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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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宅述
1918년 12월 2일 ~ 1981년 10월 28일
대한민국의 전 언론인, 정치인이다. 본관은 도강(道康)[1]##2, 호는 춘강(春江).
1918년 전라북도 정읍군 칠보면 시산리[2]#에서 태어났다. 일본 주오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3]
8.15 광복 후 전라북도 노동과장을 역임하여 잠깐 동안 관료생활을 하였고, 대한독립촉성농민총연맹 및 대한노동총연맹에 참여하여 전라북도 부위원장에 임명되는 등 정치인으로 주로 활동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독립촉성농민총연맹 후보로 전라북도 정읍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국민주당 김종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노농청년연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대 국회에서 교통체신위원회 위원을 겸임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송영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사실상 정계를 떠나 전남상공신보(全南商工新報) 사장을 역임하면서 언론계에 종사하기도 했으며, 1959년 고향 정읍에서 신태인조정공장(新泰仁搗精工場)을 경영하기도 했다.#
5.16 군사정변 이후 민주공화당이 창당되자 입당하였고, 1967년 한국화물차회사(韓國貨物車會社) 사장을 역임했다.
金宅述
1918년 12월 2일 ~ 1981년 10월 28일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언론인, 정치인이다. 본관은 도강(道康)[1]##2, 호는 춘강(春江).
2. 생애
1918년 전라북도 정읍군 칠보면 시산리[2]#에서 태어났다. 일본 주오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3]
8.15 광복 후 전라북도 노동과장을 역임하여 잠깐 동안 관료생활을 하였고, 대한독립촉성농민총연맹 및 대한노동총연맹에 참여하여 전라북도 부위원장에 임명되는 등 정치인으로 주로 활동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독립촉성농민총연맹 후보로 전라북도 정읍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국민주당 김종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노농청년연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대 국회에서 교통체신위원회 위원을 겸임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송영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사실상 정계를 떠나 전남상공신보(全南商工新報) 사장을 역임하면서 언론계에 종사하기도 했으며, 1959년 고향 정읍에서 신태인조정공장(新泰仁搗精工場)을 경영하기도 했다.#
5.16 군사정변 이후 민주공화당이 창당되자 입당하였고, 1967년 한국화물차회사(韓國貨物車會社) 사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