품을 구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브레이크 부품은 재생이 불가능해서 브레이크 부품에 문제가 생기면 운행이 아예 불가능하다. 상급 부대에서 검열을 실시하는 날은 K-111의 존재를 들켜 질책을 받지 않기 위해 목적지 없는 운행을 내보내서 검열을 피하는 수송관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K-111을 운용하는 부대에게는 피하고 싶은 고물이나 106mm 무반동총이나 TOW의 운용에는 최적화된 차량이고 예산 문제도 있어서 별 수 없이 운용하는 중이다.
해마다 40조 이상의 국방 예산이 책정되는 한국에서 K-111같은 고물을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운용하는 상황이 다소 황당하지만 군대에는 고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신차를 출고하기 위해서 기존 차량들을 운용하기 위해 만든 교육체계, 정비공장, 부품창고 등 지원체계를 변경하는 데 드는 예산이 많기 때문에 계속 운용한다. 군용차 사업은 조가 넘어가는 예산을 요구하는 사업이라 국방부는 물론 국회에 진입하기도 어렵다. 기아자동차에서 후속 모델로 K-131을 출시하고, K-131의 후속으로 K-151을 출시한 후 제법 시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K-111을 버리지 못하고 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예산을 비롯한 여러 사정을 감안해도 작전에 투입된 K-111이 고장나면 운용하는 무기도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되는 치명타를 입기 때문에 K-111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하다.
K-111의 개발에는 특별한 비화가 존재한다. 해당 비화의 출처는 오원철이 1990년대 중반 한국경제신문에 연재한 것의 일부이고 전체 연재분은 후일 7권의 단행본으로 출판된다. 일반적인 회고록과 달리 기초 자료가 매우 충실하다.[5] 개발 비화는 라디오 드라마로 각색되어 2016년에 방송되기도 하였다. 여러 사람의 증언이 들어간 비화라서 후에 라인을 거꾸로 돌려서 분해하라는 재작업을 지시한 사람이 실제 인물에서 다른 사람이 되는 등 일부 각색되기도 한다. 대통령의 지시라면 무엇이든 막무가내로 밀어붙여서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되던 시절의 비화.
1981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하자 이란에서 대규모로 수입해가기도 하였다. 전쟁 막바지인 1988년까지 아세아자동차(주)에서 이란에 수출한 물량이 무려 14,000여대 가량이다.
록스타는 K-111을 기초로 만들어진 모델이다. 내외부에 플라스틱 부품이 들어가고 앞으로 접을 수 있던 전면 유리창이 고정되었다.[6] 또한 휠과 타이어가 일반 SUV용 초광폭으로, 엔진이 봉고에 들어가는 마그마 디젤로 변경되어 기어비가 달라진 것 외에는 다른 부분이 없다. 원본인 K-111도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민간에 불하되어 번호판을 장착한 차량이 존재한다. 이렇게 민간에 불하된 K-111은 군이 사용하던 차량이 아닌 전투경찰에 보급된 차량이 치장물자로 보관되어 있다가 민간에 불하된 차량이고,[7] 군에서 사용한 K-111의 경우 민간에 불하하지 않고 곧바로 폐차한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시설이나 안보공원에는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전시되었다. 특히 거제 포로수용소에 전시된 K-111은 관람객들이 앉을 수 있도록 오픈탑으로 전시되었다.

4. 매체에서의 K111


현역으로 활동한 시기가 민주화 운동이 벌어진 시기와 맞물리기 때문에 5공 무렵이나 민주화 운동을 주제로 한 드라마나 영화에서 필수적으로 등장한다. 제5공화국화려한 휴가는 전반적인 포커스가 시민군을 향하기 때문에 시민군이 K-111을 노획하여 운용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화려한 휴가의 후반에 주인공을 K-111에 태우고 계엄군에 맞서 싸우자고 방송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는 당시 고등학교 교사인 박영순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된 장면이다.
역시나 1987에서도 잠시 등장. 동아일보가 군인들에게 급습을 당하자 사장이 고문치사를 보도한 기자에게 "군인들에게 걸리면 너 맞아죽어!" 라며 전화로 빨리 잠적하라고 주의를 주는 장면에서 공중전화에 있는 기자의 눈앞에 K111이 지나간다. 무관하게 지나가던 차량으로 보이지만, 직후 기자는 식겁하고 도망가는 장면이 나온다.

5. 파생형


K-111
기본형
K-112
TOW 대전차미사일 탄약차
K-113
TOW 대전차미사일 발사차
K-114
화물 수송차
K-115
구급차
K-116
106mm 무반동총 탑재차
K-117
서치라이트차
파생형 출처는 기아자동차 사이트

[1] T-2000에 장착되었고 타이탄에도 장착된 엔진이다. 일본에서는 AEVA라는 25인승 미니버스에도 사용된 적이 있었다. K-111에 장착된 엔진은 국산화시킨 엔진을 별도로 군용화한 장비이다.[2] 실질적인 최고속도는 140km/h.[3] K-111의 조상인 윌리스 MB는 잇단 사고로 미군 장성들 상당수가 사망하게 만들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차량 사고로 사망한 월튼 워커.[4] 군용차의 엔진을 교체하면 곧 폐차될 차량도 무조건 수명이 1년 가량 늘어난다. 그만큼 잘 보급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엔진 교환은 항상 신중하게 한다.[5] 연재 도중 신문으로 보내진 자료가 매우 민감한 부분이라서 신문사와 오원철이 갈등한 일화도 있다.[6] 경첩은 그대로 있어서 접을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하드탑과 도어 연결부 몰딩이 복구되지 않는다.[7] 전후면 범퍼에 새긴 부대 번호는 재도색으로 지우고 불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