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환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고두환은 1894년 1월 1일 함경남도 북청군 대속후면 하천리(현 금호지구 속후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 운동 직후 만주 관전현(寬甸縣)[1] 으로 망명한 후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국내특파원에 임명되어 민양기·이명서(李明瑞)·박기영(朴技榮) 등과 함께 의주·구성 등 평안북도 각지에서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했다.
1920년 8월에는 만주독립단원으로 민양기·이명서·이근영(李根永)·박기수·주의환(朱義煥)·이지표(李芝杓)·원사현·박기영(朴基永) 등과 함께 황해도 송화군 구월산에서 무장독립대를 결성한 후 부근 전역에 독립단 기관을 조직하고 활동을 개시[2] , 같은 해 8월 15일 친일반민족행위자였던 은율군수(殷栗郡守) 최병혁(崔丙赫)을 사살하고 유격전을 전개하던 중 일본 밀정의 밀고로 신천경찰서 일본 경찰과의 교전 끝에 경미한 부상을 입고 체포되었다.
1921년 7월 20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예심이 종결되어 공판에 회부되었으며#
8월 19일 해주지방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언도받고# 평양·경성 두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으며, 그 사이 두 차례 감형을 받아 1932년 12월 15일 오전에 10년 3개월의 옥고를 치른 끝에 만기출옥하였다.#
그러나 옥고의 여독으로 해를 넘기지 못하고 그해 고향에서 병사하였다."구월산에서 경관대와 충돌하야 창상(創傷)을 네곳에나밧고형무소에 수용되엇슬 당시에는 다시세상을 보지못할줄 알엇습니다마는 지금세상과 다시대하게되니 다만감개만 무량합니다
그때에 현장에서 죽은5명과 역시창상을밧고 체포되어 사형을바든사람의 셍각을하니 그때의 사람으로는 나혼자남어잇는 셈이올시다
그동안 가정에 변화도잇섯슴니다 어머니께서는 지난9월에 도라가섯고 안해는 무긔징역을 바덧다는 소식을듯고 개가하얏습니다"
1932년 12월 15일 오전, 고두환이 만기출소하면서 남긴 소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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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