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변
1. 정의
詭辯(詭弁) / Sophistry
궤변은 얼른 들으면 옳은 것 같지만 실은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을 억지로 둘러대어 합리화시키려는 허위적인 변론을 일컫는 말이다. 상대방을 속여 참을 거짓으로, 거짓을 참으로 잘못 생각하게 하거나, 또는 거짓인줄 알면서도 상대방이 쉽게 반론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사상적 혼란과 감정이나 자부심 등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궤변은 처음부터 어떤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목적을 위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쉽게 말해서, '''말다툼에서 이기기 위한 말장난'''이다.
궤변의 원어인 Sophistik 란 낱말은 그리스의 궤변학파에서 나온 말이며 궤변학파는 본디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뜻으로 오늘날의 궤변을 뜻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것이 후세에 이르러 목적을 위해 '논리적인 규범을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둘러댄다'는 뜻으로 변했다. 동양에서는 명가(名家)의 학자 공손룡(公孫龍)의 '견백론(堅白論)'이나 '백마비마론(白馬非馬論)' 등이 궤변의 좋은 예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백마비마론은 아래 예시에도 적혀 있다.
다양한 궤변의 종류는 논리적 오류/비형식적 오류에 상세히 나와있다. 다양한 궤변의 예시는 유사과학, 유사역사학, 음모론 문서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궤변을 잘 하는 사람을 소피스트(Sophist), 즉 ''''궤변론자(詭辯論者)'''' 혹은 '궤변가'라고 하는데 이는 기원전 5세기부터 기원전 4세기에 걸쳐 출세를 위해 필요한 변론술과 백과사전식 지식을 가르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그리스 전역을 돌아다닌 지식인을 뜻한다.
2. 예시
-예전 중국 고대의 춘추 전국 시대에는 수많은 학자들이 많은 학파(學派)를 이루고 있었다. 이 가운데 명가(名家)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교묘한 궤변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들의 궤변은 이런 식이었다. 여러 가지 색깔을 사람들에게 보여 준 뒤, 흰색은 색이 아니라고 하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들이 말했다. "자! 여러분의 말대로 흰색은 색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흰말은 말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네가 만약 살 운명이라면 약 같은 것을 쓰지 않아도 살 것이고, 반대로 죽을 운명이라면 아무리 좋은 약을 쓴다 해도 결국은 죽게 된다. 그런데 너는 살 운명에 있느냐 죽을 운명에 있느냐의 그 어느 쪽에 있다. 그러므로 어차피 살려고 바둥바둥할 필요가 없고 약을 쓸 필요도 없다.[1]
-어떤 사람이 남의 소를 훔쳐 갔다. 관가에서 그를 잡아다가 왜 남의 소를 훔쳐 갔느냐고 신문(訊問)하였다.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제가 길을 가는데, 길에 웬 쓸 만한 노끈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노끈을 주워 가지고 집으로 간 것뿐입니다. 소는 잘 모릅니다." 길에 떨어진 노끈을 주웠는데, 노끈에 소가 매어져 있는 줄은 몰랐다. 그러니까 소를 훔치려 한 것이 아니고 소를 못 본 것뿐이니, 죄가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2]
[3]
-자유가 존중 받아야 한다면, '자유를 억압할 자유' 역시 존중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참가하는 것에 의의가 있다면, 참가하지 않는 세력에 참가하는 것도 의의가 있을 것이며 무슨 일이든 경험이라 할 수 있다면,
경험하지 않는 경험에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오히려 누구나가 경험하는 것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역으로 귀중하다 할 수 있다.[4]
어떤 사람이 환자를 데리고 의사에게 찾아와 진찰을 요구했다. 그는 환자가 죽든 살든 큰 돈을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결국 죽고 말았다. 그러자 그 사람이 의사 선생께서 환자를 죽이셨냐고 묻자 의사는 아니라고 답했다. 이번엔 살리셨냐고 묻자 의사는 살리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그럼 살리지도 죽이지도 않으셨으니 돈을 드릴 수 없군요''' 라고 답했다.[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