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용검

 

<skyblue> '''국적'''
'''백제(百濟)''' → 고려(?)
<skyblue> '''품계'''
좌승(佐承)
<skyblue> '''직위'''
무주 도독(武州 都督)
<skyblue> '''성씨'''
견(甄)
<skyblue> '''이름'''
용검(龍劍) / 용술(龍述)(?)
<skyblue> '''부왕'''
견훤대왕(甄萱大王)
<skyblue> '''생몰연도'''
음력
? ~ 936(?)[1]
1. 소개
2. 생애
3. 대중매체에서
3.1. 태조 왕건


1. 소개


후삼국시대 후백제왕족으로 견훤의 셋째아들. 이름은 삼국사기에 따르면 견용검으로 삼국유사에 인용된 "이제가기"에는 비슷한 이름인 용술(龍述)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술(述)이 쇠(金)의 음차기 때문에 동일 인물인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 기록에서는 형으로는 견신검, 견양검이 있고 아우로는 견금강, 여동생 애복(哀福), 막내동생 능예(能乂) 등이 있었다.

2. 생애


견훤이 넷째아들인 견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자 이찬 벼슬인 능환의 말에 따라 견양검과 함께 견신검을 설득하여 견훤을 폐위금산사에 유폐시키고 견금강을 죽이고 견신검을 왕위에 오르게 하였으며 이후 무주 도독으로 있었다. 그러나 견훤의 신변을 확보한 후 견훤을 앞세운 고려군의 공격으로 일리천 전투에서 패배하자 견신검, 견양검과 함께 고려에 항복하였으며 형인 견양검과 함께 진주유배되었다가 처형되었다.

3. 대중매체에서



3.1. 태조 왕건


2000년 방영된 KBS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배우는 강인기[2]. 드라마 중반 이후에 들어서야 '지금까지는 소개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라는 나레이션과 함께 갑툭튀[3]. 이후 견신검의 옆에 붙어있는 동생 No. 2의 역할을 담당하는데 견양검과 세트로라면 극중의 비중이 적지 않고 역할도 나름대로 있는 편이지만 견용검 하나만 떼어놓고 보면 비중은 공기급. 동생 견금강보다도 나중에 나와서 더욱 그러한데 안습인 것은 형들과 다를게 없어 전투에서 이기는 경우가 없다시피하다. 눈에 띄는 경우라면 조물성 전투 초반에 왕건의 장남인 왕무일기토를 벌이다 거짓으로 후퇴하는 척하며 왕무의 무예 스승인 장수장을 베는 장면 정도.[4][5] 이외에는 두 형들처럼 잘 되다가 중간에 변수로 틀어지면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일쑤다. 예성강 공략전에서는 고려의 수군 기지를 공격하는 함대를 견양검과 함께 지휘를 할 때도 처음에는 잘 되다가 애술과 견신검의 패망 테크에 역시나 세트로 말아먹었다. 3형제 중 가장 견훤을 두려워하는데 아버지가 화를 내면 벌벌 떨며 말을 더듬는 모습을 종종 보인다. 이전의 전투 때도 그렇고 고창 전투 때도 그렇고 일리천 전투에서 패망할 때도 그렇다. 견신검의 쿠데타 때는 형 견양검과 함께 도성을 포위하는 일을 맡았는데 견금강을 못 죽여 안달한다. 자주 하는 명대사는 '''"아니 이럴수가?!"'''
견용검 배역의 강주상[6]은 둘째형인 견양검 배역의 주민준보다 15살이나 많고 큰형인 견신검 배역의 이광기보다도 5살이 많다. 금강 역의 전현보다 3살 위.[7] 연기 데뷔 순서도 강인기가 1978년, 이광기가 1983년, 주민준이 1985년으로 배우들의 나이 순과 같다(전현은 1977년). 그럼에도 극 중에서는 견용검의 외모가 좀 삭았다는 것을 빼면 세 배우들의 연기에 위화감이 별로 없었으니 그야말로 연기력의 승리라고 할 수 있었던 모습. 강주상은 이후 드라마 정도전에서는 조선 왕조의 창업주였던 이성계와 대립각을 세운 아들인 이방우 역할로 출연했고 드라마 명성황후에서는 한국사 최악의 간신 이완용을 맡았다는 것이다.[8]


[1] 삼국사기에서는 왕건후백제멸망시킨 후에 양검을 살려주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일설에는 죽였다는 각주도 덧붙이고 있어 생몰년도가 확실치 않다.[2] 삼국기에서는 김유신의 아들 김원술 역으로 등장했는데 당시 김유신 역을 맡은 배우가 태조 왕건에서 견훤 역으로 등장한 서인석이었다. 따라서 강인기는 삼국시대가 배경인 삼국기와 후삼국시대가 배경인 태조 왕건에서 모두 서인석을 아버지로서 만나게 된 셈이다.[3] 견훤이 처자식을 데리고 오랜만에 아자개를 찾아갔을 때도 자녀들을 소개할 적에 없었다. 당시 신검, 양검, 두 딸이 있다고 나왔는데 설정이 바뀌지 않았다면 박씨의 자녀들 중 서열상 다섯째이거나 딸들 중 하나를 설정 변경한 듯하다. 근데 당시 신검과 양검이 다 컸단 말을 보아 이후에 생긴 자식이라면 형들과 나이차가 상당할 듯하다.[4] 이때 왕무를 호위하기 위해 달려오던 왕건의 유년 시절부터 왕건을 모셔왔고 환선길반역을 눈치채고 막는데 공을 세웠던 장수장을 베는 활약을 보인다.[5] 해당 방영분인 제142회 대본을 보면 견용검이 아니라 애술이 장수장을 벤 것으로 나온다. 장수장은 견용검에게 당하기 직전에 후백제의 네임드 장수인 상귀의 팔꿈치를 베어버렸지만 이미 힘에 부친 상태였는데 틈을 타서 견용검은 야비하게 장수장을 공격해 목을 베어 버린다. 힘에 부친 상태였다고는 해도 왕건의 측근 무장이자 태자의 무예 사범으로서는 허망한 죽음이다. 이후 견용검이 활약없이 전쟁 때마다 말아먹는 모습까지 보면 견용검이라는 인물에게 당한 장수장이 안쓰럽다.[6] 당시 이름은 강인기였다.[7] 사실 강주상은 1964년 2월생 즉, 빠른 생일이다.[8] 다만 실제 역사상으로 명성황후시해당했을 시점까지는 친일파로서의 모습이 두드러지지는 않았으며 작중에서도 간신이라기보다는 충신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