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쿠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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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전형적인 에도 시대 중후기 최고위 귀족이 출사할 때 입을 법한 정장이다. 쓴 관은 일본의 관모인 스이에이노칸이다. 오른손에 쥔 홀은 일어로 샤쿠[1] 라고 하며, 겨드랑이에 낀 흰 물체는 메모장이다. 여기에 타치까지 차면 완전한 일본 귀족의 정장이 된다.
束帯
옛 일본의 전통의상 겸 관복으로, 중국 당나라 때 관복인 단령(團領)이 일본에서 변형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일본에서 이 복식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헤이안 시대 초반인 800년대로 보이는데, 메이지 유신을 거치며 서양식 양장으로 궁정 복식이 교체될 때까지 약 천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일본의 관복으로 착용되었다. 나라 시대에서 헤이안 초기때 까지 입어온 당나라식 복두와 단령이 사라진 이후 상술한 칸무리와 함께 에도시대 때 까지 입어온 전통적인 공가의 정장이었다.
소쿠타이는 흉배나 장식이 없기 때문에 색깔과 무늬로 관위를 가리는데, 검은색이 최상위급에 해당한다. 실제로 초상화들을 보면 정이대장군들은 거의 절대다수가 검정 관복을 착용했다. 역대 천황들이나 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은 흰색 소쿠타이를 입기도 하였다.
물론 처음 이 복식이 등장했던 무렵에는 오늘날 전해져 오는 형태와는 약간의 차이점이 있었지만, 10세기 무렵에는 현전하는 형태로 완성되었다. 관두의에 가까운 면이 있는 데다가, 옷깃과 여민 형태만 빼면 단령과 형태가 많이 비슷하기 때문에 단령의 일본판 변형으로 보는 의견이 다수이지만, 이것은 제일 겉에 입는 호(袍)의 형태만 보고 판단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소쿠타이의 상의는 제일 안쪽에 홑옷인 히토에(単), 그 위에 아코메(袙), 그 위에 시타가사네(下襲), 다시 그 위에 한피(半臂)를 입고 맨 겉에 호(袍)를 입는 것이 정식이었고, 하의는 속옷 위에 오오구치바카마(大口袴), 그 위에 오모테바카마(表袴)의 두 겹의 하카마(袴)를 입도록 되어 있었다. 머리에는 칸무리(冠)라 불리는 관모를 쓰고 나무비녀로 고정시켰으며, 허리춤은 세키타이(石帯)라고 불리는 가죽띠를 둘러서 고정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단령같은 상복(조선 등 중화권의 관복)에 해당하는 호에키(봉액) 위로는 허리띠로 쿄를 고정하는데 쿄는 엄청나게 길기 때문에[2] 평상시에는 늘어뜨려 놓는 것이 정석이지만 걸어다닐 때는 질질 끌리기 때문에 종자나 하인이 허리띠에 삼단으로 묶어줘야 한다. 또한 출사할 때는 정장에 의전용 타치와 샤쿠(홀), 품 속에 끼는 작은 메모장이 한 세트다. 다만 타치는 아무데서나 차고 다닐 수는 없고 널리 알려져있다시피 지위가 높거나 고위 인물의 심복일 경우 그 앞에서도 칼을 찰 수 있었다.
이렇듯 많은 옷을 겹치고 겹쳐서 껴입는 옷이기 때문에 습한 여름에는 굉장히 덥다. 그래서 어깨 부분이 칼집을 낸 듯 트인 것이다.
특이한 점은 앉아서 샤쿠를 쥐고 초상화에 나오는 자세를 계속 유지한다는 것인데 중국이나 한국, 베트남 등에서는 홀이 곤복, 조복 등 의례용 복장이 나오는 행사에서나 쓰이는 물건임을 생각하면 이쪽이 예외적 케이스다.
메이지 유신 이후 복제가 개혁되어 귀족들의 정장이 소쿠타이에서 군복으로 넘어간 이후(물론 패전 이후 그런 거 없지만) 지금도 일본/황실 등은 행사 때 가끔 입으며 일반인도 결혼식이나 체험 때 입기도 한다. 하지만 가격이 비싸기로 유명한 기모노 중에서도 한화로 기본 '''십수억'''은 호가할 정도로 비싸기 때문에 무조건 대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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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초상화의 정석으로 꼽히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초상화. 칸무리는 스이에이노칸이다.
일본의 오래된 초상화들을 보면 무슨 해병대가 다린마냥 죄다 칼같이 딱딱 각이 잡힌 모습인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근대 이후 찍힌 사진을 보면 그냥 주름이 잡힌 평범한 의상 같다.
사진은 전형적인 에도 시대 중후기 최고위 귀족이 출사할 때 입을 법한 정장이다. 쓴 관은 일본의 관모인 스이에이노칸이다. 오른손에 쥔 홀은 일어로 샤쿠[1] 라고 하며, 겨드랑이에 낀 흰 물체는 메모장이다. 여기에 타치까지 차면 완전한 일본 귀족의 정장이 된다.
1. 개요
1. 개요
옛 일본의 전통의상 겸 관복으로, 중국 당나라 때 관복인 단령(團領)이 일본에서 변형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일본에서 이 복식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헤이안 시대 초반인 800년대로 보이는데, 메이지 유신을 거치며 서양식 양장으로 궁정 복식이 교체될 때까지 약 천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일본의 관복으로 착용되었다. 나라 시대에서 헤이안 초기때 까지 입어온 당나라식 복두와 단령이 사라진 이후 상술한 칸무리와 함께 에도시대 때 까지 입어온 전통적인 공가의 정장이었다.
소쿠타이는 흉배나 장식이 없기 때문에 색깔과 무늬로 관위를 가리는데, 검은색이 최상위급에 해당한다. 실제로 초상화들을 보면 정이대장군들은 거의 절대다수가 검정 관복을 착용했다. 역대 천황들이나 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은 흰색 소쿠타이를 입기도 하였다.
물론 처음 이 복식이 등장했던 무렵에는 오늘날 전해져 오는 형태와는 약간의 차이점이 있었지만, 10세기 무렵에는 현전하는 형태로 완성되었다. 관두의에 가까운 면이 있는 데다가, 옷깃과 여민 형태만 빼면 단령과 형태가 많이 비슷하기 때문에 단령의 일본판 변형으로 보는 의견이 다수이지만, 이것은 제일 겉에 입는 호(袍)의 형태만 보고 판단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소쿠타이의 상의는 제일 안쪽에 홑옷인 히토에(単), 그 위에 아코메(袙), 그 위에 시타가사네(下襲), 다시 그 위에 한피(半臂)를 입고 맨 겉에 호(袍)를 입는 것이 정식이었고, 하의는 속옷 위에 오오구치바카마(大口袴), 그 위에 오모테바카마(表袴)의 두 겹의 하카마(袴)를 입도록 되어 있었다. 머리에는 칸무리(冠)라 불리는 관모를 쓰고 나무비녀로 고정시켰으며, 허리춤은 세키타이(石帯)라고 불리는 가죽띠를 둘러서 고정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단령같은 상복(조선 등 중화권의 관복)에 해당하는 호에키(봉액) 위로는 허리띠로 쿄를 고정하는데 쿄는 엄청나게 길기 때문에[2] 평상시에는 늘어뜨려 놓는 것이 정석이지만 걸어다닐 때는 질질 끌리기 때문에 종자나 하인이 허리띠에 삼단으로 묶어줘야 한다. 또한 출사할 때는 정장에 의전용 타치와 샤쿠(홀), 품 속에 끼는 작은 메모장이 한 세트다. 다만 타치는 아무데서나 차고 다닐 수는 없고 널리 알려져있다시피 지위가 높거나 고위 인물의 심복일 경우 그 앞에서도 칼을 찰 수 있었다.
이렇듯 많은 옷을 겹치고 겹쳐서 껴입는 옷이기 때문에 습한 여름에는 굉장히 덥다. 그래서 어깨 부분이 칼집을 낸 듯 트인 것이다.
특이한 점은 앉아서 샤쿠를 쥐고 초상화에 나오는 자세를 계속 유지한다는 것인데 중국이나 한국, 베트남 등에서는 홀이 곤복, 조복 등 의례용 복장이 나오는 행사에서나 쓰이는 물건임을 생각하면 이쪽이 예외적 케이스다.
메이지 유신 이후 복제가 개혁되어 귀족들의 정장이 소쿠타이에서 군복으로 넘어간 이후(물론 패전 이후 그런 거 없지만) 지금도 일본/황실 등은 행사 때 가끔 입으며 일반인도 결혼식이나 체험 때 입기도 한다. 하지만 가격이 비싸기로 유명한 기모노 중에서도 한화로 기본 '''십수억'''은 호가할 정도로 비싸기 때문에 무조건 대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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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초상화의 정석으로 꼽히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초상화. 칸무리는 스이에이노칸이다.
일본의 오래된 초상화들을 보면 무슨 해병대가 다린마냥 죄다 칼같이 딱딱 각이 잡힌 모습인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근대 이후 찍힌 사진을 보면 그냥 주름이 잡힌 평범한 의상 같다.
[1] 실제로 중국, 한국, 베트남, 류큐 등 타 유교권에 비해 압도적으로 크다...[2] 가문의 권위에 따라 길이와 무늬가 결정되는데 에도시대 최고위급 공가의 경우 정말 길어서 몇 미터는 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