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공선
1. 개요
일본 제국 시기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대가 코바야시 타키지가 1929년에 발표한 르포르타주 소설. 1926년에 발생한 노동자 혹사 사망사건인 하쿠아이마루 사건과 지치부마루 조난 사건[1] 을 모티브로 했으며 한문으론 해공선(蟹工船)이지만 우리나라에선 게공선이란 제목으로 발매되었다.[2] 2008년에는 한창 비정규직과 워킹푸어, 블랙기업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던 시대와 맞물려서 재조명 받으며 일본에서 상당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2. 줄거리
'''おい、地獄さ
行 ぐんだで!''''''이봐, 지옥으로 가는 거야!'''[3]
북오호츠크해 내의 캄차카 반도에서 게를 잡는 게공선 하코마루에 일본 각지에서 올라온 가난한 이들이 노동자로서 타고 항해를 시작한다. 게공선은 게를 잡아 통조림을 만들어 파는 선박으로 법률상으론 공장도 아니고 선박도 아니어서 공장노동법, 항해법[5] 어디에도 적용받지 않는 사각의 지대. 그곳에서 악덕 감독 아사카와는 게를 잡는 노동자들을 가혹하게 학대하여 금전적 이익을 얻는 것이 목적인 마귀같은 존재다.'''게잡이 공선은 '공선(공장선)'이고, '항선'이 아니다. 그러므로 항해법은 적용되지 않았다. 20년 동안이나 매어 놓은 채로 있어, 침몰시키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 비틀거리는 '매독 환자'와 같은 배가,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겉에만 화장을 짙게 칠하고 하코다테에 돌아왔다. 러일전쟁에서 '명예롭게도' 절름발이가 되어 물고기 창자처럼 방치된 병원선과 운송선이, 유령보다도 죽음이 임박해 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났다.(중략) 배의 모든 부분이 우지직 소리가 나면서 당장이라도 하나하나가 분해되어 풀려 버릴 것 같았다. 중풍 환자처럼 전신을 떨었다.'''
초반부에서 묘사되는 공선 하코마루의 모습[4]
노동자들 대부분이 무식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빈민들이라 자신들이 받는 대접이 핍박인지도 모르고 그저 국가를 위한다는 명분에 세뇌되어 무기력하게 움직인다. 더럽고 악취나는 공간에서 피를 빠는 이를 서로 잡아대며 낄낄대고 발도 제대로 뻗을 수 없는 좁은 공간에서 잠을 청하며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피운다 싶으면 어김없이 감독의 채찍질이 돌아온다. 노동자 중 한 명은 아사카와가 오물투성이에다가 좁아터진 변소 속에 몇 일간 가둬놓는데 변소문을 열자 졸도할 정도로 심각한 지경에 이른다.
점점 노동자들은 병들고 매맞아 가면서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고문의 강도도 심해진다. 말뚝에 매달아놓고 말발굽에 채이게 하거나 불에 달군 인두로 허리를 지지거나 도사견에 물려서 죽어나가는 일도 생긴다. 고작 담배 한 갑을 포상으로 놓고 삶과 죽음을 강요 당하지만 이에 감독이란 인간은 아랑곳 않고 일을 시키고 항해 도중 배가 난파되어 러시아령에 상륙했다가 그 곳에서 자유로운 러시아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고 '적화선전'을 접한 '말더듬이 어부'와 '학생'의 체험담을 계기로 게공선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에 의심을 품게 된다.
그러던 중 도쿄의 알선소에서 돈을 벌기 위해 핫코마루에 승선했던 27살 젊은 어부의 죽음[6] 을 계기로 노동자들의 분노가 일거에 폭발하고, '말더듬이 어부'와 '학생'을 중심으로 연대하여 태업과 파업을 주도하게 된다. 비록 이들의 동맹파업은 구축함에서 파견된 해병들에게 무력으로 제압되나, 조직화된 힘이야말로 자본가의 탄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임을 깨달은 노동자들이 다시 한 번 궐기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그리고 후기에서는 노동자들의 재궐기 이후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다룬다. 하코마루 노동자들의 두 번째 태업은 성공했고, 태업과 파업을 했던 배는 하코마루뿐만이 아니었다.[7] 또한 아사카와 총감독과 잡부장, 다른 감독들은 조업기간 중에 불상사(파업)를 일으키게 해서 어획량에 영향을 주었다는 이유로 위로금 한 푼 받지 못한 채 제대로 폭행당한 뒤 해고당하고 말았다.[8]
다만 만화 한정으로 잡부장은 유달리 소심한 사람이라 아사카와에게 제대로 따지지 못하고 속앓이를 했지만 이번 궐기를 계기로 용기를 얻어 아사카와에게 한 방 크게 먹인 뒤 노동자들과 합심하였으며 이후 노동자들을 돕기 시작한 걸로 보인다. 이후 노동자들의 생활이 한층 더 나아진 걸로 추정.
3. 등장인물
- 말더듬이: 주역 1. 만화에서는 미야구치란 이름을 사용한다. 더벅머리에 수염을 아무렇게나 기른 말더듬이 빈민 사내. 꽤 오래 근무한 듯 하다.
- 청년: 주역 2이자 화자. 만화에는 모리모토란 이름으로 등장하며, 시골에 가족들이 있다고 한다. 러시아로 가서 그나마 나은 노동자들의 생활에 놀란다.
- 학생: 주역 3. 만화 내 이름은 아키유키. 10대 중후반의 학생으로 안경을 쓰고 있다. 학비를 벌기 위해 게공선에 오지만 아서카와의 잔인한 인권 유린에 시달린다.
- 각기병 어부: 27세. 알선소 내에서 돈을 벌고자 온 젊은 어부. 제대로 식살 못해 각기병에 걸려 사망한다. 만화 내 이름은 야마다.
- 아사카와: 이 이야기의 빌런. 캄차카 반도 진영의 게공선 하코마루의 총감독으로 잔인하고 자기중심적이다.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피우거나 쓰러지면 무자비한 폭행을 가하고 일의 강도를 더욱 올리는 등 인권유린을 마구 자행한다.
게살 통조림 회사에 파업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온 감독이지만 잔인한 인권유린으로 인해 노동자들이 궐기하자 책임을 덮어쓰고 위자료 한 푼도 못받고 폭행당한 뒤 해고당한다.
4. 기타
러시아 노동자들의 자유로운 모습을 보고 감화된다는 점에서 사회주의가 유토피아인 것 마냥 묘사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논란이 많은데 애초에 작가가 사회주의자라서 그렇다. 게공선을 발간할 당시도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탄압이 거셌던 시기라 검열과 수차례의 발매금지를 당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후 작가는 게공선이 정식 발매된 지 4년도 채 안된 1933년, 경찰에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다 사망한다.
작중에 잠깐이지만 조선에 대한 언급도 나온다. 당연히 시대가 시대인지라 주인공 일행들보다 더 대우가 시궁창. 당시 게잡이 공선으로 대표되는 북양어업과 동시에 자행된 각지의 노동자 혹사 문제를 언급하는 부분에서 홋카이도 개척 노동자들의 현실을 말하는 부분 중에 짤막하게 언급된다.
작가가 친한인지 알려진 자료가 부족하나 프롤레타리아에 입문하게 된 원인이 후배 중 한 명이 조선인 차별금지를 주장하다가 정학당한 것을 계기로 마르크스 주의에 심취하여 제국주의를 비판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현재 일본 공산당이 우리나라를 대하는 태도를 비춰 미뤄볼 때 최소한 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학정에는 명백히 반대하는 입장이었다.[9]모두는 아침 해가 뜨기 전에 작업장으로 내보내졌다. 그리고 곡괭이 날이 번뜻번뜻 푸르스름하게 빛나고 주변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일해야 했다. 모두는 근처에 세워진 감옥에서 일하고 있는 죄수 쪽을 오히려 부러워했다. '''특히 조선인은 감독과 십장에게도, 같은 동료인 인부(일본인)에게도 '짓밟히는' 대우를 받고 있었다.'''
1953년과 2009년에 각각 영화화되기도 했다. 2009년작의 주연은 마츠다 류헤이. 단 2009년작의 경우 원작 왜곡 논란이 있었으며, 평가도 그다지 좋지는 않다.
[1] 하코다테에서 출항하여 조업하던 공선 지치부마루가 시린키 해협에서 조난당한 사건으로, 하쿠아이마루 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다. 작중에서 지치부마루라는 이름의 공선이 조난당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바로 이 사건을 기반으로 한 부분이다.[2] 이론과실천 출판사에서 간행된 코바야시 타키지 선집에서는 '게잡이 공선', 창비에서 출간된 번역본에서는 '게 가공선'으로 번역되었다.[3] 소설 첫 문장으로, 작품의 무대가 되는 공선 하코마루의 현실을 그대로 표현하는 문장이다. 덧붙여 이 문장은 홋카이도 방언으로, 작중에 등장하는 어부들 중 토호쿠 북부와 하코다테 출신들이 많은 편이다. 여기에 더해 작가인 타키지 자신도 4살 때 온 가족이 출생지인 아키타를 떠나 오타루로 이주해서 완전히 정착한 탓에 오타루가 실질적인 고향이나 다름없었고, 이 영향으로 작품에 홋카이도 방언이 많이 나오는 편이다. 중편 <방설림>과 이를 개작한 <부재지주>는 홋카이도 개척 시기를 배경으로 소작농들의 비참한 삶을 그리고 있다.[4] 중간에 러일전쟁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 것은 하코마루의 모델인 실제 하쿠아이마루가 러일전쟁까지 병원선 및 환자 수송선으로 이용되었기 때문.[5]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작중 가상의 법률들이다. 당시는 노동기준법(근로기준법) 등 노동자의 권리를 규정한 법률 자체가 없었고, 작중의 항해법에 대응되는 실제의 선박안전법은 작가 사후에 제정되었다.[6] 각기병을 앓던(그래서 작중에서 부르는 호칭도 '각기병 어부'다) 어부로 병세가 악화되어 오랫동안 누워 지내다가 "캄차카에서는 죽고 싶지 않다"는 말을 남기고 처참한 몰골로 숨을 거두었다. 노동자들은 이 어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살해당한 것''''이라 여겼는데, 그 와중에 아사카와는 죽은 어부를 염할 때 쓸 더운 물조차도 아껴 쓰라며 간섭질을 해댔다.[7] 두세 척의 배에서 '적화선전' 팜플렛이 발견되었다.[8] 작중 언급에 따르면 '어부들보다도 참혹하게' '무자비하게' 해고당했다고 한다. 그 와중에 아사카와는 자신이 지금까지 속고 있었다고 절규했다고...[9] 작가의 다른 작품인 미완의 장편 『전형기 사람들』에서는 관동 대지진 당시의 조선인 학살에 대해서 "관동 대지진 때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을 퍼뜨려 조선인을 학살한 일"이라고 언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