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환
能奐
(? ~ 936년)
후백제의 관료.
남은 기록은 거의 없는데 삼국사기, 삼국유사에는 이찬(신라 관등 17품 중 2품)으로 나온다. 물론 골품제의 제한 때문에 진골이 아니었던 이상 신라에서 이찬을 했을 가능성은 낮고 후백제의 이찬이었던 것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찬이라는 직책이 고위직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견훤 막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임은 분명해 보인다.
견훤의 아들인 견신검과 반란을 모의하여 왕위를 찬탈하는데 일조하였다. 견훤이 고려로 투항한 이후 고려가 후백제를 멸망시키면서 항복했는데 반역 혐의로 왕건에게 처형당했다고 한다.[1][2]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에서는 일반적으로 후백제의 토착 호족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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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 태조 왕건에서는 배우 정진이 열연하였는데 대체적으로 인물에 대한 기록이 적다보니 캐릭터 자체를 대부분 상상력을 더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궁예는 재평가되어 왔었지만 능환이라는 인물이야말로 역사 기록으로 따지면 드라마에서 가장 이미지가 크게 변한 인물 중 하나일 듯하다. 정진은 사극 조선왕조 오백년에서 한명회, 풍신수길 역으로 유명한 배우이다. 드라마 식객에서는 자운 선생 역으로 출연하였다. 젊은 시절부터 견훤을 따른 인물이나 따로 젊은 시절 배우를 기용하지 않고 이미 60대를 넘긴 정진이 연기하다보니 초기에는 노안 속성의 인물이 된다.
본래 아자개의 집에 머물면서 집사#s-1와 같은 역할을 했던 인물이었다. 견훤이 장군이 되어 사벌주를 들렸을 때 아자개는 능환에게 "능환이 이놈, 다 네 놈 탓이다. 그래도 글 꽤나 읽었고 한 때 재주 꽤나 있다고 깝죽대더니 네놈이 이 아이를 이렇게 만들었어!"라고 호통치기도 했다.
이처럼 견훤이 본격적으로 궐기하기 이전부터 김총, 추허조와 더불어 함께 활동하였고 견훤이 궐기한 후에는 책사로서 활약하여 후백제 건국에 활발하게 활동하며 공을 세웠다. 의외로 외모와 체격과는 다르게 무술에도 일가견이 있는 모습도 나온다. 극 초반에 서라벌에서 부임하여 금성을 휘어잡기 시작한 견훤과 대립하였던 능창이 함정을 파고 견훤과 그 부하들을 집에 초대하였다가 급습하였을 때 능환은 견훤과 콤비를 이루어 난데없는 액션씬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견훤이 대부분의 적을 물리치기는 했지만 능환도 자기에게 달려드는 적을 맨손 무술로 상대하며 자기 몸 정도는 지키는 모습을[5] 보인다. 이후 견훤이 능창에게 자신의 의동생이 될 것을 제의하자 능환도 옆에서 거들었는데 약이 오른 능창이 "얼굴은 막 빚다만 된장 같이 생긴 녀석이 어른들 얘기하는데 함부로 끼어드는구나!"하고 꾸짖자 견훤과 능환은 웃음을 터뜨린다. 능환이 "물귀신 장군께서는 제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가 봅니다."하고 농담을 하자 견훤이 대답한 말은 "비록 외형은 이러하나 문무를 겸비한 천하에 다툴 사람이 없는 군자일세."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최승우를 후백제로 초빙한 것도 능환의 역할이 컸으며 후에 등장하는 술사 종훈도 능환이 천거하였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천거한 최승우가 견훤의 신임을 받으면서 최승우와 사이가 점차 멀어지게 되었다. 극 초기에는 의견이 착착 일치하던 둘의 주장이 갈린 것은 견훤이 궁예의 세력 확장에 초조함을 느껴 무리하게 대야성을 공격할 것을 논의했을 때였다. 최승우는 신라를 얕잡아 보아서는 안되며 시간이 지나면 절로 무너질 신라 대신 궁예군을 견제해야 함을 주장한 반면 능환은 견훤에 동의해 신라를 공격할 것을 주장했다. 그때까지 패배를 모르던 견훤은 능환의 말을 따랐고 후백제군은 첫 출전인 태자들까지 동원해 대야성에 진격한다. 김효종이 지키는 대야성 전투에서 능환은 속전속결을 주장한 반면 최승우는 적의 빈틈을 노려야 한다고 하면서 대립이 또 일어난다. 결과적으로는 패배를 모르던 후백제군은 소득도 없이 처참하게 패배했으며 능환은 스스로가 이제 늙었나보다며 자책하는 장면도 처음 나온다. 오랜 시간 후 회군한 견훤은 패배의 이유를 찾다가 '그 사람은 이제 늙었어'[6] 하고 독백하며 군사의 자리를 능환으로부터 거두어 최승우에게 일임한다. 그래도 견훤이 바로 둘의 화해를 주선한 것도 있고 능환도 사석에서 '섭섭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괜찮네' 정도로 훈훈하게 마무리되나 했더니만 둘의 의견차 때문에 또 대립을 하게 된다. 능환은 이번에는 패배했으나 자신의 전략적 줄기는 변함이 없다고 이야기하고 최승우는 너무 급한 생각이라며 신라에 무리하게 또 출군을 하는 것은 국가에 누가 될 거라고 말했는데 자신의 주장이 나라에 누가 된다는 말에 발끈한 능환이 화를 내고 가 버린다. 이쯤부터 능환은 최승우에 비해 식견은 딸리면서 자신이 묵살당하는 것에 대한 모멸감 때문에 고집을 자꾸 부리는 캐릭터로 묘사되기 시작한다. 여기에 견훤의 갈굼까지 더해져 더욱 오기를 나게 만드니 좋지 않은 의견을 고집->실패->견훤의 갈굼->굴욕감->좋지 않은 의견을 고집의 악순환을 형성하게 된다. 이 점은 견신검을 옹호하면서 더욱 심해지게 된다.
후에 자신과도 의형제 관계에 있던 수달이 포로로 붙잡혀 처형당하고 견훤의 아버지인 아자개를 후백제로 포섭하는 데 실패하였는데 능환은 최승우가 전략을 잘못 세웠기 때문에 생긴 결과로 보면서 최승우를 원망하였는데 두 사건을 계기로 최승우와 사이가 더욱 멀어지게 되었다. 이후 견훤의 후계자로 견신검을 옹호하면서 견훤과 사이가 멀어지다가 결국 견신검과 더불어 반역을 일으키는 것으로 묘사된다. 사실 드라마를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것이 최승우를 총애하는 견훤이 대놓고 "이찬은 너무 늙었어!"라는 대사를 남들 다 보는 앞에서 밥먹듯이 하며 무시하니 마음 속에 쌓인 앙금이 장난이 아니었을 것이다. 최승우가 어버이인 아자개를 공격할 수 없다고 주장했을 때에는 유례없을 정도로 분노를 터뜨렸는데 분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견훤에게 "이찬 왜 흥분부터 하고 그러는가?"라고 태클을 받는다. 극 후반부에 견훤이 견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한 사전 조치로서 정사를 운영하는 권한을 능환에게서 거두어 최승우에게 위임하면서도[7] 늙었다고 무시를 하니 모멸에 가까운 굴욕을 감내해야 했다.[8]
후백제의 역사 전반기에는 주로 왕건에게 후백제가 이리저리 당하기만 하는 처지였고 이때 내치 정책은 능환, 대외 정책은 최승우가 맡고 있었다. 그래서 능환은 일찍부터 사석에서는 '사부'라고까지 불리면서 태자들의 교육을 담당했으며 대외 정책이 안 풀릴 때마다 전후 사정을 알 길이 없으니 일단 작전의 제1책임자인 최승우를 원망한다. 나주 공략전, 2번에 걸친 대야성 전투의 실패, 아자개의 고려 귀부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후백제의 역사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왕건의 고려가 견훤의 후백제에게 패배당하면서 세력이 넓어지게 되고 최승우의 입지도 점점 높아지는데 반해 능환이 참가한 전투는 거의 견신검을 보좌하면서 계속해서 실패하게 되어 견훤을 실망시킨다. 예전에 최승우가 겪었던 곤경을 고스란히 체험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이렇게 실패하면 능환 본인도 견신검의 삽질 탓을 하지 않고 "신도 이제 늙었나 보옵니다."하면서 자책하기도 하지만 견훤에게 그간의 사정을 보고할 때마다 어김없이 "이찬도 이제 늙었군! 젊었을 예전의 총기는 다 어디로 갔는가! 형편없이 늙어버렸어!"가 면전에서 날아든다. 그런데 능환 역시 견신검을 띄워주려다 보니 "폐하의 보령을 생각해볼 때 태자마마들에게 일을 대신 맡기심은 당연하옵니다"라는 말을 하며 역시 점점 나이가 드는 견훤의 심기를 종종 건드리기도 한다. 극이 진행되면서 점점 후백제는 전쟁의 출정 멤버가 견훤&견금강&최승우의 본대, 견신검 형제&능환&능애의 파견대로 굳어진다. 견훤 본인의 편애와 태자 견신검에 대한 테스트 욕심이 어우러져 빚어진 멤버 구성이다.
물론 사적으로 견훤에게 모멸을 당한 적도 많지만 그래도 공사 구분만큼은 확실한 캐릭터다. 작중에서는 어쩔 수 없이 최승우를 죽인 것은 견훤에게 충성하는 최승우를 제거하여 견신검의 쿠데타를 성공시켜야 하는 사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려진다. 능환은 "파진찬이 황제와 가장 가까운 관계이면서도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혹은 "난 이미 권력이나 안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라고 언급하였는데 철저하게 국가의 안위를 생각하는 마음에 기인할 것일 뿐이지 사적인 감정으로 최승우를 제거하려는 것이 아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최승우 역시 여러 번 견신검을 옹호하거나 지지하는 발언을 계속 하였으며 최소한 이찬과 다른 견해를 이 분야에서 피력한 경우는 없었다. 극 후반부에 결국 견훤이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 견금강을 후계자로 낙점하면서 무리수를 두게 되자 최승우는 직접 견금강을 찾아가 나라를 위해 견신검에게 후계자 자리를 양보할 것을 권유한 적도 있다. 하지만 최승우 자신이 신료들 중에서 견훤과 가장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던 상황에서 국정의 혼란과 갈등을 피하기 위해 불필요한 언행을 삼간 측면이 강하다. 능환도 견신검의 후계자 계승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사이가 틀어진 후에도 최승우를 찾아와 계책을 구하는 모습을 보였던 점을 보면 최승우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9] 능환은 자리에서 나라를 위해 입장차와 자존심을 버려가면서까지 견신검을 위한 기회를 1번만 더 주선해 달라고 간청하였고 이에 최승우는 '이 일이 성사되어도 이찬께서는 결국 또 소인을 원망하시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는데 속내를 읽힌 능환은 당황하나 이내 '그렇기는 하네만'하면서 인정한다. 그래도 나중에 기회가 성사되었을 때는 최승우의 의도에 대해 의심을 품는 견신검에게 '파진찬도 담백한 사람'이라면서 최승우를 옹호하고 추켜세운다.
결국 견신검을 부추겨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능환은 상귀와 더불어 병력을 이끌고 최승우의 집을 공격해 최승우를 제거하는 비극으로 두 사람의 사이는 끝나고 만다. 하지만 최승우의 목을 자리에서 바로 베지 않고 최승우의 소원대로 스스로 독이 든 차를 마셔 명예롭게 죽을 수 있게 배려한다. 비록 사이는 틀어지고 말았지만 지금까지 후백제를 같이 이끌어온 사람으로서 경의를 표하는 행위였을지도 모르겠다. "파진찬, 잘 가시게."라고 하면서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최승우를 차마 똑바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면서 씁쓸한 표정을 짓는 것은 백미. 최승우가 숨을 거두고 나서는 최승우의 목을 베려는 상귀와 병사들을 두고 돌아나오면서 눈물마저 흘리고 마는데 실제 역사 속의 한신과 소하를 연상시킬 정도. 드라마상에서 최승우를 견훤에게 천거한 것도 능환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쿠데타 이후에는 이전까지와는 달리 대단히 과격한 모습을 보인다. 아무리 갈라섰다고는 해도 자신이 평생 모셔온 견훤을 '노망든 늙은이'라고 비하하는 한편 견훤을 제거하자는 진언도 서슴치 않는다.[10] 하지만 일리천 전투에서 대패하고 후백제의 견신검이 항복하고 나서 처형되기 직전 견훤에게 "부디 만수무강하십시오"라고 하며 큰절을 올린다. 아마도 쿠데타 직후에 보인 과격한 언행은 순간의 분노와 흥분에 쿠데타 이후 어떻게든 후백제를 부흥시켜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비롯되었던 것인 듯하다.
그간 최승우에게 밀려 견훤에게 많은 핀잔을 받은 탓에 성격이 비뚤어지게 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미 견신검이 부왕인 견훤에게 반기를 들어 몰아냈는데 괜히 부자지간 정이라는 이유로 살려놓으면 화근이 되니 이왕 독하게 할거 더 독하게 가자는 생각이었을 수도 있다.[11] 해석과 상상은 알아서 하자.
결국 고려와의 마지막 일전인 일리천 전투에서 대패한 끝에 황산에서 고려의 대군에 포위당하자 패색이 만연한 가운데 견신검에게 항복할 것을 제안하고 이후 왕건에 의해 끝내 처형당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백제국의 황실을 어지럽히고 군신 간의 도리를 헤쳤으며 나라를 망치게 한 죄로 참형을 선고받은 후 견훤에게 '후백제를 시작한 것도 폐하이며 후백제를 끝내는 것도 폐하'라고 말해준다. '진작 목숨을 끊을 수도 있었지만 한 나라를 세운 이가 문을 닫는 모습을 목격하고 싶어서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는 말을 유언으로 남기면서 견훤의 만수무강을 빈 후 형장으로 끌려나간다.
또한 "자신이 나라를 운영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보면 능환이 책사로서 내세운 전략도 달리 보이게 된다. 그는 후백제가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의 전략안을 한 치의 의심없이 굳게 믿었고 그 전략이 실패하거나 최승우에게 밀려 씹혔을 때 더욱 좌절하고 수모에 떨었던 것이다. 게다가 책사로서 능환의 전략은 다소 하자가 있더라도 견훤이 덮어놓고 까내릴 정도로 완전한 노답은 또 아니었고, 아지태의 북벌론만큼 뜬구름 잡는 이상론도 결코 아니었다. 어차피 그의 활약은 작가의 순수 창작일 뿐이지만 국가정책의 결정권이 견훤이 아니라 능환에게 있었더라면 후백제의 향배가 크게 달라질 뻔한 중요한 순간이 몇 차례나 있었을 정도. 고려로 귀부하는 아자개를 공격하거나, 조물성 전투에서 견훤과 만나기 위해 후백제의 진중으로 들어온 왕건의 목숨을 빼앗는다던가, 견훤을 금산사로 보내지 않고 반란을 일으킨 즉시 시해하는 안 등은 모두 그가 머리를 굴려 만들어낸 것이다. 결국 드라마 캐릭터로서의 능환은 좋게 말해서 왕에 버금가는, 나쁘게 말하면 맞먹으려는 책사로서 '만약 그의 전략이 채택되고 성공까지 했더라면 후백제가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가설을 시청자들에게 제공한다고 정리할 수 있다.
(? ~ 936년)
1. 개요
후백제의 관료.
남은 기록은 거의 없는데 삼국사기, 삼국유사에는 이찬(신라 관등 17품 중 2품)으로 나온다. 물론 골품제의 제한 때문에 진골이 아니었던 이상 신라에서 이찬을 했을 가능성은 낮고 후백제의 이찬이었던 것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찬이라는 직책이 고위직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견훤 막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임은 분명해 보인다.
견훤의 아들인 견신검과 반란을 모의하여 왕위를 찬탈하는데 일조하였다. 견훤이 고려로 투항한 이후 고려가 후백제를 멸망시키면서 항복했는데 반역 혐의로 왕건에게 처형당했다고 한다.[1][2]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에서는 일반적으로 후백제의 토착 호족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2. 태조 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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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4]
사극 태조 왕건에서는 배우 정진이 열연하였는데 대체적으로 인물에 대한 기록이 적다보니 캐릭터 자체를 대부분 상상력을 더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궁예는 재평가되어 왔었지만 능환이라는 인물이야말로 역사 기록으로 따지면 드라마에서 가장 이미지가 크게 변한 인물 중 하나일 듯하다. 정진은 사극 조선왕조 오백년에서 한명회, 풍신수길 역으로 유명한 배우이다. 드라마 식객에서는 자운 선생 역으로 출연하였다. 젊은 시절부터 견훤을 따른 인물이나 따로 젊은 시절 배우를 기용하지 않고 이미 60대를 넘긴 정진이 연기하다보니 초기에는 노안 속성의 인물이 된다.
본래 아자개의 집에 머물면서 집사#s-1와 같은 역할을 했던 인물이었다. 견훤이 장군이 되어 사벌주를 들렸을 때 아자개는 능환에게 "능환이 이놈, 다 네 놈 탓이다. 그래도 글 꽤나 읽었고 한 때 재주 꽤나 있다고 깝죽대더니 네놈이 이 아이를 이렇게 만들었어!"라고 호통치기도 했다.
이처럼 견훤이 본격적으로 궐기하기 이전부터 김총, 추허조와 더불어 함께 활동하였고 견훤이 궐기한 후에는 책사로서 활약하여 후백제 건국에 활발하게 활동하며 공을 세웠다. 의외로 외모와 체격과는 다르게 무술에도 일가견이 있는 모습도 나온다. 극 초반에 서라벌에서 부임하여 금성을 휘어잡기 시작한 견훤과 대립하였던 능창이 함정을 파고 견훤과 그 부하들을 집에 초대하였다가 급습하였을 때 능환은 견훤과 콤비를 이루어 난데없는 액션씬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견훤이 대부분의 적을 물리치기는 했지만 능환도 자기에게 달려드는 적을 맨손 무술로 상대하며 자기 몸 정도는 지키는 모습을[5] 보인다. 이후 견훤이 능창에게 자신의 의동생이 될 것을 제의하자 능환도 옆에서 거들었는데 약이 오른 능창이 "얼굴은 막 빚다만 된장 같이 생긴 녀석이 어른들 얘기하는데 함부로 끼어드는구나!"하고 꾸짖자 견훤과 능환은 웃음을 터뜨린다. 능환이 "물귀신 장군께서는 제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가 봅니다."하고 농담을 하자 견훤이 대답한 말은 "비록 외형은 이러하나 문무를 겸비한 천하에 다툴 사람이 없는 군자일세."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최승우를 후백제로 초빙한 것도 능환의 역할이 컸으며 후에 등장하는 술사 종훈도 능환이 천거하였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천거한 최승우가 견훤의 신임을 받으면서 최승우와 사이가 점차 멀어지게 되었다. 극 초기에는 의견이 착착 일치하던 둘의 주장이 갈린 것은 견훤이 궁예의 세력 확장에 초조함을 느껴 무리하게 대야성을 공격할 것을 논의했을 때였다. 최승우는 신라를 얕잡아 보아서는 안되며 시간이 지나면 절로 무너질 신라 대신 궁예군을 견제해야 함을 주장한 반면 능환은 견훤에 동의해 신라를 공격할 것을 주장했다. 그때까지 패배를 모르던 견훤은 능환의 말을 따랐고 후백제군은 첫 출전인 태자들까지 동원해 대야성에 진격한다. 김효종이 지키는 대야성 전투에서 능환은 속전속결을 주장한 반면 최승우는 적의 빈틈을 노려야 한다고 하면서 대립이 또 일어난다. 결과적으로는 패배를 모르던 후백제군은 소득도 없이 처참하게 패배했으며 능환은 스스로가 이제 늙었나보다며 자책하는 장면도 처음 나온다. 오랜 시간 후 회군한 견훤은 패배의 이유를 찾다가 '그 사람은 이제 늙었어'[6] 하고 독백하며 군사의 자리를 능환으로부터 거두어 최승우에게 일임한다. 그래도 견훤이 바로 둘의 화해를 주선한 것도 있고 능환도 사석에서 '섭섭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괜찮네' 정도로 훈훈하게 마무리되나 했더니만 둘의 의견차 때문에 또 대립을 하게 된다. 능환은 이번에는 패배했으나 자신의 전략적 줄기는 변함이 없다고 이야기하고 최승우는 너무 급한 생각이라며 신라에 무리하게 또 출군을 하는 것은 국가에 누가 될 거라고 말했는데 자신의 주장이 나라에 누가 된다는 말에 발끈한 능환이 화를 내고 가 버린다. 이쯤부터 능환은 최승우에 비해 식견은 딸리면서 자신이 묵살당하는 것에 대한 모멸감 때문에 고집을 자꾸 부리는 캐릭터로 묘사되기 시작한다. 여기에 견훤의 갈굼까지 더해져 더욱 오기를 나게 만드니 좋지 않은 의견을 고집->실패->견훤의 갈굼->굴욕감->좋지 않은 의견을 고집의 악순환을 형성하게 된다. 이 점은 견신검을 옹호하면서 더욱 심해지게 된다.
후에 자신과도 의형제 관계에 있던 수달이 포로로 붙잡혀 처형당하고 견훤의 아버지인 아자개를 후백제로 포섭하는 데 실패하였는데 능환은 최승우가 전략을 잘못 세웠기 때문에 생긴 결과로 보면서 최승우를 원망하였는데 두 사건을 계기로 최승우와 사이가 더욱 멀어지게 되었다. 이후 견훤의 후계자로 견신검을 옹호하면서 견훤과 사이가 멀어지다가 결국 견신검과 더불어 반역을 일으키는 것으로 묘사된다. 사실 드라마를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것이 최승우를 총애하는 견훤이 대놓고 "이찬은 너무 늙었어!"라는 대사를 남들 다 보는 앞에서 밥먹듯이 하며 무시하니 마음 속에 쌓인 앙금이 장난이 아니었을 것이다. 최승우가 어버이인 아자개를 공격할 수 없다고 주장했을 때에는 유례없을 정도로 분노를 터뜨렸는데 분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견훤에게 "이찬 왜 흥분부터 하고 그러는가?"라고 태클을 받는다. 극 후반부에 견훤이 견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한 사전 조치로서 정사를 운영하는 권한을 능환에게서 거두어 최승우에게 위임하면서도[7] 늙었다고 무시를 하니 모멸에 가까운 굴욕을 감내해야 했다.[8]
후백제의 역사 전반기에는 주로 왕건에게 후백제가 이리저리 당하기만 하는 처지였고 이때 내치 정책은 능환, 대외 정책은 최승우가 맡고 있었다. 그래서 능환은 일찍부터 사석에서는 '사부'라고까지 불리면서 태자들의 교육을 담당했으며 대외 정책이 안 풀릴 때마다 전후 사정을 알 길이 없으니 일단 작전의 제1책임자인 최승우를 원망한다. 나주 공략전, 2번에 걸친 대야성 전투의 실패, 아자개의 고려 귀부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후백제의 역사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왕건의 고려가 견훤의 후백제에게 패배당하면서 세력이 넓어지게 되고 최승우의 입지도 점점 높아지는데 반해 능환이 참가한 전투는 거의 견신검을 보좌하면서 계속해서 실패하게 되어 견훤을 실망시킨다. 예전에 최승우가 겪었던 곤경을 고스란히 체험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이렇게 실패하면 능환 본인도 견신검의 삽질 탓을 하지 않고 "신도 이제 늙었나 보옵니다."하면서 자책하기도 하지만 견훤에게 그간의 사정을 보고할 때마다 어김없이 "이찬도 이제 늙었군! 젊었을 예전의 총기는 다 어디로 갔는가! 형편없이 늙어버렸어!"가 면전에서 날아든다. 그런데 능환 역시 견신검을 띄워주려다 보니 "폐하의 보령을 생각해볼 때 태자마마들에게 일을 대신 맡기심은 당연하옵니다"라는 말을 하며 역시 점점 나이가 드는 견훤의 심기를 종종 건드리기도 한다. 극이 진행되면서 점점 후백제는 전쟁의 출정 멤버가 견훤&견금강&최승우의 본대, 견신검 형제&능환&능애의 파견대로 굳어진다. 견훤 본인의 편애와 태자 견신검에 대한 테스트 욕심이 어우러져 빚어진 멤버 구성이다.
물론 사적으로 견훤에게 모멸을 당한 적도 많지만 그래도 공사 구분만큼은 확실한 캐릭터다. 작중에서는 어쩔 수 없이 최승우를 죽인 것은 견훤에게 충성하는 최승우를 제거하여 견신검의 쿠데타를 성공시켜야 하는 사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려진다. 능환은 "파진찬이 황제와 가장 가까운 관계이면서도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혹은 "난 이미 권력이나 안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라고 언급하였는데 철저하게 국가의 안위를 생각하는 마음에 기인할 것일 뿐이지 사적인 감정으로 최승우를 제거하려는 것이 아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최승우 역시 여러 번 견신검을 옹호하거나 지지하는 발언을 계속 하였으며 최소한 이찬과 다른 견해를 이 분야에서 피력한 경우는 없었다. 극 후반부에 결국 견훤이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 견금강을 후계자로 낙점하면서 무리수를 두게 되자 최승우는 직접 견금강을 찾아가 나라를 위해 견신검에게 후계자 자리를 양보할 것을 권유한 적도 있다. 하지만 최승우 자신이 신료들 중에서 견훤과 가장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던 상황에서 국정의 혼란과 갈등을 피하기 위해 불필요한 언행을 삼간 측면이 강하다. 능환도 견신검의 후계자 계승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사이가 틀어진 후에도 최승우를 찾아와 계책을 구하는 모습을 보였던 점을 보면 최승우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9] 능환은 자리에서 나라를 위해 입장차와 자존심을 버려가면서까지 견신검을 위한 기회를 1번만 더 주선해 달라고 간청하였고 이에 최승우는 '이 일이 성사되어도 이찬께서는 결국 또 소인을 원망하시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는데 속내를 읽힌 능환은 당황하나 이내 '그렇기는 하네만'하면서 인정한다. 그래도 나중에 기회가 성사되었을 때는 최승우의 의도에 대해 의심을 품는 견신검에게 '파진찬도 담백한 사람'이라면서 최승우를 옹호하고 추켜세운다.
결국 견신검을 부추겨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능환은 상귀와 더불어 병력을 이끌고 최승우의 집을 공격해 최승우를 제거하는 비극으로 두 사람의 사이는 끝나고 만다. 하지만 최승우의 목을 자리에서 바로 베지 않고 최승우의 소원대로 스스로 독이 든 차를 마셔 명예롭게 죽을 수 있게 배려한다. 비록 사이는 틀어지고 말았지만 지금까지 후백제를 같이 이끌어온 사람으로서 경의를 표하는 행위였을지도 모르겠다. "파진찬, 잘 가시게."라고 하면서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최승우를 차마 똑바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면서 씁쓸한 표정을 짓는 것은 백미. 최승우가 숨을 거두고 나서는 최승우의 목을 베려는 상귀와 병사들을 두고 돌아나오면서 눈물마저 흘리고 마는데 실제 역사 속의 한신과 소하를 연상시킬 정도. 드라마상에서 최승우를 견훤에게 천거한 것도 능환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쿠데타 이후에는 이전까지와는 달리 대단히 과격한 모습을 보인다. 아무리 갈라섰다고는 해도 자신이 평생 모셔온 견훤을 '노망든 늙은이'라고 비하하는 한편 견훤을 제거하자는 진언도 서슴치 않는다.[10] 하지만 일리천 전투에서 대패하고 후백제의 견신검이 항복하고 나서 처형되기 직전 견훤에게 "부디 만수무강하십시오"라고 하며 큰절을 올린다. 아마도 쿠데타 직후에 보인 과격한 언행은 순간의 분노와 흥분에 쿠데타 이후 어떻게든 후백제를 부흥시켜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비롯되었던 것인 듯하다.
그간 최승우에게 밀려 견훤에게 많은 핀잔을 받은 탓에 성격이 비뚤어지게 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미 견신검이 부왕인 견훤에게 반기를 들어 몰아냈는데 괜히 부자지간 정이라는 이유로 살려놓으면 화근이 되니 이왕 독하게 할거 더 독하게 가자는 생각이었을 수도 있다.[11] 해석과 상상은 알아서 하자.
결국 고려와의 마지막 일전인 일리천 전투에서 대패한 끝에 황산에서 고려의 대군에 포위당하자 패색이 만연한 가운데 견신검에게 항복할 것을 제안하고 이후 왕건에 의해 끝내 처형당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백제국의 황실을 어지럽히고 군신 간의 도리를 헤쳤으며 나라를 망치게 한 죄로 참형을 선고받은 후 견훤에게 '후백제를 시작한 것도 폐하이며 후백제를 끝내는 것도 폐하'라고 말해준다. '진작 목숨을 끊을 수도 있었지만 한 나라를 세운 이가 문을 닫는 모습을 목격하고 싶어서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는 말을 유언으로 남기면서 견훤의 만수무강을 빈 후 형장으로 끌려나간다.
2.1. 평가
(벽진군 전투의 실패로 면박을 당한 뒤)
능환: 폐하께서 예전에는 이러지 않으셨다. 어떻게 신료들 앞에서 그렇게 공개적으로 이 능환이를 망신 주신단 말인고? 그래도 내가 그 분을 오늘날의 옥좌에 오르게 하시고 이렇게 큰 제국을 운영하게 하시는 데 밑거름이 되지 않았는가? (제136화 중)
(최승우와 독대하며, 신검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선해 달라는 요청 중)
능환: 나는 평생 내 주군이신 폐하를 위하여 그 신발끈을 매리라 결심하고 살아왔는데 폐하께서는 어느덧 나를 잊고 버리셨네. (중략) 이 암울한 정국에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네. 그것을 도와달라는 것일세. 신검 태자마마만이 하실 수가 있네. 폐하는 이제 아니야. (제173회)
(왕위 등극을 미루는 신검에게 이찬이 불만을 표하자)
왕후 박씨: 그 사람은 이 백제국의 신하가 아니라 스스로 주인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니라. 먼 훗날 통일이 끝나면 그 사람부터 제거를 해야 이 황실이 오래 갈 것이다. 그 사람은 황제가 생각해야 할 일을 항상 그 스스로 먼저 생각해온 사람이다. 그가 제국을 운영해 온다고 생각해온 사람이야. (제195화 중)
능환과 견훤을 사벌주에서부터 보아 온 왕후 박씨의 이 말은 실로 능환의 핵심을 꿰뚫는 정확한 발언이었다. 특히 신검의 반란 때부터 능환은 반란을 직접 주도하며 신검을 설득하는 동시에 그의 대관식을 본인이 알아서 스스로 준비하고, 급기야 견훤의 금산사 탈출에 이르러서는 자신의 의형제이자 주인, 선대 왕이었던 견훤을 죽이라고 장수들에게 직접 지시하는 냉혈한의 모습도 보였다. 견훤의 아들인 신검이 보는 앞에서, 그것도 그가 대놓고 난색을 표했음에도 그대로 밀어붙이는 이러한 모습은 그야말로 신료들의 수장 그 이상의 월권행위였으며 신검보다 더욱 왕 같아 보일 정도였다. 견훤 역시 금강에게 보위를 물려줄 당시 안전장치로 신검을 지지하는 능환과 능애를 삭탈관직 하고 유배를 보내기로 결심하기도 했다. 이는 견훤도 대장군 직위에 있던 능애와 더불어, 능환을 진작부터 위험인물로 보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나마 드라마 상의 능환이 '후백제'에 대한 책임감이 나름 컸고, 개인적 욕망도 거의 없는 인물인지라 아지태와 달리 임금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일리천 전투의 패배를 신검에게 고하며)
능환: 보다 일찍, 저 고려에 가 계시는 태상황 폐하의 목을 베었어야 했사옵니다. 금산사로 보내기 전에 그때 목을 베고 정권을 장악하고 바로 군사를 일으켰어야 했사옵니다. (제200화 중)
또한 "자신이 나라를 운영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보면 능환이 책사로서 내세운 전략도 달리 보이게 된다. 그는 후백제가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의 전략안을 한 치의 의심없이 굳게 믿었고 그 전략이 실패하거나 최승우에게 밀려 씹혔을 때 더욱 좌절하고 수모에 떨었던 것이다. 게다가 책사로서 능환의 전략은 다소 하자가 있더라도 견훤이 덮어놓고 까내릴 정도로 완전한 노답은 또 아니었고, 아지태의 북벌론만큼 뜬구름 잡는 이상론도 결코 아니었다. 어차피 그의 활약은 작가의 순수 창작일 뿐이지만 국가정책의 결정권이 견훤이 아니라 능환에게 있었더라면 후백제의 향배가 크게 달라질 뻔한 중요한 순간이 몇 차례나 있었을 정도. 고려로 귀부하는 아자개를 공격하거나, 조물성 전투에서 견훤과 만나기 위해 후백제의 진중으로 들어온 왕건의 목숨을 빼앗는다던가, 견훤을 금산사로 보내지 않고 반란을 일으킨 즉시 시해하는 안 등은 모두 그가 머리를 굴려 만들어낸 것이다. 결국 드라마 캐릭터로서의 능환은 좋게 말해서 왕에 버금가는, 나쁘게 말하면 맞먹으려는 책사로서 '만약 그의 전략이 채택되고 성공까지 했더라면 후백제가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가설을 시청자들에게 제공한다고 정리할 수 있다.
[1] 견훤의 아들들은 살아남았거나 견신검만 살려주고 옆에서 부추긴 견양검과 견용검은 유배보낸 뒤 목숨을 빼앗았다고 한다.[2] 기록 이후 '일설에는 3형제가 모두 벌을 받아 죽었다고도 한다.'라고 후술함으로써 3형제 역시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은연 중에 내포하고 있다. 때문에 견훤이 원통하여 죽었다는 카더라가 있다.[3] 32회 이전 오프닝에서의 능환, 수달, 추허조[4] 오프닝에서의 능환과 최승우, 배역을 맡은 정진과 전무송의 성명이 보인다.[5] 극 초반부 책사계 캐릭터들은 최승우를 제외하고는 의외의 무술 실력을 보인 적이 있다. 승려인 종간 같은 경우도 도적인 원회와 싸워 이길 정도였다.[6] 웃긴 사실이 있는데 능환 역을 맡은 정진과 최승우 역을 맡은 전무송은 동갑이며 전무송이 3개월 생일이 빠르다.[7] 이찬으로서의 지위는 그대로 두었다.[8] 비록 늙으면서 예전의 총명한 기운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초창기에 견훤을 도와 후백제의 창업에 이바지한 공신이자 한때 절친한 의형제였다. 능환의 입장에서는 최승우가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냈다고 여겼을 것이고 자신이 토사구팽을 당했다고 여겼을 수도 있다.[9] 능환의 부탁을 받고 최승우가 입안한 계책이 바로 수군을 이용하여 고려의 도읍인 송악을 공격하고 고려 수군을 궤멸시키는 것이었다. 총사령관에 견신검을 추천한 것도 최승우였다.[10] 견신검이 견훤의 양위를 받아 즉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차라리 견훤을 암살한다면 견신검의 즉위가 빨라질 것이라고 주장하며 견훤이 금산사를 나와 고려로 피할 때에도 여의치 않으면 '그 목숨을 거두라'고 명령하기도 한다. 오죽하면 쿠데타를 이끈 견신검조차도 이러한 능환의 모습에 부담을 느낄 정도였다.[11] 실제로 견훤은 결국 후백제를 탈출하여 고려로 망명해 스스로 선봉에 서서 후백제의 저항을 무력하게 만들며 단숨에 멸망시켰다. 능환은 후백제의 항복 직전에 "금산사에 가두었을 때 진작에 폐하를 베었어야 했지만 이젠 너무 늦었다"며 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