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돌이

 


1. 개요
2. 평가
3. 탄생 과정
4. 잊힌 호돌이?
5. 만화, 애니메이션 달려라 호돌이.
6. 기타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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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서울 올림픽 당시 공식 마스코트. 모티브는 호랑이이다. 머리에는 조선시대 때 노래부르고 춤추며 거리공연을 하던 남사당패들이 착용하던 모자인 상모를 쓰고 있다.[1] 목에는 올림픽을 상징하는 오륜 메달이 걸린 것이 특징. 상모의 물채를 S자 모양으로 배치하여 역동성과 '''S'''eoul을 강조했다.
호돌이는 1986 서울 아시안 게임에서도 등장했다. 공식적으로 마스코트를 안 만들고 올림픽 홍보 차원에서 호돌이를 사실상 마스코트처럼 썼기 때문이다. 목에 걸린 오륜 메달도 수정 없이 그대로 썼고[2] 개회식 매스게임에도 묘사되었으며 폐회식에서는 다음 베이징 아시안 게임 마스코트와 함께 등장했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호돌이를 88 서울올림픽 마스코트라고 얘기하지 아시안게임 마스코트에 대한 말은 일언반구도 없다.
여담으로 호돌이가 마스코트로 선정된 이후부터는 국내 전국체전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이 참가하는 온갖 종류의 국제대회에서 한국 선수단이나 임원들은 어김없이 호돌이 마스코트와 서울올림픽 휘장을 등장시켜 홍보에 열을 올렸다.[3] 이러한 올림픽 홍보 몰빵에 아시안게임도 예외가 아니었던 셈.

2. 평가


역대 마스코트를 평가한 미국의 팝아트 비평가 피터 하틀라웁은 상모를 뚫어뻥 같다고 하기도 했다. # 물론 비하하는 것은 아니고 한국 문화를 모른다는 한계 때문이지만 그래도 역대 3위라는 아주 좋은 평가를 주었다.
다만 한편으로는 호돌이의 디자인이 컴퍼스를 이용하여 단순화하는 '도안'이라는 오래된 틀에 갇혀 진보된 이미지를 제시하지 못한 점을 한계로 지적하기도 한다. 불과 4년 후에 열린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마스코트 코비#s-7와 비교해 보면 더욱 그렇다.[4]

3. 탄생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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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디자인은 공모[5]를 통해서 1983년 산업 디자이너 김현[6]이 제안한 지금의 호돌이 캐릭터를 선정하였으며 최종 공모 당선작에서 수정을 가한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지금의 호돌이 캐릭터. 다소 곡선적인 디자인이었던 초기의 호돌이를 두고 조직위 측에서는 다소 소극적인 느낌이 드는 디자인이라 평했는데 김현은 거의 5개월 가까이 독방에 들어앉아 수정작업을 거치며 현재의 호돌이를 만들었다고 한다. 참고로 주최측에서 호랑이는 맹수라는 이미지가 강하다보니 군사독재를 부각시킬 위험성이 있어서 토끼로 하는것을 더 선호했지만 가장 윗분이 호랑이를 선호해서 그냥 호랑이로 가기로 했다고.
1983년 11월 29일, 공식 마스코트가 발표된 이후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름 공모를 하였고 이듬해인 1984년 4월 호돌이(HODORI)라는 이름이 정식으로 채택되었다. 여성형 캐릭터는 호순이. 그리고 이 호랑이는 적극적으로 정부에서도 하나의 홍보 수단으로 다 호돌이로 채워져있을 정도로 모든 생활품에 호돌이 마크가 넣었다. 이름을 채택하는 과정에 범돌이, 복돌이(...) 등이 후보에 올랐으나 압도적인 표로 호돌이가 선택되었는데 호돌이의 영문명인 HODORI가 불어권에서는 '오도리'라 발음될 수 있는 점[7]을 감안하여 호돌이는 제외될 뻔했으나 최종적으로 호돌이로 낙점되었다.
탄생 비화에서 하마터면 호돌이가 쓰이지 못할 뻔 했는데, 미국의 켈로그측에서 조직위원회측이 자사의 '토니 주니어'[8]를 표절했다고 클레임을 걸었기 때문이다. 이에 박세직 조직위원장이 미국까지 날아가 켈로그 회장에게 설득을 하였는데, "토니는 다이어트를 해서 그런지 매우 말랐지만, 호돌이는 포동포동하지 않느냐. 호돌이는 토니를 표절한 것이 아니다."라고 설득하였다고 한다.[9] (토니의 변천사) 그 덕분에 서울올림픽 공식 후원사에 시리얼 부문은 빠져있었다. 일설에 의하면 켈로그의 영원한 경쟁사인 포스트 또는 그의 한국 담당인 동서식품에서 후원사로 참여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포스트랑 계약을 맺으면 상표권이 대놓고 꼬이니까, 이걸 체결하지 않겠다는 조건도 설득 내용 중에 들어가 있었다고 한다. #

4. 잊힌 호돌이?


종종 호돌이는 잊혔다느니 왜 캐릭터로 안 쓰느니 하는 의견이 보인다.
그러나 호돌이에 관한 지식재산권은 올림픽 경기 전과 경기 중에는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가 행사하다가, 올림픽이 끝나고 난 후 올림픽 헌장[10]에 따라 모든 권리가 IOC에 귀속되어 있고, 해당 국가올림픽위원회는 IOC를 대신해서 수탁관리 업무만 담당할 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임원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준정부기관이라는 특성상 이쪽에서 맡긴 하는데, 이것 역시 수탁업무에 한정될 뿐 캐릭터의 소유권 등은 올림픽 헌장에 따라 IOC가 소유하고 있다. 당연히 지적재산권를 보유하고 있는 IOC의 허락 없이는 상업적 이용은 불가능하다. 2013년에 호돌이 발표 30주년을 맞아 기념식을 열고 마스코트 활용과 호랑이 국가브랜드화를 위한 토론이 열리기도 했으나, 이후에 별다른 소식이 없는 것도 이런 이유.
근래 들어 응답하라 1988의 여파로 호돌이에 대한 관심이 몰렸지만 일시적인 붐일 뿐이고, 설령 호돌이에 대한 관심이 전국민적으로 들끓는다 해도 올림픽 마스코트가 대회 종료 후 상업적 용도로 사용된 전례가 없음을 생각하면 호돌이가 다시 상품화될 가능성은 '''없다고 보면 된다'''. 현재 인터넷상에서 판매되는 호돌이 관련 상품은 대부분 최근에 IOC 승인 없이 무단 제작된 것들로 IOC 규정과 한국 저작권법에 위배되는 불법 상품들이다.[11]
그럼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나온 호돌이 상품들은 뭐냐고 물을 수 있을텐데, 해당 상품들은 서울올림픽 공식 프로모션 기간인 84~88년 사이에 출시되었던 오리지널(=합법) 상품들을 구해서 방송에 내보낸 것이다.

5. 만화, 애니메이션 달려라 호돌이.


1987년에 대원동화가 애니메이션화하여 MBC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제목은 '''달려라 호돌이'''(성우는 송도순). 호돌이가 한국의 어린이들, 그리고 대학 교수와 함께 세계 곳곳을 여행[12]하는 내용인데 여기서 주인공이 호돌이를 부를 때 쓰는 주문이 지금 보면 상당히 아햏햏하다. 작가도 좀 오그라든다고 생각했는지 이후에는 호돌이를 소환하는 주문 없이도 주인공 일행과 계속해서 여행하게 설정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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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출판사에서 당시 애니코믹스 형식으로 애니메이션의 장면들을 캡쳐해만든 달려라 호돌이 만화책이 나왔었고 1997년에 '''호돌이의 세계여행'''이라는 이름으로 각 권의 제목을 바꾼 개정판이 나왔었다. (왼쪽이 <달려라 호돌이>만화책의 초판, 오른쪽이 <호돌이의 세계여행>으로 개명한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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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뉴스 제 1694호에서 달려라 호돌이 만화 제작과정을 담았다.

참고로 이 달려라 호돌이는 올림픽 기념으로 만들어진데다가 MBC에서 처음으로 방영된 국산 TV 애니메이션이라는 점 때문에[13] MBC에서 꽤 밀어주는 만화영화로 방영당시에 일요일 저녁 시간대에 당당히 편성되었고, 심지어 '''토요일 재방송은 메인뉴스인 뉴스데스크 시작 전에 편성되기까지 했을 정도였다'''.[14] 한국 애니메이션사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이고 2001년 TV동화 행복한 세상 편성 이전까지 달려라 호돌이보다 편수가 많은 한국 애니메이션은 '''단 한 편도''' 없었기 때문에 그 의미가 더욱 크다.[15]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방송한 떠돌이 까치, 까치의 날개, 달려라 하니, 천방지축 하니, 독고탁의 비둘기 합창 등과 다르게 위의 사유로 올림픽이 끝난 이후로 재방송이 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영상자료를 구하기가 참 힘들며, 운 좋게 당대에 녹화된 비디오를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MBC, 대원미디어 등에서 근무하지 않으면 못본다 봐도 좋을정도. 그래서 달려라 호돌이가 당대에는 꽤 인기를 끈 만화영화였음에도 현재까지도 달려라 호돌이 방송자료는 MBC 아카이브실에서 고히고히 잠들고있다는 후문이다. 결국에는 환상의 작품이 된 셈.
사실, 이 애니는 한국 홍보물인 성격이 강했기에 지금 보자면 국뽕물이라는 비아냥이 나올 에피소드도 있다. 외국인 백인 노부부가 한국에 오니까 한국적인 게 없고 옷차림이니 건물이니 서구풍이라 실망한 것을 사물놀이이니 뭐니 그렇게 즐기고 하회탈 벗고 이 할아버지가 코리아 넘버원이라고 하고 끝나는 에피소드였다. 더불어, 표절도 피할 수 없었는데 남주인공이 이웃집 막장 꼬맹이를 부모가 나가서 잠깐 맡았더니 개초딩 짓을 저지르는 걸 호돌이가 보고 장난감을 거대화시켜 실체화하여 그 개초딩 꼬맹이 엉덩이 맴매를 치게한다. 문제는 이 로봇 디자인이 일본 애니메이션 초력로보 가랏트(超力ロボ ガラット,1984)에 나온 주인공 로봇 디자인을 그대로 베꼈다.... 가슴에 나온 G 대신 호라는 한글이 달린것 빼고. 이 개초딩이 울면서 로봇이 나를 때렸다고 나중에 온 엄마에게 말하지만 당연히 믿을 리 없었다. 그 시절, 다이나믹 콩콩 코믹스 로봇 대백과를 통해 로봇들을 접해본 당시 아이들도 여기 나온 로봇을 보고 어? 이럴 정도였으니.
더불어, 한 에피소드에 나온 악당이 만든 사람형 로봇 디자인은 형사 가제트가 입은 옷과 모자를 그대로 베껴 나오게 하는 똥배짱으로 그렸다. 아무런 말도 없이 나오던 이 로봇은 호돌이가 용광로에 밀어넣어 기계 몸이 다 드러나고 목에 설치된 중요장치를 떼어내 동작이 멈춰진다. 이 로봇을 써서 요인 암살 및 폭탄 테러로 쓰려다가 실패한 악당은 마지막 발악으로 요인을 스스로 암살하려고 했으나 호돌이가 직접 나서 실패하고 사로잡히게 된다.
이 작품에서 호돌이 일행은 여러 나라들을 방문하는데 가는 국가들 대부분이 이 만화가 나올 당시에 자본주의/민주주의 진영에 속해있던 제1세계 국가들이나 또는 중립국인 스위스, 남미나 중동, 아프리카, 인도 등 제3세계 국가들이 대부분이고 공산주의 국가들은 중국하고 1980년대 당시 멩기스투 공산주의 정권의 치하에 있었던 에티오피아[16] 단 2개국밖에 나오지 않는다.

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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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서울 패럴림픽 마스코트는 '곰두리'이다. 이 마스코트는 송파구에 위치한 체육관 마스코트로 쓰인다.
서울 올림픽에 참가하거나 방문한 프랑스어권과 스페인어권 사람들은 ㅎ 발음을 못해서 '오도리'라고 불렀다.
공익광고협의회의 1985년도 광고 중 '자연보호'를 주제로 한 광고와, 1986년 광고 중 아시안 게임을 주제로 한 광고의 모델로도 등장했다. 이 때 호돌이의 성우는 두 편 모두 박영남이었다.
서울특별시의 해치 이전 공식 마스코트였던 왕범이는 설정상 호돌이와 호순이의 자식으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홍콩 영화 폴리스 스토리 2에서 호돌이가 잠깐 등장한 바 있다.
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벽화에 그려져 있다. 승강장 안전문으로 가려져 있어 제대로 보기는 힘든편.
서울 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다시 한국에서 개최되는 올림픽인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도 호랑이 캐릭터인 수호랑이 공식 마스코트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호돌이와 수호랑은 서로 먼 친척이라는 설정이 있다고 한다.[17] 그런데 '호돌이 아빠' 김현의 인터뷰에 의하면 이 설정 때문인지 수호랑을 김현이 만들었다고 아는 사람이 많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한 바 있다. 이후 2018 평창 동계올림픽/폐회식 선수 입장식 때 수호랑과 함께 등장했다. 또한 배성재 아나운서는 아직 호돌이는 정정하다고 한다.

[1] 상모가 포졸들이 쓰던 모자인 포졸모에서 모티브를 따와 만든 모자라 비슷하게 생기기도 했고 흔히 한국 사람들에게 포졸복장이 임금님복장으로 유명한 곤룡포와 사또복장으로 유명한 구군복과 더불어 가장 친숙한 전통차림인지라 호돌이의 모자가 포졸들이 포졸복을 입고 머리에 쓰는 모자인 포졸모라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정수리부분의 굉장히 길다란 천을 보면 엄연한 상모이다. 남사당패들이 고개 돌리며 재주를 넘을 때 흥을 돋구기위해 정수리의 천부분을 길게 했다.[2] 아시안 게임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승인 하에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가 주관하는 올림픽의 지역 버전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오륜 메달을 썼다고 크게 이상할 건 없다.[3] 85년 고베 하계유니버시아드 폐회식에 호돌이 마스코트가 서울올림픽휘장기를 들고 입장하는 모습을 보도한 기사[4] 코비의 디자인은 한국의 디자인계에도 영향을 미쳐서 이후 코비 아류의 심벌들이 쏟아져 나오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이는 코비가 특출난 것으로 봐야 한다.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마스코트가 역대 최악이라는 평을 받는 것을 보면 말이다. 참고로 호돌이가 디자인된 시기는 1983년이고 당시 서유럽의 자유분방한 분위기와 한국의 군사/권위주의 문화를 고려하면 어쩔 수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5] 만화가 신동우 화백도 응모했다.[6] 호돌이 이후에도 여러 마스코트와 상업용 캐릭터 디자인을 담당했다. 삼성 라이온즈의 90년대 중반에 등장한 블레오LG 트윈스의 초기 로봇형 쌍둥이 마스코트도 이분이 주도한 결과물이다.[7] 불어에서는 'h'[a∫\]가 묵음 처리된다.[8] "호랑이 힘이 솟아나요!" 광고로 유명한 콘푸로스트의 호랑이 마스코트 '토니 더 타이거'의 아들이라는 설정.[9] 그런데 그 설득보다 더 중요하게 작용한 것은 박세직 위원장이 가져간 와인이었다. 켈로그 社 사장이 본인의 창고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엄청난 와인광이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정성에 켈로그 社도 클레임을 철회하였다고 한다. (서울올림픽 우리들의 이야기 中에서)[10] Olympic Charter, Bye-law to Rule 50, 4[11] 다만 가끔가다 84~88년 사이에 출시되었던 오리지널(=합법) 상품들이 팔리기도 한다.[12] 정확히는 대학 교수가 여행을 하는 목적이 '''전 세계의 핵무기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무기'''인 '이레네 빔'을 만들 때 필요한 원소 '겜마 702'를 악당들의 손에 넘어가기 전에 먼저 찾기 위해서라는 첩보영화스러운 설정이 붙어 있었고, 이로 인해 스토리 중간중간에 평범하게 여행이 진행되다가도 겜마 702를 두고 주인공 일행과 악당들이 추격전을 벌이는 장면들이 꽤 많이 나온다. 결국 교수는 파르테논 신전에서 겜마 702를 찾는데 성공하였지만, 악당들의 손에 겜마 702가 들어가게 하지 않게 어쩔 수 없이 파괴하게 되고, 교수가 전 세계의 어린이들과 농구를 하는 호돌이를 보며 '저렇게 전 세계의 아이들이 평화롭게 어우러진다면 이레네 빔 없이도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겠지' 라는 말을 하며 스토리가 마무리된다.[13] 그 이전에는 뽀뽀뽀 단편 애니메이션이나 명절이나 휴일, 기념일에 나오는 극장판 애니메이션 재탕하는 것 정도만 국산이었고 어린이 시간대에 정기적으로 방송하던 애니메이션은 미국이나 일본 등 외국에서 수입해온 것들이었다. 물론 외제 만화영화만 방송하는 것에 대해 항의가 수시로 들어왔기는 했고, 국산 만화영화는 제작계획이 세워지지 않았던 것으로 것은 아니지만 제작에 돈이 많이 든다며 백지화 되기 일쑤였다. 그렇지만 서울 올림픽이 다가오던 상황이라서 외제 만화영화만 방송하기는 좀 그랬던데다가 현실적으로도 시청료 거부운동으로 수신료 징수율이 날이 갈수록 떨어졌던 참인지라(다만 피해를 본 건 주로 KBS이기는 했다. MBC도 신뢰도 상에 손상을 입었기는 했지만 애초부터 수신료를 나눠먹거나 한 건 아니기 때문에 직접적인 피해는 적었다.) 양대방송사 입장에서 공영방송으로써의 가치를 내건 신규 콘텐츠의 제작이 필요했고, 그 결과로 만들어진것이 MBC 달려라 호돌이와 KBS 까치 시리즈다. [14] 그나마 비슷하게 버프를 받았던 적이 있던 애니메이션은 TV동화 행복한 세상 정도가 있었지만 이건 1년 정도밖에 못 갔고 이후로는 비 황금시간대로 밀려났다. [15] 사실 아기공룡 둘리가 이보다 더 장편으로 제작될 수 있었지만 원작의 사회풍자적인 면을 순화한 나머지 원작자가 연장방송을 거부해서 무산되었고, 이후로 2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외전격인 작품만 제작되었을 뿐, 신규 TV애니메이션 제작은 제작비 등의 문제로 인해 지지부진하여 새로운 에피소드가 제작된 것은 2009년에 와서였다.[16] 말이 공산주의 정권이었지. 실상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군부 세력들이 독재정을 행하는 여타 아프리카권 국가들에서 볼 수 있었던 무능하기에 짝 없는 군부 독재 정권에 가까웠다. 실제로 멩기스투도 군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쿠데타 반란군 출신이었다.[17] 공교롭게도 패럴림픽 마스코트인 반다비 역시 1988년 패럴림픽 당시 마스코트였던 곰두리와 마찬가지로 곰 캐릭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