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마킬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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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macil I
1. 소개
곤도르의 제 17대 왕 나르마킬 1세는 제3시대 1049년 알카린 왕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이름인 나르마킬은 퀘냐로 '''불타는 검'''이라는 뜻이다. 1226년 부왕 아타나타르 알카린이 죽자 즉위하여 1294년 246세의 나이로 서거할 때까지 68년 간 곤도르의 왕위에 있었으나 1240년 이후의 통치는 섭정인 조카 미날카르가 맡아 하였다. 그는 타란논 팔라스투르이후 두 번째로 자식이 없는 왕이었다. 그가 죽자 동생 칼마킬이 즉위하였다.
2. 재위 기간
1226년 나르마킬은 곤도르의 제 17대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그의 재위 초기에 곤도르는 이미 쇠퇴의 징조를 보이고 있었으나 나르마킬은 이에 대해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귀찮은 국정을 젊은 조카 미날카르에게 떠넘기고 자신은 뒷전으로 물러났다.
2.1. 주요 사건[2]
2.1.1. 1248년
미날카르는 북부인들 중 가장 강한 로바니온의 왕 비두가비아(Vidugavia)의 원군과 함께 동부인들을 격파하고, 룬 해 동쪽의 그들의 거주지를 파괴하였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안두인 대하 서쪽 림라이트강까지 요새화하고, 이방인들의 에뮌 무일 아래의 통과를 금하며, '''넨 히소엘 입구에 이실두르와 아나리온의 모습이라는 아르고나스를 세우게 하였다.'''
2.1.2. 1250년
북부인과 우호를 돈독히 하고 싶은 미날카르는 그의 아들 발라카르를 로바니온에 대사로 파견하여 머물게 하였다. 발라카르는 아버지보다 더 북부인들을 사랑하여 비두가비아의 딸 비두마비아(Vidumavi)와 결혼하였다.
3. 평가
'''곤도르의 쇠락을 가져온 암군.'''
나르마킬은 왕이면서 국정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유능한 조카를 섭정으로 삼았다는 것이지만 이 또한 미날카르의 아들이 북부인과 결혼, 혼혈인 엘다카르를 낳으면서 훗날 동족 분쟁의 빌미가 되었다. 만일 나르마킬에게 자식이 있었다면 그런 일은 없었겠지만 원래 그런 일은 자신의 의지대로 가기 어려운 법이니까. 하여튼 의도튼 의도하지 않았든 여러모로 곤도르에 민폐를 끼친 왕이었다.
4. 같은 시기 아르노르
4.1. 1272년
제5대 왕 켈레브린도르가 210세의 나이로 서거하고, 아들 말베길이 아르세다인의 제 6대 왕위에 올랐다.
그는 루다우르와 카르돌란에 이실두르의 후손들이 남아있지 않으므로 아르노르의 전 영역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하고 나서며, 그런 의미로 아들을 시작으로 자손들의 이름에 항상 접두사 Ar(a)-를 붙이게 하였다.[3]
[1] 이 사건들의 대부분이 섭정이었던 미날카르의 치적이었다.[2] 이 사건들의 대부분이 섭정이었던 미날카르의 치적이었다.[3] 이 전통은 아라고른 2세가 아르노르뿐만 아니라 곤도르까지 통일한 후, 그 목적을 다하고 끝났다.