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교우회
高麗大學校 校友會
Korea University Alumni Association
고려대학교 교우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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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대학교 졸업생들의 모임.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동창회. 1907년 1월 보전(普專)친목회 창립으로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1] 고려대 교우회관은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 동북편에 자리잡고 있으며,[2] 그 주소는 서울특별시 성북구 종암로 13 (종암동)이다.[3]
2. 역대 회장
- 황태연 (1954~1956)
- 이병도 (1957~1966)
- 한종민 (1966~1970)
- 김성곤 (1970~1975)
- 김원기 (1975~1985)
- 장덕진 (1985~1989)
- 김일두 (1989~1993)
- 정세영 (1993~1999)
- 구두회 (1999~2003)
- 박종구[4] (2003~2007)
- 천신일[5] (2007~2010)
- 이양섭[6] (2011~2013)
- 주선회 (2013~2016)
- 이학수 (2016~2019)
- 구자열 (2019~ )
3. 명칭에 대해
고려대는 선후배 관계가 무지막지하게 돈독하여, 동문회를 아예 교우회(校友會)라고 부른다. '동문(同門)'이라고 하면 그저 같은 학교 교문을 나왔다는 의미밖에 안 되지만, '교우(校友)'라고 하면 ‘같은 학교의 우애 있는 친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동문을 넘어선 끈끈한 유대관계를 '교우'라고 표현하는 건데, 이는 고려대 특유의 단합과 애교심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참고로 서울대는 '동창회', 연세대는 '동문회'이다.
4. 조직 및 운영
교우회칙에 따른 교우회 가입조건은 비교적 유연하다. 꼭 학부 출신이 아니어도, 대학원을 나왔거나 교직원으로 취직이 되었거나 하면, 명목상으로는 누구나 교우가 될 수 있다. 물론 최고위과정을 밟기만 해도 교우의 자격이 주어진다. 서울캠퍼스, 세종캠퍼스 여부도 가리지 않는다.
본 교우회의 조직을 보면, 각 지역별로, 직장별로 지부가 마련되어있고, 단과대학별로, 출신 고교별로, 학과별로도 교우회 지부가 조직되어있다. 대개의 경우 고려대 졸업생들은 서너군데에서 대여섯군데의 교우회 지부조직에 자동가입되기 마련인데, 그 모든 지부 모임에 다 나가서 얼굴을 비추는 사람도 물론 있지만, 그것은 너무 부담스러우므로 그 중에 한두개 만 골라서 나가는 게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고려대학교 정보대학 졸업, 가톨릭 신자, 04학번 입학, 수원시 거주에 해당하는 사람은 여기 중에서 한두 군데만 나가는 식이 보통이다.
- 정보대학 교우회
- 가톨릭 교우회
- 04학번 동문회
- 교우회 수원지부
또한 매월 <고대교우회보>(구 고우회보)를 편찬하여 모교 소식들을 교우들에게 전달해준다.
고대 교우들 중에서도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불우한 교우들을 위해서나, 후배들을 위해서 거액의 성금이나 장학금을 학교측에 전달하는 경우가 많고 또 그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개인 자격으로 장학금을 기탁하기도 하지만 교우회를 통한 기부도 활발하다. 실제로 고대 교우회는 매년 24억 원씩의 장학금을 모교에 전달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 대학 동창회 장학금으로는 최대 규모다.
그리고 교우회는 모교의 수많은 건물을 짓는 데도 기여했으며,[8] 2014년부터는 교우회 학술상도 시상하고 있다.[9]
장학금 기탁문화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기탁가능 방법으로는 1.현재 계열별 기수금액(수혜장학생 1인 1학기기준)은 1구좌 400만원임 2인이상의 공동명의로도 기탁이 가능하다. 2.기부자가 수혜장학생을 직접 선정할 수 있으며 기부자 개인 또는 법인명의 장학증서를 직접 수여하게 되며 원칙적으로 등록금 전액을 장학금으로 지급하며 기부자 희망시 익명으로도 가능하다.(단 학부에 한하며 의과대학생 및 대학원생은 1구좌 전액 지급) 3. 첨부된 약정서에 선정조건등을 명시하면 모교와 협의해 적정학생을 추천하고 지급교우의 의사에 따라 선정,지급하게 되며 매학기 초 교유회관에서 만찬이 포함된 장학증서 수여식이 진행된다. 4. 개인 또는 법인명의로 장학금을 기부한 교우는 소득세법에 의거해 기부금 공제혜택을 받으실 수 있고 이는 학교를 경유하여 기부증서 발급이 가능하다.
다만 졸업자 명부가 교우회로 넘어가는 것이 좀 템포가 느린 편이다. 자신이 9월부로 코스모스 졸업했다고 해서 9월부로 바로 교우 인증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몇 달 정도의 처리 기간을 기다려야 한다.
5. 활성화와 그 원인
고대의 교우관계가 얼마나 돈독하냐면, 우리나라 각 직장은 물론이고, 해외 각지에도 교우회가 있어 졸업한 선배들이 주기적으로 모인다고 한다. 유럽이나[10] 미국 뿐 아니라[11] 칠레, 아르헨티나등의 남미에까지 있다.
고대 교우회는 굉장한 파워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어디든[12][13] 고대 출신들은 선배가 후배를 끌어주고, 후배가 선배를 밀어준다. 그리고 각종 직장과 단체에서 똘똘 뭉쳐 세력화를 하고 그 집단적 힘을 바탕으로 기득권이나 옳지 않은 것에 저항을 한다. 이렇게 하는 게 고대생들 기질에 잘 맞고, 이러한 단결과 응집이 대한민국 사회 어디서든 꽤 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 나이가 40대, 50대로 접어들면 누구나 인적 네트워크에 목말라 하고,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외로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런데 고대교우회가 그러한 점을 자연스럽게 해소해준다는 측면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고대교우회가 고대출신들에게 워낙 많은 것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심지어 ''''고려대 출신 사장은 부도나도 다음날 고려대에 돈을 기부한다''''라는 유머까지 나돌고 있다.
그리고 이는 사실인 게, 대한민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의 수장이었던 신연희 교우같은 경우 개인적으로 유용한 격려금을 교우회비로 지출한 사실이 밝혀졌다
고려대 교우회가 이렇게까지 활성화된 원인으로는, 고려대생들 대부분이 1960~1980년대에 반독재투쟁을 하면서 함께 데모하고 고생한 기억과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 그 하나가 되고 있다.[14] 그리고 고대 출신들 특유의 활동력과 친화성, 그리고 지적 능력덕분에 우리나라 어디를 가든 고대 출신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포스트를 장악하고 있어서 물질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큰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원인이 된다. 서로 기질도 잘 맞고, 공유되는 기억도 많고, 직장 안팎으로 자기를 보호해줄 인맥도 쌓을 수 있으니, 당연히 교우회가 활성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한국 3대 연고주의 사조직'''[15]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오죽했으면 '''"호남 출신에 해병대를 전역하고 고려대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어디 가서 굶어죽는 일은 없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16]
6. 폐해
고대교우회에 언제나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은 고대교우회에 나갈 때마다 막걸리를 마셔야 한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울 수도 있고, 결혼해서 가정에 충실해야 하는 사람은 수시로 열리는 교우회에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 고대생들의 기질 자체가 워낙 억세고 우악스럽고 거칠기 때문에, 교우회 집단 내에서도 권력투쟁이 많이 일어나며, 정치적 견해가 다른 교우들 간에 감정적 싸움이 일어날 때도 있다.[17]
선배가 끌어주고, 후배가 밀어주는 문화를 악용하여, 개인적으로 야심을 갖고 있는 선배가 교우관계를 빌미로 후배들을 부당하게 혹사시키는 경우도 가끔 있다. 자기 세력을 확장하려는 목적으로, 다른 학교 출신들의 빈축을 받아가며 후배들에게 과도한 특혜를 주었다가 역풍을 맞는 경우도 가끔 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는 고대교우회 모임들 가운데서도 보수적인 성향의 모임들이 수구 기득권세력을 옹호하고 권력형 부패를 조장하며 권력형 비리를 은폐하는 데 동원되거나 개입되었는데, 그로 인해 세인들의 손가락질을 받은 일도 있었다.[18]
그래서 위와 같은 문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교우회 내에서도 진보적인 성향의 모임, 또는 지역의 소규모 교우모임이나 옛 동아리 OB 모임 같은 소박한 분위기의 만남자리에만 나간다. 심지어는 교우회를 아예 안 나가는 사람도 있다. 그 외에도 직장 내에서 야심이 별로 없는 사람이거나, 생존경쟁이 별로 안 치열한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별로 아쉬울 것이 없기 때문에, 고대교우회에 잘 안 나가게 된다.
특히 고대 졸업생들 가운데서도 학자, 예술가에 속하는 부류들은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므로, 고대교우회를 기피하는 경향이 좀 있다. 고대 졸업생이지만 사회적으로 별로 성공하지 않은 사람들 역시, 고대교우회, 특히 중앙에서 화려하게 개최되는 단과대학 교우회나 총회 등에는 안 나간다. 그 대신에 지방의 소규모 모임이나, 아니면 교회, 성당 등에 더 잘 나간다.
[1] 고대신문 (2019.11.24.) : 모든 연령층이 참여하는 고대인 통합의 장으로 (변화하는 사회 속 교우회가 나아갈 방향)[2] 당시 교우회장이던 정세영 현대차 사장이 건립 기금 90억원을 모아 지은 것이다.[3] 6호선 고려대역 2번 출구로 나오면 쉽게 찾아갈 수 있다.[4] (주)삼구 창업주.[5] 세중나모여행 창업주.[6] 명신산업 창업주.[7] 고려대 교우들은 럭셔리한 분위기에서 잘 안 노는 분위기다. 대중음식점 같은 데서 싸게 먹고 마시기 때문에 비싼 회비를 낼 필요가 없다. 물론 교우회에다가는 50만 원의 꽤 비싼 평생회비를 내야 한다.[8] 건물들 뿐만 아니라 서관 시계탑과 교문 역시 교우들의 기부로 만들어진 것이다.[9] 모교인 고려대학교의 학문수준 향상과 연구역량 강화를 위해 인문사회부문, 자연이공부문, 보건의약부문 3개 부문에서 높은 연구업적을 이룬 모교 교수 3명을 선정해 시상한다.[10] 2009년 4월 18일 이후 고대교우회 유럽총연합회로 조직되어 있다. 창립총회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개최하였다. 홈페이지도 있다. http://www.kuaa.eu/ [11] 미주교우회의 경우 회원 숫자가 1,500명에 달한다. 고려대학교 미주교우회 홈페이지도 당연히 있다. http://www.kuamerica.org/ [12] 고대 출신은 없는 곳이 없다. 심지어 타 대학 로스쿨에 진학한 사람들도 거기서 교우들끼리 모임을 가지는데, 그만큼 고대 출신들이 다방면으로 진출하기에 그렇다.[13] 로스쿨만 한정해서 보면 해당 로스쿨 자교 학부 출신보다 고대 출신이 더 많은 곳도 있다. 안 그래도 잘 뭉치는데 사람마저 많으니...[14] 물론 한때 그렇게 열심히 데모하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기성세대가 된 이후 완전히 보수화되었다. 그러면서도 왕년의 데모경력을 무용담처럼 얘기한다는 것은 아이러니...[15] 고려대학교 교우회, 해병대 전우회, 호남향우회.[16] 실제로 저러한 점을 생각하고 해병대 가는 호남 출신 고대생들이 의외로 꽤 많다.[17] 이로 인해, 교우들 간에 서로 도움이 되지는 못할망정 서로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는 경우도 꽤 있으니...[18] 실제로 근래 고대교우회의 보수화는 매우 심각한 정도라고 할 수 있다. 한때 교우회 홈페이지 메인화면에는 태극기를 배경으로 한 이명박 교우의 사진이 게재된 적도 있었다. 교우회 내에는 ‘이명박을 좋아하는 모임’도 있었다. 고대교우회 사이트나 고대교우회보는 성공한 교우들의 인적 사항과 동정만 잘 드러내놓고, 노동운동을 하거나 반체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울타리 밖으로 내몰아버린다. 이명박 선배가 이명박 라운지를 만들고, 오세훈 선배가 후배들의 초청 강좌에 참석한다는 내용 등이 실제로 고대 교우회보의 주요 기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