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법
觀心法
1. 원래의 뜻
불교의 마음 수련법 가운데 하나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성찰해 본래 자신의 마음자리로 돌아가는 것.
2번 문단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은 타심통이라고 부른다. 다만 2번 문단이 너무 유명해지면서 대중적으로는 2번 뜻으로 많이 쓰인다. 옴 마니 반메 훔 또한 2번 문단처럼 다른 의미로 유명해진 경우라고 간주해도 무방하다.
2. 궁예가 스스로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던 초능력
궁예가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한 초능력으로, 볼 관(觀), 마음 심(心), 즉 남의 생각을 읽어내는 능력이다. 정확히는 고려사에서는 '미륵관심법'이라 기록되어 있고 삼국사기에서는 '신통력'이라 불렀다. 궁예는 스스로 이것이 있어서 역심을 품은 사람의 마음을 모두 꿰뚫어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실은 그런 거 없고 정적 제거에 아주 유용하게 써먹기 위한 핑계거리에 불과했지만(...). 왕건도 이 관심법에 휘말린 적이 있었으나, 최응이 반역을 계획했다고 거짓 자수하라고 넌지시 알려준 덕분에 자신이 역심을 품었음을 순순히 인정하였고, 이에 흡족한 궁예가 오히려 정직하다고 하면서 용서했다고 전한다. 만약 여기서 인정하지 않았다면 고려라는 나라가 나오지 못할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물론 궁예에겐 그가 총애하던 신하인 왕건의 목숨을 거둘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궁예는 이후 아무렇지 않게 '''해군 증강 계획'''을 왕건과 논의하는데, 당시 태봉의 해군은 사실상 송악의 호족이었던 '''왕건의 사병'''이었다. 즉, 궁예는 2인자 왕건에게 전적으로 힘을 실어 주는 동시에, 보여주기 식으로나마 적당히 겁을 줘서 대외적으로 왕권을 강화하려 했던 것이다. 그 방식이 너무 조악해 시간이 갈수록 더 큰 부작용만 낳았을 뿐.[1] 실제로 임용한 박사가 <전쟁과 역사> 1권에서 이를 지적한 바 있다.
정리하자면 궁예의 관심법 운운은 아마도 왕권 강화책의 일환이었던 듯하며, 자신의 왕권에 도전하는 자들에게 한 암묵적 경고의 뜻이라고 추측된다. 다만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그냥 '아 왕이 미쳐가는구나.' 정도로 해석될 수준이었던 게 문제. 자세한 것은 궁예 문서 참조.
2.1.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관심법...관심법이라... 그렇지. 도를 깨닫고, 일정한 경지에 이르면 참 나를 돌아볼 수 있다 하였다. 옳은 말이다. 나를 본다. 그리고 상대를 본다. 그리고 천하를 본다. 그렇다. 이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볼 수 있는 것이다. 고요히 입정에 인해 있으면 참으로 깨달은 자는 다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관심법이 아닌가? 관심법... 관심법이라... 내가 여태 왜 이거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고... 관심법이라... 관심법..."
— 태조 왕건 69화 중에서 궁예의 독백
드라마 전반부 타락한 궁예의 필살기로 등장한다. 궁예가 타락하기 한참 전에 이 능력이 언급된 적이 있는데, 송악왕궁 공사에 보급이 늦어지자 종간은 패서 호족들을 불러모아 질타하면서 '대왕폐하께서는 살아있는 미륵이자 부처이시며 천리를 내다보는 눈을 가지고 있어 누가 거짓 충성을 하고 누가 다른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다'고 말한다(25화). 물론 이는 생색만 내지말고 공사에 재물을 아끼지 말라는 소리이지, 궁예가 초능력자라는 뜻은 아니지만.그동안, 짐은 중생들을 가엾이 여겨 모든 것을 순리로써 대해 왔소이다. 그러나 이젠 그렇지 않을 것이오
난 내가 지은 경전의 법에 따라 그 이치를 깨닫게 할 것이요 그리고 지금 까지는 쓰지 않았던 '''관심법을 동원 하여''' 흑과 백을 가리고 정의와 불의를 갈라 내어 진리의 세상을 천하에 드러낼 것이외다.
짐의.. 미륵 관심법으로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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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조 왕건 69화 중에서 궁예가 주요 조정 인사들을 모아놓고 관심법을 사용할 것을 선언하며
널리 알려진 그 관심법은 68화 법회 신에서 궁예가 잠깐 언급하는 것으로 첫 등장하였고, 다음화인 69화에서 본격적으로 궁예가 관심법을 언급하기 시작한다. 69화에서 궁예가 관심법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으로 보아, 68화에서 관심법을 언급한 것은 진짜로 궁예가 마음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라기보단, 일종의 협박의 의미였다고 볼 수 있다. 이후 궁예를 암살하려 한 첩자들을 심문할 때 강렬하게 등장 신을 보임으로서, 방영 당시 거의 인터넷 유행어 비슷한 트렌드가 되었다. 당시 궁예하면 옴 마니 반메 훔, 신하들을 때려죽일 때 쓰던 법봉(法棒)과 함께 연상되는 아이콘이었다. 작중 드라마에서 궁예가 관심법을 상대에게 공포심을 심어주려는, 또는 원하는 대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다 보니, 궁예의 관심법은 주변 인물들의 사망 플래그라고 봐도 무방했다. 예외적으로 궁예가 원하는 대답을 거짓으로라도 해준 상대(자신들은 백제에서 왔다고 밝힌 첩자, 그리고 왕건)는 살려주기도 했지만. 왕건의 경우 원인이 역모 및 모반 혐의였는데 당시 이는 즉결 처형당해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왕건을 살려준 의미를 해석해보자면 역모보단 자신의 상징성이 더 중요했다는게 아닌가하는 해석도 있다.
다만 이미 정황 증거가 확실할 때 죄인들의 자백을 다그치는 데는 나름대로의 효과를 보여주었다. 최승우의 사주를 받은 양길의 옛 부하들 중 한 명으로부터 자백을 받아 왕건을 구해낼 때가 그랬고,[2] 강장자를 죽일 때에도 관심법 운운은 거짓이었다 해도 역모 자체는 사실이었기 때문에 앞선 2명이 죽어나가는 걸 본 강장자가 겁에 질려 뒤늦게 자신의 소행을 실토하기도 했다. 아지태의 역모가 사전에 발각된 것도 그 일당 중 일부가 궁예의 관심법을 두려워하여,[3] 사전에 밀고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면에서는 분명 어느 정도의 효과는 있었다. 하지만 북벌을 밀어붙이려고 신료들을 다그칠 때 기침한 신하를 트집 잡아 죽이거나, 나중에는 황후와 두 태자까지 죽이는 등 인심을 크게 잃을 짓을 많이 했기에 따져보면 주변인물은 물론 본인에게도 큰 화를 초래했다. 결국 이 드라마에서 궁예가 남발한 관심법의 본질은 불교의 대단한 깨달음이나 진실 따위와는 전혀 상관없이 '''원하는 대답을 얻어내기 위해 공포감을 조장하는 조잡한 방식'''에 불과하며 극중에서 궁예의 아집과 독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라 할 수 있다. 100번 양보해서 좋게 봐준다면 사람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일 수는 있다.
유일하게 관심법으로부터 무사했던 건 주인공인 왕건으로 황후와 태자들의 처형 후 왕건에게 모반을 생각했냐고 추궁하자 최응이 실록에서처럼 몰래 붓을 떨어트린 후 줍는 척 하여 인정하고 용서를 빌라고 조언하자 왕건은 죄를 청하였다. 그러자 궁예는 흡족해하며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한 후 쿨하게 넘어가준다.
태조 왕건 드라마가 끝난 이후로도 독심술 비슷한 것을 가끔 관심법이라고 부르는 때가 있다. 거기에 한 술 더 얹어서 아예 궁예질[4]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궁예질이라는 단어는 드라마가 끝난 지 10년도 더 넘은 2010년대에도 활발하게 쓰이고 있다. 궁예 본인이 역사적인 사이비 종교인인지라 앞으로도 오랫동안 쓰일 듯...
남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매력적인 능력이라 서브컬처에서 자주 나온다. 다만 보통은 이런 능력을 독심술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런 캐릭터 중 몇몇은 국내에서 궁예와 엮인다.[5] 자세한 내용은 독심술 문서를 참조.
3. 같이보기
[1] 연산군의 예시에서 보듯이, 이런 대응하기 모호한 위협은 오히려 '저 놈 말 한마디에 내가 죽을 수 있다는거잖아. 그렇게 죽느니 차라리 왕을 바꿔치울까?' 같은 불순한 생각을 심어주기 매우 좋다.[2] 나머지 양길의 부하들은 끝까지 자백을 안 했기에, 결국 금대의 철퇴에 맞아 절명했다.[3] 특히, 그 당시 궁예가 관심법을 쓰다가 석총의 환영이 아녀자들 사이에 나오는 것을 보고 그 아녀자들을 대량으로 학살하는 것을 보았던 상황이었으니...[4] 예를 들자면 연예인 등이 SNS 등지에 올라온 글이나 사진만 보고 '이건 이런 의도로 올린 것일 것이다' 식으로 해석하는 것. 주로 이런 행위를 까는 용도로 쓰인다.[5] 대표적으로 코메이지 사토리. 이쪽은 궁토리라는 별명까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