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야역
金野驛 / Kŭmya S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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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라선의 철도역. 함경남도 금야군 금야읍 소재. 1977년 5월 청년역이 되었다.
원래 이 일대의 이름은 영흥(永興)이었고 따라서 역 이름도 '''영흥역(永興驛)'''이었다. 함흥차사의 유래가 된 박순이 죽었다는 영흥강(용흥강)이 바로 여기에 있다. 때문에 원산만(元山灣)이 영흥만으로도 불리는 것. 그리고 현재는 금야만으로 불리고 있다.
유래가 참 거시기한데 금야라는 것은 김일성의 작명이었다. 1975년경 김일성이 영흥이라는 지명의 유래[1] 를 듣고 당장 이름을 바꾸라고 지시했던 것.
군 남쪽으로 빠지는 짤막한 지선 철도(금야선)가 여기에서 분리되어 나간다. 길이 8.7km(혹은 7.8km).
영흥 평야가 있는 군 남쪽에 중심지가 있다 보니 금야군의 중심역인 이 역도 금야군 남쪽에 치우쳐 있다.
인흥역 방면으로 금야역을 출발하자마자 꽤 긴 다리가 놓여져 있다. 길이 약 600m.
조선교통사 1권 376쪽에 따르면 고종이 조상에 묘지에 가고 싶었으나 교통이 불편해 못가고 있었다고 한다. 1916년 9월에 문천~영흥 구간을 개통해서 고종이 방문했지만, 고종이 다리가 약해서 묘소까지 가지는 못하고 영흥역 플랫폼에서 멀리 영흥천 하류 우안의 울창한 숲을 향하여 절을 올리고 돌아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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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평라선의 철도역. 함경남도 금야군 금야읍 소재. 1977년 5월 청년역이 되었다.
2. 상세
원래 이 일대의 이름은 영흥(永興)이었고 따라서 역 이름도 '''영흥역(永興驛)'''이었다. 함흥차사의 유래가 된 박순이 죽었다는 영흥강(용흥강)이 바로 여기에 있다. 때문에 원산만(元山灣)이 영흥만으로도 불리는 것. 그리고 현재는 금야만으로 불리고 있다.
유래가 참 거시기한데 금야라는 것은 김일성의 작명이었다. 1975년경 김일성이 영흥이라는 지명의 유래[1] 를 듣고 당장 이름을 바꾸라고 지시했던 것.
군 남쪽으로 빠지는 짤막한 지선 철도(금야선)가 여기에서 분리되어 나간다. 길이 8.7km(혹은 7.8km).
영흥 평야가 있는 군 남쪽에 중심지가 있다 보니 금야군의 중심역인 이 역도 금야군 남쪽에 치우쳐 있다.
인흥역 방면으로 금야역을 출발하자마자 꽤 긴 다리가 놓여져 있다. 길이 약 600m.
3. 여담
조선교통사 1권 376쪽에 따르면 고종이 조상에 묘지에 가고 싶었으나 교통이 불편해 못가고 있었다고 한다. 1916년 9월에 문천~영흥 구간을 개통해서 고종이 방문했지만, 고종이 다리가 약해서 묘소까지 가지는 못하고 영흥역 플랫폼에서 멀리 영흥천 하류 우안의 울창한 숲을 향하여 절을 올리고 돌아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