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67 히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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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式重爆撃機 キ67 飛龍
Mitsubishi Ki-67 Type 4 Heavy Bomber Hiryu 'Peggy'
1. 제원
2. 개요
3. 개발
4. 운용
5. 바리에이션
6. 여담


1. 제원


승원 : 6~8명
전폭 : 22.5 m
전장 : 18.7 m
전고 : 5.6 m
주익면적 : 65.0 m²
엔진 : 하 104[1] 공랭 복렬 18기통 성형엔진 1,800hp 2기
전비중량 : 13,765 kg
자체중량 : 8,649 kg
최대속도 : 537km/h, 마하 0.44 (고도 6,090m)
순항속도 : 400km/h, 마하 0.33
상승시간 : 6,000m까지 14분 30초
상승실용한도 : 9,470m
항속거리 : 3,800 km
무장 : Ho-5 2식 20 mm 기관포 1문(동체 하단)
Ho-103 1식 13 mm 기관포 4문(기수, 동체 좌우, 후방)
폭장 : 50kg 폭탄 15개、250kg 폭탄 3개, 500kg 폭탄 1개, 800kg 폭탄 1개, 어뢰 1발

2. 개요


제2차 세계대전후기의 일본 육군이 채용한 쌍발 폭격기로 정식 명칭은 4식 중폭격기 히류.[2] 쌍발 폭격기로서는 마지막으로 별칭이 붙은 작품이다. 연합국 코드명은 페기.
일본군이 최후로 개발, 양산한 쌍발 폭격기로 당대 일본 항공기 개발 기술의 모든 것이 들어간 최후의 명작. 시제 1호기는 1942년 12월 27일에 처녀비행을 마쳤다.[3]

3. 개발


97식 중폭격기 이후 일본군의 중폭격기 운용 방침으로 인해 이것도 중폭격기로 명명되었지만, 일본군 기체 아니랄까봐 폭장량은 터무니없이 낮다.[4] 하지만 이 녀석은 그것을 메꾸고도 남는 비행성능을 보유하고 있어 실전에서 뛰어난 활약을 했었다. 특히 운동성능이 좋아 비폭장 상태에서 '''횡전과 루프가 가능했다'''.[5] 기체도 그 운동성에 상응하는 강도를 가지고 있었고 덕분에 방탄성능이 좋았으며[6] 급강하 폭격을 위해 속도계가 장착되어 600km/h이상의 속도를 내도 거뜬했다.
육군성에서 이 기체 개발에 항속거리 3,000km이상의 조건을 내걸었다.[7] 이 요구사항에 대해 설계진 측은 전작인 1식 육상공격기의 설계 경험을 살려 항속거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마침내 초과 달성을 이루어 3,800km의 항속거리를 끌어낸다. 이는 1식 육공에 비해 떨어지지만, 여태껏 육군 중폭격기의 항속거리는 2,000km 이내였기 때문에 장족의 발전을 이루어냈다. 이 때문에 해군의 1식 육상공격기의 진정한 후계자라고 불린다.

4. 운용


육군에서 4식 전투기 Ki-84 하야테와 함께 '''대동아결전기'''로 기대되면서 중점 생산기로 지정되었다. 비행 성능이 워낙 좋다보니 1944년 1월, 육군에서 뇌격 가능을 요구하면서 시제 2기가 요코스카 해군항공대와 합동하에 어뢰 테스트를 시행하여 통과되었다. 이로서 161호기 이후로는 어뢰장착을 표준으로 채택하였으며 육군기임에도 불구하고 뇌격이 가능했다.
뇌격대의 훈련은 도요바시 해군항공대와 하마마쓰 육군비행학교에서 실시되었다. 1944년 10월 대만 항공전이 사실상 4식 중폭격기의 데뷔 현장이었고 레이테 전투, 큐슈 연안 항공전, 기쿠스이 작전 등에는 해군 지휘하에 편성된 육군 뇌격대인 제7전대, 제98전대 등을 주력으로 구성되어 어뢰를 가지고 미군에게 뇌격을 가하였지만 전과는 불확실하다.
그리고 해군에서는 해군 지휘하에 있던 육군 뇌격대와 소속된 4식 중폭격기를 '''야스쿠니 부대'''라고 불렀다. 이는 당연히 해군이 비공식적으로 부른 것이었지 육군 정식명칭이 아니었다.

5. 바리에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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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i-109 : 기체를 경량화하여 기수에 88식 75mm 대공포를 기반으로 한 'Ho-501'을 장비한 특수 방공전투기.
  • Ku-7 예항기 : 화포를 탑재가능한 대형 글라이더 Ku-7을 예인하기 위한 개조기.
  • 전자기기 탑재형 : 야간뇌격때 초저공비행을 위해 타키-12, 타키-13 전파 고도계를 장비한 기체.
  • 공중탐조기 : 일종의 재래식 조기경보기로 Ki-109와 함께 운용하는 탐지기 동체에 탐조등을 탑재.
  • 장거리폭격형 : 사이판B-29기지를 폭격하기 위한 장거리기, 주익을 연장하고 경량화를 위해 동체 양측면의 포탑을 제거.
  • Ki-167 桜弾(오탄) 특공기 : 필리핀전에서 해군의 특공전과에 똥줄이 탄 육군에서도 질수업뜸을 외치며 특공을 편성하기로 하여 개발되었는데 그 하나가 일명 토(ト)호기라는 기이며 800kg 폭탄 2발을 내장한 기체이다. 기수, 후방 총좌를 금속으로 메운 뒤 승무원 수를 2~3명으로 줄였다. 기폭용으로 기수에서 신관이 연장되었다. 이 기체를 장비한 특공대는 부악(후가쿠, 富嶽)대로 불려 실전 투입되었지만 전과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리고 기존의 토호기의 후계인 Ki-167 오탄의 경우 본기 전용의 지름 1.6m, 무게 3t의 대함용 성형작약 폭탄을 장비하려 했지만 너무 커서 안 들어가다보니 기체 상부를 늘리는 개조를 거쳐 수납해야 했다. 거기다 대형폭탄이라 중량 경감 때문에 기총좌를 모두 떼어내고 연료도 편도분으로 줄여서야 비로소 운용할 수 있었지만 그런데도 무거웠다. 거기다 성과도 거의 없이 손실만 지속되다 보니 육군성 내에서도 '이걸로 특공해야 되냐'는 지적이 빗발칠 정도였지만... 이렇게 어찌어찌 완성된 Ki-167의 경우 비행 제62전대에 배치되어 오키나와 전투에 첫 투입되었고 1945년 4월 17일 데뷔하나 실종. 그 뒤 여러 기가 출격했지만 이것도 전과가 불분명하다.

6. 여담


전후 본기를 개발한 오자와 큐노조(小沢久之丞) 기사는 아이치 현 메이죠 대학 이공 교수로 취임한 뒤, 신칸센 개발에 관여했다. 신칸센의 초기 차량이었던 신칸센 0계 전동차의 디자인은 본기와 해군의 P1Y 은하의 디자인을 함께 접목시켰다는 설이 있다.
전후 현존 기체는 한 기도 없으나, 루프 안테나의 커버와 폭탄창의 문짝을 치쿠젠 쵸의 다치아라이 평화기념관이 소장, 전시하고 있다.
참고로 일본군 해군은 이보다 더 뛰어난 성능의 중(重)폭격기인 G8N 렌잔을 개발했다(...). 다만 그마저도 생산량이 안습. 추축국끼리 비교 할 경우 이탈리아의 피아지오 P.108만 와도 제대로 된 중(重)폭격기고 렌잔보다는 더 만들었다.'''(이건 이탈리아가 빨리 항복한 탓에 생산이 중단되었다.)''' 또한 폭격기와 인연이 별로 없는 독일의 경우 엔진 트러블이 넘쳤던 He 177이 있는데 그나마 1,000대 이상 생산되었고 추축국 폭격기중 가장 멀쩡하게 운용된 듯한 기분이 든다.


[1] 육군과 해군 통합명칭 하 42. 일본 사상 최초의 18기통 엔진이며 카세이(火星)엔진을 14기통에서 18기통으로 확장한 것.[2] 해군의 항공모함 히류가 있으나 다르다.[3] 그러나 개발 덕분에 실제 채용은 1944년으로 늦추어졌다. 그래서 4식 중폭격기라는 명칭이 붙었다.[4] 비교를 하자면 같은 추축국의 중(中)폭격기인 Ju 88만 해도 초기형이 최소 1.4톤, 후기형쯤 가면 외부 파일런폭장까지 하면 '''3톤'''이다. 한편 미국의 B-25가 폭장이 적다고 해도 3000파운드(약 1,360kg) 폭장이 가능하다.[5] 주의할 것은 이게 결코 칭찬거리가 아니라는 것. 우수한 운동성은 다른국가의 경폭격기(쌍발 기체들)들도 가지고 있는 특성이고 그쪽이 폭장량도 우세하다. 급강하 폭격까지 한다. 중폭격기로 분류되는 체급에서 요구되는 성능은 부족하고 경폭격기에 요구되는 성능이 높아서야... 경전차급인 치하를 중형전차로 사용한 것처럼 경폭격기급인 기체를 중폭격기로 사용하는 셈이다.[6] 이는 어디까지나 일본군내에서 이 폭격기의 방어력이 좋은 편이라는 소리다.(렌잔,신잔등의 4발 폭격기에 비해 밀린다.)물론 딴 국가의 왠만한 쌍발 폭격기 이상의 방어력을 발휘하기는 했다.[7] 이에 대하여는 이견이 존재한다. 당초 회사 측에서 제시한 조건 중 항속거리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정도로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진실은 저 너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