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84 하야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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陸軍 四式戦闘機 キ84 疾風
Japanese Army Type 4 Fighter Nakajima Ki-84 Hayate 'Frank'
1. 개요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의 일본 육군 항공대 전투기이다.
이름의 '하야테'는 질풍(疾風)이란 뜻으로 개발을 앞두고 당시 일본 신문에서 신형 전투기의 이름을 응모하는 코너에서 일본 국민들에게 최다 득표되어 명명되었다는 여담이 있다. 공식명칭은 '육군 4식 전투기 하야테', 연합국 코드명은 프랭크(Frank)이다.
2. 스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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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발
이전 나카지마 비행기에서 제조하던 두 종류의 단좌 전투기인 Ki-43 하야부사와 Ki-44 쇼키에서 생각했던 투톱 체계에서 교훈을 얻은 육군과 나카지마 사는 앞으로는 더 뛰어난 전투기가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도 경쟁사 가와사키 중공업에서 개발된 Ki-61 히엔이 제식전투기로 채택되자 이에 뒤지지 않기 위해 신형전투기 개발사업에 착수한 쪽에 가까우며, Ki-43의 기동성과 Ki-44의 속도, 화력을 겸비하는 전투기를 목표로 하였다.
우선 나카지마 사는 이전까지 다소 부실했던 일본군 전투기의 파일럿 방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방의 창을 방탄유리로 제작하고 동체 부분에는 13mm의 방탄 강판을 부착함과 함께 모든 연료탱크에 누설방지 고무를 붙였다. 그리고 하야부사에서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받던 화력강화를 위해 무장은 기수에 12.7mm 기관총 2정, 주익에 20mm 기관포 2문을 장비시켰다.
사실 그동안 이런 개수가 어려웠던 것은 일본이 고성능 전투기에 사용될 고출력 대형 엔진을 확보하지 못했던 까닭이 컸었다. 때마침 나카지마 사에서 1942년 1,800마력급 호마레 Ha-45를 개발하면서 드디어 그 숙원을 이룰 수 있었다.
Ha-45 엔진을 Ki-84 하야테 시제기에 탑재하여 테스트한 결과 640km에 34,350ft 피트까지[2] 상승이 가능한 것이 확인되면서 조종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게 되었고, 원형기의 제원에 만족한 일본 육군은 매우 만족하며 생산에 돌입한다. 시제기엔 1800마력급 엔진을 탑재했으나 양산기에는 그 개량형인 2000마력급 Ha-45를 탑재하였다.
태평양 전선에 투입된 하야테를 처음 본 미군 조종사들은 Ki-43 하야부사로 착각하여 깔보고 있다가 뒷통수를 제대로 맞았고[3] 이 항공기의 식별 요령을 확립한 대령 프랭크 맥코이의 이름을 따서 'Frank'라는 식별명을 부여하고 경계할 것을 지시했다.
4. 성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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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에서 테스트 받고있는 하야테
'''기존의 일본군 항공기들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압도적인 성능을 보유했다.''' 기존의 일본군 전술기들이 공업력의 한계로 인해 1000마력급의 엔진을 탑재한 것과 비해 Ki-84 하야테는 시제기에서 1800마력, 양산기에서 2000마력짜리 엔진을 탑재했다. A6M 등은 엔진이 빈약해 조종사 보호에 필수적인 장갑판도 타 국가 군대에 비해 얇았고, 항공기 전체도 빈약하게 제작되었다. 또한 기체가 부실하다 보니 무장과 탑재 탄약량도 7.7mm 기관총으로 빈약했다. 반면에 이 기체는 여유로운 마력을 살려 기체도 한결 튼튼하게 제작했고 조종사용 방어구도 장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장도 20mm 기관포를 2정 달 정도로 강력해졌고 무엇보다 해군 항공기가 아닌 육군 항공기란 점 때문에 항속거리가 1순위가 아니어 A6M과 같이 날개에까지 연료를 장착하다가 라이터가 되어버리는 숙명은 피할 수 있었다. 워낙 A6M 제로센보다 튼튼했기 때문에 피격 후 생존 및 귀환률도 높았다. 그럼에도 하야테의 항속거리는 유럽전선 전투기들의 수배는 달했다.
4.1. 화력
하야테의 실전투입년도인 1944년을 기준으로 Ki-84 갑형의 무장은 12.7mm 기관총 2정과 20mm 기관포 2문이라는 무장은 전체적으로 평균적인 수준이었다. 물론 장착했던 Ho-5 기관포의 내구력 문제로 인하여 발사시 포에 부담을 덜주는 약장탄을 사용해야 했으나 실전에서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 Ki-84 을형의 경우엔 기수에 장착된 12.7mm를 20mm로 변경해 20mm기관포 4문을 장착하는 등 상당한 화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는 내구성이 뛰어나다는 헬켓이라도 몆 발 정도만 공격당해도 무사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4.2. 방어력
전면 캐노피는 65mm 방탄유리를 장착하고, 파일럿의 뒤에는 12mm의 방탄판을 장착해 안전을 확보했을 뿐 아니라 해군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Access hole 역시 가급적 최소화 해 기골 면에서도 기준치 이상의 강도를 갖추었다. 또한 자동방루 탱크에다 소화기까지 장착하였다. 이는 시덴과 더불어 일본군의 단좌전투기 중에서는 최상위급이고 서구권에서 봐도 충실한 방호성능이었다.
4.3. 속도
(Ki-84테스트 데이터(PDF))
일본 제국이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테스트를 했을 때는 옥탄가 92 기준 6000m에서 624~660kph를 기록했는데, 전후 미국에서 옥탄가와 고도를 동일하게 맞춰서 시험했을 때는 687kph가 나왔다. 해당 기체는 1944년 12월 생산된 기체가 필리핀 전선에서 온전하게 노획되어 펜실베이니아로 옮겨진 것으로 1946년 4월부터 2달에 걸쳐 항공병참부에 의한 비행 테스트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소모품인 윤활유와 베어링, 점화플러그 등 소모품만 바꾼 것이다.
미국산으로 바꾸어서 원본보다 성능이 더 나왔다는 반론도 있으나 실상은 미국산이 아니라 격추된 하야테에서 멀쩡한 부품만 골라내어 교체한 것이기에 의미가 없다. 애시당초 적기 성능 테스트는 적기의 성능을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정확한 대응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과대평가가 오히려 손해이다. 또한 옥탄가가 기준치보다 높다고 해서 엔진성능이 향상되는 것도 아닌 게 옥탄가 자체가 노킹, 즉 조기발화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므로 기준보다 더 높다고 해서 마력이 더 좋아지는 게 아니다. 그리고 일본 측 테스트 성능이 미군보다 낮은 건 일본은 슈퍼차져로 발휘한 최대마력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공칭마력, 즉 순수하게 엔진으로 낸 마력을 기준으로 삼아 테스트 했기 때문에 낮게 나오는 게 당연한 것이다.
미 공군이 테스트한 하야테는 전비중량 3,601kg을 충족한 상태에서 해수면 속도 363mph, 20000ft에서 427mph를 기록했는데 이를 다른 공랭식 기체와 비교해보면 해수면 속도 365mph, 20000ft에서 최고속도 431mph를 기록한 F4U-1 후기형과 맞먹는 수준이며 Fw 190 A계열과 비교할 경우 가장 빠른 A-9 보다도 모든 고도에서 더 빨랐다.
다만, 영미 기체 후기형과 비교하였을 때는 열세인 것이 본문에서 언급된 P-51 머스탱과 비교할 경우 해수면에서 388mph, 최고 속도 444mph의 머스탱보다 모든 고도에서 더 느렸으며[4] 심지어 1945년 일본 본토 근처에서 활동했던 기체는 1944년 유럽전선의 104/150 옥탄유로 매니폴드압 75"hg을 찍는 기체보다 더 빠른 115/145 옥탄유의 80"hg 기체였다. 게다가 공랭식 엔진기체만으로 한정한다고 해도 1944년 말에 등장한 미 해군/해병 항공대의 F4U-4가 100/130 옥탄유의 60"hg 나 115/145 옥탄유의 70"hg 매니폴드압으로 기록한 해수면 속도 383mph~389mph, 최고 속도 455~463mph에 비하면 많이 느렸다.
4.4. 기동성
미군의 보고서에 따르면 롤 등의 선회력은 A6M 52형보다 약간 열세한 수준으로 훌륭하며 기본적으로 보조익과 러더가 가벼웠지만 승강타가 기존 일본군 전투기에 비해 무거운 편이라, 당시 중일전쟁과 개전 초 태평양 전선에 참가해 에너지 파이팅이 아닌 제로센과 하야부사의 월등한 기동성을 이용한 선회전에 숙달된 일본군 파일럿들로부터 "유사시 적의 총알을 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스틱을) 눌러도 당겨도 끄떡 않는 전투기"라고 불평을 받기도 했다고 했다. 물론 이 기체는 선회전 따위가 아니라 에너지 파이팅 용이라는 걸 아는 파일럿들은 잘만 탔다. 애초에 A6M 등으로 선회전을 하던 것도 워낙에 기골 강도가 쓰레기라 에너지 파이팅을 하기 힘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5. 실전
일단 하야테에 도입한 Ha-45 엔진은 그 출력에 비해 크기가 꽤 작았고[5] 특히 엔진 배기량은 35L였는데, 라이트 R-3350 엔진(54.86L)보다 작아서 전투기에 채용된 프랫&휘트니 R-2800엔진이 46L라는 걸 생각하면 설계가 극단적이고 여유가 없으며 좋은 금속재료와 고도의 가공기술, 고품질의 연료, 기존 엔진보다 좀 더 짫은 오버홀 주기와 정비체계를 요구했다.[6]
정확히는 저 정도 정비 난이도는 숙명이나 마찬가지이고, '''유럽 최일선 고성능기들도 마찬가지였다'''.[7] 문제는 평시에도 저걸 감당할 수 있을까 싶은데, 상황이 악화되어가는 44년의 일본군이 저걸 감당한다는 것부터가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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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김포 육군항공대 비행장에서 폐기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제85 비행전대 소속의 하야테이다. 제22 비행전대 소속 하야부사도 보인다.)
고출력 엔진의 숙명이라 할 수 있는 '엔진의 토크' 현상 때문에 비전투손실로 기록된 기체도 많았으며 그 덕분에 전투 중에 사망한 조종사만큼 이착륙 도중에 사망한 조종사들도 꽤나 됐을 정도이다.[8]
여기에 빠른 속도로 비행할 수 있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기체의 특성상 저속 격투전보다는 고속 기동을 장기로 하도록 개발되어 속도가 붙으면 묵직해지는 바람에 근접 격투전에 익숙한 일본군 조종사들[9] 에게는 조종이 어려웠다고 한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480km/h를 넘게 되면 에일러론 작동이 어려웠다고 한다. 유압장치(!!)까지 있을 정도였으나 대부분은 생산과정에서 누락되는 일이 흔했고 그 결과 저질의 롤 성능을 가진 하야테가 대다수를 차지하여 정상적인 하야테의 이름마저 먹칠을 하게 된다.[10]
한 일본군 조종사는 이런 말을 하기까지 했다.
오죽하면 당시 정비병들 수기에는 보급받은 조악한 수준의 '''하야테들'''을 분해해서 그나마 멀쩡한 하야테를 만들거나 정비 하는게 일상이라는 언급도 있다.1945년에 생산된 하야테의 조종석에는 절대 타지마라. 최근에 생산된 녀석들일수록 불량품이 더 많아서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시한폭탄같은 것들이다. 차라리 1944년에 생산된 초기형이 더 믿을만하다.
전쟁 후반으로 갈수록 신뢰성은 안습의 끝을 달리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생산성만큼은 하야부사보다도 우월하여 하야부사가 1기 제조에 1만 인시(man hour) 이상의 제조시간이 필요했던 반면에 하야테는 4천 인시만으로 1기를 제조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45년이 되면서 본격화된 일본 본토 공습 이후로 생산이 중단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일본 제국은 핵폭탄 맞기 직전까지 지하공장에서 하야테를 생산했는데 금속재료가 부족한 시점에서 만들어진 것이 'Ki-106', 바로 '''목재'''로 만들어진 하야테였다.[11][12] 그러나 이 Ki-106은 투입되기 전에 일본 제국이 원자폭탄 투하, 항복하면서 종전을 맞이하게 된다. Ki-117이라는 슈퍼차처 장착 개량형도 있었다. 종종 한국군에 하야테가 있었다는 설명이 있지만 오독으로 보인다. 해방 후 김포 공항에 버려진 일본 항공기가 꽤 많았지만 비행할 수 있을 정도로 멀쩡한 것은 미 군정에서 챙겨가서 폐기해 버렸다. 때문에 한국 공군이 주워서 운용한 일본 군용기는 복엽기인 Ki-9 훈련기 1대가 고작이었다. 공군이 공식 기록으로 남기진 않았음에도 전쟁 중에 Ki-9를 운용한 사진 기록은 도처에서 발견되지만 하야테를 비롯한 다른 일본 제국 항공기는 한 대도 없다.
미 군정이 이렇게 일본 항공기를 다 폐기해버린 이유는 당시 조선항공협회의 실책 때문이다. 일본군 항공기를 인수하는 사업을 추진하던 협회 조종사 중에 비행 전 사전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포고령을 무시하고 대구 비행장에서 비행하는 등 미군을 무시하는 일이 꽤 있었다.[13] 이에 격노한 미 군정이 일본 항공기를 모조리 폐기해서 그릇업자들에게 재료로 넘겨버렸다. 한국전 참전 원로 파일럿분의 증언에 따르면 이때 간신히 프로펠러 한개를 회수해 벽에 걸어두면서 두눈 뜨고 멀쩡한 비행기들을 잃은 한을 달래야했다고...[14]
사실 아무 이유없이 전국에 비행 금지령을 내린 미 군정이 이상한 것이긴 하다. 당시 한국인 조종사들이 날린 비행기는 일본군 비행기가 아니라 개인들이 소유한 연습용 비행기들이었는데, 이 사유재산들을 아무런 법적 절차 없이 군인들이 몰려와 파괴해버렸다. 비행을 한 비행기 뿐 아니라 민간비행기들을 모두 파괴해버렸다.
반면 북한은 아무런 제약 없이 자국 비행장에 주둔했던 일본 제국 항공기들을 일부 노획하였고, 그중 평양에서 대거 노획된 Ki-43 같은 경우에는 수리하고 아예 도색까지 조선인민군 공군 도색으로 칠한 다음 사용했다. 단 수리했는데 비행에 실패했다는 말도 있는 등 노획한 일본기들을 북한이 제대로 운용했는지는 논란이 있다.
6. 평가
객관적으로 동시대 유럽 전선의 고성능 기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우수한 기체지만 개발, 운용한 국가의 공업 능력의 부족과 절망적인 환경으로 인하여 제 성능을 살리지 못해 평가가 떨어지게 된 비운의 항공기이다.
7. 대중매체의 하야테
- 스트라이커즈 1945 II에서 등장하는데, 거의 사기성 보조샷과 차지샷으로 인기가 높았다.
- 네이비필드에서 등장한다. 일본의 4차 전투기/6차 정찰기로 나오고 있는데, 육군기가 함재기로 나오는 게 참 기묘하다.
- 워 썬더에서 일본 육군 전투기 트리에서 4티어 전투기로 등장한다. 시덴카이와 함께 일본 4티어를 책임진다.
- 히어로즈 인 더 스카이 에서 닉값 그대로 일본 육군트리 84레벨 기체로 등장한다. 기체성능은 같은 84레벨 추축군 전투기보다는 조금 떨어지는 편이기에 공방에선 아무도 안탄다. 애초에 이놈이 업데이트 될때쯤에 이미 his는 프리미엄 기체들이 공방을 도배하고 있었기에 정규트리 기체들 자체가 일부 성능좋은 폭격기들 제외하면 씨가 말라있었다.
- 월드 오브 워플레인에서 2차 전투기 트리의 7티어 전투기로 등장한다.
- 함대 컬렉션에서 2017년 가을 이벤트 "첩호결전! 요격, 레이테 만 해전(전편)" E-3 클리어 보상으로 풀렸다.
- 이 세상의 한 구석에에서는 주인공네 집 근처에서 F4U와 교전을 벌인다. 이때 해군 공창에서 근무하는 할아버지가 제국 기술력의 결정체인 2000마력 엔진을 탑재했으니 걱정말라하는데 손녀가 그럼 미군기는 몇마력이냐 묻자 아무 말도 못한다(...).[15]
- 모바일 전투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인 Gunship Sequel WW2에 일본 육군항공대 전투기로 등장한다.
일본 육군항공대 3티어 전투기 Ki-84 하야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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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육군항공대 프리미엄 전투기 Ki-84 하야테
8. 기타
미군이 노획한 하야테 한 대가 각종 테스트를 거친 이후 여러 경로를 거쳐서 일본에 반환되었다. 이 기체는 비행이 가능한 상태였고 일본의 교토 박물관에 전시되있었으며 1973년에 국제항공우주행사에서 잠깐 비행하기도 했다.[16] 그러나 이후 야외 전시중 부품을 도둑맞으면서 더 이상 비행할 수 없게 되었고 지금은 치란특공평화회관(知覧特攻平和会館)에 전시되어 있다. 이 기체는 현재 남아있는 유일한 Ki-84 하야테이다.[17]
[1] 미군에서 테스트한 결과이다.[2] 참고로 영국, 미국, 독일 군용기들은 4만피트 근처까지 상승이 가능한 기종도 있었다. 공랭식 기체에 한정한다고 하더라도 Fw190A 계열이 37,000ft 전후의 상승한도를 가지고 있었으니 공랭식 기체들 사이에서도 상승한도는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양산기에 탑재된 Ha-45는 38,880ft까지 상승이 가능하였다.[3] 미군 파일럿들이 하야부사인 줄 알고 섣불리 헤드온을 걸었다가 하야테에서 발사된 수많은 예광탄 궤적들을 보고 기겁했다는 일화가 있다.[4] 그러나 머스탱 D형은 1500마력을 탑재하였으므로 가감속을 비롯한 기동성에선 열세였다.[5] 전면 투영면적은 작지만 출력이 부족한 사카에 발동기에서 실린더를 네 개 추가해 18기통으로 만든 것이다. 당시 일본의 공업기술력을 생각하면 2000마력급 엔진을 생산하는 것이나, 관리하는 것이나 엄청난 일이었다. 그것뿐이라면 다행이겠지만 2000마력대의 출력을 실린더 용량 35리터짜리 엔진에서 발휘하게 하기 위해서 아직 생산과정에서 검증받지 않은 새로운 기술을 대거 투입했다'라는 견해가 있는데 이는 사실 어폐가 있는 견해이다. Ha-45 엔진에서 볼 수 있는 기술은 커넥팅 로드의 베어링을 켈밋합금(구리와 납과 니켈과 은을 섞은 금속으로서 버틸 수 있는 하중이 높고 열전도율이 낮은 금속)으로 만든 점과 개발과정에서 엔진 실린더 뭉치 사이에 있는 냉각핀을 오리발식 주조라고하여 각각의 냉각핀들의 모양을 일정한 패턴으로 바꾸어 냉각효율을 크게 높이는 것의 단 두가지였다. 검증받지 않은 기술을 대거 투입할 만큼 기술자들은 멍청하지 않다. 오리발식 주조방식은 호마레 엔진이 양산궤도에 오르면서 평범한 주조방식의 냉각핀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니까 호마레는 콘로드의 베어링을 켈밋합금으로 만든 것이 전부이다. 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더블와스프가 엔진 개발 당시에 마그네슘 합금으로 실린더를 제작하려 했던 것을 보면 이것만 가지고 검증되지 않은 신기술을 남용하려 했다 말하기는 힘들다.[6] 배기량이 줄면 크기가 작아져 동체를 작게 설계할수 있으나 예나 지금이나 엔진은 배기량 대비 출력이 높아질수록 엔진블록이나 엔진 크랭크축, 피스톤계열, 흡배기 밸브 등에 비례해서 부하가 들어간다(자동차 튜닝을 할 때 하이캠 튜닝이나 과급기 튜닝을 하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단조 피스톤/컨로드로 교체하는 것). 그런데 호마레의 모체인 사카에만 해도 출력 증가폭이 좁은걸로 당대에서도 유명한 엔진인데 그 엔진에 4기통을 추가하고 2000마력까지 높혔으니 문제가 안 나올 수가 없다.[7] 고출력 엔진이 손이 더가는건 당연한 일이고, 정상적인 경우엔 아무도 그걸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8] 제1차 세계 대전의 좋은 항공기인 영국의 솝위드 카멜은 그 강력한 엔진의 출력을 제어하기가 힘들어서 '''독일군 조종사보다 연합군 조종사들을 더 많이 잡은 전투기'''라고도 불린다. Bf109와 슈퍼마린 스핏파이어 역시 엔진의 토크 때문에 조종사들을 몹시 괴롭혔다.[9] 이는 하야테 이전기종들의 주무장이 7.7mm인 영향이 컸다. 그나마 달린 12.7mm나 20 mm 또한 기술문제로 명중률이 형편없어서 근접전을 자주 벌였다.[10] Stick Force(또는 Stick Force per G)라는 개념이다. 비행기가 빠르게 날수록 공기저항에 의해 에일러론이나 엘리베이터를 작동시키기가 어려워지는데, 머스탱의 경우가 굉장히 무거운 스틱특성을 가졌고, 콜세어의 경우 과할 정도로 가장 가벼운 기체였다고 한다. 스틱이 무거워지면 고속 비행중 조종이 어려워지고 롤이나 상승/하강등 빠른 대처가 어려워지므로 격투전에서 불리함으로 작용한다.[11] 비슷한 시기 나치 독일도 물자가 부족해지자 목재 제트 전투기 He 162를 만들었다.[12] 사실 목재는 금속에 비하면 당연히 강도가 떨어지지만 화학처리를 하면 충분히 쓸만한 재료였기에 전투기 수요에 비해 금속 생산량이 부족했던 전쟁 초기 영국군이나 중반까지의 소련군이 목재 전투기를 많이 운용하였다. 영국의 경우는 목재 가공 기술이 우수한 회사가 있던 덕분도 있었다.[13] 대한민국공군 창설 멤버인 이근석 대령이 그 주인공으로, 조국의 하늘에서 맘대로 비행기를 못모는 것에 울컥하여 대뜸 구 일본군 쌍발기를 몰았다가 미군한테 걸렸다고 한다.[14] 이렇게 해방 후 일본군 장비를 소유할 수 있던 기회는 모두 미군에 의해서 무산됐다. 제주도에 있던 구, 신형 치하 전차 또한 마찬가지.[15] 대전말 콜세어의 엔진은 기본 출력만 2300마력에 최대 출력은 3000마력에 육박했다.[16] 1973年国際航空宇宙ショー 疾風の飛行, 4분 40초부터 하야테가 비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17] Japanese Aircraft Survivo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