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독
1. 한국사의 도독
신라의 관직. 신라 조정에서 전국으로 파견되어 9주를 다스리는 지방관이다. 조선시대의 관찰사, 대한민국의 도지사+야전군사령관 정도에 대응한다.
상대(上代)에는 군주(軍主)였고, 실직주 군주 이사부나 신주 군주 김무력 등이 나타난다. 661년(문무왕 1년)에 총관(総官)으로 명칭을 바꾸었고, 785년(원성왕 1년)에 도독으로 명칭을 바꿨다. 단 원성왕 이전부터 도독 명칭이 나타나고 있어서 이미 문무왕 때 9주 장관은 도독이고, 총관은 임시직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원래 군주는 군권을 통솔하는 군사적 성격이 강했지만 삼국통일 이후 전쟁이 사라지면서 도독은 군사적 성격은 줄어들고 현대의 도지사처럼 단순한 행정 관리로 변화한다. 중앙에서 임명해 파견하는 임기제 공무원과 같았고 김헌창도 웅천주에서 반란을 일으켰지만 특별히 거기에 연고가 있는 건 아니었고 무진주 도독, 청주 도독, 웅천주 도독으로 돌아가며 부임하다가 웅천주 도독일 때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다가 신라 말 후삼국시대가 되면서 나라가 혼란스러워지자 그 당시 재임하고 있던 몇몇 지역의 도독들은 자신의 근무지에서 성주(城主), 장군이라 자칭하고 호족, 군벌화되기도 했다.[1]
2. 중국사의 도독
삼국시대(중국)에 설치된 관직. 본래 위문제 때 각 주(州)의 군사와 자사(刺史)의 관원을 통활하기 위해 설치한 관직으로 원래 시작은 군사령관이었지만 이후 지방 행정까지 다스리는 관직이 된다. 오나라에는 주유, 노숙, 여몽, 육손 등으로 이어지는 도독 라인이 유명하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서는 특정한 관명이 아니라 산관(散官)의 명칭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삼국지/관직의 무관 항목에서 찾아보길 바란다.
당나라 때 절도사를 만들면서 권한이 축소됐지만 명칭 자체는 청나라 초기까지 남는다. 중국 바깥 백제, 일본, 베트남 등 이민족의 국왕에게도 형식상의 도독 칭호를 내리기도 했다.
충무공 이순신이 명나라로부터 이 도독 벼슬을 받았다는 추측이 있어서 논란이 있다. 이 부분은 이순신/논란 문서에 자세히 나와 있다.
3. 베트남의 도독
현대 베트남군에서 해군 장성을 가리키는 단어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