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호

 




장성호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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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1997
2009

아시안게임 금메달
2002

올림픽 야구종목 메달
2000


2002 KBO 리그 타격왕


2000, 2002 KBO 리그 출루율왕



해태 / KIA 타이거즈 등번호 1번
이원식(1995)

장성호(1997~2010)

안영명(2010)
한화 이글스 등번호 1번
윤경영(2010)

장성호(2010~2012)

정재원(2013)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1번
이승화(2006~2012)

장성호(2013~2014)

이우민(2015)
kt wiz 등번호 1번
고영표(2014)

장성호(2015)

고영표(2016~2018)

성구회
회원번호
기록
가입년도
비고
7
2,100 안타
2012년


<colbgcolor=#0066b3> KBS / KBS N SPORTS 해설위원
장성호
(張盛好 / Chang Sung-Ho)

생년월일
1977년 10월 18일 (46세)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서울특별시 은평구
출신학교
충암초 - 충암중 - 충암고
신체조건
183cm / 93kg
포지션
1루수, 좌익수[1], 지명타자[2]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96년 2차 1라운드 (전체 6번, 해태)
소속구단
해태-KIA 타이거즈 (1996~2010)
한화 이글스 (2010~2012)
롯데 자이언츠 (2013~2014)
kt wiz (2015)
해설위원
KBS / KBS N SPORTS 야구 해설위원 (2016~)
응원가
기아 시절: 장윤정 - 사랑아[3][4]
롯데 시절: The Beatles - Let It Be[5][6]
공통 응원가: Johnny, I hardly knew ya[7][8][9][10]
병역
병역특례[11]
종교
개신교
1. 개요
3. 해설자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5. 기타
6. 방송
7. 연도별 주요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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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KIA 타이거즈, 한화 이글스, 롯데 자이언츠, kt wiz 소속으로 뛰었던 야구선수. 現 KBSKBS N SPORTS 야구 해설위원.
해태 타이거즈의 마지막 자존심이자 이종범과 함께 초기 KIA 타이거즈의 중심 역할을 했던 타이거즈의 레전드. 스나이퍼

2. 선수 경력


장성호의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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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선수 경력
장성호/선수 경력



3. 해설자 경력


[image]
현역 은퇴 후에 2016년부터 KBS N SPORTS의 해설위원이 되었다. 현역 시절부터 화려한 입담을 자랑해서 많은 야구팬들이 기대를 하고 있는 중. 선수 출신으로 여러 입담은 좋지만 정작 논리적인 해설자의 역량은 꽝이었던 이숭용의 전철을 밟을지, 아니면 선출의 장점을 잘 살리며 호평을 받은 김선우차명석처럼 말 주변이 좋은 해설자가 될 것인지, 박재홍정민철의 뒤를 이어 성공적인 스타 선수 출신 해설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흥미로운 부분.
여담으로 야구 해설위원 중 유일한 kt wiz 출신이다. 1년 뿐이긴 하지만. 그리고 이런 특징을 본인의 해설 데뷔경기였던 LG와 kt의 시범경기 중계 해설을 통해 유감없이 발휘했다. kt 팬들은 드디어 매 경기마다 8월 이후 달라진 타격감이라느니 김진곤김바위 아들 전준우 처남이라거나 고영표KIA 고영우 동생 같은 똑같은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며 아주 즐거워했고, LG 팬들이 실시간 중계에서 임정우 얘기 좀 해달라며 하소연할 정도로 kt 관련 이야기를 많이 풀어냈다는 평이다.
해설가로는 사운드가 끊기지 않고, 말을 빙빙 돌리지 않고 바로 뱉어준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kt 관련 해설로는 단연 톱이며 말하는 감각이 KBS 해설진 중 가장 젊다. 반면 기존 중계진과의 호흡이 약하고, 초보 해설답게 편파해설 논란이 있으며, 콘텐츠 준비 기간 부족 탓인지 하이라이트 프로그램 진행이 미숙하고, 해설자인 자신의 발언의 무게를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첫 해라 그런지 이용철이나 송진우 등의 선배와 같이 해설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혼자 했을 때 훨씬 깔끔한 해설을 했다. 굉장히 늦게 은퇴한 것은 물론 은퇴 후 진로를 고민하던 통에 해설자를 준비할 시간이 없던 만큼 해설자다운 지식이나 콘텐츠는 약한 편이며, 대신 방송에 걸맞게 멘트를 고르고 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 선수 시절 모아놓은 에피소드가 바닥날 경우가 진정한 시험대가 될 텐데... 도저히 선수 시절 에피소드가 바닥나질 않고 있다(...).[12]
5월 10일에는 요근래 펄펄 나는 김재환을 보고 배리 본즈 같다고 하여 팬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12월 26일에는 한국여자프로농구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청주 KB 스타즈의 경기에 객원 해설자로 참여해서 마치 오랫동안 농구에 몸 담은 농구인같이 해설을 했다.
언변은 확실히 좋은 편이고, 내용도 최상급 해설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야구 이해도가 말재주를 전혀 못 따라가던 그 분보단 낫다. 맞는 말이든 틀린 말이든 확고하게 하는 스타일이며 어떤 방송에 가져다 놔도 일단 말은 잘 푼다. 그러나 언급했듯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지만 발언의 경중을 잘 조절하지 못하는데다 이 분을 제외한 모든 KBS 해설들의 중병인 편파해설 문제에 감염되고 있다는 점이 크나큰 비판을 받는다.
발언의 경중의 경우 실제 경기 해설에서보다는 분석 프로그램이나 합의판정 방송에서 불거진다. 전형적인 자기 철학이 너무 확고한 사람으로, 맞는 말을 할 때는 하염없이 맞는 말만 하고 이상한 말을 할 때는 하염없이 이상한 말만 하며 특별히 기준도 찾기 힘들다. 굳이 경향성을 찾자면 선수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문제에서는 맞는 말이 많은 편이며, 나머지 주제에서는 종잡을 수 없다(...).
2017년 한국시리즈 1차전을 앞둔 상황에서 해설위원들 KS 전망에서 두산이 4승 1패로 우승할 것 같다라고 말하면서 기아팬들이 한때는 친정팀이었는데 뒤통수를 때렸다면서 비난했다. 그런데 2017년 한국시리즈 1차전 두산광주에서 기아를 5:3으로 이기면서 장성호의 예측이 맞자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2차전 양현종의 1:0 완봉승에 이어 잠실 원정 스윕을 달성, 기아가 4대1로 우승하였다. 일부 시각에서는 장성호가 친정팀에 대한 애착 때문에 선수들에게 자극을 주기 위한 발언이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왜냐하면 정규시즌 내내 kt를 제외한 자기 몸담았던 팀들에 편파해설한다고 욕먹었지 기아를 까는 해설로는 전혀 분류되지 않았으니...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충암고 2년 선배이며 KBS의 간판 아나운서 이광용과 함께 야구 중계를 했다. 그리고 부활한 이광용의 옐로우카드 시즌3의 야구편 패널로 나오고 있다. 매 회마다 감독 자리에 대한 야심 과 더불어 세이버 스탯 관련 견해를 조심스레 내비치며, 공부하는 야구인으로서의 매력을 어필 중에 있다. 해설 성향에 걸맞게 현실에 대한 쓴소리와 색다른 접근은 덤.
2019년부터 이용철 해설위원이 지상파 중계에서 물러나면서 지상파 주 해설위원이 되었다. KBSN 해설위원 중 안치용 해설위원 다음으로 재임기간이 긺에도 불구하고, 그간의 관례와 다르게 지상파 중계는 1캐스터-2해설위원의 3인 체제로 진행하는 중이다. 아무래도 해설 경력이 타사에 비해 짧고, 상술한 몇 가지의 단점 탓에 형평성을 맞추기 위한 선택이라는 것이 팬들의 중평이다.[13]

4. 플레이 스타일


한국에서 외다리타법으로 가장 유명한 선수. 정확하게 말하자면 외다리타법은 과거에나 지금에나 수많은 타자들이 쓰는 타법이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대부분의 외다리 타법 타자들의 타격폼에는 별 묘사를 붙이지 않고 장성호의 요상한 타법에 외다리 타법이라는 별칭이 붙어버렸다. 일반적인 외다리타법이 몸의 리듬대로 발을 들어올려 자연스럽게 다시 딛는 과정에서 축적한 파워를 쏟아내는 과정인 데 비해 장성호의 발을 투수의 와인드업처럼 들어올려 포수 얼굴 방향으로 차내린 다음 내 딛는 타격폼은 외다리타법 중에서도 상당히 유니크하다. 동작이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은근히 체력소모가 크고, 일반적으로는 큰 동작을 지탱하는 왼쪽 다리가 크게 흔들려 선구안이 무너지거나 할 공산이 큰, 타격의 원칙중 하나인 '쓸데없는 동작을 줄이고 빠르게 반응' 하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될 법 한 폼이다. 스스로도 꾸준히 타격폼에 수정을 가하려고 했으나 결국 디테일의 수정은 있었을지언정 스타일은 선수생활 내내 유지했다. 해태시절엔 극단적으로 허리를 웅크린 폼으로, 현역선수로 치자면 정성훈의 폼을 왼쪽으로 치는 형태였으나, KIA로 바뀌면서 점점 준비자세의 허리가 곧추섰게 되었다. 극단적인 당겨치기 타자로, 20홈런을 칠 수 있는 타자치고는 밀어치는 홈런이 굉장히 적은 사례. 바깥쪽 흘러나가는 공이 약점인데 이 약점을 선구안으로 메꾸는 스타일.
장성호의 스탯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선구안, 특히 볼삼비다. 8천타석이 넘는 타석에 서면서도 1.25:1 정도의 볼넷 삼진 비율을 유지한 괴물로 이것보다 볼삼비가 좋은 선수는 장효조, 양준혁, 정구선 정도 뿐. 이 괴물같은 선구안을 바탕으로 2스트라이크를 먹은 후 스트라이크존을 좁히는 독특한 스타일의 승부를 한다. 아슬아슬한 코스의 공을 때리는 게 아니라 과감하게 보내버린다(...). 2스트라이크에서 그런 코스를 쳐 봐야 좋은 타구 나오지 않는다는 철학. 참고로 장성호는 초구 스트라이크도 잘 안친다 . 해설위원이 되고서도 이 이론을 열심히 설파하고 있는데 문제는 KBO 올타임급 선구안을 가진 본인은 어설픈 코스를 과감하게 볼로 거를 수 있지만 과연 다른 타자들이 그게 될지...
김재현과 함께 세이버매트릭스가 사랑하는 선수로, 데뷔부터 은퇴하는 시점까지 선수 시절 내내 높은 출루율과 볼넷/삼진 비율을 유지했기 때문에 생산력 지표가 실제 클래식 스탯보다 이상하리만치 높다. 스탯티즈의 창설, 스포츠 2.0의 창간 등으로 팬들의 야구보는 눈이 높아지면서 단순한 교타자인줄 알았던 장성호의 가치가 팬들 사이에서 크게 뛰었다. 양준혁과 더불어 9년연속 3할타율이라는 3할의 대명사라고 불릴정도로 KBO의 전설적인 타격솜씨를 보였으며, 심지어 말년에는 양준혁과 더불어 '거꾸로 잡아도 3할'이라는 별칭이 무색하게 타율이 2할대 중후반으로 폭락했어도 BB/K 숫자는 거의 1.0 수준을 유지했다. 일례로 더 높은 OPS와 홈런수를 기록하고 있어 겉으로는 별 차이 없어보이는 이호준과 세이버 지표를 비교하면 누적이던 비율이던 장성호가 죄다 우위다. 그외 이런 유형의 타자로 김태균이 있고, 물 건너 메이저리그에는 조이 보토를 예시로 들 수 있다.
1루 수비는 객관적으로는 리그 상급이긴 했으나 1루수에게 필요한 땅볼 및 기습타구 처리, 포구 및 블로킹 면에서는 그냥 준수한 편이었고 순발력으로 커버하는 편이었다.[14] 그러나 당시 거포가 부족했던 KIA의 입장상, 거포들이 모여드는 1루수라는 포지션의 특성상 한 때 1루에 장성호 대신 다른 거포를 써야 되는 거 아니냐는 여론도 상당했으며, 구단측에서도 똑같은 고민을 하고 그에따른 여러 방법을 시도했다. 그로인해 장성호는 포지션이 확실치 않았던 90년대를 제외하더라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좌익수 출장을 굉장히 많이 했다. 그 와중에 기아는 장성호 대신 마해영, 김주형, 김경언, 홍세완, 이재주 등을 1루수로 꾸준히 실험했고 그 결과는 돌고 돌아 장성호였다. 1루밖에 못 보는 최희섭에 의해 강제 이동되기 전까지는. [15]
어찌되었든 장성호는 어지간한 거포는 찜쪄먹는 140대의 wrc+와 40이 훌쩍 넘는 누적 war을 기록하며 당시 KBO의 모든 타자 중 20대에 가장 대단한 성적을 남겼던 타자들 중 3위를 마크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페이스를 보였다. 그러나 비슷한 클래스의 타자들이 나이가 들면서 부침과 반등을 반복해가며 완만한 노쇠화를 보인데 반해, 장성호는 만 30세 접어들자마자 바로 하락하기 시작해 반등없이 확연히 가라앉은 페이스로 커리어를 매조지했다. 저니맨으로 전락한 그를 영입한 팀들 모두 전성기로 돌아가길 기대하기보단 한 번의 리바운딩을 노렸었음에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되려 그 몰아친 타이거즈 시절의 전성기의 대단함만 강조되었을 뿐.

5. 기타


  • 야구는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했지만, 고등학교 1~2학년 때 잠시 야구를 그만두고 폭주족 생활을 했었다고 한다. 본인 말로는 갑자기 야구도 공부도 하기 싫어져서라고... 그 과정에서 도 어느 정도 했다. 그러나 고3 때 복귀한 이후 주장을 맡으면서 금방 팀 내 주전을 꿰차고, 프로에 2차 1순위 지명을 받았다. 폭주족 생활을 끝내고 복귀한 이후 첫 경기에서 바로 홈런 2개를 때려내기도 했다. 그 당시 상대투수는 휘문고김선우.[16] 참고로 이 시기에 박명환이 주목받던 충암고의 간판타자이긴 했지만, 그다지 주목받진 못했다. 박명환과 함께 충암고의 1995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김성근은 주목했다고 하지만...
  • 프로에 와서도 놀기 좋아하는 성향이 남아 있었지만, 선배들이 무서워서 야구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하기야 해태가 워낙 군기가 세기로 유명했으니… 그리고 이제는 매우 부지런한 선수가 되어 연습때 가장 일찍 나온다고 한다. 이 때문에 본인과 주변 사람들은 "해태에 지명되지 않았다면 야구를 그만뒀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 위에서 서술했듯이, 김성한을 코치로 만나 타격에 눈을 뜰 수 있었다. 역시 놀기 좋아했던 이호준과 함께 짬뽕 1그릇 시켜먹고 훈련했다고 한다. 이호준은 훗날 술회하길 본인은 맞아야 정신차리는 타입이었으며, 역시 김성한 코치에게 공을 돌리고 있다. 아직도 이호준과 장성호는 김성한을 어려워하고 있다. 여담으로 김성한은 현역 시절부터 짬뽕을 좋아해서 송유석에게 짬뽕 한 그릇 사준 뒤 배팅볼을 던지게 했고 은퇴 후 중국집을 개업했다.
  • 컨택이 매우 뛰어난 중장거리 타자였지만, 수비와 주루플레이는 그리 좋지 않았다. 누상에서 본헤드 플레이를 심심찮게 한 탓에 해태 타이거즈 시절 코감독에게 또라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어떻게 보면 KBO 정신병자의 원조인 셈. 1997년에는 대전 한화전에서 1루에 멍하니 서 있다가 1점을 헌납해서 한화에게 패배하는 바람에 화가 난 김응용 감독이 "넌 버스 탈 자격도 없어. 숙소까지 뛰어와!"라고 했던 적도 있었다. [17][18]
  • 똘끼가 있는 성격이라 정성병자해태/KIA시절 또라이짓의 스승이자 영혼의 콤비였다. 요새도 그 성격은 변하지 않아 한번은 직관을 온 한화 팬에게 그 팬이 응원하는 선수가 올해 결혼할 거라는 낚시를 하기도 했다. 저 특유의 성격에 칼같이 짜여진 해태의 문화가 더해져 장성호는 유난히 해태 내에서도 일화가 많은 선수다. 신인타자가 김응용 감독 앞에서 우동을 떡하니 시켜놓고 먹는다든가 하는 짓거리를 하도 많이 해서 코칭스태프가 질겁을 하면서도 저놈은 크게 될 놈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단다. 입담이 좋다는 평가 역시 이런 성격이 그대로 반영된 화법에 기인한다.
  • 경기 중에 매우 잘 웃는다. 심지어 공에 맞거나, 삼진을 당하거나, 병살을 치거나, 실책을 해도 웃는다…. 본인 말로는 천성이라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는데다 그렇게 한번 웃고 스트레스를 떨쳐버린다고 하는데, 팬들의 반응은 '식빵 굽는 것보단 낫다.'와 '야! 웃음이 나오냐?'의 두 가지로 갈린다.
  • 전설의 절구질짤. 머리쪽으로 날아오는 한기주의 위협구를 이대호가 그대로 노려본 뒤 만루홈런을 때린, 이대호를 상징하는 장면이 등장한 그 경기다. 장성호 역시 만루에 섰고 총알같은 타구를 쳤는데 수비수에게 날로 걸리면서 더블플레이로 무산되고 난 후 덕아웃에서 분풀이를 한 장면. 무기력한 꼴찌팀의 주장의 분노에 타이거즈 팬들의 자존심을 저격한 장면이자, 역대급 부진을 겪던 이종범의 뒤를 이어 장성호가 모든 야구팬들이 인정하는 타이거즈 프랜차이즈 대관식을 하는 장면이었다.[19] 장성호가 불성실하다, 진지하지 못하다 같은 평가가 저 순간 이후 일순간에 모든 야구 커뮤니티에서 사라졌다.
  • 의외로 선수들에게 리더십이나 인성을 인정받는 선수. 기아 선수들이 직접 뽑은 주장이기도 했고 선수협 회장 선거에서도 손민한 다음으로 다득표하기도 했다. 롯데로 이적한 후 가진 각종 인터뷰를 보면 은근히 개그맨 소질이 다분한 것 같다. 입을 놀린 사례가 많아 팬들이 차기 해설로 주목하는 몇몇 후보 중 하나.
  •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장성출이라는 별명도 있다. 2017년 11월 방영된 KBS N "합의판정" 이호준 편에서 설명하기를, 당구 선수 중에 장성출이라는 이름을 가진 왼손잡이 선수가 있는데, 그 선수만큼 당구를 잘 쳐서 붙었다고.(...). 해태 시절부터 절친하게 지낸 형인 이호준이 성출이라고 잘 부른다. 실제로 인터넷상에서 tjdcnfdl라는 단어를 아이디에 사용하고 있다.(현재는 탈퇴상태). 야구선수들의 당구대회에서 준결승까지 진출했는데 조성환에게 패배했고, 결승전에서는이호준이 조성환을 꺾고 우승했다고 한다.
  • 프로야구선수의 스타크래프트 대회에도 참가한 적이 있고, MBC GAME도 알고 있는 빼도박도 못하는 스덕. 2013년 12월에 개최된 야구선수 당구대회 룰이 더블 엘리미네이션이었는데 그 룰을 박재홍에게 설명하면서 MBC 게임을 언급했다. 그 외에도 싸이월드 초창기에 홈페이지에서 직접 질문에 답도 해주면서 적극적으로 인터넷문화에 대응한 인물이며, 지금도 SNS가 유명한 야구선수 중 한 명.
  • 등번호가 1번인데 팀을 옮길 때에도 1번을 유지했다. 한화로 이적후에 1번을 달던 윤경영에게 양보받으며 상품권 30만원을 선물로 주었고, 롯데로 이적후에 1번을 쓰던 이우민에게는 미즈노 방망이 5자루를 줬고[20], kt로 이적후에 1번을 달던 고영표에게는 자신이 가장 아끼던 신발을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참고로 장성호에게 등번호를 양보한 선수들은 다음해에 모두 몰락했다(...). 윤경영은 이듬해 방출, 이승화는 꾸준히 못했고, 고영표는 방어율 5.79를 기록하며 익산 위즈kt wiz를 오갔다.
  • 몇몇 팬들은 이름이 비슷한 장성호 - 장성우 - 정상호를 자주 헷갈려 한다.
  • 99년 데뷔 첫 20홈런(24개)에 올랐고 그 이후 홀수해마다 20홈런 이상을 기록했다(2001년 23홈런,2003년 21홈런).

  • 통산 안타수 5위임에도 골든글러브 수상 경력이 한 번도 없다.이유는 이분처럼 동포지션에 다른 거물급 선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성호의 최전성기라 할 수 있는 2001~2003년 동안 이승엽은 매년 시즌 MVP(...). 1루수 포지션이라면 지명타자로도 활로가 있긴 했으나, 막상 장성호 본인이 1루수로 너무 성실히 출장하는 바람에(...) 그런 일은 없었다.
  • 2019년 3월 26일 자신이 이용규에게 트레이드를 요구하도록 부추겼다는 일부 소문에 페이스북을 통해 강력히 불쾌감을 드려내면서 부인했다. 장성호 위원과 이용규는 KIA에 오랫동안 함께 활약하였고, FA나 트레이드로 이적한 팀이 한화였다 보니 이런 오해를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한화에서는 같은 시기에 활동한 적이 없다. 기사

6. 방송


출연 연도
방송사
프로그램
역할
2016년~2019년
KBS N SPORTS
합의판정

2017년
KBS N SPORTS
아이 러브 베이스볼 2017
진행
2017년~2018년
KBS1
우리들의 공교시 시즌2 : 야자 타임

2018년
KBS N SPORTS
아이 러브 베이스볼 10
진행
2018년 ~
KBS N SPORTS
이광용의 옐로우카드 시즌3
진행
2019년
KBS N SPORTS
아이 러브 베이스볼 11
진행
2020년~
KBS N SPORTS
아이 러브 베이스볼 12
진행

7.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장타율
출루율
1996
해태 타이거즈
71
189
.206
39
9
0
2
11
16
0
21
.286
.286
1997
103
314
.268
84
14
1
4
35
36
2
13
.357
.305
1998
125
465
.312
(5위)
145
(4위)
23
1
15
49
76
5
44
.462
.381
1999
129
485
.342
(3위)
166
(5위)
32
1
24
62
110
(4위)
5
61
.561
.420
(5위)
2000
115
450
.324
146
30
1
14
48
90
6
88
(1위)
.489
.436
(1위)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장타율
출루율
2001
KIA 타이거즈
133
489
.311
152
(5위)
32
(2위)
4
23
97
(5위)
86
6
90
(5위)
.534
.422
2002
133
481
.343
(1위)
165
(2위)
29
(3위)
0
19
95
82
7
86
.522
.445
(1위)
2003
130
476
.315
150
36
(3위)
2
21
105
(4위)
93
(5위)
13
84
(3위)
.532
.417
(5위)
2004
130
474
.300
142
29
(5위)
0
19
80
78
11
76
(5위)
.481
.401
2005
123
464
.300
139
(3위)
23
1
16
74
70
4
61
.457
.382
2006
126
445
.306
(4위)
136
(5위)
24
2
13
79
(3위)
62
6
83
(3위)
.456
(4위)
.413
(3위)
2007
116
395
.281
111
22
0
11
62
55
9
63
.420
.381
2008
85
293
.304
89
17
1
7
46
39
15
53
.440
.412
2009
88
271
.284
77
11
3
7
39
39
7
40
.424
.378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장타율
출루율
2010
한화 이글스
74
237
.245
58
8
0
4
29
34
0
35
.329
.344
2011
116
390
.244
95
13
0
8
37
53
0
81
(1위)
.338
.379
2012
130
429
.263
113
28
0
9
52
57
2
67
.392
.364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장타율
출루율
2013
롯데 자이언츠
83
241
.266
64
10
1
4
27
21
0
37
.365
.363
2014
5
2
.000
0
0
0
0
0
0
0
3
.000
.600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장타율
출루율
2015
kt wiz
49
94
.309
29
4
0
1
16
11
1
17
.383
.421
통산(20시즌)
2064
7084
.296
2100
(5위)

394
(3위)
18
221
1043
(9위)
1108
(6위)
99
1101
(2위)
.451
.394
[1] 99시즌에 샌더스양준혁이 들어오면서 1루수와 지명타자 자리가 채워지자 주전 좌익수로 나서게 되었다. 이 둘이 떠난 이후에도 00, 01, 04, 07시즌에 주포지션인 1루 못지 않게 출전하였고 09시즌엔 백업 좌익수로서 한 시즌을 보내기도 했다. 좌익수로서 수비 실력도 썩 나쁘진 않아서 이후에 최희섭의 입단과 함께 포지션 관련 문제가 일어난걸 생각하면 차라리 처음 주전 좌익수를 맡았던 99시즌부터 전업해서 뛰었더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한다. [2] 이전까진 지명타자 출전이 거의 없었는데, 11시즌부터 그 빈도가 늘다가 12시즌부턴 1루수보다 지명타자로 출전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13시즌부터 은퇴할 때까지는 사실상 전업 지명타자로 출전했다.[3] (오른쪽~ 왼쪽! 오른쪽~ 왼쪽!) 장성호! 장성호!*4. 후에 안치홍이 이 응원가를 물려받았다.[4] # 영상 초반을 보면 장윤정의 사랑아가 들린다.[5] 롯데의 장성호 자이언츠 장성호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2[6] 장성호가 나간 후엔 하준호가, 하준호가 나간 뒤엔 김재유가 이 응원가를 물려받았다.[7] 동인도 회사 소속의 영국군에 끌려가 실론에서 강제로 싸우다가 반병신 상이군인이 되어 돌아온 남편을 아내가 알아보지 못한다는 내용의 곡이다. 아일랜드인들이 영국에 대한 반감을 표현한 노래로 훗날 미국으로 건너간 아일랜드인들이 남북 전쟁중에 부르기 시작하면서 이 노래는 북군의 군가가 되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When Johnny Comes Marching Home이다.[8] 날려버려 날려버려 안타 장성호~ 날려버려 날려버려 안타 장성호~ 날려버려~날려버려~날려버려~날려버려 스! 나! 이! 퍼! 장! 성! 호![9] 이 응원가는 조지훈 응원단장이 기아 응원단장 시절때 만든 응원가였으며, 한화와 롯데에서도 이 응원가를 사용했었다. kt에서도 동일곡을 계속 사용. [10] 롯데 시절 가사는 최강 롯데 자이언츠 안타 장성호~ 최강 롯데 자이언츠 안타 장성호~ 최강 롯데 자이언츠~ 최강 롯데 자이언츠~ 스! 나! 이! 퍼! 장! 성! 호! 홈 경기에서는 '최강' 부분을 '부산'으로 바꿔서 부른다. 응원가에 '날려라'를 쓰지 않고 '쌔리라'를 사용하는 롯데 구단 특성상 불가피했던 가사변경. [11]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12] 당연하지만 이종범, 이호성, 이강철과는 한참 나이나는 연배임에도 해태의 마지막 레전드 취급을 받고 있다. 김종국은 해태시절 타격이 별로라 그 시절보다 KIA시절에서 잘했던 색채가 강하고, 나머지 선수들은 그저..[13] 안치용 해설이 단독 해설로 중용받지 못하는 이유는 안치용 문서에서도 충분히 설명중이니, 안치용문서의 해설자 경력 문단 참고바람.[14] 외야수 출신답게 플라이처리가 귀신이었다. 특히 담장에 착 달라붙는 1루수 파울플라이 타구 처리는 신의 경지. 물론 그게 1루수비에서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는 없지만.[15] 최희섭의 큰 키에서 나오는 포구안정감과 그의 수비 실력이 뛰어나서 이기도 했다. 1루수의 체격은 포구와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에..[16] 김선우가 그야말로 고교를 평정하던 시절이다.[17] 기사에 의하면 김응용 감독은 기자에게 "장성호가 소질은 있는데 노력을 해야 말이지. 성격도 얼마나 느긋한지." 라는 인터뷰를 했으며, 김 감독은 장성호를 야구선수로 한번 만들어 보고 싶었다고 했으며, 그래서 조금은 비정한 충격 요법을 썼다고 했다.[18] 내용에 의하면 버스가 떠난 후 장성호는 흙 묻은 유니폼을 입은 채로 훈련 가방을 어깨에 훌쩍 둘러 메곤 힘차게 뛰기 시작했다. 대전 시내를 관통해 고속버스 터미널 근처의 숙소까지 1시간 가량 뛰었으며, 가는 도중 대전 시민들의 숱한 눈총을 받기도 했으나 때론 비아냥도, 우스개 농담도 귓전을 때렸지만 앞만 보고 달렸으며, 숙소에 도착했을 때 김응용 감독이 현관 앞에 서 있었는데, 김 감독은 땀과 흙이 범벅이 된 채 뛰어오는 장성호를 발견하곤 획 돌아서 숙소로 들어갔다.[19] 하지만 이 장면을 '마늘 빻을 땐 장성호'라는 파일명으로 희화화하기도 했다.(...)[20] 스톡킹에서 이우민이 밝힌 뒷 이야기로는, 김경언에게서 장성호가 롯데로 이적하니 1번 양보하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