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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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洪鏞
1902년[1] 10월 3일 ~ 1950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성재(聲在).
1902년 전라남도 창평군 고현내면 고읍리(현 담양군 고서면 고읍리 대팽이골)에서 태어났다.#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및 와세다대학 전문부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하였다.[2] 1923년 관동 대지진 당시 일본 본토에서의 생활에 회의감을 느끼게 되어 조선으로 귀국하였다. 이후 일제 패망 때까지 고향 담양군에서 청년회 활동, 면의원 등을 역임하는 등 지역 유지로 자리잡았고, 1940년에는 창평면장을 맡기도 했다.#
8.15 광복 후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전라남도 담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나, 6.25 전쟁 중 조선인민군에게 피살당했다.
1952년 보궐선거에서 동생 김문용이 당선되었고, 제6대, 제7대 국회에서는 막내동생 김성용이 전국구 의원을 역임하였다. 여동생으로 농학자 김삼순, 매제로 철학자 강세형이 있으며, 외조카로 자유선진당 대표를 역임한 이회창이 있다.
金洪鏞
1902년[1] 10월 3일 ~ 1950년 8월 15일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성재(聲在).
2. 생애
1902년 전라남도 창평군 고현내면 고읍리(현 담양군 고서면 고읍리 대팽이골)에서 태어났다.#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및 와세다대학 전문부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하였다.[2] 1923년 관동 대지진 당시 일본 본토에서의 생활에 회의감을 느끼게 되어 조선으로 귀국하였다. 이후 일제 패망 때까지 고향 담양군에서 청년회 활동, 면의원 등을 역임하는 등 지역 유지로 자리잡았고, 1940년에는 창평면장을 맡기도 했다.#
8.15 광복 후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전라남도 담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나, 6.25 전쟁 중 조선인민군에게 피살당했다.
1952년 보궐선거에서 동생 김문용이 당선되었고, 제6대, 제7대 국회에서는 막내동생 김성용이 전국구 의원을 역임하였다. 여동생으로 농학자 김삼순, 매제로 철학자 강세형이 있으며, 외조카로 자유선진당 대표를 역임한 이회창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