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야역

 

金野驛 / Kŭmya Station
'''금야역'''

'''다국어 표기'''
영어
Kŭmya
한자
金野
중국어
일본어
クミャ
'''주소'''
함경남도 금야군 금야읍
'''역 등급'''
(함흥철도총국)
'''운영기관'''
평라선

금야선
'''개업일'''
함경선
1916년 9월 21일
금야선
197?년 ??월 ??일
'''철도거리표'''
평양 방면
현 흥
← 7.4 ㎞
'''평라선'''
금 야
라진 방면
인 흥
8.4 ㎞ →
기점

'''금야선'''
금 야
풍남 방면
풍 남
8.7 ㎞ →
1. 개요
2. 상세
3. 여담

[clearfix]

1. 개요


평라선의 철도역. 함경남도 금야군 금야읍 소재. 1977년 5월 청년역이 되었다.

2. 상세


원래 이 일대의 이름은 영흥(永興)이었고 따라서 역 이름도 '''영흥역(永興驛)'''이었다. 함흥차사의 유래가 된 박순이 죽었다는 영흥강(용흥강)이 바로 여기에 있다. 때문에 원산만(元山灣)이 영흥만으로도 불리는 것. 그리고 현재는 금야만으로 불리고 있다.
유래가 참 거시기한데 금야라는 것은 김일성의 작명이었다. 1975년경 김일성이 영흥이라는 지명의 유래[1]를 듣고 당장 이름을 바꾸라고 지시했던 것.
군 남쪽으로 빠지는 짤막한 지선 철도(금야선)가 여기에서 분리되어 나간다. 길이 8.7km(혹은 7.8km).
영흥 평야가 있는 군 남쪽에 중심지가 있다 보니 금야군의 중심역인 이 역도 금야군 남쪽에 치우쳐 있다.
인흥역 방면으로 금야역을 출발하자마자 꽤 긴 다리가 놓여져 있다. 길이 약 600m.

3. 여담


조선교통사 1권 376쪽에 따르면 고종이 조상에 묘지에 가고 싶었으나 교통이 불편해 못가고 있었다고 한다. 1916년 9월에 문천~영흥 구간을 개통해서 고종이 방문했지만, 고종이 다리가 약해서 묘소까지 가지는 못하고 영흥역 플랫폼에서 멀리 영흥천 하류 우안의 울창한 숲을 향하여 절을 올리고 돌아왔다고 한다.

[1] 조선왕조가 영원히 흥하라는 뜻. 원래는 고려의 화주였다가, 몽골(원나라)로 넘어갔다가, 공민왕 때 되찾고 다시 화령이 되었다. 이성계의 고향으로 이성계나 국호로 쓰니마니 했던 곳. 여담으로 금야군은 영흥 평야가 있어서 그런지 인구 21만으로 북조선 군 가운데 네임드의 인구를 자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