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교태위겸시중판백제군사지절도독전무공등주군사행전주자사해동사면도통지휘병마제치등사백제왕식읍이천오백호
1. 개요
檢校太尉 兼 侍中 判百濟軍事 持節都督全武公等州軍事 行全州刺史 海東 四面都統 指揮兵馬制置等事 百濟王 食邑二千五百戶
검교태위 겸 시중 판백제군사 지절도독전무공등주군사 행전주자사 해동 사면도통 지휘병마제치등사 백제왕 식읍이천오백호
후백제의 왕 견훤이 925년 중국 후당의 장종에게 책봉 받은 관작들로 892년에 자칭한 신라서면도통지휘병마제치지절도독전무공등주군사행전주자사겸어사중승상주국한남군개국공식읍이천호의 '''47자''' 보다도 더 길다. '''총 52자'''다.
2. 해석
- 검교태위(檢校太尉): 검교는 명예직을 뜻한다. 즉 명예 태위. 태위는 삼공 직 중 하나.
- 겸(兼): (직위를 겸하다.)
- 시중(侍中): 당 중서성의 장관. 검교태위와 겸으로 묶여 있는 것을 보면 이 직위도 검교직으로 보인다.
- 판백제군사(判百濟軍事): 백제군을 통솔하는 장관. 판사는 특정 부서 혹 부대의 장관이란 뜻이다.
- 지절도독전무공등주군사(持節都督全武公等州軍事): 전주, 무주, 공주 등 주의 군사. 당의 사지절도독, 지절도독, 가절도독 중 지절도독.
- 행전주자사(行全州刺史): 전주자사 대행.
- 해동(海東): 당 동쪽의 모든 지역.
- 사면도통(四面都統): 해동 사방 즉 동쪽 천하를 관장한 도통.
- 지휘병마제치등사(指揮兵馬制置等事): 군대 및 모든 행정을 관리하는 제치사. 원래 당 관직은 제치사(制置使)인데 견훤은 자신의 권위를 강화할려고 제치등사(制置等事)로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
- 백제왕(百濟王): 백제국의 국왕.
- 식읍이천오백호(食邑二千五百戶): 하사받은 식읍이 2500 가구.
3. 특징
신라서면도통지휘병마제치지절도독전무공등주군사행전주자사겸어사중승상주국한남군개국공식읍이천호와 비교해보면 가장 특징적인 것으로 '''백제왕'''이 있다.
이전 관작은 신라의 신하였기 때문에 왕을 붙이는 것을 피하여[1] 신라의 공(公)이었으나 이젠 백제의 왕(王)이 되었다.
따라서 아직 후백제를 창건하기 전인 892년에는 신라의 지방호족에 불과하였지만 900년 후백제를 개국한 이후인 925년에는 어디에도 신라란 단어가 없으며 당당하게 백제란 한 나라의 왕이 되었다는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거기에 신라서면도통이었던 도통직이 해동사면도통으로 바다 건너 천하를 지배하는 도통이 되었으며 제치사도 일반적인 제치사가 아니라 제치등사가 되었다. 최고급 직위인 삼공 태위와 중서성 시중을 하사받아 넣었으며[2] 식읍도 이천 호에서 이천오백 호로 더 늘어나서 올라간 위상을 반영하여 관작의 격이 더 높아졌다.
이게 자칭이 아니고 오월에 조공하고 하사받은 관작이라는 해석도 존재한다. 긴 관직명은 하나로 이루어진것이 아닌 여러 관직의 나열들인데 모든 관작이 당나라의 관직들이다. 그러나 직명은 당의 것이 맞지만 담당, 관장한 범위는 전혀 당나라의 것이 아니다. 즉 견훤은 스스로 '해동 사면을 지배하는' 도통, '병마를 지휘하는' 제치등사 등 관작을 달라고 요구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