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곤

 


'''김진곤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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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등번호 64번'''
조용섭(2006)

'''김진곤(2009)'''

이상백(2010~2011)
<color=#373a3c> '''KT 위즈 등번호 8번'''
한상일(2014)

'''김진곤(2015~2019)'''

이창재(2020)


[image]
'''이름'''
김진곤(金進坤 / Jin-Gon Kim)
'''본관'''
김해 김씨 삼현파[1]
'''생년월일'''
1987년 9월 10일 (37세)
'''출신지'''
인천광역시
'''학력'''
인천서흥초-동산중-동산고-제주산업정보대학[2]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2009년 신고선수 입단 (SK)
'''소속팀'''
SK 와이번스 (2009~2010)
고양 원더스 (2012~2014)
kt wiz (2014~2019)
'''응원가'''
이승철 - 오늘도 난[3]
노브레인 - Make It big[4][5]
'''가족'''
누나 김미경[6], 아버지 김바위, 매형 전준우
1. 소개
2. 선수 경력
2.1. kt wiz 시절
2.1.1. 2017 시즌
2.1.2. 2018 시즌
2.1.3. 2019 시즌
3. 연도별 주요 성적
4. 여담


1. 소개


kt wiz 소속의 야구선수.

2. 선수 경력


아마추어 시절은 기사 한 줄 없을 정도로 정말 평범한 선수였다. 그러나 SK 와이번스의 신고선수로 프로에 입문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SK에서 전력분석원으로 활동하던 부친 김바위의 영향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원래 포지션은 내야였고, 우투우타였지만 SK에 있으면서 좌타로 전향하게 되었다. 물론 이 당시 김진곤의 기량은 썩 좋지 않았던지라, 당연히 2년 정도 2군에 있다가 조용히 팀에서 사라졌고, 그 뒤로는 현역으로 입대하여 군 복무를 마쳤다.
제대 후에도 야구에 대한 미련이 남았는지, 고양 원더스의 문을 두드렸고, 2012년부터 2014년 7월까지 원더스에서 뛰면서 외야수로 활약했다. 포지션이 외야로 변경된 것도 원더스의 일이었다.

2.1. kt wiz 시절


교류전 30경기에서 30도루를 기록한 김진곤의 발을 주목한 kt wiz가 그를 영입하면서 다시 프로 무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원더스가 2014년 말을 끝으로 사라졌기 때문에 김진곤은 원더스 존속 당시 최후로 프로 무대로 진출한 선수로 기록되게 되었다.
2015 시즌 초반에는 퓨처스리그에서 활약했지만, 김사연의 부상 이후 콜업되어 백업 요원으로 뛰고 있다. 빠른 발과 수비력으로 주로 김민혁과 경기 후반에 교대되어 뛰거나 간간히 주전으로 나오는 정도의 활약이다.
2016년에는 퓨처스리그에서 87타수 44안타로 '''5할 타율'''을 보이는 무력시위 끝에 6월에 콜업되었으나, 안타 하나 치고 두 달만에 말소되었다.

2.1.1. 2017 시즌


2017년 시즌에는 소식이 없다. 1, 2군 모두 보이지 않는 중. 그러다가 4월 22일, 퓨처스 리그에서 중견수로 선발 출장했다.
4월 25일 모넬, 전민수, 주권 등이 1군에서 말소되면서 1군에 콜업되어 선발 출장했다. 3번째 타석에서 내야안타를 치면서 17년 1군 첫 안타를 쳤다.
두 경기에서 선발 출장하여 2경기 5타수 1안타를 기록하였고, 그 이후의 2경기에서는 대수비로 출장하였다.
결국 6경기에서 6타수 1안타를 기록하고 5월 4일 2군으로 내려갔다.
이 선수도 2군 본즈의 느낌이 난다. 2016년 시즌에 2군에서는 4할 3푼 9리라는 고타율에 4홈런 16도루에다 장타율이 6할 대나 되고 중심타선을 자주 맡았으나, 1군에 와서는 주로 대수비나 대주자로 나오고, 선발로 출장해도 발만 빠르고 똑딱이스러운 타격질을 해서 내야안타를 노리는 이대형의 하위호환 모습밖에 안 보여 주고 있다. 17년 시즌도 마찬가지. 17경기에서 홈런 2개 도루 4개로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1군에서는...
9월 1일 약 5개월만에 1군 콜업되어 대수비로 1이닝 뛰었다.
9월 2일 이진영의 대수비로 출장하여 2타석 1타수 1안타 1볼넷 1타점 2득점을 기록하였다. 이 1안타는 '''2'''년 만의 '''2'''루타이자 통산 '''2'''번째 '''2'''루타였다.
9월 3일 거의 4개월만에 2번 타자 좌익수로 선발 출장했다. 이날 5타수 3안타 1타점 2득점으로 맹활약했다. 아쉬운 것은 3안타 모두 내야안타 1개 포함 단타였다는 것. 그래도 타율이 4할을 넘겼다!!
퓨처스리그 남부리그 타율 3위를 기록했다. 타율 1위는 같은 팀의 유민상.
9월 5일 3타수 무안타 2삼진으로 부진하다가 4번째 타석에서 투런 홈런을 치면서 1군 통산 1호 홈런을 쳤다! 데뷔 9년차인 31살에[7] 처음으로 홈런을 쳤다. 참고로 최고령 데뷔홈런 기록과는 100일 정도 차이가 난다.[8]
그 후로 선발로 몇 번 나오다가 연속되는 무안타 행진으로 인해 대주자/대수비 요원으로 강등당했다.
10월 1일 기아전에서 대주자로 올라온 이후 8회말에 무려 15명이나 타석에 올라오는 상황에서 타석에 두 번이나 올라와서 첫 타석에는 안타를, 두번째 타선에서는 2호 쓰리런 홈런을 때려냈다. 팀은 20 대 2로 대승을 거두었다.

2.1.2. 2018 시즌


작년에 외야 백업 멤버들 중에서는 그나마 괜찮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더 못한 성적을 기록했던 김동욱하준호가 1군 스프링캠프 명단에 포함된 것과는 달리 전민수와 함께 2군에서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또 2군에서 3할에 도루왕 경쟁을 하다가 5월 26일 임시선발이었다가 부진했던 김용주가 2군으로 내려가면서 1군에 올라왔다.
6월 7일 경기 이후 다시 1군에서 말소.

2.1.3. 2019 시즌


4월 20일 사직 롯데전 9회초에 손승락을 상대로 역전 적시타를 쳐냈으나 김재윤이 9회말에 오윤석에게 동점홈런을 맞으면서 빛이 바랬다...
7월 27일 김민혁의 부상으로 콜업되었다. 28일 수원 LG전에서 안타와 호수비 를 기록하였다.
7월 30일 수원 한화전에 나와 4타수 2안타 1타점을 기록하며 결승 타점의 주인공이 되었다.
시즌 후 보류 명단에 포함이 되었으나 2019년 12월 4일 kt가 유원상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로스터에 제외되어 방출됐다. 김진곤이 다른 팀에서 기회를 잡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며 먼저 방출을 요청했고, 이에 구단에서도 김진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 보류권을 풀어줬다고 한다.
그러나 새 팀을 구하지 못했다. 조용히 은퇴할 듯.

3.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장타율
출루율
2009
SK
1군 기록 없음
2010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장타율
출루율
2015
kt
67
85
.212
18
1
0
0
6
11
4
0
.224
.221
2016
13
8
.125
1
0
0
0
0
1
0
0
.125
.125
2017
28
39
.282
11
1
0
2
8
9
1
1
.462
.300
2018
19
21
.143
3
1
0
0
0
4
0
2
.190
.217
'''KBO 통산(4시즌)'''
127
153
.216
33
3
0
2
14
25
5
3
.275
.236

4. 여담


  • 누나가 롯데 자이언츠 소속 전준우의 아내이다. 즉 전준우와는 매형과 처남 관계이기도 하다. 장성호를 제외하면 kt에 대해 빠삭하게 아는 해설위원이 없다 보니 kt 합류 초기에는 김진곤만 등장하면 모든 해설위원 입에서 시간 죽이려고 처남 이야기가 나와서 kt팬들이 질려하기도 했다고.
  • 아버지 김바위SK 와이번스의 전력분석원을 역임했다. 김진곤은 프로 데뷔 이전에는 이렇다 할 경력이 없었는데, 이 때문에 SK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던 것이 아버지의 입김 덕분이 아니었냐는 추측도 있다.
[1] 삼현파 22세손, 수로 70세손 "坤" 항렬, 정치인 김무성과 항렬이 같다. 동갑인 김현수의 할아버지뻘이다.[2]제주국제대학교.[3] kt wiz 김진곤 화이팅 kt wiz 워어어어어어어 kt wiz 김진곤 화이팅 하나되어 kt wiz 워어어어 (×2)[4] 김진곤 김진곤 김진 곤! 곤! 곤! KT wiz 김진곤! 김진곤 김진곤 김진 곤! 곤! 곤! 안타를 날려라~(×2)[5] 이현곤, 이종환, 박찬호KIA 타이거즈 시절 응원가와 동일하다.[6] 전준우 선수의 아내이다[7] 김진곤은 초대졸이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년이 아닌 3년 만에 프로에 간 걸 보면 유급했거나 1년 날린 듯.[8] 이 기록 보유자는 바로 대주자 역할만으로 1군에서 살아남았던 강명구. 통산 1홈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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