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양검

 

<skyblue> '''국적'''
'''백제(百濟)''' → 고려(?)
<skyblue> '''삼사'''
태사(太師)
<skyblue> '''직위'''
강주 도독(康州 都督)
<skyblue> '''성씨'''
견(甄)
<skyblue> '''이름'''
양검(良劍) / 겸뇌(謙腦)(?)
<skyblue> '''부왕'''
견훤(甄萱)
<skyblue> '''생몰연도'''
음력
? ~ 936(?)[1]
1. 개요
2. 생애
3. 창작물


1. 개요


후삼국시대 후백제왕족으로 견훤의 둘째아들. 이름은 견양검(良劍)으로 이제가기에는 겸뇌(謙腦)라는 기록이 있는데 뇌(腦)는 누리의 음차, 견양검의 량(良)은 나라의 음차로 추정되므로 연관성이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형으로는 견신검이 있고 아우로는 견용검, 견금강, 여동생 애복(哀福), 막내동생 능예(能乂) 등이 있었다고 한다.

2. 생애


924년 7월 견훤은 견양검 등을 보내 조물성(曹物郡,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혹은 의성군으로 추정)을 공격했는데 장군 애선(哀宣)을 전사시키기는 했지만 고을 사람들이 굳게 지켜 이득없이 돌아갔다.
훗날 견훤이 형들을 제쳐두고 넷째아들 견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자 이찬인 능환의 말에 따라 견용검과 함께 견신검을 설득하여 견훤을 금산사에 유폐시키고 이복아우인 견금강을 살해한 후 견신검을 왕으로 세우는데 일조하였으며 강주 도독으로 있었다.
고려군의 공격으로 일리천 전투에서 패하자 견신검, 견용검과 함께 고려에 항복하였으며 견용검과 함께 진주로 유배를 떠났다가 처형되었다.

3. 창작물


사극 태조 왕건에서 등장하며 배우는 주민준(당시 본명 이영호로 활동) 작중 비중은 견용검과 같이 견신검 밑의 동생 정도다. 그나마 견용검은 늦게 나왔어도 조물성 전투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나 견양검은 그런 것도 없다.
능력은 별로지만 동복형인 견신검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반면 이복동생 견금강에 대한 적개심은 대단해서 견신검의 쿠데타 때 견금강은 자기 손으로 죽이고 싶다고 벼르기도 했다.

[1] 삼국사기에서는 왕건이 후백제를 멸망시킨 후에 양검을 살려주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일설에는 죽였다는 각주도 덧붙이고 있어 생몰년도가 확실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