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향우회
湖南鄕友會.
호남 바깥 객지에서 고향이 같은 전라도인 사람들끼리 만나서 애향심을 매개로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 단체. 지역 향우회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으며, 실제로도 타 지역 향우회를 압도하는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세계 도처에 퍼져 있지만 가장 활성화된 곳은 아무래도 서울이다.
원래 지역 자생적으로 발생한 만큼 뚜렷한 구심점 없이 여러 단체가 난립했다. 주로 동 단위로 발생하여 구 단위로 통합 발전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전라도 지역민들이 오래 전부터 자리잡은 구로, 영등포와 강북의 구 성저십리 지역에서 먼저 크게 발달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의 호남향우회는 조직이 매우 크고 강해 해당 지역에 사는 비호남인들도 호남향우회 조직의 영향력을 크게 실감한다고 한다.
처음에 호남향우회라는 것은 외부에서 생각하는 단순히 동질적인 집단만은 아니었다. 각 지역에서 이주해 들어온 호남인들이 자발적으로 형성했던 만큼 원래는 서로 독립된 조직이었다. 또 처음에는 재경광주향우회, 재경전북향우회 등 전라도 내에서도 출신 지역끼리 다른 단체를 설립하기도 했다. 이런 초기 호남향우회의 흔적이 지금도 많이 남아 있는 것이 서울 도처에 존재해 있는 사숙(기숙사)[1] 이다. [2]
이후 지역별로 자체적으로 통합, 재분열을 거듭하며 여러 단체가 난립하게 되었는데, 호남향우회가 본격적으로 통합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바로 DJ의 등장 이후이다. 호남향우회들이 통합해 나가기 시작하고 1980년대 이후 지속적인 통합이 진행되어 2006년 '전국호남향우회'가 출범해 중앙집권적 형태를 갖췄다. 그러나 이후 정치성향 문제로 2010년 나눠진다. 현재 전국조직을 표방한다고 주장하는 호남향우회는 '전국호남향우회 중앙회', '전국호남향우회 총연합회 중앙회', '전국호남향우회 총연합회' 3개이다.
물론 대한민국의 다른 지역들도 타지에서 영남향우회, 호서(충청)향우회 등 향우회를 조직하지만, 아직까지도 호남향우회는 유독 전국, 세계 어디에나 있다는 식의 정보가 클리셰처럼 알려져있다. 그야말로 향우회의 대명사. '''해병대전우회, 고려대학교 교우회 등과 더불어 한국의 3대장 단체로 꼽힌다.'''[3] 그야말로 혈연, 학연, 지연의 최고봉으로 인정받는 조직들. 심지어 서울 등 비호남권 웬만한 대학들에도 알게 모르게 공식적 단체든 비공식적 모임이든 다 있다시피 하다. 간혹 기숙사 규모가 큰 경우 기숙사에도 호남향우회 모임이 있는 경우도 있다.
"왜 호남향우회는 전세계에 다 있죠?"
전라남도청 홈페이지의 해외 호남향우회 목록
실제로 호남향우회가 미국 소도시나 멕시코, 네덜란드, 독일, 필리핀 등 세계 각지에 공식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며, 구글 검색결과로도 호남향우회가 타 지역 향우회보다 수 배 이상 압도적으로 검색결과가 많기도 하다. 그러나 공식적인 단체가 아니다보니 구체적으로 타 지역과의 정확한 세 비교는 어려운 실정이다. 해외에 나가서도 한인회 활동보다는 호남향우회 활동을 열심히 한다는 식으로 지역드립에 악용되기도 한다.[4]
특히 노원구[5][6] , 구로구, 은평구, 금천구, 관악구[7][8] , 도봉구, 강북구[9] 등지에서 호남 출신이 상당히 많은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결속력이 강한 이유는 과거 노원구와 관악구는 호남 출신이 모두 다 75% 정도까지였다고 한다. 2020년 8월 30일 기준으로 노원구와 관악구의 호남 출신은 각각 41%, 44%정도로 줄어든 편이라 할지라도[10] , 노원구에 호남 출신이 더 많이 살게 된 이유는 호남 사람들이 노원구가 집값이 싸고 쾌적하여 상당히 좋은 곳이기 때문에 노원구에서 더욱더 결속력을 크게 발휘할 것이라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호남 지역민의 정치적 성향이 매우 뚜렷한 관계로, 호남향우회가 정치적으로도 상당히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단은 김대중의 당선에 큰 기여를 했기에 동교동계와의 연관점 역시 적지는 않다. 다만 친노와는 조금 척을 진 상태긴 하다.
단 ‘전국호남향우회 총연합회 중앙회’는 박근혜 지지 선언을 할정도로 친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다.[11]
이처럼 큰 세력으로 인해서 서양의 일루미나티급 흑막으로 매도되기도 한다.
세상사 예외라는 게 있는 법인지, 간혹 지역에 따라선 호남향우회의 영향력이 압도적이지 않은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인천광역시(충청향우회).[12][13] 다만 인천 역시 정치 성향은 서울경기와 비슷한 우촌좌도다.
1. 개요
호남 바깥 객지에서 고향이 같은 전라도인 사람들끼리 만나서 애향심을 매개로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 단체. 지역 향우회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으며, 실제로도 타 지역 향우회를 압도하는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세계 도처에 퍼져 있지만 가장 활성화된 곳은 아무래도 서울이다.
원래 지역 자생적으로 발생한 만큼 뚜렷한 구심점 없이 여러 단체가 난립했다. 주로 동 단위로 발생하여 구 단위로 통합 발전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전라도 지역민들이 오래 전부터 자리잡은 구로, 영등포와 강북의 구 성저십리 지역에서 먼저 크게 발달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의 호남향우회는 조직이 매우 크고 강해 해당 지역에 사는 비호남인들도 호남향우회 조직의 영향력을 크게 실감한다고 한다.
2. 역사
처음에 호남향우회라는 것은 외부에서 생각하는 단순히 동질적인 집단만은 아니었다. 각 지역에서 이주해 들어온 호남인들이 자발적으로 형성했던 만큼 원래는 서로 독립된 조직이었다. 또 처음에는 재경광주향우회, 재경전북향우회 등 전라도 내에서도 출신 지역끼리 다른 단체를 설립하기도 했다. 이런 초기 호남향우회의 흔적이 지금도 많이 남아 있는 것이 서울 도처에 존재해 있는 사숙(기숙사)[1] 이다. [2]
이후 지역별로 자체적으로 통합, 재분열을 거듭하며 여러 단체가 난립하게 되었는데, 호남향우회가 본격적으로 통합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바로 DJ의 등장 이후이다. 호남향우회들이 통합해 나가기 시작하고 1980년대 이후 지속적인 통합이 진행되어 2006년 '전국호남향우회'가 출범해 중앙집권적 형태를 갖췄다. 그러나 이후 정치성향 문제로 2010년 나눠진다. 현재 전국조직을 표방한다고 주장하는 호남향우회는 '전국호남향우회 중앙회', '전국호남향우회 총연합회 중앙회', '전국호남향우회 총연합회' 3개이다.
3. 분포
물론 대한민국의 다른 지역들도 타지에서 영남향우회, 호서(충청)향우회 등 향우회를 조직하지만, 아직까지도 호남향우회는 유독 전국, 세계 어디에나 있다는 식의 정보가 클리셰처럼 알려져있다. 그야말로 향우회의 대명사. '''해병대전우회, 고려대학교 교우회 등과 더불어 한국의 3대장 단체로 꼽힌다.'''[3] 그야말로 혈연, 학연, 지연의 최고봉으로 인정받는 조직들. 심지어 서울 등 비호남권 웬만한 대학들에도 알게 모르게 공식적 단체든 비공식적 모임이든 다 있다시피 하다. 간혹 기숙사 규모가 큰 경우 기숙사에도 호남향우회 모임이 있는 경우도 있다.
"왜 호남향우회는 전세계에 다 있죠?"
전라남도청 홈페이지의 해외 호남향우회 목록
실제로 호남향우회가 미국 소도시나 멕시코, 네덜란드, 독일, 필리핀 등 세계 각지에 공식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며, 구글 검색결과로도 호남향우회가 타 지역 향우회보다 수 배 이상 압도적으로 검색결과가 많기도 하다. 그러나 공식적인 단체가 아니다보니 구체적으로 타 지역과의 정확한 세 비교는 어려운 실정이다. 해외에 나가서도 한인회 활동보다는 호남향우회 활동을 열심히 한다는 식으로 지역드립에 악용되기도 한다.[4]
특히 노원구[5][6] , 구로구, 은평구, 금천구, 관악구[7][8] , 도봉구, 강북구[9] 등지에서 호남 출신이 상당히 많은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결속력이 강한 이유는 과거 노원구와 관악구는 호남 출신이 모두 다 75% 정도까지였다고 한다. 2020년 8월 30일 기준으로 노원구와 관악구의 호남 출신은 각각 41%, 44%정도로 줄어든 편이라 할지라도[10] , 노원구에 호남 출신이 더 많이 살게 된 이유는 호남 사람들이 노원구가 집값이 싸고 쾌적하여 상당히 좋은 곳이기 때문에 노원구에서 더욱더 결속력을 크게 발휘할 것이라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4. 정치
호남 지역민의 정치적 성향이 매우 뚜렷한 관계로, 호남향우회가 정치적으로도 상당히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단은 김대중의 당선에 큰 기여를 했기에 동교동계와의 연관점 역시 적지는 않다. 다만 친노와는 조금 척을 진 상태긴 하다.
단 ‘전국호남향우회 총연합회 중앙회’는 박근혜 지지 선언을 할정도로 친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다.[11]
이처럼 큰 세력으로 인해서 서양의 일루미나티급 흑막으로 매도되기도 한다.
5. 예외(?)
세상사 예외라는 게 있는 법인지, 간혹 지역에 따라선 호남향우회의 영향력이 압도적이지 않은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인천광역시(충청향우회).[12][13] 다만 인천 역시 정치 성향은 서울경기와 비슷한 우촌좌도다.
[1] 호남 출신의 우수한 고교생, 대학생들의 서울 유학을 돕기 위해 호남 지역 자치단체와 재경 호남향우회가 조직, 운영하고 있는 기숙사다.[2] 현재 서울의 사숙들은 서울의 자치구 단위가 아닌 호남의 자치구 단위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서울의 호남향우회들이 주로 서울의 행정구역에 맞게 통합, 정비된 상태이기 때문에 현재 사숙의 운영 주체는 전라도 지역 군청이 맡는 경우가 보통이고 여기에 해당 지역 호남향우회들이 서포트해주는 형식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3] 이 때문에 농이긴 하지만 호남 지방에서 태어나 고려대를 졸업하고 해병대까지 나왔다면 대한민국에서 연결되지 못 할 사람은 없다는(...) 말도 있다.[4] 이런 지역드립 때문에 검색결과가 폭증하는 경향도 있다.[5] 전체 인구의 41%가 호남 출신. 서울에서 순천시, 여수시 출신이 가장 많이 거주한다. 그러나 그래도 서울에서 전라북도 출신이 가장 많이 거주하며, 노원구 전체 인구 비율의 23%가 전북 출신이다. 전북 출신들도 노원구 상계동에 가장 많이 살고 싶어한다고 하는 게 어떤 사람의 인터뷰에서 밝혀졌는데 실제로 그렇다. 전주시를 비롯하여 전라북도 전체 지역의 출신 인구가 가장 많고 이 지역에서 등록된 차량들을 상당히 많이 볼 수 있다. 또 노원구는 서울에서 호남 출신 비율이 2위이며, 1위는 당연히 관악구이다.[6] 당연히 이로 인해 전북도민회 노원구지회의 회원이 이로 인해 다른 자치구에 비해 가장 많은 편이다.[7] 전체 인구의 44%가 호남 출신. 서울에서 호남 출신이 노원구와 더불어 1위이며, 가장 많이 거주한다. 1960~1970년대의 판자촌 시절에는 호남 출신이 80~90%에 육박했으며, 노원구 또한 호남 출신이 75%에 육박했다고 하는 호남향우회의 고문의 증거가 이를 뒷받침한다.[8] 다만, 노원구와 달리 관악구의 경우에는 호남 출신이 서울에서 전라남도 출신이 가장 많은 편이다. 그 한편, 노원구의 경우에는 전라북도 출신이 가장 많은 편이다.[9] 강북구도 호남 출신이 노원구 못지않게 제법 많다. 약 34~35%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삼양동, 미아동, 수유동에 상당히 많이 거주했는데 미아뉴타운 개발로 인해 최근엔 제법 줄어든 편에 속한다.[10] 몇 년 전에는 37% 였으나 현재는 40%를 넘는다고 한다. 정확히 41%라고 한다. 오승록 구청장, 김성환 구청장이 당선되었고, 해남 출신인 정의당 주희준 시의원, 정읍 출신인 서기팔 구의원 및 전남 출신인 봉양순 구의원 및 강진 출신인 김치환, 김생환 의원은 호남 출신에게 굉장한 지지를 많이 받고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젊은 호남 출신들이 앞으로 계속해서 노원구에서 살 예정이라고 밝혔기 때문에 노원구의 민주당 지지세가 앞으로 계속해서 상당히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11] 위에 언급된 것과 같이 친노의 수장인 문재인보다는 호남계, 동교동계와 유화적이던 박근혜를 지지한 것으로 보인다. 당장 호남계, 동교동계에서 보수 성향 또는 더 심한 친박 극우 세력으로 갈아탄 인물들이 많은데 그 예가 한광옥, 한화갑, 김경재, 장성민 등등 꽤나 많은 편이다.[12] 출신자들도 충청이 호남에 비해 여전히 수적으로 많고 충청도 출신들은 이주한 지 오래되거나 정착한 사람들이 많은 반면 호남 출신들은 충청 출신 출향인에 비해 늦게 인천에 정착해 실질적인 영향력 차이는 훨씬 크다. 특히 인천은 충청도 출신자들이 영향력만큼이나 텃세도 심해서 그나마 향우회 조직이라도 있는 호남에 비해 영남은 향우회 조직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할 정도로 세력이 미약하다. 실제로 수도권에서 영남 출신, 특히 부울경 출신자들의 비율이 가장 낮은 곳이 인천이다. 부울경 출신자의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다름아닌 강남3구.[13] 정작 인천광역시에서 황해도, 경기북부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가장 많은데 문제는 북한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여기는 향우회 조직이 크지를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