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궁 위선당
1. 개요
慶熙宮 爲善堂
경희궁의 전각으로 선왕의 위패, 신주, 어진을 임시로 봉안할 때 사용했다.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재건으로 훼철되어 사라졌다.
2. 위치 및 용도
경희궁의 편전인 자정전을 중심으로 서쪽에 태령전과 위선당이 있었다. 이들은 경희궁의 북서쪽 영역에 있었으며 조상을 기리기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태령전은 영조의 초상을 봉안하던 곳이며 자정전과 위선당은 종묘의 위패를 임시로 모시던 곳이다. 태령전이 혼전으로 사용될 때에는 태령전에서 봉안하던 어진을 위선당으로 옮겨 모셨다.
위선당에서는 신주를 모시기도 하였다. 영조 때 단경왕후를 복위시키면서 위선당에 신주를 모신 후 작헌례를 행했으며, 정조 시절에는 효장세자와 그 부인을 진종(眞宗)과 효순왕후(孝純王后)로 추존하면서 창경궁 연복전에 있던 신주를 이곳으로 옮겨 봉안했다.
3. 변천 및 현황
위선당의 옛 이름은 영경당(靈慶堂)이다. 1700년( 숙종 26년)에 위선당으로 이름을 고쳤다. 영경당을 사용한 기록은 《승정원일기》에서 1663년(현종 4년)에 종묘의 영녕전을 수리하기 위해 영경당에 신위를 봉안했던 기록부터 볼 수 있다. 광해군 시절에 경희궁을 창건한 후 숙종 대에 대대적인 수리 작업이 있었으니 영경당은 그 이전부터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위선당으로 이름을 바꾸기 전부터 신위를 봉안하는 전각으로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종 때 경복궁 중건사업으로 훼철되었다. 기단은 남아있었으나 이마저도 일제강점기에 헐려서 현재는 위선당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다. 지금의 서울특별시 교육청 자리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4. 형태
위선당은 《서궐도안》에서만 그 형태를 볼 수 있다. 숲과 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행각과 담장에 의해 독립적인 영역을 형성하며, 영광문(靈光門)으로 태녕전과 연결된다. 남쪽에는 장덕문(章德門)을 두었다. 팔작지붕을 한 정면 3칸, 측면 2칸 건물로 묘사되어 있다.
5. 여담
- 위선당의 서쪽에는 영렬천(靈洌泉)이 있는데, 바위 틈에서 항상 찬 물이 나와 '초정(椒井)'으로 불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