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브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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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펑크 록 밴드. 홍대 인디 신 1세대 밴드 중 하나이며, 크라잉 넛과 함께 '''조선 펑크의 개척자'''라고 불린다.
2. 발자취
노브레인의 역사는 기타리스트 차차(차승우)의 탈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전기와 후기의 노브레인은 다른 밴드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2.1. 전기
1996년 10월 결성하여, 1998년까지 드럭에서[2]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그 이후 드럭을 나와 레이블 문화사기단을 설립, 2000년 경 서태지가 컴백했을 때 그의 행동을 비판하며 레이블의 이름을 내걸면서까지 서태지 안티 공연을 개최하기도 했다. 이에 서태지 팬들은 "그저 이름 좀 날려보기 위해 하는 쇼"라면서 역으로 비판했다. #
2001년에는 일본 후지 록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했다. 당시 일본의 역사교과서 문제를 비판하고자, 준비해온 욱일기를 멘트 도중에 찢고 애국가를 열창했다. 이 퍼포먼스는 MBC 뉴스데스크에도 나오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자세한 건 항목 참조.
이때의 노브레인을 더 알고 싶다면 이 인터뷰를 참고하는 것도 좋다.
초기 팬클럽의 이름은 No brain에서 -in을 뺀 이름.
참고로 올드팬들은 이 시기의 노브레인에서 차승우의 영향력을 빗대어 차브레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2. 후기
2002년 차승우가 탈퇴함과 동시에 정통 펑크 록에서 대중성이 가미된 스타일로 탈바꿈하게 된다. 실제로 3집에선 청춘의 분노와 탄식을 노래하던 기존 성향의 노래를 찾아볼 수 없다. 지금은 문화 사기단도 사라지고 노브레인도 록스타뮤직앤라이브 소속. 3.5집에 수록된 "넌 내게 반했어"가 유명해지면서 대중들에게 음악적인 존재감이 각인되기 시작했다.
라이브 공연에만 몰두하던 이전에 비해 TV나 영화 등 대중매체 출연이 잦아졌다. 2006년에는 멤버 4명이 '''영화''' 라디오 스타에 출연하여 여러 밴드의 패러디를 보여주는 등 열연하였다. 2009년 7월에는 무한도전에 출연해 노홍철과 같이 돌브레인으로 올림픽대로 가요제에 참가하였다. 2010년 8월에는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 스타에도 출연했다. 2011년에는 KBS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인 TOP밴드에 코치로 출연했다.
행사에서는 나름 인지도가 있어서 연 200회 가량의 공연을 뛴다고 한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기원 행사도 뛰었다.
여담으로 엄청난 수원 삼성 블루윙즈 팬으로도 알려져 있다. 공식 응원가부터가 노브레인의 'Little Baby'를 개사한 '나의 사랑 나의 수원' 일 정도고, 수원 홈경기 때 경기장 밖의 문화공간에서 공연을 하는 일도 많고...
나는 가수다와 오페라스타에서 섭외 요청이 왔었다고 한다. 윤도현도 나가수에 이들을 추천하기도 했었으나, 야생 본능이 있어서 순위를 가르는 프로그램은 별로라며 전부 거절했다고 한다.
2019년 8월 14일 라디오 스타(황금어장) 방송분에서 일본 활동 당시 욱일기를 찢고 애국가를 불렀다는 이야기를 풀었다.#
2020년 10월 28일 제11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표창상을 수상했다.
3. 평가
3.1. 음악노선 변경
평가도 차승우 탈퇴 이전과 이후가 판이하게 다르다. 탈퇴 전에는 한국 펑크 록을 이끌어갈 전설의 시작으로 여겨졌다. 그렇게 많은 팬들이 기대하고 있었으나... 노브레인이 성향을 뜯어고친 이후 자신들이 까던 서태지가 무색할 만큼 상업성에 편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팬들이 안티로 돌아섰다.'''
차승우의 탈퇴가 결정적이었다. 노브레인이 방향을 틀기 전까지 사실상 노브레인은 차승우 밴드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차승우의 영향력이 막강했다. 사실 음악의 노선 변경은 차승우의 색을 버리기 위한 남은 멤버들의 선택이라고 봐야 한다. 이는 그들이 후에 인터뷰한 내용에서 알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브레인이 특히 까이는 이유는 이들이 언더그라운드판에서 시작한 밴드였으며, 새로운 펑크 음악의 계승자로써 주목받았던 상황에서 갑자기 상업성이 짙은[3] 음악을 시도하면서 언더계를 배신했다는 점이다.
이렇게 변치 않는 청춘과 투쟁을 노래해온 그들이었기에 그 후폭풍은 더 컸다. 게다가 이들과 자주 얽혔던 크라잉 넛의 경우 자신들의 색채를 유지한 채 꾸준히 달려온 것과 비교되면서 더욱 까이고 있는 현실이다.[4]차갑게 부는 바람 매섭는가 해도 뜨겁게 끓는 피는 삭히지는 못한다
흐르는 땀에 절인 내 마음의 고통 아무리 더 한다고 해도
계속된 치열한 그 싸움 속에 더 이상 일어설 수 없다고 하여도
절망감이 널 위해 두 손을 뻗쳐 일어나게 해주진 않는다네
가슴 속에 그려진 고통들을 지워버리고 두 눈을 지그시 감고
깊은 마음 속의 투혼을 목 터질 듯 불러보리라
아~~ '''나 이맘 영원하리라'''
- 투혼
그러나 언더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메이저로 올라오면서 인디정신을 가지고 계속 음악을 하기가 쉽지 않으며, 하필이면 이들이 벗어버리고자 했던 음악이 하필이면 급진적인 펑크였기 때문에 이들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욕설을 얻어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도달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대중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 대중성을 더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있으면서도 사회적인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뿌리는 뮤지션들도 얼마든지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차승우 탈퇴 이후의 한계로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5] 초기부터 음악을 들어왔던 팬들에게는 심한 배신감을 들게 하는 변화임은 분명하며, 올드팬들은 차승우의 탈퇴 이후 怒 브레인[6] 이 진짜 No 브레인이 되었다고 한탄하기도 한다.
그리고 일이 터졌다. 17대 대선 당시 '넌 내게 반했어'가 한나라당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후보였던 이명박 대한민국 대통령의 홍보 로고송으로 쓰이게 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로고송이 TV 및 대중 매체에 나가게 되자 노브레인 공식 홈페이지에 항의글이 빗발치며 난리가 났으며, 올드 인디팬들은 "애초에 니네들 변절한 이후부터 기대도 안 했지만 이젠 아주 막 나가는구나?"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럴만도 한 것이 락 음악의 역사에 있어서 보수정권이 가져다 준 폐해[7][8] 를 생각해보면 반감이 드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물론, 정치성향이라는 게 어떤 것이 좋다 나쁘다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이들은 1999년에 EP앨범 "청춘구십팔"을 냈을 때만 해도 보수정권에 엄청난 반감을 갖고 있었다. 이는 수록곡 "아주 쾌활한"의 가사에 잘 나타난다.
과거에 이런 노래가사로 분노와 저항을 세일즈 포인트(?)로 삼아왔던 그들이었기에, 올드 팬들은 제대로 배신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노브레인의 오랜 친구이자 문화적 동료였던 '김작가' 조차 칼럼을 통해 이러한 노브레인의 행보를 '나이테 없는 성장’이라고 비판했다. "그래, 노브레인은 변했다". 그러나, 노브레인 측에선 이 사태를 방관하고 정규 5집 발매기념 콘서트 정보를 뿌리는 등 이리저리 대답을 회피했다.문민정부, 좆 까는 소리.
문민정부란 개소리는 개한테나 줘 버려라.
김영삼, 신이 선택한,
이제는 니가 니가 돈 벌어 먹기 바쁘구나.
국민을 위한 정부, 떠벌리고 다니더니
이제는 니가 니가 배가 처 불렀구나.
니가 어떻게 하든지 난 잘 모르겠다만,
너는 정말 잘 못하고 있어.
'''씨발 청와대!'''
'''씨발 노동부!'''
'''씨발 안기부!'''
(후략)
그리고, 앨범이 발매되고 홍보를 해야 할 시기가 되고서야 인터뷰를 통해 노브레인 측에서 '누구나 우리의 노래를 선거 유세곡으로 쓸 수 있도록 했는데 한나라당 측에서 먼저 연락이 왔고, 그래서 계약을 했다'라고 해명 아닌 해명을 했다. 결국, 인터뷰 이후 사건이 다시 이슈화가 되자 홈페이지에 '실망시켰다면 미안해. 그런데 우린 그렇게 생각이 깊은 놈들이 아니야'라는 내용의 글을 남겼다.
사실, 올드팬들 입장에서는 이게 더 화가 나는 말이다. 결국 이것은 자신들이 세상을 비판했던 노래들이 아무 생각도 없이 떠들어댄 불평에 불과하다는 의미인데, 그렇다면 그 시절 자신들의 노래에 공감했던 과거의 팬들도 역시 머저리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태와 비교되는 사례를 하나 꼽자면, 원더걸스의 'Tell Me'도 로고송으로 쓰일 뻔했던 사례가 있었다. 당시 'Tell Me'는 전국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는데, 당연히(!) 몇몇 정당에서 선거 로고송으로 쓰고 싶다는 요청이 쇄도했었다. 그러나, JYP 측에서는 로고송으로 쓰지 못하게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고 아무도 쓰지 못하도록 못을 박아놓았다. 이유인즉 원더걸스 멤버들의 선거권이 없다는 이유였다. 사실 선거권 핑계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이며[9] , 실제 이유는 아무래도 정치성향에 휘말리지 않게 하기 위한 박진영의 선택으로 보인다.
3.2. 怒[10] 브레인 팬 vs No브레인 팬
3집부터 시작된 대중화 노선 이후의 노브레인 팬들은 이러한 비판에 대한 반론으로 "이는 그동안의 노브레인은 차승우의 영향 아래에 있었지만 차승우가 탈퇴한 이상 굳이 올드팬들이 그토록 외치던 차승우의 스타일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위의 비판 항목을 제대로 읽어 봤다면 알겠지만 노브레인에 대한 기존 팬들의 비판은 단순히 음악적 스타일의 변화, 특정 멤버의 탈퇴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과거 노브레인은 단순히 가수가 아닌 펑크 문화 공동체의 리더에 가까운 포지션을 취해왔다. 그리고 자신들의 음악적 이념을 '조선펑크'라 칭하며 이 이념을 함께하는 펑크 밴드들을 '문화사기단'이라고 불렀다.
그랬던 그들이 어느날 갑자기 기존의 이념들을 모두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리고 노골적으로 상업화 노선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노브레인 올드 팬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리더들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커뮤니티 구성원들이 그간 공유해온 이념과 사상이 하루아침에 공허한 헛소리가 되어 버렸고, 더 나아가 '굴레를 모두 걷어치우고 들풀처럼 일어서라'라고 노래하던 그들이 '즐기지 못하는 넌 찌질이'라며 대놓고 기존의 음악과 팬들을 부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바뀌었는데 방송에 나가서는 '팬들과 함께' '20년간 한결같이', '야생, 야성' 운운하는 no브레인의 위선에 기존의 팬들은 배신감을 느끼고 분노(怒)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에게 '부조리에 분노하고 저항하라'고 가르친 것은 다름아닌 怒브레인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노브레인이 밟아온 상업화 과정이 자신들이 비판해왔던 목소리만 크고 책임감은 없었던 기존 세대의 부조리한 모습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했다는 것이다.
이런 급격한 변화 때문에 "차승우가 탈퇴한 후 노브레인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새롭게 출발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의견도 있다[11] . 지금도 인터넷을 뒤지다보면 노브레인의 행보를 비판하는 올드팬들과 그것을 부당한 비판이라며 거꾸로 비판하는 사람들이 대립하는 양상을 볼 수 있다.모두가 그렇게 말만 많았지
모두가 그렇게 사라져갔지
~
세상을 바꾸겠다고 떠들던 이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
너희들의 창백했던 고함소리는
어디로 갔는지 들리지 않고
휑한 겨울하늘 뜬구름만이
- 98년 서울
3집 이후 팬들은 올드 팬들의 노브레인에 대한 모든 비판을 일종의 텃세로 취급하고 있다. 하지만 올드 팬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것은 일리있는 주장은 고사하고 '빠심에서 비롯된 맹목적인 두둔'에 불과하다. 우선 노브레인의 커뮤니티에서 쫓겨난 것은 오히려 기존의 팬들이었다.
과거 노브레인은 지지 기반을 다지기 위해 홍대 펑크 밴드의 연대인 '문화사기단'을 결성하였고, 노브레인의 커뮤니티는 특정한 가수의 팬페이지를 넘어, 인디 펑크컬쳐 커뮤니티의 역할을 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펑크 팬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왔다.
그 대표적인 예로 노브레인 역시 서태지 1집 당시 '상업화된 가짜 록 VS 저항하는 진짜 인디 펑크 록'의 갈등 구도를 만들어 언론의 주목을 받을 때 '펑크 매니아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명분을 쌓기 위해서 커뮤니티에서 문사단의 밴드들과 조선펑크의 팬들을 적극적으로 선동했다.
그러나, 노브레인이 상업화 노선을 본격적으로 선언한 이후 이용 가치가 떨어진 기존의 팬들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논리에 밀려서 그동안 쌓아온 추억을 뒤로하고 쫓겨나듯 커뮤니티를 떠나야 했다. 오히려 "차승우 스타일이 마음에 들면 차승우에게 가면 된다"라며 텃세를 부린 것은 노브레인을 등에 업은 신규 팬들이었다.
그리고 당장 이 문서의 비판 항목을 읽어봐도 알겠지만 기존의 팬들은 노브레인이게 특정한 음악적인 색깔을 강요하며 신규 팬들에게 부심을 부리는 것이 아니다. 기존 팬들의 비판은 이명박 로고송 사건 등으로 이미 '입으로만 저항한다'는 것이 드러난 그들이 여전히 방송에 나가서는 '20년 동안 변함없이' '야생' '야성'같은 소리를 한다는 점이다.
이렇듯 10여년이 넘도록 怒브레인 시절의 팬들과 No브레인의 팬들 사이에 갈등이 끝나지 않는 것은 자기 반성이나 성찰 없이 과거의 유산을 그대로 끌어다 쓰려는 노브레인의 이중적인 태도가 끊임없이 올드 팬들의 어그로를 끄는 탓이 크다. 차라리 노브레인이 팝펑크 밴드 선언을 한다면 모를까, 이러한 기존 팬과 이후 팬들의 갈등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차승우도 과거 노브레인 시절의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아닌 와중에, 애초에 차승우가 코어였던 과거 노브레인의 스타일을 현 노브레인이 차승우 없이 이어나간다는 것도 애시당초 불가능하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되짚어 봐야할 것은 올드팬들이 차승우의 음악적 변화에 대해선 대체로 호의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올드팬들이 노브레인에게 실망한 부분이 음악적 변화가 아니라 태도의 변화였다는 방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종종 비교 대상이 되는 크라잉넛 팬들에게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앞서 얘기된 것처럼 크라잉넛 역시 20년 동안 조금씩 음악적 변화를 거쳐왔다. 하지만 음악적 변화 속에서도 그들은 유쾌한 동시에 사회비판적인 메시지를 한결같이 유지하며 사회적 참여 활동을 지속해왔다. 그래서, 대부분의 팬들은 크라잉넛의 음악적 변화를 변절이 아닌 발전으로 생각하며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2016년 7집에서 '엄마 난 이 세상이 무서워 (2016ver.) (feat. JTONG)'을 발표하면서 과거에 보여줬던 노브레인 특유의 비판적인 음악을 다시 부활시켰다.
2016년 11월 26일 제5차 민중총궐기 촛불집회에서 공연했다. 올드 팬들의 평가는 조금은 긍정적이다. 올드팬 입장에서 그동안 초심을 잃은 듯한 행보를 보여주었지만 이번 촛불집회를 계기로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약간은 돌아간 듯한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그동안 입다물고 있다가 막타 한 타 치는 것으로 이미지 청산이나 꾀하는 거 아니냐?'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던 와중 차승우가 활동 중인 더 모노톤즈 단독콘서트 홍보영상에 노브레인의 추천사가 있었고 팬들은 설마 화해무드인가 했던 것이 며칠 뒤 2016년 12월 24일 노브레인 20주년 콘서트에서 결국 일이 벌어졌다. 차승우가 노브레인의 이름으로 14년만에 무대에 올라 청춘98과 바다사나이를 연주하는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하였다.차승우는 "20년 펑크 외길을 달려온 노브레인에 존경을 표한다."고 멘트를 남겼다.[12]
3.3. 표절 논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4집의 수록곡인 '미친듯 놀자'의 MV는 미국의 펑크락 밴드 Bowling For Soup의 'Punk Rock 101'의 MV와 유사하다. 참고로 Bowling For Soup의 'Punk Rock 101'은 2002년, 노브레인의 4집은 2005년에 발매 되었다.
Bowling For Soup - Punk Rock 101
노브레인 - 미친듯 놀자 (1:10부터 비교해 보자)
4. 음반
4.1. 정규 앨범
- 1집 怒[13][14] (2000년)
- 2집 Viva No Brain (2001년)
- 3집 안녕, Mary Poppins (2003년)
- 3.5집 Stand up Again! (2004년)
- 4집 Boys, Be Ambitious (2005년)
- 5집 그것이 젊음 (2007년)
- 5.5집 Absolutely Summer (2009년)
- 6집 High Tension (2011년)
- 7집 BRAINLESS (2016년)
- 8집 직진 (2019년)
4.2. 기타 음반
- Smells like Nirvana(1997년)[15]
- Our Nation 2[16] (1998년)
- 청춘구십팔 (EP) (1999년)
- Never Mind the Sex Pistols Here's the No Brain[17] (2001년)
- 광복 60주년 독립군가 다시 부르기 - 앞으로행진곡
- INTO The K리그 (2010년) - Here is the glory[18] , We are the one
4.3. 응원가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Little Baby[19][20]
- FC 안양 - 청년폭도맹진가[21][22]
- 강민호 - 넌 내게 반했어[23][24]
- 고종욱 - 슛돌이[25][26]
- 서동욱 - Rock It Rocket[27]
- 서건창 - 승리를 향해[28]
- 김주형 - 그것이 젊음
- 박찬호 - Make It Big[29]
- kt wiz - 나는 재수가 좋아
- NC 다이노스 - Come on Come on 마산스트리트여[30] , 미친듯 놀자
- 권용관(LG 트윈스 한정) - Oh my friend[31]
- 양현종 - 연
- 이명기 - 별이 되어[32]
- 박한이 - Radio Radio[33]
5. 멤버
5.1. 현재 멤버
- 보보(정민준)
노브레인의 기타리스트.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 출생. 원래는 하드코어 밴드인 삼청교육대에서 기타를 치고 3.5집 발매 이전에 세션을 거쳐 정식 멤버로 가입하였다. 라디오 스타에서 폭발적인 예능감을 보여주기도 했다. 특이사항으로는 금색을 좋아하며 '넌 내게 반했어'를 작곡했다. 디자인 및 그래피티에도 상당한 재능이 있는 듯 하여 친밀한 관계인 GMC Records 소속 아티스트들의 앨범 디자인을 해주기도 한다.
같은 명의를 쓰는 뮤지션이 있으나 이쪽의 실명은 백창열이며, 권용만의 동창으로 과거 비싼트로피 사단에 소속되었던 또다른 인디뮤지션이다. 당연히 노브레인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 흉가(황현성)
노브레인의 드러머.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 출생. 이성우와 함께 노브레인의 초창기부터 활동한 멤버. 전 멤버인 차승우, 정재환과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이고 노브레인의 전신 Cry Baby 시절부터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짬밥을 제일 많이 먹은 셈. 처음 악기를 잡을 때 기타를 연주하고 싶었으나 키가 작아서 폼이 안 난다는 이유로 드럼을 잡게 됐다. 라디오 스타에 보면 자세히 나온다.
노홍철과는 서울 현대고등학교 선후배 사이. 노홍철이 라디오에서 밝힌 바로는 노홍철이 황현성의 집에 놀러가서 깐풍기도 함께 시켜먹을 정도로 많이 친했다고 한다. 실제로 노홍철은 그 인연 때문인지 2006년에 열린 노브레인 10주년 콘서트에서 게스트로 초대받아 무대에서 써핑을 하기도 했고, 2009년 무한도전 올림픽대로 듀엣가요제에서 함께하기도 했다. 2010년에 결혼을 했다고 함. 범프 오브 치킨의 광팬이란다.
위에 잠시 설명한 대로 공연 중 보컬인 불대갈과 자리를 바꾸어 열창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실력이 수준급이다.
Dolly(달리) 라는 예명으로 1인 밴드를 겸하고있다.
자이언트 펭TV를 통해 EBS의 어린이 음악예능 '랄랄라뿌우'의 음악감독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뽀글(정우용)
노브레인의 베이시스트.
서울출생이나 출생 후 부모님과 함께 대전광역시로 이사. 버닝햅번, 슈가도넛, 가요톱텐의 전 멤버, 20세경 아프로파마를 하고 다녀서 별명이 뽀글. 라디오 스타에 나와 밝힌 바로는 원래는 매니저를 지망했다고 한다.
5.2. 이전 멤버
- 차차(차승우)
노브레인의 전(前) 리더이자 기타리스트.
위에 장황하게 언급된대로 노브레인 전기에 나온 대부분의 곡을 작사 &, 작곡했다. 때문에 올드팬들이 아직도 찬양하는 존재. 탈퇴 후 더 하이라이츠(The Hi-Lites)를 만들어 활동하다, 로큰롤 밴드 더 문샤이너스(The Moonshiners)를 만들어 활동했다. 현재는 더 문샤이너스가 잠정 휴식 에 들어가고 더 모노톤즈(The Monotones)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다. 그러나 모노톤즈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해체하게 되면서 현재는 솔로 아티스트로 작업중이다.
영화 라듸오 데이즈, 고고70에 출연한 바 있다. 특히 고고 70에서 수준급의 연기를 펼쳐서 2009년 이천 춘사영화제 신인남우상을 거머쥐기도.
노브레인에서 탈퇴한 것 때문에 현 멤버들과의 사이가 나쁘다는 인식이 강한데, 실제로는 틈틈히 교류도 하면서 친하게 지내는 중이라고 한다. 그 증거로 2016년 12월 24일 노브레인 20주년 공연에 게스트로 출연했으며, 2017년 9월 24일 개최된 '렛츠락 페스티벌'에서도 ‘청춘98’과 ‘바다사나이’ 무대에 함께했다. 공연 뒤, 노브레인 멤버들 및 러블리즈(...)와 사진을 찍었다.
- 쟈니(정재환)
노브레인의 전 베이시스트. 2007년 탈퇴했다.
- 박진
- 노브레인의 세컨드기타리스트로 1996년 ~ 1997년 동안 활동하였다.
- 김정준
- 2000년 ~ 2001년 동안 군입대 중이던 정재환을 대신해 베이시스트로 활동하였다.
- 김민섭
- 차승우의 탈퇴후 2003년 영입된 새로운 기타리스트 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탈퇴하였다.
6. 관련 문서
[1] 많은 사람들이 1집앨범의 한자를 성낼노怒 자로 알고 있는데 사실 1집 앨범 자켓의 한자는 성낼노자가 아니다 (女+力+心 으로 이루어진 존재하지 않는 한자). 당시 앨범 디자인 작업시 인사동의 붓글씨 써주는 분에게 부탁했는데 그 분이 실수로 잘 못 써줬다고 하는 듯.. . [2] 조선펑크의 메카로 유명한 클럽으로, 크라잉 넛 또한 이들의 동문.[3] 물론, 현재 한국 음악계에서 그나마 상업성이 적은 록을 하고 있긴 하지만, 과거의 음악과 비교해봤을 때는 음악의 변화가 급격한 게 사실이다.[4] 크라잉 넛도 현재 펑크 밴드라고 하기엔 살짝 멀어지긴 했다. 하지만 그들의 노랫말을 살펴보면 1집부터 현재까지 변함 없는 모습을 보여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점이 노브레인과 크라잉 넛의 평가를 엇갈리게 만들었다.[5] 손꼽히는 락스타 중에서 사회적 메시지를 가지지 않은 밴드를 찾는 게 더 어려울 거다. 후기 노브레인은 이러한 메시지는 전혀 없고 그냥 '''놀자'''는 게 전부.[6] 실제 차승우 활동 당시의 노브레인 로고는 'No Brain'이 아니라 '怒 Brain' 이었고 1집 타이틀 제목도 '성낼 怒'였다.[7] 60년대부터 시작된 처절한 검열의 역사까지 갈 것도 없이, 당장 카우치 사건 직후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이명박은 이 이슈로 한 몫을 잡기 위해 홍대의 모든 라이브클럽을 퇴폐 업소 취급하며 유흥주점 등록을 강제화 하려고 했었다. 이 정책은 당연히 엄청난 반발에 부딪혔고, 인디 1세대급 밴드인 오!브라더스의 공연장에 이명박이 직접 관람을 오는 포퍼먼스를 끝으로 대충 봉합되었다.[8] 물론 그렇다고 해도 카우치와 럭스가 당시 인디 음악계에 끼친 페름기 대멸종급 악영향은 어떤 말로도 변호가 불가능하다.[9] 당시 멤버들 나이가 19, 16이라 선거권이 없는 미성년인 건 맞다.[10] 많은 사람들이 1집앨범의 한자를 성낼노怒 자로 알고 있는데 사실 1집 앨범 자켓의 한자는 성낼노자가 아니다 (女+力+心 으로 이루어진 존재하지 않는 한자). 당시 앨범 디자인 작업시 인사동의 붓글씨 써주는 분에게 부탁했는데 그 분이 실수로 잘 못 써줬다고 하는 듯.. . [11] 비디 아이처럼 이름 바꿔도 욕 먹는 경우도 있지만.[12] 사실 차승우는 탈퇴 이후에도 노브레인의 멤버들과 크게 소원하지 않은 관계로 지내왔다. '차승우와 노브레인이 잘 지내기 때문에 노브레인의 올드 팬들과 현재 팬들(혹은 현재의 노브레인)도 화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주장은 노브레인의 올드 팬들을 차승우에게 종속된 팬클럽으로 착각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재진행형의 오해라고 볼 수 있다.[13] '청년폭도맹진가'로 알려졌으나, 공식 웹 사이트에 따르면 음반 제목은 '怒'이다.[14] 경향신문과 가슴네트워크가 선정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서 26위를 차지했다. 그 외의 여러 차트에서도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걸작 펑크 앨범이다. 대한민국 펑크의 방향을 제시하는 동시의 기존 펑크의 모범적인 현대적 계승이라는 기준에 부합한 명반이라고 불린다.[15] 너바나 헌정 컴필레이션 앨범. 'Lithium'을 불렀다. 후렴구에서 '예~ 예에이예! 너. 바나. 아 니르바나 오이 오이!'가 백미.[16] 단독 음반은 아니고 이지형이 리더로 있던 위퍼(Weeper)와 공동으로 제작.[17] 섹스 피스톨즈 헌정 앨범.[18] K리그 공식 선수단 입장곡으로 쓰이고있다. 다만 FC 서울은 홈경기때 진군가를 공식 선수단 입장곡으로 쓴다.[19] 참고로 이성우는 FC 서울의 전신팀인 안양 LG 치타스의 라이벌인 수원 삼성 블루윙즈 팬이다.[20] 차승우가 탈퇴하고 나서 나온 곡이라 위에 언급한 청년폭도맹진가와 많이 비교되는 곡이기도 하다.[21] 안양 서포터즈 A.S.U.RED의 응원 스타일이 거칠기 때문에 가장 잘 맞는 곡이라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안양 LG 치타스가 해체된 뒤 9년 동안 팀을 만들어내지 못한 한이 담기면서 이 노래가 다시 평가되고 있다.[22] 안양 LG 시절에는 '청춘98'도 응원가로 사용했었다.[23] 가장 유명한 프로야구 응원가 중 하나이다.[24] 2018년에 삼성 이적으로 인해 교체.[25] 2017년에 교체되었다...가 다시 사용중이다.[26] 2019년에 SK 이적으로 인해 교체.[27] 차일목이 기아 시절에 쓰던 응원가[28] 2017년에 교체되었다...가 다시 사용중이다.[29] 이종환이 기아 시절에 쓰이던 응원가[30]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사용했다.[31] 사실상 빅뱅 노래지만 노브레인 멤버 전원이 불렀기에 기재.[32] 울산 현대와 경남 FC의 응원가이기도 했다.[33] 은퇴 전까지 삼성라이온즈에서 등장곡이자 응원가로 사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