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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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 출신 정치인.
대한민국의 제15대~20대 국회의원으로, 15대~18대까지는 부산 남구 - 남구 을 지역의 국회의원이었으며, 19대 ~ 20대는 영도구 - 중구·영도구의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소속 정당은 국민의힘이다.
새누리당의 2대 대표 최고위원 출신으로, 이 시절에는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로 예상되었던 거물 정치인이었다. 당시 선호도. 하지만 당시 비박계의 좌장(座長)[4] 으로서 항상 새누리당 내의 고질적인 친박계와 비박계 간 계파 갈등의 중심에 서있었으며, 이로 인한 옥새 파동, 그 뒤 새누리당의 20대 총선 참패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대선주자 유력 후보군에서 사실상 제외된다.[5]
'''2016년 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난 뒤에는 19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비박계의 구심점으로 활동하며 새누리당 탈당과 바른정당 창당에 주도적으로 나서면서 보수 개혁에 앞장서는 듯했다. 그러나 2017년 11월 9일. 새누리당을 탈당한지 채 1년도 안 지나서 새누리당의 후신인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다.
2018년 7회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참패함에 따라 "보수당의 재건을 위해 헌신하겠다"며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하지만 2020년 2월 기존의 불출마 선언을 뒤집고 (통합신당이 출범한다면) 호남이든 어디든 당이 원하는 험지에 출마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이에 광주광역시 출마도 거론됐지만, 최종 불발되면서 21대 총선은 출마하지 않게 됐다.
2. 성장과 가족
'전남방직주식회사'의 창업주인 김용주의 아들로, 금수저 인물 중 한 명이다. 김용주는 본래 전라북도 장수군과 관련이 있으며,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부산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경남중학교를 졸업하고[6] 상경하여 중동고등학교(64회)와 한양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한양대학교 재학 시절 이미 자가용 승용차를 몰고 다녔다. 자가용 승용차는 현대 코티나였다. 지금이야 대학생 중에서도 자기 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 꽤 있는 시대지만, 그 당시는 교수들도 시내버스로 출근하였으며, 대학총장 정도 되어야 승용차를 탈 수 있던 시대였다.[7] 병역은 방위병 출신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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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로 드라이브를 하는 것 못지않게 자전거도 매우 좋아하여 대학생 시절 여름방학 때 자전거로 전국일주를 하기도 했다.
26세에 (주)동해제강이라는 회사의 상무이사가 되었고, 그리고 32세에 (주)삼동산업이라는 회사의 사장으로 일했다. 1985년 민주화추진협의회로 본격적인 정계 입문을 하기 전까지는 상술한 동해제강과 삼동산업의 경영인으로서 재계에서 활동했다.
김무성이 젊은 나이에 상무와 사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잘 나가는 경영인이 된 이유는 그가 전남방직 소유주의 아들[8] 이었기 때문이다.[9] 어머니는 조선일보 방상훈 회장의 고모인 방연숙이다. 즉, 김무성은 조선일보 방상훈 회장과 외사촌 지간이다.
또한 김무성은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의 외삼촌이다. 큰 누나 김문희의 둘째 딸이 현정은이기 때문이다.[10] 정확히는 할아버지는 같고 할머니가 다른, 즉 배 다른 외삼촌이다. 그러니까 김 대표의 이복 누나인 김문희 용문학원[11] 이사장이 현정은 회장의 생모다. 그리고 형 김창성[12] 은 전방(전남방직)을 경영하였다.
부인 최양옥 씨는 이승만 대통령의 비서관과 자유당 정권 공보처장, 이후 박정희 대통령 시절 3선 국회의원을 했던 최치환 씨의 딸이다.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는데, 아들은 배우 고윤[13] 이다. 드라마 아이리스 2로 데뷔했고 영화 국제시장에서 단역으로 출연한 바 있으며 영화 오늘의 연애에서 주인공 이승기의 절친인 재중 역을 맡기도 했다. KBS 드라마 오늘부터 사랑해에서 천재 바리스타인 정윤호 역을 맡기도 했고 꾸준히 여러 드라마에 조연으로서 활동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영화 인천상륙작전에서 오대수 역할을 맡았다.
차녀인 김현경 씨는 수원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었으나, 너무 젊은 나이에 교편을 잡았다는 것 때문에 논란이 있었다. 이후 남편이 여러 마약 전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집행유예로 풀려난 사실이 드러나면서 교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3. 정치
3.1. 정치 경력
3.2. 정치 성향
여러가지 막말에다 꼰대 발언으로 논란을 만들긴 했지만 2010년대 중후반까지 생존해 있는 대표적인 새누리당 내 비박 및 민주계(김영삼-이회창의 노선을 따르던 '''개혁보수 세력''') 인물이다. 이전의 민주계들은 이회창의 은퇴 후 보스를 잃어 혼란을 맞게 되었고, 이명박때 18대 총선에서 수가 많아진 친박의 견제를 받다가 박근혜 시점 들어서는 거의 새누리당에 남아있지 못 했는데, 유승민과 같이 비박의 대표 이미지를 맡았다. 김무성은 김영삼의, 유승민은 이회창의 부하였다는 점이라는 특징도 있다.[14] 그 외에는 80년대에는 통일민주당(현재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의 개혁보수/민주계/상도동계 세력의 근원)에서 3당 합당에 반대하여 중간에 떠난 인물들과는 달리 김영삼을 계속 모셨다.
과거만 하더라도 논란 항목에 써있듯 '난 노무현이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상태를 의심해봐야 한다.', '5.16은 혁명이다' 등 보수 진영의 대표적인 저격수로 명성(?)을 떨쳤으나, 비박계의 대표 주자가 된 2010년대 중반쯤부턴 노 전 대통령이 묻힌 봉하마을도 들르고 '임을 위한 행진곡' 열창과 함께 5.18 민주화 운동도 치켜세우고 있다.[15] 과거 발언들에 대해서도 '내가 돌 맞아도 할 말 없다'는 식으로 사과하는 등 급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자 "난 그분의 정치적 아들"이라고 하며 고인의 차남인 김현철 교수와 함께 상주를 섰을 정도.[16]
어찌되었든 유승민과 더불어 여태껏 살아있던 입지있는 민주계/개혁보수 세력이었고, 유승민과 함께 '''비박'''을 상징하는 유력 정치인이었기에 새누리당의 민주계는 박근혜의 횡포에 맞서 필사적으로 김무성을 당 대표로 올려놓고 유승민을 원내대표로 세웠다. 박근혜정부 동안 국민들이 박근혜의 능력에 대해서 여론이 안 좋아지는 시기에, 비박으로서 보수진영에서 유력한 대선주자로 뜨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김무성-유승민을 박근혜는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고 친박과 연대한 단체인 어버이연합이나 박사모 등이 유승민과 김무성을 향해 깽판을 부리기도 했고, 결국 친박은 민주계를 어떻게든 밀어내고 축출하면서 민심도 잃게 되어 김무성도 몰락, 민주계의 마지막 기대도 사라진다.
의외로 사형에 반대하는 등, 진보적인 면도 있다.[17] 2016년엔 새누리당에 극우적 냄새가 짙어졌다거나, '난 경제는 중도, 안보는 보수'라며 경제적으로 좌클릭해야 한다는 뉘앙스도 내비쳤다. 이에 대해 '대권병 걸려서 좌우 가리지 않고 있다'고 비웃는 사람들도 있으나, 대권을 생각해 중도 & 진보 쪽의 마음을 얻기 위한 행보인 것인지 아님 진짜로 심정적 변화가 있는 건지는 본인이 아닌 이상 알 수 없는 노릇. 사실 김성태, 오신환, 하태경 등 김무성 대표와 가까웠었던 의원들이 대체로 온건파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아 그들과 보조를 맞추는 것일 수도 있다.[18]
그리고 바른정당으로 이적하고 나서는 과거와는 달리 논란이 될 만한 발언은 삼갔다. 이후 복당하면서는 예전대로 우경화하는 중.[19]
2017년 5월 캐리어를 보좌관에게 '노 룩 패스'하는 병크를 터트렸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권위주의 타파가 정계에서도 중요한 트렌드가 된 현실을 완전히 역행함으로서 본래 있던 '권위적인 꼰대' 이미지를 완전히 굳혀버렸기 때문. 정말 보좌관과 그만큼 격의없는 관계였다면 억울할 소지가 있겠지만 공인으로서는 분명 경솔한 행동이었고 해명 요구에도 신경질적으로 대응하며 더 논란을 키웠다.
국회 내 가장 대표적인 개헌론자 중 하나이다. 여기서의 개헌이란 당연히 분권형 개헌을 뜻하며, 본인 스스로는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를 선호한다고 한다. 대개 대권과 먼 인물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를 추진하는 경우가 많은데, 김무성의 경우 한창 대권 주자 1위를 하던 당 대표 시절부터 주구장창 분권형 개헌을 입에 달고 살았다. 이런 것을 보면 나름대로 소신을 가지고 행동하는 편으로 보인다.
3.3. 친무
4. 사건사고 / 논란
5. 성품
김무성 대표는 갈등을 부드럽게 만드는 통합의 리더십 갖췄다.
- 정의당 심상정
계파와 인맥을 중시하는 전형적인 한국형 정치 리더라고 볼 수 있다.[20] 좌성태 우학용으로 대표되는 좌장들을 중심으로, 그의 주위에는 그를 따르는 비박계 의원들이 즐비해 있다. 비단 계보원들 뿐 아니라 문재인, 박지원, 심상정 같이 성향 상 정 반대의 진영과도 인간적으로는 가까이 지내는 걸 보면 상당한 친화력과 붙임성의 소유자로 보인다.김무성은 누구보다 폐활량이 큰 정치인이다.
- 이윤석(정치인)
나이 어린 기자에게도 격의없이 반말하는 모습이나 깊은 고민 없이 직설적인 말을 툭툭 내뱉는 모습만 보면 권위주의에 찌든 정치인으로 비춰지는 면도 있으나, 실제로는 국회 내에서 그 누구보다 타협을 중시하는 면도 있다고 하며 김무성-유승민 투톱 체제 당시, 국정 운영이 원활해 야당에서도 평가가 좋았다는 주장이 있다. 직접 만나 겪어 본 사람들은 인간적인 면모가 두드러진다고 평하기도 하며, 의외의 따뜻함을 느낀다고 한다.
정치 행보나 스타일은, 이상과 신념에 집착하지 않고 힘에 부치면 뜻을 접는 현실주의형이다. 좋게 말하면 현실주의지만, 상황에 따라 언제든 주장을 뒤집는 모습에서 비굴함이 엿보이는 건 사실이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을 상대로 고개를 숙이는 경우가 많았다. 정치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여러 모로 연구 대상인 입체적인 캐릭터.
더불어, 가정에 대한 애착에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도 아내도 모두 반대했던 정치 일에 뛰어든 탓에, 밤 늦게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은 경우가 잦아 아내와 자식들에게 심리적 부채감을 가지고 있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SNS에서 게재되는 사진들 역시 정치 행보보다는 가족, 특히 손주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많다.
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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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말쯤 인터넷상에서 원피스에 나오는 천룡인 중 차를로스 성[21] 하고 닮았다는 얘기가 나오더니 결국 저런 짤방이 탄생했다. 반대로 더불어민주당의 전 대표이자 대권 경쟁자인 문재인 대통령도 몇 년 전부터 명왕과 외모가 비슷하다며 합성짤 등이 나돌았다. 사실 두 사람은 경남중학교 1년 선후배 사이로[22] , 사적으로는 매우 친분이 두터운 사이이다. 새누리당 대표 시절 김무성 대표 딸의 결혼식에 문재인 전 의원이 불쑥 찾아왔는데, 자당 의원들조차도 구설수에 오른다며 오지 말라고 했던 김무성 대표가 문재인만큼은 환영해줘 딸과 인사도 시키고 반갑게 맞이해줬다고 한다.
2015년 말쯤 인터넷상에서 원피스에 나오는 천룡인 중 차를로스 성[21] 하고 닮았다는 얘기가 나오더니 결국 저런 짤방이 탄생했다. 반대로 더불어민주당의 전 대표이자 대권 경쟁자인 문재인 대통령도 몇 년 전부터 명왕과 외모가 비슷하다며 합성짤 등이 나돌았다. 사실 두 사람은 경남중학교 1년 선후배 사이로[22] , 사적으로는 매우 친분이 두터운 사이이다. 새누리당 대표 시절 김무성 대표 딸의 결혼식에 문재인 전 의원이 불쑥 찾아왔는데, 자당 의원들조차도 구설수에 오른다며 오지 말라고 했던 김무성 대표가 문재인만큼은 환영해줘 딸과 인사도 시키고 반갑게 맞이해줬다고 한다.
- 박지원과도 사이가 좋다. 같이 예능에서 호흡을 맞췄을 정도다. 희한하게도 박지원 파와 문재인 파는 사이가 나쁘다. 둘다 상도동계, 동교동계 인물로 각각 김영삼, 김대중이 각별히 여기던 사람이란 걸 생각하면 계파가 사이좋을 리는 없긴 하지만, 사실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는 독재에 맞설 때는 협력했던 관계였고 김무성도 YS를 도와 운동한 경력이 있다. 사실 그는 정치권의 대표적인 마당발로 통하는 인사 중 하나로, 심지어 정치적으로 거의 상극이나 다름없는 심상정 의원과도 다정한 스킨십을 나누는 것이 포착될 정도다.[23] 다만 이후에는 박지원과는 사이가 틀어진 듯 박지원이 마리텔 방송에 나와서 내 전화 안 받을텐데? 하고 전화를 시도하나 받지 않았다.
- 반다송으로 안 좋은 의미로 화제를 이끌었다.
- 김무성이 제20대 총선 직전까지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로 꼽히는 등 승승장구할 때는 '킹찍탈'이라는 유행어도 존재했다. '(선거에서) 킹무성 찍고 (해외로) 탈조선'이란 뜻으로, 새누리당 및 김무성에 대한 반감과 '헬조선'이 상징하는 자국 혐오가 결합된 용어다. 20대 총선 이후에는 당연히 사용 빈도가 많이 줄었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아니 애초에 옥새런으로 박근혜의 정치인생에 대한 사형선고의 첫타를 때리고 친박과 척을 지면서 사용되지 않는다. 피상적으로 박근혜의 후신처럼 알려진 사람 치고는 2년이 지난 지금은 꽤나 반전과도 같은 결말이다.
- 윈도우 불법인증도구인 KMS를 김무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정확히 말해 KMS는 불법인증도구가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 소프트웨어의 정품인증 방식이며, 이를 해킹한 툴에 'KMS 인증' 따위의 이름이 붙은 것이다. 항목 참조
-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14년 전에 트럼프의 당선을 예상하고 제 집을 트럼프 월드로 이사한 적이 있다"라고 개그를 쳤다.[24] 아직도 여의도 트럼프 월드에 거주한다고 한다.
- 프로필에 적힌 키가 181cm다. 181cm면 어지간한 젊은이보다 큰 키다.
- 지금은 나잇살이 많이 붙었지만, (특히 나이 든 사람들 중에는) 김무성이 잘 생겼다는 이유로 지지하는 사람도 꽤 있다. 실제로 젊었을 적 사진들을 보면 위에서 언급된 덩치와 함께 풍채가 당당하고 호방한 외모의 소유자다. 관상학적으로도 귀골이라 한다. 아들이 연예인을 하고 있을 정도이다. 현재의 체중은 85~90kg 정도라고한다.
-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넷 상으로 도화살이라는 카더라 썰이 퍼져 있다.
- 정치권에서 알아주는 주당이라고 한다. 한때 유인태, 박희태, 이명박과 함께 정치권 4대 주당으로 꼽혔다고. 그리고 나머지 세 사람은 이미 정치권을 모두 떠난 상태니 현직 정치인으로서는 김무성이 최강인 셈이다.
- 사용하는 스마트폰은 2017년 기준 LG G5라고 한다.
- 출생지가 부산광역시라서 많은 사람들에게 부산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김무성 본인은 포항시를 또다른 고향으로 여기며 포항에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다.[25] 유년 시절을 포항에서 지냈으며, 청년기 동안 포항에서 동해철강 전무로 7년여를 살았다. 위에서 언급했듯 사실상 정치 활동을 처음 시작하려고 했던 곳 역시 포항.[26] 지금도 종종 포항을 방문 하며 포항 향우회 행사에 참여하는 중이다. 참조 기사
- 연세대학교 농구부 16학번에 동명이인의 선수가 있다. 마침 17학번에 박지원도 있다 보니 기사에 언급되면 덧글이 노룩패스로 도배되기 십상. 이후 김무성은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에 입단했으며 박지원은 부산 kt 소닉붐에 입단하여 프로에서 재회했다.
- 한때는 차기 대권 후보로서 문재인보다 지지율이 더 높게 나온적이 있다.[27]
- 평소에 측근을 통해서 박근혜 확 받아 버린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박근혜 탄핵에 찬성표를 던짐으로써 정말 받아버렸다.
- 공적인 모습과 별개로, 사적으로는 상당히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이념과 진영을 가리지 않고 두루두루 친분을 과시하는 이유. 보좌진들이나 지인들의 증언으로는, 그야말로 사람 좋은 스타일이라고. 직설적이기로 유명한 하태경 의원 역시 그가 권위적인 꼰대와는 거리가 멀다 평가했다. 노룩패스의 주인공인 보좌관과는 정말 그만큼 편한 사이여서 그리 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아 보인다. 물론 기자단을 의식하지 못한 점은 반박하기 힘든 실수.[28]
- 보수논객 전원책이 싫어하는 정치인 중 한명[29] 인데 방송에서 언급할때마다 노골적으로 씹는 경우가 잦다(...) 썰전에서 유승민과 만났을땐 그분 백수야?라고 하면서 은근히 싫어하는 기색을 표하더니 한번은 하는일 없이 뱃살을 타악타악 튕기고 다닌다며 비꼰적이 있는데 이때 오히려 감정이 안좋다면 더 안좋을수밖에 없는 유시민[30] 이 전변호사님이 뱃살나온 사람의 고충을 아냐며 말렸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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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한 재산 내역을 보면, 2015년 기준 김무성의 재산 규모는 현금과 부동산 등을 모두 합쳐 137억 5,600만 원이라고 한다. 참고로 해당 재산 규모에서 부동산 재산의 가치는 공시지가로 신고되어 있어서 다소 낮게 측정되었을 경우가 높다. 이후 2017년 기준 고위공직자 재산목록을 보면 부인 명의 예금통장에 100억이 있다. 부부의 총 재산 합은 현재 130억으로 줄었다.
- 상당한 손주 바보다. 1남 2녀 슬하의 외손주들과 찍은 사진을 습관적으로 페이스북에 게재할 정도이다.
- 2016년 전반기부터 여러모로 국내 정치 판도가 급변하며, 갖가지 사건들이 터져나오며 현재는 거의 개그 캐릭터화 되가고 있다.
- 미드 하우스 오브 카드의 주인공, 프랜시스 언더우드와 닮은 꼴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남부 출신, 정치 베테랑에 다선 의원, 한 때 여당 실세급 의원, 대통령과 사이가 틀어진 이 후 의도적인 트롤링, 근데 그 대통령 뒤에서 비합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20년 지기 친구가 있음, 대통령 탄핵의 일등 공신... 이쯤되면 거의 평행이론 수준이다.
- 보수내에서 거물급 정치인임에도 상당히 특이하게 친박/비박 성향의 보수 지지자들 모두에게 부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정치인이다. 친박성향의 지지자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불가피했다는 것만으로도 김무성은 일방적인 증오의 대상일 뿐이며, 비박 성향에서도 20대 총선의 옥새런 파동, 조선족 이민 대거 허용, 노룩 패스로 인하여 기성 꼰대 정치인이라는 반감이 상당하다. 과거 킹무성, 킹찍탈로 불리며 대권주자 1위였던 인물임을 생각하면 불과 몇년도 채 안 돼서 인지도가 급속도로 무너진 케이스. 심지어 2020에는 일부 언론조사에서는 차기 대권주자 후보군에서도 빠졌다.
- 대권주자에서도 밀려나고 정치적 입지도 줄어든 탓인지 "국회의원은 안 하지만 정치를 은퇴한 것은 아니다"며 "2년 뒤 대선에서 정권 창출을 위해 킹메이커로 나서겠다"고 밝혔다.#
- 왕좌의 게임을 며칠 만에 다 봤다고 한다.
7. 소속 정당
8. 선거 이력
- 잘 부각되지 않은 점이 있는데 지역구 선거에서 진 적이 없다. 전국구에서 두번 출마했으나 거의 당선권 밖에 있는 번호라서 2전 2패지만, 지역구 선거는 6전 6승이며 이 중 5번이 득표율 과반을 넘었다. 무소속으로 나온 선거에서도 절반에 가까운 득표율을 얻었다. 이 정도의 경력이라면 국회의장급이다. 2020년 현재 여당 쪽에서는 정세균, 문희상, 이해찬 정도가 비슷한 수준이다. 다만, 부산이 전통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임을 감안하면 안방 챔피언으로도 볼 수 있다.
9. 참여 음반
10. 둘러보기
[1] 국회공보 제2020-98호[2] 옛날에는 부산 남구 용호동 오륙도 SK뷰도 보유하고 있었으나 매도하였다.[3] 김해 김씨 삼현파(三賢派) 22세손, 수로 70세손 '坤'자 항렬이지만 남동생 김남곤씨와는 다르게 항렬자를 쓰지 않는다. 아버지인 김용주는 수로 69세손 '容'자 항렬이고 아들인 고윤(본명은 김종민)은 수로 71세손 '鍾'자 항렬이다. 또한 유튜버 김윤태는 그의 손자뻘이다.[4] 원래는 '친박계 좌장'이었으나, 2009~2010년 이명박의 ‘세종시 수정안’을 놓고 박근혜와 의견이 엇갈리면서 사이가 멀어지기 시작했고 이후 김무성은 비박으로 변모한다.[5] 친박의 고질적인 방해 공작만 아니었어도 사실 대선주자급으로 문재인과의 1대 1 대결이 가능했던 인물이었다. 보수정당의 대표 이미지가 강했으며, 계파갈등에서 벗어나 보수의 통합과 재건을 강조했기 때문이다.[6] 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25회)의 1년 선배(24회)이다. [7] 사실 김무성이 대학생이던 1970년대뿐만 아니라 1980년대도 대학생 중에 자가용이 있는 사람은 한 대학교 전체에서 10명이 안 됐던 수준이고, 대학생 수 생각해보면 부잣집 대학생도 최고갑부급 아니면 못 탔다. 한국경제 부흥기던 1990년대 노태우 정권 말부터 부유층인 대학생들이 타기 시작해서 김영삼 때부터 집이 조금 사는 편이면 자가용 타는 문화가 자리잡다가 IMF 때 다시 그 분위기가 고꾸라졌다.[8] 이걸 이용해서 김무성이 드립친 적이 있는데, 2016년 총선에서 당대표로 선거유세를 다니다가 전라남도 유세에서 "전라도에서 저보고 경상도놈이다 하면서 머라카시는데, 저 사실 전라도 사람입니다. 제가 전남방직 아들입니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물론 전남방직을 세운 김용주가 경남 함양 출신이지만 전북 장수에서 도주하여 함양에서 태어 났으므로 맞는 말이다.[9]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일본이나 우리나라 초기재벌은 방직 방적업으로 성장한 경우가 많다. SK그룹(선경직물), 대우그룹, 삼성그룹(제일모직) 역시 모태가 방직 방적업이거나 초창기부터 그룹 핵심 사업이었다. 동아일보 역시 경성방직(현재의 경방그룹)에서 시작했음을 보면 당대로서는 엄청난 재벌집 아드님인 셈이다.[10] 사실 현정은이 조카라고는 하지만, 둘의 나이는 4살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오히려 누나인 김문희와의 나이차가 23살로 더 크다.[11] 1928년생으로 김무성보다 23살 위의 누나다. 용문학원은 서울 용문중학교와 용문고등학교를 보유하고 있다.[12] 1932년생으로 경기고등학교와 와세다대학을 졸업했다. 현재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고문이다. 김무성이 늦둥이인지라 (막내로 알려져있는데 사실 동복 남동생이 한 명 있다.) 형 김창성이나 누나 김문희와 엄청난 나이 차이가 난다. 거의 삼촌이모와 조카뻘.[13] 본명 김종민[14] 다만 이회창도 비록 부하는 아니었지만 김영삼이 정계로 끌어들인 인물이었다.[15] 김영삼 총재 밑에서 민주화 운동을 함께 하는 걸로 민주계로서 정치 인생을 시작했기 때문에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바라보는 시선이 현재 다른 보수 진영 정치인들과는 다를 수도 있다. 애초에 이명박근혜 이전, 민주계가 보수정당을 장악하던 김영삼-이회창 시기엔 한국 보수세력이 거의 민주세력/개혁보수 세력이었기에 5/18때면 별 논란 없이 민주당과 함께 가서 나란히 임을 위한 행진곡을 잘만 불렀다. 물론 이 부분에선 김무성 말고도 비슷한 입장을 보이는 보수 정치인들(대표적으로 이재오)이 꽤 있긴 하다만.[16] 다만 김현철 교수와는 원래 사이가 나쁘기로 유명했다. YS가 투병 생활을 하고 있을 때 김현철 교수가 '김무성 의원은 친박, 비박 사이에서 줄타기나 하지 말고 1년 이상 입원 중인 아버님 병문안부터 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오'라고 디스한 적이 있었을 정도. 이후 김무성이 병문안을 하긴 했지만 YS의 정치적 아들을 자처한 거치곤 정작 YS가 투병 중일 때 소홀했었단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즉, 이러한 옛일을 미루어 볼 때 YS가 세상을 떠난 뒤 그리 지극정성을 보였던 건 고인에 대한 존경심도 있겠지만, 친박/비박 갈등이 고조되고 자신이 친박에서 비박으로 포지션이 바뀌면서 고인이 과거 가지고 있었던 PK 지역의 지지세를 노린 정치적 제스처였을 공산도 배제할 수는 없다.[17] 사실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지점은 각 나라의 정치지형마다 차이가 있는 편이다. 이를테면 기독교 국가인 미국에서는 낙태에 대한 견해가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중요한 지점이지만, 기독교국가가 아닌 한국에서는 그냥 각 개인의 신념에 따라 다른편이라 보수적인 사람이 의외로 낙태를 찬성하는 경우도 많다. 정치인의 '의외의 면'은 이런 부분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18] 나중에 하태경과 오신환은 하태경계 범친유계가 되었다.[19] 이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행보와도 상당히 일맥상통하는데, 이들이 이런 골수 보수들을 자극하는 극우에 가까운 발언을 의도적으로 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자유한국당을 지지하는 골수 보수들의 집결이라는 목적이 가장 클 것이다.[20] 그가 모셨던 YS의 스타일을 닮은 점이 많다. 2016년까지 비박계인데도 당권을 휘두를 수 있었던 것은 비박계가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기 때문이 아니라 김무성-유승민으로 이어지는 나름 강력한 계파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친박(진박)을 이길 수 없었으니 망정이지 2016년까지의 새누리당 당세를 생각하면 김무성의 계파는 굉장한 수준이었다. [21] 원피스 세계관의 절대 권력인 '세계정부'라는 조직을 세운 20명의 후손이며, 다른 이름은 세계귀족이다. 이들은 그야말로 최고의 특권을 누리며 비리와 부패의 온상으로 자신들만이 존귀한 줄 안다. 그리고 차를로스 성은 여기서도 탑 클래스 수준으로 저질이다.[22] 김무성이 24회, 문재인은 25회 졸업생이다. 학교 동문이 여-야 대표 직을 맡은 사례로는 역시 경남중-고 출신인 과거 여당의 김택수(1회), 김영삼(3회) 동문이 여-야당 원내총무를 맡은 적 외에 없다.[23] 심상정과의 관계는 꽤나 의외인데 한번은 선거유세를 하던 도중, 주변에 있던 한 사람이 심상정을 빨갱이라고 욕하자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라며 김무성이 단호하게 얘기한 적도 있다. 심상정은 김무성과 둘이서만 몇 번 얘기를 해 보니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은 아니더라고 평한 적이 있다. 문재인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문재인 대통령과는 달리 김무성과는 아무런 접점도 없는 심상정이 그런 말을 한 걸 보면 사람이 사적으론 붙임성이 꽤 괜찮은 듯 하다.[24] 실제로 대우건설이 트럼프 기업에게 노하우를 전수받는 등 제휴를 맺고 지은 건물이다.[25] 선친대에 김무성의 집안은 포항의 유력한 집안이었기 때문인데, 김무성 본인은 아버지가 부산으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태어나 출생지가 부산이지만 누나인 김문희와 형인 김창성 등의 출생지는 포항이다.[26] 원래 2013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부산 영도구에 출마하기 전에는 포항 남·울릉 선거구 출마를 유력하게 검토하기도 했다.[27] 물론 이 시기에는 민주당이 김한길과 안철수가 1차, 박영선이 2차로 당권을 잡고서 한창 말아먹던 시기였고, 문재인을 위시로 한 친노와 박지원을 위시로 한 비노간의 갈등이 격화되던 시기였다. 또한 朴정부의 인기가 그리 나쁘지만도 않았고. 또한 김무성이 당 대표가 되고서 열린 보궐선거에서 모두 승리했기에 주가가 정점을 찍었다.[28] 비슷한 예로 "얼굴 색깔이 연탄색깔과 똑같네" 발언도 사실 흑인비하 의도가 아니라 흑인과 친해지기 위해서 말을 붙이려다가 무리수를 둔 경우이다.[29] 전원책이 김무성보다 더 싫어하는 정치인으로는 윤상현 정도가 있다. 썰전에서 박근혜 정부시절 대통령을 누나라고 부르는 행위에 대해서도 윤상현 이름만 안 언급하면서 한차례가 아니라 여러 회차에서 비난하면서 '간신'이라는 뉘앙스의 드립을 쳤고, 그 이후에도 탄핵사태때에도 아무도 안 만난다는 박근혜에 대해 '대통령을 누나라고 부르는 분이 몰래 청와대에 들어가서 만났다는 소문이 있다'며 소문을 얘기했다. 다만, 21대 총선에서 윤상현 후보의 지원 유세를 나선것으로 보아 관계가 많이 회복된 것 같다.[30] 김무성은 한때 유시민을 종북이라면서 맹비난한적이 있는데 이후에 사과를 하긴 해서인지 유시민은 딱히 김무성을 얘기할때 그렇게 감정을 드러내진 않는다 오히려 전원책이 그 얘기를 운운하며 김무성의 인격을 비판할때 사과했으니 되었다며 말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31] 민주정의당, 신민주공화당과 신설 합당, 이른바 3당 합당[32] 통합민주당과 신설 합당[33]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과 신설 합당[34] 승계 불능[35] 승계 전 청와대 입각[36] 2008.03.14 탈당(공천 불복)[37] 친박무소속연대 2008.6 한나라당 복당[38] 전임자 이재균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39] 2016.12 새누리당 탈당, 2017년 11월 자유한국당 복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