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호(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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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으로서 기아그룹의 창업주이다. 호는 학산 (鶴山)이다. 그의 호는 고향 칠곡군에 있는 마을 뒷편인 유학산에서 따온 것으로 전해진다.
2. 생애
1905년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가난한 집안으로 태어나 17살 되던 해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진로가 막막했던 그는 궁리 끝에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초기에는 막노동 등을 통해 생활을 꾸리다가 우여곡절 끝에 자전거 기술을 배웠고, 볼트 및 너트 제조기술업체인 삼화제작소에 재직하여 4년만에 지배인으로 승진[2] , 25세의 나이에 사장이 되어 회사를 운영하였지만 1929년 미국에서 시작한 경제 대공황으로 인하여 일본에서도 그 여파가 미쳐 그가 일하던 삼화제작소도 경영난으로 인해 문을 닫게 되었고 회사에서 퇴직금을 주는 대신 기계를 지급받게 되어 작은 창고를 빌려 다시 삼화제작소를 설립했다. 하지만 중일전쟁 및 태평양전쟁 등 일제가 국가총동원령을 내려 삼화제작소도 군수용 선박부품을 생산하는 군수 산업으로 강제로 편입되어 공장을 늘리고 종업원도 300여명까지 늘릴 정도로 사업이 확대 되었지만, 일본의 패색이 짙어짐을 예견해 회사를 정리하고 1944년 한국으로 귀국해 서울 영등포에 경성정공을 설립한 뒤 당시 비포장 도로에 전차와 역마차 주요 수송수단이였던 환경에서 자전거 사업을 시작했으나 6.25 전쟁으로 인해 거의 대부분의 핵심 설비를 옮겨 부산으로 피난하여 지금의 영도대교 부근에 전쟁으로 인해 보류했었던 자전거 사업을 재기했으며, 1952년 회사명을 기아산업으로 변경하고, 국내 최초의 자전거인 3000리호를 출시했다.
9.28 서울 수복 후 시흥공장을 설립, 1959년, 일본 혼다와 마쓰다의 오토바이 및 삼륜차 생산을 위한 기술제휴를 체결했으며, 그 후 3년 뒤 기아혼다 C-100과 기아 K-360을 생산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확보한 수익으로 1970년 국내 최초의 일관공정 시스템을 적용한 소하리 공장을 착공시켰다.[3]
1973년 11월 22일, 병으로 사망하였으며, 그의 아들인 김상문을 거쳐 민경중, 김선홍 순으로 회장직을 이어 받았다.
3. 여담
- 기아그룹의 마지막 회장인 김선홍을 1958년 기아산업 공채 1기로 입사시켰으며, 여럿 엔지니어들도 고장의 원인을 모른다는 기계를 고쳐 작동시키는 등 도깨비 잡는 놈이라며 인정과 신임을 주었다고 한다.
- 오늘 날 삼천리자전거의 대표이사인 김석환 대표는 김철호 회장의 손자이자 김상문 전 회장의 아들이다. 기아그룹이 해체되기 전까지는 삼천리자전거를 범 기아그룹의 일원으로, 기아그룹 임직원도 삼천리 자전거를 살 때 할인을 받을 수 있었다. IMF 사태로 기아그룹이 공중분해되고 기아가 현대자동차로 인수되어, 마침내 기아 간판을 그룹 이름에서 떼어내버리고 만 현대자동차그룹에서는 통합 이전의 기아 역사를 흑역사 취급하는 반면, 삼천리자전거에서는 기아그룹과 공통이던 사훈 등을 아직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 그룹의 정통성은 이제 삼천리자전거쪽에만 남아 있는 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