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디자이너)
金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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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그래픽 디자이너. 1988 서울 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와 1993 대전 엑스포 마스코트 꿈돌이를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하다.
경기공업전문학교 공예과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조영제CIP연구소 연구원, 대우그룹 기획조정실 디자이너, 대한민국 디자인전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디자인파크 대표로 있다.
1949년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시 부산으로 피란을 갔다가 서울에 정착했다. 아버지는 광산업자였으나 사업이 여의치 않아 어린 시절 내내 더 작은 집으로 전전하며 이사를 다녀야만 했다.
일곱 살 때부터 빈 종이만 있으면 무엇이든 그려댔는데 재동국민학교 시절부터 나가는 대회마다 상을 휩쓸곤 했다. 경기공업전문학교(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시절에는 공모전에 걸린 상당한 액수의 상금이 동기가 되어 대기업이나 정부기관에서 주최하는 현상공모전에 35차례나 응모했지만 수상에는 계속 실패했다. 비록 수상은 못했어도 당선작의 심사평을 참고하여 당선 이유를 분석하고 개선점을 배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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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4학년 때인 1969년 제일은행이 창립 40주년을 기념해 주최한 전국저축포스터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해 상금 30만원[1] 을 받았다. 그 이후 호돌이 당선까지 80여회나 출품할 때마다 당선되어 공모전 최다 수상자로 유명세를 떨쳤는데 심지어 군 복무(방위병) 중에도 주말을 이용해 공모전에 출품해 1974년 한국관광포스터 공모전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서라벌예술대학(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에 편입해 졸업 후 공모전의 단골 심사위원이었던 서울대 조영제 교수를 만나 조영제CIP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입사하여 제일모직과 신세계백화점 CI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1976년에는 대우그룹 기획조정실 디자인팀으로 스카우트[2] 되어 대우그룹의 기업 PR 신문광고 시리즈를 진행했다.
1983년, 서울 아시안 게임과 서울 올림픽의 마스코트 공모전이 시작되었다. 현역 디자이너 7인을 선정해 3개월간 2점의 작품을 제출하게 하는 지명 공모전이었는데, 제출된 14점의 작품 중 김현의 작품은 총 14표 중 12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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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돌이 초안. 500장이 넘는 호랑이 사진을 모아 300여개의 스케치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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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지명공모 당선작이고 이후 동물 분야를 비롯한 각계 전문가들의 검증과 수정, IOC 승인 과정을 6개월 가까이 진행한 끝에 최종 발표된 선정안이 우측이다.
호돌이 당선 후 대우그룹을 나와 디자인파크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많은 수의 기업 CI 작업을 했다. 서울대공원을 시작으로 한국과학기술대학교, 빙그레 이글스, 금호그룹, 신한은행, 퍼시스, 샘표 등의 기업 CI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1993년 대전 엑스포 마스코트 꿈돌이 역시 그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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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 대전 엑스포 마스코트 꿈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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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그래픽 디자이너. 1988 서울 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와 1993 대전 엑스포 마스코트 꿈돌이를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하다.
경기공업전문학교 공예과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조영제CIP연구소 연구원, 대우그룹 기획조정실 디자이너, 대한민국 디자인전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디자인파크 대표로 있다.
2. 생애
1949년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시 부산으로 피란을 갔다가 서울에 정착했다. 아버지는 광산업자였으나 사업이 여의치 않아 어린 시절 내내 더 작은 집으로 전전하며 이사를 다녀야만 했다.
일곱 살 때부터 빈 종이만 있으면 무엇이든 그려댔는데 재동국민학교 시절부터 나가는 대회마다 상을 휩쓸곤 했다. 경기공업전문학교(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시절에는 공모전에 걸린 상당한 액수의 상금이 동기가 되어 대기업이나 정부기관에서 주최하는 현상공모전에 35차례나 응모했지만 수상에는 계속 실패했다. 비록 수상은 못했어도 당선작의 심사평을 참고하여 당선 이유를 분석하고 개선점을 배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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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4학년 때인 1969년 제일은행이 창립 40주년을 기념해 주최한 전국저축포스터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해 상금 30만원[1] 을 받았다. 그 이후 호돌이 당선까지 80여회나 출품할 때마다 당선되어 공모전 최다 수상자로 유명세를 떨쳤는데 심지어 군 복무(방위병) 중에도 주말을 이용해 공모전에 출품해 1974년 한국관광포스터 공모전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서라벌예술대학(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에 편입해 졸업 후 공모전의 단골 심사위원이었던 서울대 조영제 교수를 만나 조영제CIP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입사하여 제일모직과 신세계백화점 CI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1976년에는 대우그룹 기획조정실 디자인팀으로 스카우트[2] 되어 대우그룹의 기업 PR 신문광고 시리즈를 진행했다.
3. 호돌이 탄생
1983년, 서울 아시안 게임과 서울 올림픽의 마스코트 공모전이 시작되었다. 현역 디자이너 7인을 선정해 3개월간 2점의 작품을 제출하게 하는 지명 공모전이었는데, 제출된 14점의 작품 중 김현의 작품은 총 14표 중 12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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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돌이 초안. 500장이 넘는 호랑이 사진을 모아 300여개의 스케치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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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지명공모 당선작이고 이후 동물 분야를 비롯한 각계 전문가들의 검증과 수정, IOC 승인 과정을 6개월 가까이 진행한 끝에 최종 발표된 선정안이 우측이다.
4. CI 작업
호돌이 당선 후 대우그룹을 나와 디자인파크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많은 수의 기업 CI 작업을 했다. 서울대공원을 시작으로 한국과학기술대학교, 빙그레 이글스, 금호그룹, 신한은행, 퍼시스, 샘표 등의 기업 CI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1993년 대전 엑스포 마스코트 꿈돌이 역시 그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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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 대전 엑스포 마스코트 꿈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